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6일(현지시각) 스웨덴 공공보건청의 수장인 역학 전문가 안데르스 텡넬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코로나19 관련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6일(현지시각) 스웨덴 공공보건청의 수장인 역학 전문가 안데르스 텡넬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코로나19 관련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둥근 안경을 낀 노(老)학자의 얼굴에는 엄격함이 느껴진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건조한 표정으로 숫자를 알려주며 현재 상황을 전달할 뿐이다. 사람들은 마치 신탁(神託)을 받듯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우리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받는 믿음, 그 이상이다. 그가 택한 코로나19 해결법은 논란을 촉발했다. 우리 생각에도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 남자는 이미 ‘스웨덴 모델’의 상징이 됐다. 스웨덴 공공보건청의 수장인 역학 전문가 안데르스 텡넬을 향한 국민의 열광은 어마어마하다.

봄기운이 완연한 스웨덴 스톡홀름의 해안가 식당과 술집은 코로나19와 상관없는 분위기다.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나라는 코로나19 대처법으로 ‘집단면역’을 선택했는데 의학계와 과학계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스웨덴에는 엄격한 제재란 없었다. 대신 확산을 늦추고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대중의 협조를 바랐다. 가능하면 집에서 일하고, 여행 다니지 말고, 모든 공공장소에서는 2m 이상 거리를 유지하라고 권고했다. 스웨덴 국민의 의무감과 순응에 전적으로 기댄 전략을 짰다.

집단면역을 이끈 텡넬의 실험은 봉쇄와 격리의 대척점에 섰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나 다름없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스웨덴의 사망률은 10만명당 39.57명이다. 문제가 많다는 미국(30.02명)보다도 높다. 봉쇄 조치를 한 이웃 노르웨이(10만명당 4.42명)와 핀란드(10만명당 5.58명)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치다. 바이러스 취약층 사망자 수가 급증한 게 문제였다. 지난 5월 14일 기준으로 스웨덴 내 요양원 사망자는 1661명이었다. 전체 사망자의 절반이 여기에서 발생했다. 집단면역 성적표도 참담했다. 지난 4월 말까지 스톡홀름에서 코로나19 항체를 보유한 비율은 전체 인구의 7.3%로 추정된다는 연구가 공개됐다. 집단면역이 효력을 갖기 위해선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항체를 보유해 방어력을 가져야 한다. 텡넬은 “예상보다 (항체보유율이) 조금 저조했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은 조사 진행 당시보다 더 많은 20%가량이 항체를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항변했다.

‘국가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

스웨덴 의학계와 과학계에서는 텡넬의 방법론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 3월에는 2300여명의 학자들이 스웨덴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더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다. 그들은 “아무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실험을 굳이 스웨덴에서 먼저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4월에는 22명의 연구원들이 공개서한으로 정부의 개입을 촉구했다. 텡넬은 회의론자들이 비관적인 숫자를 내놓을 때마다 “근본적인 오류로 잘못된 숫자”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사망자 수는 병원 내 사망만을 포함했다”는 식이었다.

회의적인 숫자와 비판이 나와도 스웨덴인들은 이상하리만치 확고하게 텡넬을 믿는다. 그를 향한 비판에 열렬한 비난으로 답하는 경우도 있다. 합의민주주의의 선진국이며 시민사회의 힘이 강하다는 스웨덴에서 그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1974년부터 스웨덴에서 거주하고 있는 체코인 작가 카테지나 야누초바는 체코 일간지 ‘엠에프 드네스(MF Dnes)’에 쓴 칼럼에서 “텡넬의 개인 숭배 집단은 그를 ‘국가의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텡넬은 팬클럽도 있고 굿즈도 있다. 그의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도 있고 문신으로 새긴 뒤 인증샷을 남기는 팬도 생겼다. 텡넬을 찬양하는 응원가는 그가 걸어온 여정을 음악으로 남겼다.

텡넬처럼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을 향한 열광도 뜨겁다. 얼굴이 들어간 도넛, ‘파우치를 대통령으로’라는 문구가 들어간 머그컵에 향초, 양말, 피규어까지 나왔다. 인기의 원동력은 스웨덴과 정반대다. 파우치는 리더지만 텡넬처럼 정부와 발맞춰 가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반대로 가며 미국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대통령이 비과학적인 발언을 할 때 그는 옆에서 바로잡는다.

그는 6명의 대통령을 겪었다. 에이즈 위기부터 에볼라까지 수십 년간 전염병과 싸워온 경험이 있다. 여기에 스스로 밈(meme·온라인상에서 모방하거나 재가공한 콘텐츠)의 콘텐츠가 되면서 열혈신도들이 폭증했다. 지난 3월 중순에 있었던 코로나19 태스크포스 브리핑 자리. 트럼프 대통령 뒤에서 손을 머리에 짚으며 ‘맙소사’ 제스처를 취했던 2초간의 동작은 엄청났다. 캡처된 파우치는 인터넷 패러디의 중심이 됐다. 팟캐스트, 인스타그램 라이브, 페이스북 라이브스트림, 유튜브 채널 등에서는 80살 먹은 백발의 인터넷 스타를 모셔가기 위해 초청장을 날렸고 그는 기꺼이 응했다. 그가 출연한 유튜브 채널만 해도 구독자 수를 합치면 3300만명에 달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케이블 뉴스를 보지 않는 젊은층이었다.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들은 그를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대신 전염병 최고 권위자는 뉴미디어 출연을 코로나19 알리미로 활용했다. 미 시사지 디애틀랜틱은 “젊은 미국인들은 밈 때문에 파우치를 신뢰한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플랫폼에서 진실하고 일관된 자세로 그들과 함께하는 건 신뢰를 구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세계 최대 청원 사이트인 체인지닷오아르지에는 ‘피플지가 선정하는 가장 섹시한 남성에 파우치를 선정해 달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코로나19 치료에 말라리아 치료제를 사용하는 연구를 진행해 논쟁의 중심에 선 프랑스 지중해질병연구센터의 디디에 라울 박사. ⓒphoto 뉴시스
코로나19 치료에 말라리아 치료제를 사용하는 연구를 진행해 논쟁의 중심에 선 프랑스 지중해질병연구센터의 디디에 라울 박사. ⓒphoto 뉴시스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둘러싼 정치 논쟁

