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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6호] 20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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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방역 모범국 대만의 힘은 여성정치인에게서 나온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silkroad100@gmail.co

▲ 지난 4월 16일 자 미국 타임지의 특집기사 ‘희망을 찾아서’ 간판 인물로 선정된 차이잉원 대만 총통. photo 연합
‘희망을 찾아서(Finding Hope)’.
   
   지난 4월 16일 자 미국 타임지 특집판 제목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맞선 글로벌 지도자들의 메시지가 특집판의 주된 내용이다. 바이러스 방역에 나선 의사, 종교지도자, 냉전을 극복한 정치가, 환경·여성·평등 운동에 투신한 사회사업가 등 100명의 ‘희망 전사’들이 등장한다.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차별, 편견, 폭정, 환경오염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행적과 비전을 파악할 수 있는 기사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이 특집판이 간판으로 내세운 인물이다. 다름 아닌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을 이 특집 기사의 얼굴로 내세운 것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전염병 대재앙을 이겨낸, 세계의 희망이자 미래로 차이잉원 총통이 꼽힌 셈이다.
   
   
   차이 총통의 감동이 밴 리더십
   
   흥미롭게도 전 세계로 확산한 전염병은 지구촌 정상들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시험대로 변해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때는 꼼짝도 안 하다가 막판에 나타나 ‘전염병 정복’을 외치는 일당독재 국가의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세계 각국의 1등 지도자가 아니라 하위권 주자들과 비교하면서 자화자찬하는 탤런트형 대통령도 있다. 그러나 투명과 개방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산다면, 자국 지도자의 능력과 비전을 외국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국내용 우물 안 개구리식 쇼에 넘어가기 쉽지만, 눈을 들어 조금만 살펴봐도 ‘객관적 수준의 리더십’을 가늠해낼 수 있다. 자타가 공인하지만, 2020년 4월 차이 총통은 전 세계 바이러스 방역 부문 금메달 수상자에 해당한다. 어떤 근거와 증거가 있을까? 한국의 20분의 1 수준에 그친 확진자나 사망자 수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객관적 통계에 앞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다른 데 있다. 전염병 대재앙에 맞선, 진지하고도 겸손한 지도자의 마음 자세다. ‘감동이 밴 리더십’이라고나 할까? 숨기거나 오판, 허세가 아니라 성심성의껏 정확하게 대응한 자세가 차이잉원이 금메달을 딴 ‘진짜’ 이유라 판단된다.
   
   지난 1월 20일 차이 총통이 행한 TV 생중계를 보자.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에 즈음한 단독 연설이었는데 7분4초에 걸친 이 연설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역병이 시작됐다. 상황은 악화할 수 있다. 정부는 최선을 다하겠다. 그 어떤 전염병도 힘을 합칠 경우 이겨낼 수 있다. 정부를 믿고 함께 나아가자.”
   
   유체이탈 화법과는 무관한, 주어가 확실하고 부사나 형용사가 드문 간단명료한 메시지다. 차이 총통의 이 연설에서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두 가지다. 먼저 1월 20일이란 날짜다. 대만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지난해 말부터 벌어진 ‘이판사판’ 정치 일정을 기억하고 있을 듯하다. 바로 총통 선거다. 중국의 공공연한 협박 속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대만 독립을 주장한 차이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그런데 차이 후보의 재선이 결정된 날이 지난 1월 11일이었다. 따라서 코로나19와 맞서 싸우자는 차이 총통의 단독 연설은 당선된 지 불과 9일 만에 이뤄진 것이다. 지난 4월 15일 총선 이후 한국 정치에서 보듯, 전염병 승자로서의 ‘완장’을 뽐낼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차이 총통은 국민들에게 곧 닥칠 ‘고난의 시간’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는 당선이 결정된 순간, 전염병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와 국민의 협조를 생중계로 전달했다.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대국민 연설
   
   두 번째로 주목한 것은 국민 앞에 단독으로 선 ‘1인 연설’이란 점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최초로 행해진 전염병 관련 대국민 단독 연설이다. 지도자 혼자 행하는 특별담화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현실을 직시하고, 지도자가 전부 책임을 지면서 국민과 함께 나아간다는 출사표라 볼 수 있다. 차이 총통의 연설을 세심하게 들어봤지만, 전염병 최전선에 달려가 열심히 대응하겠다는 지도자의 ‘비장하고도 고독한 결의’가 느껴진다. ‘마음과 달리 방역에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끝까지 노력하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메시지가 국민 모두에게 직접 전달된다. 차이 총통은 그 같은 지도자로서의 자세를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연출해낸 인물이다. 미국이나 독일 지도자와 비교할 때 ‘무려’ 2개월이나 앞선 시점에서의 출사표다. 아직 전염병 관련 대통령 단독 담화 한번 없는 한국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다.
   
