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트럼프가 폭스뉴스 대신 새로 사랑에 빠진 언론은?
  • facebook네이버 밴드youtubekakao 플러스친구
  • 검색
  1. 세계
[2608호] 2020.05.18

트럼프가 폭스뉴스 대신 새로 사랑에 빠진 언론은?

김회권  IT·국제칼럼니스트 judge003@gmail.com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3월 11일(현지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코로나19 브리핑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받으면 표정이 굳어지거나, 묻는 말을 끊어버리고 자기 할 말만 한다. 때로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그냥 회견장을 나가버릴 때도 있다. 코로나19로 기자회견을 자주 갖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신 언론 대처법이다. 그런데 기자들을 사납게 대하는 그가 한없이 관대해질 때가 있다. 회견장에는 단 한 명, 평화롭게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 온화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기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주고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미소를 띠기도 한다. 손을 든 수많은 기자 중 콕 집어 지목하며 옆에 있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말하는 장면이 포착된 적도 있다. “OANN(One America News Network) 기자야.” 미국인들에게도 아직 낯선 이 무명의 케이블 채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즘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다.
   
   원래 반도체 테스트 장비를 개발하는 에르코테크놀러지 소유주였던 기업가 로버트 헤링은 자신의 사업체를 1억2200만달러에 매각하며 큰 부자가 됐다. 아들 찰스 헤링은 아버지를 ‘심각한 뉴스 중독자’라고 묘사했다. 자본을 가득 가진 뉴스 중독자는 보고 듣는 것에 그치지 못하고 직접 뉴스를 제작하는 일에 뛰어들기로 했다. 그렇게 2013년 샌디에이고에서 OANN이 만들어졌다. 로버트 헤링은 그간 공화당에 적극적으로 기부해온 정치적 지지자였지만 언론을 접해본 경험은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채널을 만든 찰스 헤링은 OANN의 CEO가 됐다. 그는 2013년 온라인 매체인 데일리비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방송국을 만든 목적으로 몇 가지 이유를 들었다. “믿을 수 있고 믿을 만한 사실에 근거한 뉴스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서” “보수적인 목소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게 설립의 근거였다. 그가 생각하는 미국 언론은 왼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폭스뉴스는 훌륭한 플랫폼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미국 내 뉴스의 채널이 왼쪽으로 쏠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보수 진영)가 가진 건 오로지 폭스뿐이다.” 찰스는 OANN이 보수적인 시청자들을 위한 방송국이며 동시에 폭스뉴스와 경쟁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트럼프는 OANN에 빵이자 버터다”
   
   그는 폭스뉴스나 CNN 등 다른 채널을 연구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폭스뉴스가 저지른 실수들을 조사해왔다”며 큰소리도 쳤는데 막상 막 문을 연 OANN은 더욱 보잘것없는 평가를 받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초창기 OANN의 방송을 두고 “대학생들이 만든 것 같았다”고 혹평했다. 실제로 대학을 갓 졸업한 예비언론인에게 이곳은 매력적인 첫 직장이었다. 미국에서 기자가 되려면 보통 로컬 방송에서 자기 고장의 소식을 전하며 경력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OANN에 입사하면 이런 전통을 건너뛰고 바로 전국적인 커다란 주제를 다루는 게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직원들은 젊고 경험이 없었고 낮은 임금을 감수하며 일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취재에 응한 전·현직 직원들은 “OANN의 작가와 제작자는 시급 12달러 정도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폭스뉴스와의 경쟁은 불가능했다. 스튜디오와 화면 그래픽은 아마추어가 만든 듯했고 방송에서는 쉴 새 없이 제목이 대부분인 뉴스가 짧게 짧게 보고서 읽듯 지나갔다. 리포팅은 1분도 채 되지 않았고 앵커는 마치 보도자료 읽듯 기계처럼 “다음 뉴스”를 외치며 기사를 넘겼다. 기자와 특파원도 확보가 안 돼 있으니 자체 취재 역량도 턱없이 부족했다. AP, 로이터와 같은 통신사가 제공하는 뉴스 패키지에 의존하고 있었던 게 초기 OANN의 모습이었다.
   
   2015년 여름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가 선거운동을 막 시작했을 때 이 채널은 기회를 잡았다. OANN의 총괄프로듀서는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항상 트럼프의 연설 전체를 생방송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프로듀서들에게 “트럼프 연설을 방송으로 내보내지 않으면 서면 경고가 갈 것입니다”라고 공지했다. 방침에 저항하던 OANN 직원들 중 일부는 그의 사무실에 불려가 질책을 듣고 옷을 벗기도 했다. 그러는 새 트럼프의 열렬한 팬들 사이에서는 OANN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방송국은 점점 트럼프란 정치인에 기댔다. 심지어 창업주인 로버트 헤링은 선거운동 기간 중 트럼프가 뒤지는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는 보도하지 못하게 했다. OANN의 전 앵커였던 캐시 리펜은 CNN과 가진 인터뷰에서 “헤링은 트럼프의 인기를 누구보다 먼저 내다봤다. 그렇게 트럼프는 OANN의 빵과 버터가 됐다”고 말했다.
   
   OANN의 프로그램들은 폭스뉴스와 닮았다. 당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뉴스를 전달하겠다고 표면적으로는 내세워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틀을 짠다는 점이 닮았다. 백악관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논평을 내며 시청자들을 만족시킨다는 점도 그랬다. 이런 흐름에는 사주가 깊이 개입돼 있었다.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한 OANN의 전·현직 직원들은 “OANN은 로버트 헤링의 간섭이 매우 심한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템 선정 과정에서부터 편향이 반영된다” “회의에서 브라이트바트나 드러지 리포트와 같은 다른 보수 매체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담길 원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반면 OANN은 기존 언론의 범주를 벗어나 더 어두운 면까지 플랫폼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폭스뉴스와는 달랐다. 몇몇 자질이 의심되는 음모론자들이 이곳에서 핵심 인재로 활동하며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백악관 출입기자로 활동하는 샤넬 라이언이 대표적이다.
   