앞에서 보듯 보통은 코로나19 대책을 담당하는 보건 책임자가 인기를 끈다. 반면 프랑스 지휘관인 제롬 살로몬 보건국장은 여기서 예외다. 그를 대신해 조명을 받는 사람은 따로 있다. 프랑스에서는 말라리아 치료약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두고 정치적 논쟁이 극에 달했다. 프랑스 의사들은 부작용이 심한 이 약을 코로나19에 처방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 46만명의 사람들이 ‘약을 더 널리 사용하자’는 탄원서에 서명했을 정도다. 프랑스 지중해질병연구센터(IHU)의 디디에 라울 박사는 논쟁의 중심에 섰다. 68세인 그는 해골 모양의 두꺼운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있고 영화 ‘반지의 제왕’의 마법사 간달프를 연상시키는 하얀 장발 머리에 수염을 길렀다. 반골적 냄새가 물씬 나는 이 과학자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코로나19에 쓰기 위한 연구를 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에 언급하면서 세계적 이슈메이커가 됐다.

3월 초 라울 연구팀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소규모 임상 결과를 공개했다. 당장 약물의 부작용을 고려할 때 다양한 임상시험 결과를 얻기 전까지 처방약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원래 라울 연구팀은 임상시험 결과를 국제학술지인 ‘항균화학요법저널’에 실으려고 했는데 방법론이 문제가 돼 거부당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라울이 그간 발표한 논문에 의문을 제기했다. 약 3000여편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실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구자가 평생 발표한 것보다 더 많은 논문을 한 달 안에 출판한 셈이었다.

라울은 “안팎의 우려에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에게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투약하겠다고 발표했다. “의사의 의무는 최상의 치료법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다”라는 열정적인 말을 믿는 사람들이 그의 병원 밖에서 대기줄을 이루었다. 불안과 혼돈 속에 그를 영웅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속속 모였다. 현재 페이스북 그룹에 속한 인원만 50만명이다. 1주일에 한 번 업로드되는 유튜브 방송은 프랑스 정부의 공식 회견보다 조회수가 많다.

만용처럼 보이지만 라울은 오랫동안 독창적인 연구를 해온 저명한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유튜브에서 자료와 차트를 제시하며 학구적으로 내용을 풀어간다. 독불장군처럼 보이는 외모지만 침착하고 설득력 있는 화술을 갖고 있다. 반항적 태도와 과학적 권위를 동시에 전달하는 묘한 인물이다.

고향이 마르세유라는 건 반(反)체제적인 매력을 증폭시켰다. 파리가 중심인 나라에서 마르세유는 반골 같은 역할을 해온 요새다. 라울은 마르세유에 남기를 고집했고 파리의 의료기관을 보수적이고 관료적이라고 비판해온 인물이다. 그의 행동과 외모가 관습에 얽매이지 않게 된 것도 그런 이유가 담겼다. 기자가 장발에 뾰족한 수염을 기르는 이유를 묻자 “그것이 그들(파리)을 화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 4월 6일 프랑스 여론조사기관인 IFOP의 발표에 따르면 59%의 응답자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사용하는 데 찬성했다. 특히 마르세유 응답자의 찬성률은 74%나 됐다.

종교에 할당된 역할 물려받는 과학

이런 배경 때문에 그의 의학적 주장은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라는 아이디어도 에마누엘 마크롱 정부를 반대하기 위한 지렛대로 여기저기서 활용된다. 무능한 정부의 반대편에 그가 서 있는 격이다. 여당인 레퓌블리크앙마르슈(LREM·전진하는 공화국) 안에서는 “라울이 반항적인 관점을 취하면서 국가 통합을 깼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라울에 대한 열광은 반대로 정부에 대한 ‘불신’ 탓이다. 파스퇴르를 배출한 프랑스지만 의료정책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공공의료에 투자가 줄어들어 사라진 수만 개의 병상은 이번 팬데믹에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프랑스의 코로나19 사망자 수(2만8599명)는 네 번째로 많다. 믿을 수 없는 행정의 대표자인 보건국장 대신 뭐라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듯한 라울을 향한 열광이 더 큰 까닭이다.

이처럼 많은 나라에서 과학자들이 유명해졌고 정치인을 대신해 권위를 얻어가고 있다. 팬데믹으로 생긴 절망이 길어질수록 백의를 걸쳐 입은 연구자들이 각광받는 건 우리가 불안이 좀먹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사람들은 이제 과학이 신탁인 것처럼 대답을 얻으려 하고 의지하고 있다. 그리고 권력자들은 종교에 할당되었던 역할을 이제 과학에 할당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종교나 정치 대신 과학이 구원자로 나서는 시대가 왔다.

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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