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일(현지시각) 미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경찰 앞에 무릎을 꿇어 보이며 대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6월 1일(현지시각) 미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경찰 앞에 무릎을 꿇어 보이며 대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영상 속 부모들은 어려움을 겪는 눈치였다. 아들이 피부색 때문에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해줘야 하는데 난감하다고 했다.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며 설득할 수 있는, 그런 현명한 방법을 찾는 건 어려운 작업이었다. 뉴욕타임스의 Op-Docs팀(다큐멘터리 팀)이 2018년 공개한 ‘내 흑인 아들과의 대화(A Conversation With My Black Son)’에는 여러 명의 흑인 부모가 출연해 담담하게 자신과 아들 사이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제작진의 촬영 의도는 이랬다. “여러 세대 동안 미국의 흑인 부모들은 아들이 10대가 됐을 때 선택을 해야 했다. 미국에서 흑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말이다. 그들은 자식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단지 피부색 때문에 경찰의 표적이 될지도 모를 위험이 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이런 걱정은 결코 유난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25일 “숨을 못 쉬겠다”며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에게서 자신을 발견했거나 혹은 자신의 자식을 투영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는 게 증거다. 백인 경찰의 무릎은 수갑을 차 무저항 상태로 있던 플로이드의 머리를 8분 이상 압박했다. 녹초가 돼 점점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죽을 것 같다는 호소보다 더 강하게 작동한 건 경찰의 인종적 편견이었다. 영상 속 부모들이 갖고 있던 고민의 실사판이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진 셈이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된 항의 시위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애틀랜타, 워싱턴DC 등 미 전역으로 확대됐다. 시위대 중 일부는 약탈과 방화, 파괴 행위를 벌이고 있지만 그들의 과격함은 이 큰 사건의 작은 파편일 뿐이다. 워싱턴포스트의 흑인 칼럼니스트 유진 로빈슨은 이렇게 쓰고 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동을 막고 싶다면? 경찰과 인종차별적인 백인 자경단이 이제는 흑인 살해를 접어야 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쓰레기 취급하는 것을 그만하라. 나는 폭동과 파괴, 약탈이라는 폭력 행위를 비난한다. 하지만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치밀어오르는 그 심정은 이해한다.”

1000명당 1명꼴 공권력에 희생되는 흑인

격앙된 감정을 이해하는 까닭은 지긋지긋한 반복에 있다. 플로이드의 죽음 이전에도 무방비의 흑인이 희생되는 폭력은 되풀이됐다. 2020년만 봐도 당장 2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백인의 총격에 비무장 흑인이 사망했다. 조깅을 하던 아흐마우드 알버리(25)를 경찰 출신의 백인 아버지와 아들이 주거 침입범으로 보고 총을 쐈다. 처음에는 아들이 공격당해서 쐈다고 했지만 5월 초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일방적인 총격이란 게 드러났다. 3월에는 켄터키주에 살던 응급의료요원 브레오나 테일러(26)가 집에서 자던 중에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마약 사건을 수사한다며 경찰이 새벽에 들이닥쳤다가 생긴 일이었다. 이런 참혹한 사건이 헤드라인을 차지할 때마다 흑인들은 잠재적 위험이 일상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에서 경찰과 흑인은 긴장 관계에 놓인다. 흑인은 별것 아닌 이유로 경찰의 심문을 받거나 신체검사를 받을 때가 있다. 편견에 근거한 인종 프로파일링 때문이다.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실제로 피해를 본다. 그런 경험들은 통계로 축적돼 있다. 미국 흑인들이 얼마나 공권력의 표적이 되는지를 알려면 2019년 8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가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된다. 2013~2018년 경찰 데이터를 활용했는데 결과를 요약하면 이랬다. “미국에서 흑인 남자들은 전 연령대에 걸쳐 경찰에 살해될 확률이 1000명당 1명꼴이다. 그리고 20세에서 35세 사이에 가장 위험하다.” 흑인은 백인에 비해 경찰의 손에 살해될 확률이 2.5배 정도 높았다. 인디언, 알래스카 원주민, 라틴계, 아시아계 등 모든 집단과 비교해도 흑인 남성은 경찰의 손에 살해될 수 있는 위험이 가장 큰 집단이다.

25~29세 사이 흑인 남성은 10만명당 2.8~4.1명 비율로 살해됐다. 반면 백인은 같은 연령대 살해 확률이 10만명당 0.9~1.4명 정도다. 20~24세 전체 흑인 남성 사망자 중 1.6%는 경찰의 무력 사용 탓이다. 백인 남성의 경우는 고작 0.5% 정도가 경찰의 책임이다. PNAS의 자료는 흑인의 삶 속에서 공권력에 의한 위험의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인종적·구조적 차별 문제까지 건드리는 건 지금 미국이 처한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팬데믹과 경제위기는 백인보다는 유색인종, 특히 흑인들의 생활에 생채기를 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는 전 세계 국경을 넘어 순식간에 세계로 퍼졌고 이 바이러스 앞에서는 국적과 인종, 계급 따위는 상관없을 거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결과를 보면 바이러스조차 평등하지 못했다.

