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왼쪽). ⓒphoto 뉴시스
지난해 4월 프랑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왼쪽). ⓒphoto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독일 주둔 미군 중 9500명을 오는 9월까지 감축하기로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6월 5일 보도했다. 독일 주둔 미군이 감축된다는 뉴스는 독일은 물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도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다.

외신들을 종합하면 백악관의 로버트 오브라이언 안보보좌관은 최근 독일에 주둔하는 미군 중 9500명을 감축하여 현재의 3만4500명에서 2만5000명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비망록에 서명하였다. 단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며, 미군이나 미 국방부도 이에 관한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았다. 관련 내용은 아직 나토 회원국이나 독일 측에 공식적으로 전달되지는 않았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독일 내에는 여러 미군 기지가 있지만 어떤 기지가 폐쇄되고, 어디서 얼마만큼의 병력이 줄어들고, 이들 병력이 어디에 재배치되는지 등의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11월 대선을 앞두고 나온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노이즈마케팅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독일 주둔 미군 9500명 감축 보도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측근인 대서양협력기구의 피터 바이에르 총재는 지난 6월 8일 로이터통신과의 회견에서 트럼프의 미군 감축 결정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양국 관계에 손상을 가하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은 “우리는 수십 년간 지속된 미군과의 협력에 감사하고 있으며 이는 양국에 이익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대서양 동맹의 긴밀한 파트너지만 현재의 관계는 복잡하다(complicated)”라고 말해 두 나라 간의 외교 문제에 있어서 견해 차이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현재 독일에는 나토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미군이 배치되어 있다. 주독 미군은 지난 10년간 절반으로 줄어들어 현재 3만4500명에 달한다. 이 중 1만명은 공군으로 람슈타인과 슈팡달렘 기지에 배치되어 있다. 람슈타인 공군기지는 중동 지역에서의 미군 드론 공격을 지휘하고 있어서 독일 좌파들의 철군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공군을 제외한 나머지는 육군과 해병인데 바이에른의 그라펜뵈르에 1만명 이상이 주둔하고 있다. 란드스툴에는 대형 미군 병원도 있다. 미 유럽사령부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자리 잡고 있다. 독일에는 미군의 아프리카사령부도 있고, 현재 핵무기도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우방의 나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가 최근 여러 분야에서 갈등을 벌이는 바람에 두 나라 관계는 마스 외무장관의 평가대로 “복잡한(complicated)” 관계로 변화되었다.

트럼프와 메르켈이 충돌한 분야로는 우선 난민 정책을 꼽을 수 있다. 트럼프의 간판 정책 중 하나가 바로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것인데 기자들이 이를 난민을 받아들이는 메르켈의 정책과 비교하며 비판을 가한 적이 있다. 그러자 트럼프는 “메르켈의 난민 정책은 이해할 수 없다. 난민으로 인해 독일에서는 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고 답했다. 메르켈 역시 트럼프를 틈틈이 비판해 왔다. 지난해 트럼프가 미국 민주당의 좌파 여성 의원들을 비판하자 메르켈은 “나는 트럼프의 인종주의적인 비난과는 멀리 떨어지려 하며, 비판받은 여성 의원들과 연대의식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두 정상 간의 정책 충돌이 가장 크게 대두한 분야가 국방비 문제다. 나토 회원국들은 모두 각국 GDP(국내총생산)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할 의무가 있다. 트럼프는 집권 벽두부터 이 의무를 지키라고 회원국들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독일은 2019년 기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1.2%를 지출할 뿐이다. 더구나 독일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재정지출이 많아져 국방비를 늘리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발트해 파이프라인 건설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독일은 구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해 왔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송유관으로 운송된다. 우크라이나는 이 파이프라인 덕분에 매년 20억달러의 통행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메르켈 총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의해 러시아의 유전에서 발트해를 지나 독일로 바로 연결되는 ‘노르드 스트림(Nord Stream)’ 파이프라인을 건설하였다. 거액의 통행료를 놓치게 된 우크라이나는 “우리 목을 조르는 짓”이라며 반대하였다. 미국도 이 파이프라인 건설에 반대하였다. 메르켈은 그러나 미국의 반대를 미국산 가스를 팔려는 의도로 간주하였다. 트럼프는 이 가스관 건설에 참여하는 독일 회사들에 경제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독일로서는 러시아로부터 바로 들어오는 가스가 싸게 먹힌다. 독일과 러시아는 ‘노르드 스트림 2’도 증설하기로 했다.

훈련 중인 독일 주둔 미군. ⓒphoto 뉴시스
훈련 중인 독일 주둔 미군. ⓒphoto 뉴시스

트럼프 반대에도 러시아와 가스관 건설

이란 문제도 미국과 독일이 충돌하는 현안이다. 미국은 트럼프 전임인 2015년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이란과 핵협정을 맺었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대가로 미국의 경제제재를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힘쓴 나라가 바로 독일이었다. 이란과 거래하는 많은 독일 기업이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이란과의 핵협정을 폐기하였다. 지난 1월에는 이라크에서 활동하던 이란의 실력자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폭사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걸프해역에서 이란의 해상활동을 감시하도록 나토 회원국들에 함정 파견을 요청하기도 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호응하였지만 독일은 함정을 보내지 않았다.

