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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호]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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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범의 차이나워치]중국의 ‘늑대전사’ 외교, 국제적 고립을 초래하다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hbjee@chosun.com

▲ 지난 3월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아리프 알비 파키스탄 대통령을 접견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photo 뉴시스
모든 국가의 외교는 자아정체성(Identity)의 한 표현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즉 ‘국가정체성(國家認同)’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외교도 달라졌다. 중국 ‘국가정체성’의 가장 밑바탕에는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의식’이 깔려 있다. 지난 수천 년간 중국인들은 경제력과 군사력은 물론 문화의 힘에서도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들이 강할 때는 적극적으로 주변을 복속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제도와 문화를 전파했다. 당(唐)과 명(明)대가 이에 해당한다. 이런 시기에 중국은 주변 민족들과 화이(華夷·중화와 이민족)의 수직적 외교관계를 맺고 조공과 책봉을 수단으로 평화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변방에 강대한 세력이 부상하거나 중국이 내분으로 허약해졌을 때 화이의 질서는 깨졌다. 중국은 변방 민족에 의해 갈갈이 찢어지거나(5호16국시대) 처참히 짓밟혔다(원·청(元淸)대).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따라 중국은 주변국들과의 평화롭고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최우선 목표를 두고 자신의 역량에 맞는 대외전략을 구사해왔다. 20세기 이후에도 전통적 ‘화이관’은 중국인의 외교DNA로 남아 힘을 발휘하고 있다.
   
   
   20세기를 지배한 ‘도광양회’ 전략
   
   1949년 공산당 정권 출범 이후 중국 외교의 궤적 역시 ‘국가 정체성’의 대외적 표현이었다.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국공내전(國共內戰)을 거쳐 독립한 20세기 중반, 중국의 외교는 반(反)패권주의와 반(反)식민주의의 명분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신생 독립국가로서 국익을 지키기 위해 ‘평화공존 5원칙’을 천명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1953년 인도와 대화하면서 제기한 이 원칙은 △상호 주권과 영토의 존중 △상호 불침략 △상호 내정불간섭 △평등과 호혜 △평화적 공존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원칙은 중국이 냉전 시기 취약한 정치경제적 토대 위에서 자주독립을 유지하고 국가재건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설정한 방어적 외교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21세기에도 이 평화공존 5원칙을 외교의 기본 전략으로 삼고 있다.
   
   미·중 수교(1979)와 소련 해체(1991)를 거쳐 탈냉전의 시기로 접어들자, 중국의 국가정체성은 이념을 떠나 경제 발전과 국가 현대화가 필요한 ‘개발도상국’이란 인식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중국의 대외전략은 ‘의도를 숨기고 실력을 기른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자리 잡았다. 중국은 ‘영원히 제3세계 편에 서서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不稱覇)이며, 국제사회에서 특정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지도 않을 것(不當頭)’이라고 천명했다. 이는 수천만 명이 숨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붕괴된 정치사회 질서와 산업생산 능력을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외전략 수정이었지만, 미국·일본 등 강대국의 경계심을 허물기 위한 ‘레토릭’이기도 했다. 중국의 ‘도광양회’ 전략은 3세대 지도부인 장쩌민(江澤民) 시대(1989~2002)까지 이어졌다.
   
   
   ‘워싱턴 컨센서스’ 대 ‘베이징 컨센서스’
   