   
▲ OANN 방송사 웹사이트 캡처 화면.

   백악관과 보수 매체의 기이한 공생
   
   샤넬 라이언은 기자 경험이 없었다. 원래는 선동적인 정치 만화를 그렸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스스로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확고한 그래픽 전사”라고 표현했다. 주로 정치적 음모론을 그렸는데 2016년 사망한 세스 리치 살인 사건 만화가 대표적이다. 이 만화는 배후에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가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세스 리치는 2016년 여름, 원인을 모른 채 사망한 민주당 전국위원회 멤버다. 당시 트럼프 진영에서는 리치가 힐리러 클린턴의 이메일을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안 어산지에게 전달해 살해당했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제기했다. 대선에 결정적 영향을 준 힐러리의 이메일을 누가 해킹했는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리치가 범인이라는 가짜뉴스가 퍼져나갔다. 라이언의 만화는 리치 죽음의 배후로 ‘힐러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제도 밖에서 이랬던 라이언이 지난해 5월 백악관에 OANN 출입기자가 돼 입성했다. 그가 주목받은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과 언론의 공생관계를 상징하는 인물이어서다.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라이언은 대통령을 도울 만한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끈다. 내용이 기이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가 던진 질문 중 하나는 이랬다. 코로나19 사망자 숫자를 산모의 ‘선택적 낙태’로 사망하는 숫자와 비교한 뒤 트럼프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님, 선택적 낙태보다 코로나19 희생자를 우선시하는 주 정부들에 동의하십니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유명세를 탄 질문이 또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자 당시 안팎에서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라며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3월 19일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라이언이 번쩍 손을 들었다. “대통령님, ‘중국 음식’이라는 말을 인종차별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중국에서 유래한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문제 삼는 언론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적대적 언론들 속에서 매일 코로나19 브리핑을 진행한다고 믿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OANN 기자는 마치 숨통 같은 존재였다. 싫은 질문 대신 수월한 질문을 받기 위해 OANN 기자를 찾으면 된다는 걸 트럼프 대통령은 알고 있었다. 그 답례로 OANN을 향한 칭찬을 쏟아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나를 매우 친절하게 대한다”며 칭찬하고 기자회견장 밖에서는 트윗을 날리며 홍보했다. 지난 5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OANN은 가짜뉴스가 아니라 훌륭한 뉴스다. 모두 봐야 한다”고 썼다. 불리한 뉴스로 둘러싸일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은 OANN을 활용해왔다. 지난해 연말 우크라이나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비리 혐의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한 정황이 드러나 위기에 처했을 때도 라이언은 구세주였다. 그는 라이언의 보도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기사’라고 극찬하며 “변변찮은 주류 언론은 그녀를 따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라이언은 당시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바이든이 그의 아들을 돕기 위해 부통령의 권력을 남용했다는 내용의 3부작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이 시리즈물은 대통령의 홍보 활동에 활용됐다.
   
   
   트럼프 아들이 OANN 지분 인수 협상
   
   트럼프 대통령과 폭스뉴스의 오랜 친분 관계가 끝나가기 때문에 OANN이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은 꽤 설득력 있게 흘러나오는 중이다. 폭스뉴스는 그간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후부터 트럼프 정부의 실적을 열심히 지지해왔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인 대통령에겐 부족해 보인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폭스뉴스를 공격해왔는데 특히 지난 4월 27일의 트윗은 결별을 드러내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받고 있다. 그간 해왔던 비난을 넘어 “폭스뉴스를 보고 있는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대안을 원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대안을 활용하는 걸 떠나 직접 트럼프 가족이 소유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지난 5월 4일 미국 매거진 베네티페어는 “대통령의 아들인 트럼프 주니어와 공화당 전국위원회 공동의장인 토머스 힉스 주니어가 제휴한 투자 그룹이 OANN의 주요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취재원은 협상을 두고 “트럼프TV용 방송국을 사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협상은 여러 달째 지연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월스트리트저널은 찰스 헤링 OANN CEO는 매각 대금으로 3억달러를 요구했지만 투자 그룹 측에서는 2억5000만달러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OANN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꽃놀이패다. 재선에 성공한다면 지분을 쥔 OANN은 좋은 커뮤니케이션 창구가 될 수 있다. 패배한다고 해도 활용 방법은 많다. CNN의 크리스 실리자 에디터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 OANN의 공동 소유자가 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헌신적인 팬과 함께 폭스뉴스에 대한 진정한 대안으로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생각해보면 그가 퇴임 후에 수많은 트윗을 날리면서 TV에 출연하는 게 낯선 그림은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들을 공격하는 것도 그렇다. 자신이 주인공이 돼 보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방송국만 한 게 없다. 방송국을 원하는 대통령, 그리고 대통령의 선전도구로 활용되고픈 OANN이 서로에게 완벽한 짝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트럼프가 그렇게 대놓고 홍보해도 뜨지 않는다는 건 문제로 남아 있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미디어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4월 1일~6월11일 사이 OANN의 평균 시청자는 1만4000가구를 기록했다. 폭스뉴스는 같은 기간 평균 63만1000가구가 지켜봤다. 시장조사기관인 컴스코어의 웹트래픽 조사를 보면 지난 3월 OANN 홈페이지 방문자는 일 평균 3만3300명에 불과했다. 폭스뉴스는 지난 3월 한 달간 무려 1억3500만명이 홈페이지를 찾았다. 대안이 되기에는 아직 체급이 많이 모자란 건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은 숙제인 셈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