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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호] 2020.05.25

미·중 대결별 시대, 한·중의 위험한 러브라인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photo 뉴시스
대만의 TSMC(臺積電)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Foundry) 업체이다. 1987년 설립된 TSMC는 파운드리 업계에서 48%의 시장점유율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파운드리는 설계를 하지 않고 팹(Fab·Fabrication의 줄임말)을 통한 반도체만 생산하는 업체다. 반도체 업계에서 팹은 공장을 의미하는데, 공장 없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은 팹리스(Fabless)라고 부른다. TSMC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이자 5세대(5G) 이동통신의 글로벌 선두주자인 중국의 화웨이(華爲)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중국 정부가 화웨이의 5G 통신장비들을 이용해 스파이 행위를 할 수 있다면서 각국에 화웨이의 5G 제품을 쓰지 말라고 요청해왔다. 미국 정부는 또 지난해 5월에는 화웨이와 114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 기업 리스트’에 올리고 인텔, 퀄컴, 브로드컴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거래를 금지했다. 그러자 화웨이는 자회사인 하이실리콘(海思半導體)을 통해 핵심 반도체 부품을 직접 만들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이실리콘은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설계만 하는 팹리스 업체다.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곳은 TSMC다. 당초 TSMC의 하이실리콘과의 거래는 미국 정부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조치 대상이 아니었다.
   
   TSMC는 지난 5월 15일 미국 애리조나에 120억달러(14조8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이 공장은 최신 기술인 5나노미터(㎚·1㎚=10억분의 1m) 반도체 생산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2021년에 건설이 시작될 예정이다. 중국의 난징과 상하이에도 공장을 운영하는 TSMC가 미국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TSMC의 발표가 나오던 날 공교롭게도 미국 상무부는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활용한 외국 반도체 제조업체의 경우 미국의 허가 없이 화웨이에 반도체 부품을 공급할 수 없다는 내용의 새롭게 개정된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TSMC는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TSMC는 그동안 미국의 기술과 제조장비 등을 이용해 반도체 부품을 생산하는 등 공장을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TSMC의 전체 매출에서 하이실리콘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5%에서 지난해 14%까지 늘었다. TSMC는 또 미국의 애플, 퀄컴 등 미국 반도체 업체들의 사업 파트너이다. TSMC 매출의 60%가 미국 기업들에서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전쟁에서 ‘양다리 작전’으로 매출을 극대화했던 TSMC는 결국 미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TSMC의 결정에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TSMC 지분의 6.68%는 대만 행정원 국가발전기금이 보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맺어온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라고 압박해온 중국 정부와 시진핑 국가주석을 견제하기 위해 TSMC에 압력을 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코로나19 책임론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양국이 경제 전쟁을 본격적으로 벌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중국 때리기’는 전방위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14일 폭스 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면서 “우리가 중국과 모든 관계를 끊는다면 5000억달러(615조원)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초강경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5000억달러는 미국이 연간 중국으로부터 상품 등을 수입하는 규모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중국과의 1단계 무역 합의를 파기할 수도 있다는 경고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중국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경고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15일에도 “당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시 주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강조했는데, 이제는 대화 상대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의지마저 보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에서 나왔다고 재차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일련의 보복 조치를 단행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각종 제재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백악관은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통신장비 업체의 미국 내 판매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1년 연장했다.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 국가비상사태에서 대통령이 거래와 교역을 차단할 수 있는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에 의거한 조치다. 백악관은 또 연방공무원 퇴직연금의 중국 주식 투자를 금지하라고 지시했다. 재무부는 뉴욕증시의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NASDAQ)에 상장된 중국 상장사들의 회계 규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도 미국 정부에 화웨이에 대한 제재 철회를 요구하며 대응 조치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5월 17일 “일체의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인 권익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대응 조치로 애플, 퀄컴, 시스코 등 미국 기업들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에 올려놓고 대외무역법과 반독점법, 국가안전법 등에 따라 제재 조치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는 또 보잉사의 항공기 구매도 유예할 수 있다. 양국의 대결과 갈등은 앞으로 제2의 무역 전쟁과 금융 전쟁 및 기술 패권 전쟁으로 비화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양국은 1979년 1월 1일 수교한 이후 지금까지 40년간 서로 가까워지며 협력을 확대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대결별(the Great Decoupling)’에 돌입했다면서 양국의 결별은 앞으로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대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TSMC의 모습. photo TSMC

   미국이 추진 중인 ‘경제번영 네트워크’
   