가장 심각한 현안은 미·중 갈등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은 중국을 고립시키는 디커플링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이에 호응하지 않고 있다. 2019년 중국은 독일의 최대 교역국이다. 양국 간 무역량은 2060억유로에 달한다. 메르켈은 중국을 12차례나 방문한 친중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2010년에는 자신의 생일을 남편과 함께 중국 시안(西安)에서 보내기도 하였다. 메르켈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도 친밀하다. 오는 8월에 메르켈의 13번째 중국 방문이 계획되었지만 실현될지는 알 수 없다.

독일은 오는 7월부터 유럽이사회(EC) 의장국이 된다. 메르켈은 오는 9월 라이프치히에서 중국 시진핑이 참가하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27개 EU 회원국 정상들이 다른 한 나라의 정상과 함께 회의를 개최한 적은 없었다. 유럽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 대통령조차 이러한 특권을 누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메르켈이 시진핑에게 이러한 영예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홍콩 탄압 등 국제법 위반을 이유로 이 행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메르켈은 EU와 중국과의 외교가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내부에서도 홍콩, 위구르 탄압 등을 이유로 이 회의를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감군 조치가 나오기 직전에 트럼프가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리는 G7 확대회의에 메르켈을 초청하였지만 메르켈은 코로나19를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둔 9월에 중국 시진핑이 EU 27개국 정상들과 단독으로 떠들썩한 회의를 하는 ‘영예’를 차지하게 된다면 미국 트럼프의 ‘중국 디커플링’ 정책은 실패라는 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분노한 트럼프가 독일 주둔 미군의 감축을 단행했다는 설명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독일 주둔 미군 감축 방침에 대해 두 나라의 대다수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인다. 다만 독일 내 좌파는 미군의 감축을 넘어 미군의 완전철수와 핵무기 반출 등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파 정치인들이 비용 측면에서 독일 주둔 미군의 감축을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막상 미군이 줄어들면 독일군이 당장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압도적이다. 독일군이 만성적인 병력 및 장비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군의 딜레마

독일은 2011년부터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독일군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군 병력은 현재 18만명 수준이다. 2025년까지 19만8500명으로 늘리려 하지만 2017년부터는 군대에 지원하는 젊은이 숫자가 사상 최저치인 2만명으로 줄어들고 있다. 군의 기둥인 장교와 부사관은 당장 2만1500명이 부족한 상태다. 이 때문에 4000여명의 퇴직을 늦추는 조치까지 취했다. 독일군은 병력 부족에 이어 병력 노령화라는 치명적인 약점도 갖고 있다. 미래 군에 중요한 분야인 정보통신(IT), 의학, 군수 등의 전문가를 구하기는 더욱 어렵다. 군 보고서는 민간 분야의 풍부한 일자리, 전후 지속된 평화무드 때문에 병력 구하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밖에도 부대 내에서의 성폭력 증가, 극우 비밀조직 결성 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독일군은 장비 면에서도 약점이 많다. 독일 하면 떠오르는 무기 중 하나는 2차 대전 때 맹활약한 잠수함 U보트이다. 한국 해군의 잠수함도 독일 HDW사의 기술지원으로 제작되었다. 이런 잠수함 강국 독일에 2018년 이후 가동 중인 잠수함이 한 척도 없다. 부품 공급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독일 육군의 레오파드 전차나 공군의 여러 전폭기, 수송기들도 제대로 운영되는 게 없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독일군은 민간업자로부터 헬기를 임차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방탄복 등 개인 장비들도 지원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형편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미군 없이 독일이 러시아에 대한 핵억지력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엔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 2월 “러시아가 배치하는 신형 미사일 시스템은 이동식이며, 은폐하기 쉽고, 순식간에 유럽 전역을 타격할 수 있어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전략가들은 러시아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에 선제 전술핵 공격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럴 경우 미국이 러시아의 핵 공격 보복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러시아에 핵 공격을 가할지 회의적이라는 시각도 많다. 독일이 자체적으로 러시아의 핵 공격을 억제하려면 스스로 핵무기를 개발하든지, 핵 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국토가 작은 프랑스나 영국이 독일을 위하여 러시아에 핵보복을 가할 가능성도 적다. 러시아와 군축협상을 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독일이 핵을 보유한 군사대국 러시아와 군축협상을 벌인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현재 독일에서 빠져나갈 미군들 가운데 일부는 폴란드에 순환배치되어 나토의 동부 지역을 강화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일에 배치된 핵무기들도 폴란드로 이동 배치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에 대해 독일 언론들은 러시아가 강력 반발할 가능성을 예상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독일 언론들은 트럼프의 호언대로 9월까지 미군이 감축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만약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낙선하면 미군 감축도 백지화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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