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왼쪽).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오른쪽).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왼쪽).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오른쪽).

코로나19 사태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휘청거리면서 누가 그의 뒤를 이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의 임기는 내년 10월 21일로 아직 1년4개월 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여론조사가 잇달아 나오면서 일본 국민의 관심은 ‘포스트 아베’에 쏠리고 있다.

일본 정계에서는 정권이 교체되는 조건으로 통상 3개의 법칙이 거론된다. 첫째는 아오키 법칙. 관방장관,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을 역임한 아오키 미키오(青木幹雄) 전 의원이 주장한 일종의 경험칙이다. ‘내각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의 합계가 50% 이하로 떨어지면 총리가 퇴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30:50:20 법칙. 자민당 지지율 30%, 무당파 50%, 전체 야당 지지율 20%의 비율이 무너질 경우에도 정권 교체 현상이 나타난다. 세 번째는 10% 법칙.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비율이 내각을 지지하는 비율보다 10%포인트 높으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아오키의 3가지 법칙이 가동됐다

최근 여론조사는 아베 총리가 내각 사퇴를 초래하는 3가지 법칙에 해당하거나 그 경계선에 걸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5월 23일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같은 달 초 조사 당시의 40%에 비해 13%포인트 하락, 27%를 기록했다. 또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전회보다 19%포인트 늘어난 64%였다. 내각 부(不)지지율과 지지율의 차가 37%포인트로 한계를 넘어섰다.

이번 조사에선 그동안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던 제1야당 입헌민주당 지지율이 직전의 9%에서 12%로 올랐다. 오사카에 기반한 지역정당 일본유신회는 11%를 유지하면서 야당 전체의 지지율이 20%를 훌쩍 넘었다. 자민당 지지율도 25%로 내려앉으며 ‘내각 지지율+자민당 지지율’은 52%로 아오키의 법칙에 근접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부터 8년 가까이 장기 집권 중이다. 그의 지지율 하락은 정권 말기에 나타나는 필연적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급작스럽게 진행되면서 그가 구상한 후계구도도 영향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2일 발표된 FNN(후지뉴스네트워크)과 친(親)아베 성향인 산케이신문의 여론조사는 아베 총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로 가장 어울리는 정치인’에 아베 총리의 정적(政敵)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이 18.2%로 1위를 차지했다. 반면 그가 후계자로 밀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은 1.9%로 최하위였다.

기시다 정조회장은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가 자신의 후계자와 ‘포스트 아베’에 대해 기시다 정조회장,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후생노동상 순서로 언급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기시다 정조회장이 2016년 외무상 시절에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위해 노력한 것을 언급하며 “매우 성실한 분”이라고 했다. “상대방을 존중하기에 기시다와 함께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매우 많다”고도 극찬을 해 ‘기시다 후계자’ 설은 일본 정계에서 기정사실이 됐다.

“기시다 크게 망신당했다”

그런 기시다가 아베 정권을 지지해온 산케이신문 조사에서도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환경부 장관(8.8%), 고노 다로(河野太郞) 방위상(5.0%),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3%)보다 지지율이 낮게 나왔다. 심지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보다도 1.6%포인트 낮아 “기시다가 크게 망신당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기시다는 약 4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기시다파(派)’를 이끌며 차기에 대비해 왔으나 아베 총리처럼 코로나19 사태로 일격을 당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진 이에게 30만엔을 선택적으로 주는 안을 아베 총리에게 제안해 재가받았다. 그러나 그후 그와 사이가 좋지 않은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 연립정당인 공명당과 함께 ‘10만엔 일률 지급’ 정책을 갑자기 들고나와 기시다 안(案)을 뒤집어 버려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요즘 모든 매체의 여론조사에서 ‘포스트 아베’ 1순위로 이시바가 거론되는 이유는 그가 자민당 내에서 ‘반(反)아베 노선을 분명히 해왔기 때문이다.

이시바는 2012년과 2018년 자민당의 총재 경선에서 두 차례 아베 총리와 맞붙어 패배했지만, 당원들과 일반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자민당 내 야당’을 자임하며 아베 총리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난 5월 아베 총리가 검찰총장을 시키려고 했던 구로카와 전 도쿄고검 검사장이 마작 스캔들로 낙마하자 “국민의 상식과 어긋나는 결정을 하면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며 비판 강도를 높였다.

이시바는 돗토리(鳥取)현 출신의 2세 의원이다. 돗토리현 지사, 자치대신을 역임한 부친이 사망하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총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 29세에 처음으로 당선됐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으로 첫 입각 후, 후쿠다 내각에서 다시 방위성 대신을 역임,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전문가를 자임한다. 한·일 관계에 대해선 우익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나 전력(戰力)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개정엔 아베보다 적극적이다. 아예 헌법을 고쳐서 군대 보유를 명기하자고 주장한다.

자력으로는 총리 어려운 이시바

국민 여론은 이시바에게 쏠리고 있지만 의원들이 총리를 뽑는 의원내각제의 특성상 비주류인 그가 권좌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자민당은 그동안 철저히 파벌 간의 합종연횡에 의해서 당의 총재를 먼저 선출한 후 국회 표결로 총리를 만들어왔다.

현재 자민당은 아베 총리가 속한 호소다파(細田派)가 영향력이 가장 크다. 중·참의원(衆參議院) 중 호소다파 국회의원이 97명이다. 그다음이 아소 다로 부총리가 이끄는 아소파(麻生派)로 소속의원은 55명. 이어서 다케시다(竹下派·54명), 니카이파(二階派·48명) 기시다파(岸田派·47명) 순이다. 이시바는 2015년 자신의 파벌을 만들었으나 여기에 속한 의원은 20여명에 불과하다. 자력으로는 결코 차기 총리가 될 수 없기에 현재의 지지율을 유지해가며 다른 파벌과의 ‘권력 분점’ 약속을 통해 제휴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 때문에 기시다가 최근 아베 총리와 관계가 벌어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과 연대를 모색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올 한 해 일본 정계는 아베의 추락에 반비례해서 이시바가 얼마나 비상(飛上)하는지가 최대 관심사 중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키워드

#도쿄 통신
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