   게다가 양국은 각국을 상대로 ‘우군 만들기’에 들어갔다. 미국 정부는 ‘경제 번영 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라는 일종의 생산 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전략은 한국,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 인도, 멕시코, 일본 등과 협력해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생산 의존도를 낮춰 글로벌 공급망을 바꾸겠다는 의도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 정부는 호주, 인도, 일본, 뉴질랜드, 한국, 베트남 등과 협력해 세계경제를 전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키스 크라크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은 “미국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을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문제는 미국 국가 안보의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스인훙 중국 인민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는 미·중 간 물리적·심리적 디커플링을 촉진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정부는 주요 분야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과의 단절을 모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이런 전략에 맞서 기존의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판 육상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보건 분야를 추가해 각국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이탈리아, 세르비아, 캄보디아, 라오스,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등 16개국에 의료진을 직접 파견하고 의료용품을 대거 무상 지원했다. 브래들리 세이어 미국 텍사스주립대 교수는 “중국이 코로나19 위기를 ‘보건 실크로드’ 구축에 이용하고 있다”며 “중국이 세계 패권이란 전략 목표를 위해 코로나19 사태를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중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 새로운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저지하기 위해 한국과 독일 등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 5월 13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양국이 기업인들의 필수적 활동 보장을 위해 입국절차를 간소화한 ‘패스트트랙(신속통로)’ 제도를 신설한 것을 코로나19 대응의 대표적 모범 사례로 꼽았다. 중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먼저 걸어온 시 주석은 “양국은 최초로 공동방역과 통제 협력 체제를 수립했다”며 “양국은 기업인 패스트트랙을 개통해 산업·공급·물류체인의 운영을 원활하게 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양국 관계를 ‘풍우동주(風雨同舟·비바람 속에서 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라고 표현하면서 “한국과 중국은 떼어놓을 수 없는 좋은 이웃이며, 앞으로 전략적 교류를 강화해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두 정상은 시 주석의 방한 일정을 올해 안에 추진하기로 했다. 시 주석이 “올해 안에 방한하는 데 대해 굳은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한·중 관계에 있어 시 주석의 방한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도 협의했다. 시 주석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일관된 지지의사를 표명했고,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한 사의를 표명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중국 지린성에 ‘한·중 국제합작시범구’
   
   두 정상의 통화 내용을 볼 때 문 대통령은 아직도 시 주석의 연내 방한에 목을 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방한하면 사드 배치에 따른 한한령(限韓令·한류제한령)의 완전 해제, 중국인 단체관광 허용 등 선물 보따리를 갖고 올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시 주석이 개별관광, 남북철도 연결 등 남북 경협 구상을 적극 지지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문 대통령이 제의한 남북 협력 구상을 성사시키려면 유엔 안보리 제재의 부분 해제 또는 완화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이 자신의 이런 구상을 강력하게 밀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또 시 주석과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 중국 경제계획 총괄부처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가 지난 5월 12일 북·중 접경 지역인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에 ‘한·중 국제합작시범구’를 설치하겠다는 방안을 공개했다. 중국 정부가 비준한 이 방안에 따르면 창춘시 동북부에 한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36㎢ 면적의 산업단지를 건설하고, 장기적으로 210㎢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협력 분야로는 인공지능(AI), 5G, 반도체, 공업·서비스 로봇, 신재생에너지 자동차·지능형 자동차 및 주요 부품, 가상현실(VR) 등 첨단 분야가 대거 포함됐다. 이와 함께 한·중 관광 협력을 대폭 강화하고 시범 지역에 한국 관광기구의 지사 설립을 지원해 국경 간 관광을 적극 발전시킨다는 내용도 명시됐다. 발개위는 “이 방안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공동 건설과 중국 동북 지역의 전방위 진흥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주입해 동북아 경제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탐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도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위원장 권구훈)와 기획재정부가 중국의 발개위와 한·중 국제합작시범구 설치 방안을 논의해 왔다고 밝혔다. 권구훈 위원장은 “중국 정부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경제 재건을 위해 5G, 데이터센터, 사물인터넷(IoT)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면서 “한·중 국제합작시범구는 첨단 기술 분야 등에서 양국의 경제 협력 모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정부가 한·중 국제합작시범구까지 설치하려는 의도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을 이용하겠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중국 정부로선 미국 정부가 화웨이를 제재하기 위해 외국 반도체 업체들의 수출까지 막는 조치를 내린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을 끌어들인다면 미국 정부의 제재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한국이 참여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친중 정책을 묵과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의 탈(脫)중국과 본토 복귀(rehoring)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동맹국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에 제동을 걸 것이 분명하다. 브루스 베넷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는 앞으로 미국 정부가 자국과 동맹국 기업들에 중국에서 공장을 이전하도록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 제재 조치와 관련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은 이처럼 신냉전에 따라 각국에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의 국제전문가 모임 발다이클럽의 표도르 루키야노프 연구소장은 “세계가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이라는 매우 거대하고 위험한 위협을 마주하고 있다”며 “신냉전은 다른 나라들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파괴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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