   대만에 대한 한국인의 평균 정서나 관심은 지극히 낮다. 한글판 구글에 키워드로 중국과 대만을 쳐보자. 중국 2억4000만개, 대만 650만개의 자료가 등장한다. 36배 차이다. 중국 여행에 100명이 나선다고 할 때 대만에는 3명이 간다고 볼 수 있다. 양적으로 보자면 대만은 중국의 상대가 될 수가 없다. 그러나 질적으로 보면 결코 중국에 지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용 기념품은 그 나라의 수준을 증명하는 척도다. 중국의 경우, 길고 긴 역사와 크기로 상대를 압도한다. 그러나 기념품을 자세히 보면 조잡하고, 그나마 진짜 여부도 불투명하다. 값도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다. 살 만한 게 극히 드물다. 대만은 어떨까? 물건 하나하나가 꼼꼼하고 정성으로 채워져 있다. 허세나 과장도 없고, 품질에 비해 가격도 적당하다. 현지에서 맞닥뜨리는 음식이나 숙박비에서부터 일에 대한 자세나 사람들의 수준을 봐도 중국은 대만의 상대가 될 수 없다. 크고 많고가 아니라, 작지만 깊고 정확한 나라가 대만이다.
   
   도교는 대만에 갈 때마다 주목하는, 필자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대만만의 ‘독특한’ 풍경으로, 유교·불교·기독교에다 전통신앙을 조합한 한(漢)민족 고유의 종교가 도교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문화대혁명 당시 미신의 상징으로 지탄받으면서 대부분 파괴된다. 하지만 현란한 깃발과 색상으로 치장한 도교 사원은 지금도 대만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불교 사원과 비슷한 듯하지만, 숭배하는 신이 부처나 보살만이 아니라 유교, 기독교와 역사 속 인물들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다르다. 살아서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죽어서 신선으로 승격돼 숭배 대상이 된다. 타이베이에서 봤지만, 일본 식민지 당시 현지인을 위해 일한 일본군도 도교의 신으로 추앙될 정도다. 민족·국가·지역·정치가 아니라, 자신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줬는지 여부가 신이 될 기준이다. 따라서 도교 사원 내 신의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 대만인이 즐겨 모시는 도교의 여신 ‘마주’. photo 유민호

   대만인이 모시는 도교의 여성신
   
   ‘마주(媽祖)’는 도교 사원에서 만난 흥미로운 신이다. 원래 항해와 어업 수호신에서 출발했지만, 출산·취업·질병·결혼 등 전방위 신으로 발전된 숭배 대상이다. ‘천상성모(天上聖母)’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신이기도 하다. ‘마주’는 이름에서 보듯 여신이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대만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이 ‘마주’일 듯하다. 공양하는 신자들의 행렬이 다른 신들에 비해 월등하게 길기 때문이다. ‘마주’의 인기가 워낙 높기 때문에 ‘마주’를 중심으로 일마(一媽), 이마(二媽) 신들이 들어서 호위할 정도다. 다산(多産)의 신에서 보듯, 인류 최초의 신은 여성이다. 섬세하고도 따뜻한 여성적 캐릭터가 ‘마주’의 인기 배경일 듯하다.
   
   동양, 아니 전 세계를 통틀어 여신의 수는 극소수에 그친다. 여신이 있다 해도 제한적인 역할을 맡을 뿐이다. 그리스 신화 속 12명의 신 가운데 여성은 4명뿐이다.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데메테르 등 4명의 여신들은 남성신을 보조하거나 만족시켜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여신이란 개념 자체를 죄악시한 곳이 기독교다. 마리아는 신이 아니라, 신의 아들인 예수의 어머니로서 받들여질 뿐이다. 하지만 대만에서 ‘마주’는 도교의 3대 신 중 하나로, 사원 한가운데에 들어선 경우도 많다. 남성신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적이고도 대등하게 다뤄지는 여성신이다. 신의 남녀평등이란 점에서 보면, 도교가 가장 앞선 종교일 듯하다.
   