   21세기 들어 중국의 종합 국력이 상승하면서 중국인의 ‘자아정체성’도 달라졌다. 2008년 미국이 금융위기로 휘청거릴 때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데 이어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미국 뉴욕발 금융위기는 ‘세계화’와 ‘자유화’를 모토로 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의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초강대국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혔다. 이 사건으로 미·중 간 경제 격차가 줄어들자 중국에서는 아편전쟁 이후 170년간 가슴에 묻어두었던 중화민족주의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베이징올림픽을 눈앞에 둔 2008년 3월 중국은 세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유혈(流血)진압하여 국제사회의 공분(公憤)을 샀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중국 유학생들은 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과도한 집단행동과 폭력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 시기 국제정세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 변화는 2009년 9월 열린 공산당 17기 4중전회(中全會)가 채택한 공식 문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문건은 “지금의 세계는 대발전과 대변혁의 조정기에 처해 있다. 세계의 다극화(多極化)와 경제의 글로벌화가 심화하고,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세계경제 구조에 새로운 변화가 발생하고, 국제 역량(力量) 비교에서 새로운 형세가 출현하고, 종합 국력(國力)의 경쟁과 각종 세력의 힘겨루기가 한층 치열해짐으로써, 중국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쇠퇴하고 중국의 국력이 상승함에 따라 역사적인 기회가 왔다는 형세 판단이다. 후진타오(胡錦濤) 2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 중국 외교는 평화적으로 부상한다는 ‘화평굴기(和平崛起)’와 부분적 국제 문제에 관여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에 담겨 있다. 또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응하는 ‘베이징 컨센서스’란 용어도 등장했다.
   
   시진핑 체제 출범(2012년 말) 이후 중국 외교는 ‘대국(大國)외교’로 나아갔다. ‘대국외교’란 스스로를 ‘대국’으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외교를 펴겠다는 것이다. 중국 대국외교의 핵심은 ‘신형대국관계’와 ‘친성혜용’이란 용어에 담겨 있다.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란 미국·러시아·일본 등 대국과의 관계에서 서로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면서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함께 논의하며 만들어가자는 구상이다. 미국 중심의 일극(一極) 체제를 중국도 관여하는 다극(多極) 체제로 바꿔가자는 제안이지만 미국은 이에 침묵으로 대응했다. ‘친성혜용(親誠惠容)’이란 대국에 해당하지 않는 주변국들, 즉 한국·베트남·필리핀·태국·몽골·아프가니스탄 등을 ‘친절과 성심과 은혜와 포용’으로 대하여 ‘운명공동체’를 만들어가겠다는 구상이다. 약소국들을 관용과 시혜로 끌어안겠다는 전통적 ‘화이(華夷)사상’의 21세기 버전이다. 여기에 중국인의 우월의식과 차별적 대외관이 담겨 있다. 시진핑은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는 슬로건도 내세웠다. 모두 아시아에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다.
   
   
   ‘중국은 헤비급, 스웨덴은 라이트급’
   
   시진핑 정부의 대국외교는 국제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하기보다 오히려 곳곳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올 1월에 발생한 스웨덴 주재 중국대사의 막말 파문이다. 스웨덴에 주재하는 구이충유(桂從友) 중국대사는 1월 14일 스웨덴 공공방송인 SVT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헤비급’, 스웨덴을 ‘라이트급’ 권투선수에 비유했다. 그는 스웨덴 국적인 홍콩 출판업자의 중국 연금(軟禁) 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48㎏의 라이트급 권투선수(스웨덴)가 86㎏의 헤비급 선수(중국)에게 도발하며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 친절과 선의를 가진 헤비급 선수는 라이트급 선수에게 몸조심할 것을 충고한다”라고 말했다. 차별적 대외관의 산물인 그의 발언은 ‘작은 나라(小國)인 스웨덴은 큰 나라(大國)인 중국에 대들지 말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스웨덴 정부는 이를 “용납할 수 없는 위협”이라 규정하고 구이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강력 항의했다.
   
   
   ‘늑대전사’로 돌변한 중국 외교관과 관영 매체
   
   이런 흐름에서 보면, 최근 코로나19 사태 과정에서 중국 외교관들이 호전적(好戰的) 발언으로 세계 각국과 충돌하는 것은 시진핑 외교의 필연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올 4월 중순 미국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우한(武漢) 연구소 유래 가능성을 제기했을 때,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물을 흐리고, 주의를 돌리고, 남을 탓하려는 의도를 가진 그들의 속임수를 꿰뚫어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면서 “미국은 정치놀음 그만하고 역병 확산이나 막으라”고 역공을 폈다. 지난 4월 말 미국에서 중국에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되자, 중국의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사실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어리석은 소송으로 조롱만 자초했다”고 비웃었다.
   