지난 5월 27일 APM리서치랩이 발표한 데이터는 미국 내 흑인과 다른 인종 사이에 코로나19로 생기는 사망률 격차만 확인해 줄 뿐이다. 미국 전역에서 흑인은 인구 10만명당 54.6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라틴계(24.9명), 아시아계(24.3명), 백인(22.7명)보다 훨씬 높다. 미국 전체 흑인 1850명 중 1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미국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흑인은 미국 내 코로나19 전체 사망자 중 25%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6월 3일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 경찰 간부들이 시위대와 함께 무릎을 꿇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6월 3일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 경찰 간부들이 시위대와 함께 무릎을 꿇고 있다. ⓒphoto 뉴시스

정부 대신 민간이 모으는 인종 불평등 데이터

주 단위의 통계는 더욱 충격적이다. 캔자스주에서는 6%에 불과한 흑인이 이곳 코로나19 사망자 중 31%를 차지했다. 위스콘신주 역시 흑인 인구는 전체에서 6%에 불과하지만 코로나19 사망자는 28%였다. 흑인 인구 비중이 27%인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사망자 중 절반이 넘는 54%였다. 백인의 사망률과 비교하면 더욱 극적이다. 수도 워싱턴DC에서는 흑인과 백인의 사망률 격차가 6배에 달한다. 미시간주와 미주리주에서는 5배, 뉴욕과 일리노이, 루이지애나 등 코로나19의 주요 확산 지역에서도 3배 정도 흑백 간 사망률 차이가 있다. 게일 핀니 하원의원(텍사스주)은 “이런 결과는 의원들과 공무원들에게 행동이 필요하다는 걸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인종적 불평등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이미 지난 4월에도 워싱턴포스트는 “흑인의 코로나19 사망률이 백인에 비해 2.4배 높다”고 전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보통 그 출발점은 경제 격차에서 찾는다. 흑인은 의료보험 미가입자 비중이 높아서 평소에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코로나19 고위험군에 속하는 기저질환자가 많다. 미 공중보건 분야 야전사령관 격인 제롬 애덤스(45) 공중보건서비스단장은 자신을 예시로 삼았다. “저는 미국에서 어렵게 성장한 흑인을 대표합니다. 고혈압과 심장 질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식과 당뇨병전증 환자이기도 합니다. 흑인들은 건강에서 리스크가 큽니다.”

감염이 많은 이유도 구조적인 격차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임금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사람 중 흑인 비율이 높다는 건 코로나19가 유행해도 계속 일을 하는 흑인이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슈퍼의 점원이나 버스 운전사, 청소부 등 도시를 유지하는 분야에서는 흑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종 문제에 정통한 니콜 한나-존스 뉴욕타임스 매거진 기자는 흑인의 자차(自車) 비중과 주택의 자가 보유 비중이 낮은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대중교통 이용 빈도가 높을수록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건 어렵다. 단독주택이 아니라 타인과 접촉이 많은 집합 주택에 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진 못해도 도출되는 불균형을 파악해 위기 대응을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었다. 그런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의 대처는 지지부진했다. 가장 기초 작업인 인종 불균형에 관한 데이터를 모으는 일에 연방정부는 관심이 없었다. 이렇다 보니 주별로 집계가 이뤄져야 했고 취합 속도도 느렸다. 여전히 공개하지 않는 곳까지 생기면서 일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러면서 APM리서치랩 같은 곳이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 앤디 에그버트 APM리서치랩 수석연구원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전국적인 통계를 우리 같은 독립된 단체가 맡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국가 수준에서 데이터가 없다는 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게 어렵다는 뜻과 같다. 정부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난 6월 2일 LA의 한 시위 청년이 경찰에게 꽃을 건네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6월 2일 LA의 한 시위 청년이 경찰에게 꽃을 건네고 있다. ⓒphoto 뉴시스

코로나19와 경찰의 폭력이 만든 합작품

그러는 사이 흑인들이 진단검사와 질병 치료 면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증거는 계속 나왔다. 바이오기업인 ‘루빅스라이프사이언스’는 지능형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해 7개 주 코로나19 환자 2만7344명의 청구 정보를 분석했다. 여기서 얻은 결론은 흑인 환자들이 코로나19를 치료하거나 검사받을 확률이 백인에 비해 6배나 낮다는 것이었다. 언론을 통해서도 여러 사례들이 폭로됐는데 대표적인 게 선별진료소의 위치가 백인 인구 밀집 지역에 편중된 경우다. 지난 5월 27일 미 공영방송 NPR은 텍사스주를 조사해 “6개의 대도시 중 4개 도시의 선별진료소가 백인 밀집 지역에 주로 있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검사도 불평등하게 이뤄졌다. 인터넷 매체 복스(Vox)는 “일리노이주 공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망자의 37%가 흑인이지만 4월 23일 기준으로 전체 흑인 주민 중 13%만이 검사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의료 불평등에 더해 팬데믹으로 잃은 임금은 가난한 자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줬다. 지난 6월 1일 갤럽은 “저임금, 블루칼라, 저학력 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연소득 3만6000달러 미만) 가구 노동자의 95%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해고(37%)되거나 소득 손실(58%)을 겪었다. 2018년 ‘아메리칸 커뮤니티 서베이(ACS)’ 자료에 따르면 백인 가구의 중간소득은 6만7937달러, 흑인 가구의 중간소득은 4만1511달러였다. 갤럽이 말하는 저소득층 속에는 흑인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이다.

수개월간의 봉쇄로 비어 있던 거리를 시위대가 차지하는 그림은 백악관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을 터다. 만약 그것이 조지 플로이드의 비극적인 죽음, 전례 없는 바이러스의 유행 등으로 생긴 일시적인 사건으로 생각한다면 오판일 수 있다. 바버라 랜스비 일리노이대 교수는 “코로나19가 오랫동안 지속해 왔던 인종 불평등을 다시 상기시켰다. 그리고 하필 이런 시기에 발생한 경찰의 폭력이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생각보다 분노의 뿌리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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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국제·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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