   253명 중 29명. 21대 한국 총선에서 당선된 여성 국회의원들의 숫자다. 11.5%로 대략 국회의원 10명 중 한 명이 여성인 셈이다. 15대 총선인 1996년 4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2명의 여성 국회의원이 탄생한 이래 여성 국회의원 숫자가 계속 늘고 있다. 여성 정치인의 규모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 253명 가운데 26명의 여성 정치인이 탄생했던 20대 총선을 기준으로 할 때, 전 세계 190개 나라 중 125위(www.ipu.org)에 머물렀다. 여성 정치인이 전체의 40%에 달하는 북유럽 수준은커녕, 전 세계 평균(25%)에도 한참 처진 상황이다. 연령, 지역, 심지어 학력 배려도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여성 정치 참여 문제는 한국 정치의 변방에 머물러 있다.
   
   
   여성 정치인 42%로 아시아 1위
   
   여성 정치 참여라 하면, 보통 남녀 평등을 내세운 사회주의 체제부터 떠올릴 수 있다. 최근에 한국에서도 볼 수 있지만, 부모의 성을 자녀 이름 앞에 동시에 붙이는 것이 사회주의식 작명법이다. 아시아에서는 단연 중국이나 베트남이 여성 정치 참여 선진국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중국은 여성 정치인이 전체의 24% 정도로 전 세계 75위, 베트남은 26%로 67위에 불과하다. 놀랍게도 아시아 여성 정치 참여 최선진국은 대만이다. 무려 42%로 세계 17위(2020년 2월 기준) 수준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평등정치 선진국인 북유럽 노르웨이에 필적할 정도다. 대만의 여성 정치 참여도는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아주’ 특별하다. 아시아에서 여성 정치 참여도 2위인 나라가 필리핀이다. 대만에 비해 ‘무려’ 15%나 낮은 27%로 세계 61위다. 여성 정치인의 비율을 기준으로 할 때,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정치무대 수위에 선 나라가 바로 대만이다.
   
   여성 정치 참여는 낮지만, 희한하게도 여성 정치지도자로 넘치는 지역이 아시아다. 전 세계를 통틀어 아시아만큼 여성 지도자의 활약이 두드러진 지역도 드물다. 멀리는 인도 인디라 간디 총리에서부터 최근의 미얀마 아웅산 수치에 이르기까지 여성 정치인의 활약이 남다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길 바란다. 서방 여성 정치인들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후광 2세 정치인, 다시 말해 정치적 차원의 금수저라는 부분이다. 총리나 대통령에 취임한 아시아 여성 정치인의 대부분은, 대통령 아버지나 총리 남편을 잇는 후계자들로 구성돼 있다. 인도, 미얀마,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필리핀에 등장했던 여성 지도자의 배경을 보면 금수저 후광이 ‘예외 없이’ 반짝인다. 한국도 그중 하나다.
   
   대만 차이 총통은 그 같은 아시아적인 전근대성을 극복한 ‘진짜’ 여성 지도자로 통한다. 후광 정치인과 무관한 풀뿌리 여성 정치인이다. 대만 토착민에다 첩의 딸이란 불우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법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자립형 노력형 흙수저 정치인이다. 2016년 압도적 표차로 총통에 당선된 이래, 올해 다시 재선되면서 ‘화병 속 꽃’ 여성 정치인이 아니란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한국에서는 거의 무시되고 있지만, 차이 총통은 이미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더불어 세계 여성 정치의 대표주자로 통한다. 코로나19 사태에 맞서 성공적이고 빠른 방역을 해낸 덕분이겠지만, 대만 IT산업의 3월 매출액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1.6% 증가했다. 전염병만이 아니라 경제 측면에서도 차이 총통의 성공신화가 이어지고 있다. 숨기고 과장하고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는 남성 지도자들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객관적’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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