   주(駐)프랑스 중국대사관은 지난 5월 15일 트위터에 ‘트럼프는 왜 도망가는가’라는 제목의 8컷짜리 풍자만화를 올려 미국을 조롱했다. 만화에는 “독감에 지나지 않아(Just Flu!)”라고 외친 트럼프 형상의 남성이 코로나19가 쫓아오자 2월, 3월, 4월이라고 적힌 계단을 뛰어올라 도망간다는 내용이 담겼다. 계단 옆 벽에는 ‘확진자 1,400,000’이라고 적혀 있어 미국 정부의 코로나19 사태 대응능력을 비웃고 있다. 주프랑스 중국대사관은 지난 4월에도 “프랑스의 양로원 직원들이 한밤중에 자신의 임무를 포기해 수용자들을 굶고 병들어 죽게 했다”고 주장했다가, 프랑스 국민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중국 외교관들의 공격적 행위에 대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5월 14일 자 기사에서 ‘중국의 늑대전사 외교(China’s Wolf Warrior diplomacy)’라고 표현했다. ‘늑대전사’란 2015년 이후 중국에서 제작된 영화 ‘전랑(戰狼)’ 시리즈에서 따온 것으로, 중국의 젊은 특수부대원들이 국제사회에서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정의를 세운다는 영웅 스토리다. 중국 외교관들이 ‘영웅’을 자처해 쏟아내는 강성 발언은 공산당과 외교부의 사전 검토를 거쳐 나온다는 점에서, 이는 곧 시진핑의 심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시진핑이 화가 나 있다는 얘기다.
   
   
   호전적 애국주의 뒤에 감춰진 초조감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로서 중국에서 가장 민족주의적인 환구시보(環球時報) 역시 언론 고유의 역할을 뛰어넘어 특정 국가를 공격하고 조롱하는 외교의 최일선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4월 중순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사망자와 확진자 집계가 잘못됐다며 한꺼번에 숫자를 수천 명씩 올리자,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사망자가 2배로 늘었다. 실제로는 중국 발표보다 훨씬 많고, 미국보다도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발언이 나오자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눈이 나쁜가, 아니면 어릴 적 산수를 잘못 배웠나”라며 조롱하는 글을 올렸다. 지난 5월 15일 트럼프가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할 가능성을 내비쳤을 때, 환구시보의 영어판 ‘글로벌타임스’는 ‘중국과 단교를 위협하는 트럼프는 미쳤나’란 제목의 사설에서 “이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관계를 끊는다면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역공했다. 관영 언론이 미국 공격에 앞장서는 것은 미국 주도의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코로나19 초기 중국 공산당의 늑장 대응에 분노한 청년세대에 호전적 애국주의를 조장하여, 그들의 시선을 내부의 문제에서 외부의 적으로 돌리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최근 중국 청년세대의 반미 감정은 매우 격앙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쇼비니즘(chauvinism·맹목적 애국주의)’은 내부용 성격이 강하다.
   
   중국에서 공격적 외교에 대한 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주펑(朱鋒) 난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늑대전사가 미·중 간 긴장을 악화시켰다. 중국이 상황을 진정시키고 외교정책을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인훙(時殷弘) 인민대학 교수는 “미국에 대한 보도에서 공격적인 논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화적인 논조를 취하도록 정부가 지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황제’가 된 시진핑이 강성외교의 기조를 바꿀 수는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강성외교를 바꾸려면 시진핑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분간 그럴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국내 한 중국학 교수는 중국의 ‘늑대전사 외교’가 불안과 초조감의 발로일 수 있다고 했다. 미국에 발톱을 너무 일찍 드러낸 전략적 실패를 감추고 미국을 겁주며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허장성세(虛張聲勢)’를 펴고 있다는 것이다. 1950년대 저우언라이의 ‘평화공존 5원칙’은 제3세계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2020년대 시진핑의 ‘전랑 외교’는 국제사회의 반중(反中) 정서를 자극하여 스스로 ‘왕따’가 되고 있다. 중국의 국격이 덩달아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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