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올해는 영국 낭만파 시인이자 호수파 시인으로 유명한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1770~1850)의 탄생 250주년이다. 이 유명한 시인을 기념할 법한데 영국에서조차 의외로 조용하다. ‘1984’ ‘동물농장’ 을 쓴 조지 오웰의 경우 올해가 사망 70주기라고 책도 많이 팔리고, 베토벤은 탄생 250주년이라고 기념음반 발매와 함께 여러 곳에서 기념공연이 열리고 있는데 말이다. 영국인에게 있어 워즈워스는 소월 김정식이 한국인에게 주는 만큼의 정서적인 비중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탄생 250주년이 너무 소홀한 듯하다. 결국 영국도 ‘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워즈워스의 대표작 두 편은 우리가 정확하게 누구의 시인지 모르면서도 눈에 많이 익은 시다. 우선 ‘무지개(The Rainbow)’부터 보자.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볼 때

내 가슴은 뛴다.

내 삶이 시작될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

내가 늙어서도 그러하길.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나를 죽게 내버려 두라.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나의 모든 날이 타고난 신앙심에 서로 엉켜 있기를.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여기서 가장 유명한 시구는 바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이다. 누구든 그 뜻을 알듯 하면서도 동시에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듯한 시구이다. 이 시를 제대로 맛보려면 영국인처럼 영어로 시를 소리내어 읽어 봐야 한다고 감히 주장한다. 이유를 살펴보자.

영어 원어가 갖는 흥과 맛

글을 근본으로 하는 소설과는 달리 시나 희곡은 말의 문학이다. 소설은 등장 인물의 성격 묘사와 그들이 함께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 줄거리와 지문(地文)으로 번역이라는 장애물을 거의 넘을 수 있다. 그러나 말을 근본으로 하는 시나 희곡은 장애물을 제대로 넘기가 불가능하다. 우리들의 고전 심청전은 한국인의 기본 정서 4.4조를 기본 골조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심청이가 임당수로 끌려가기 전 새벽에 읊조리는 한탄이 바로 이 4.4조이다. “닭아 닭아 울지 마라 니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모두 4자의 문구이다. 하긴 우리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한다는 트롯 가요도 4분의 4박자가 기본이 아닌가? 가사 내용과 함께 박자의 신명이 중요시 되는 우리 창의 흥과 맛을 어떤 번역이 감히 완성할 수 있는가 말이다. 거기다가 희곡은 어떤가? 고전 영어 희곡 작품은 거의 영시 수준이다. 시적인 대사가 연극의 품위를 한껏 높여 준다. 셰익스피어 희곡은 거기에 더해 암호 같은 문학적인 각종 장치가 대사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어 외국인들을 절망하게 만든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에 등장하는 압운(押韻)을 비롯한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 중의어(重意語), 대구(對句) 연결은 원어민에게는 배꼽을 잡게 하는 말장난 기법이다. 이런 말장난 기법을 번역한 대사로는 원어 연극의 맛을 절대 맛볼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우리 심청이의 한탄을 단장을 무시하고 그냥 단순하게 뜻으로만 번역해서 얼마나 그 뜻이 전달되겠는가? 셰익스피어 영어 특유의 억양과 음조 변화를 이용한 배우들의 대사는 거의 노래 수준이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런던 바비칸 센터 햄릿 공연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공연은 2015년 14주간에 걸친 공연이었는데 1년 전인 2014년 8월 온라인 판매가 시작되자 마자 순식간에 10만장의 표가 다 팔려 영국 공연 역사상 가장 초특급 매진 기록을 남긴 역사적인 공연이었다. 여기서 컴버배치는 영화와 드라마 배우만이 아니라 연극 배우로서도 진정한 실력을 보여 자신에게도 기념비 같은 공연으로 만들었다. 비록 전체가 다 나오지는 않고 짧게 나오지만 그래도 햄릿의 분노를 컴버배치 열연의 영어 억양과 음조를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거의 기관총 소리 같이 대사가 쏟아지지만 그 속에도 리듬이 있고 고저가 분명해 거의 노래를 듣는 듯한 수준이다. 영국인들은 이를 ‘다 다 다 단 다(da da da dan da)’라고 표현한다. 이런 영어 대사 특유의 맛을 못 보여주는 번역 연극은 극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반쪽의 연극이 되고 만다. 이 말은 번역으로는 반 밖에 제 맛을 못 느낀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번역된 셰익스피어 연극이 공연되고 있을 터이니 그만큼 위대하다는 뜻이다.

어찌 되었건 소설은 몰라도 희곡과 시는 번역이 되어서는 절대 맛과 멋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우리가 번역된 셰익스피어 연극을 영어 특유의 운율과 억양과 음조의 맛을 모르고 보면 햄릿의 울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도 그나마 연극은 최소한 소설처럼 출연 인물들과 줄거리 인과관계를 통해 줄거리와 대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예술이다. 시에서는 영어 원어가 가지는 흥과 맛을 모르고는 베일을 한 겹 씌운 채 키스를 하는 일과 같다고 해야 한다.

위의 무지개 시를 보자. 여기서 보면 바로 영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압운(rhyming)을 맞춘 단어 어미들을 볼 수 있다. Behold, old의 ld, sky, piety의 y, began, man, Man의 an이 주는 발음의 묘미를 빼놓고는 영시를 감상할 수 없다. 그냥 눈으로만 읽지 말고 입으로 직접 소리를 내서, 그것도 영어식으로 음률과 음조를 맞추어 읽어 보면 이해가 될 듯하다. 같은 발음으로 똑똑 떨어지는 각 시구를 리드미컬하게 읽어 보면 영시의 맛을 느끼리라 믿는다.

워즈워스의 다음 시‘수선화’를 보자.

‘나는 한 조각의 외로운 구름이 되어

계곡과 언덕 위를 방황했네.

어느 순간 나는 하나의 무리들을 보았네.

한 무리의 황금 수선화들이

호숫가 옆에서, 나무 밑에서

산들바람 속에서 떨리면서 춤추고 있었네.

빛나는 별들 마냥 언제까지나

은하수 속의 별들처럼 반짝이면서.

둔덕 옆을 따라

끝없이 줄 지어 선 수선화들,

내 눈에 보이는 수만송이 수선화가

저들 모두의 머리를 흔들며 산들댄다.

수선화는 옆에서 춤추는 물결도

기쁨에 반짝이는 물결도 이겨 버리네.

저렇게 즐겁기만 한 친구들 속에서

시인인들 어찌 즐겁지 않으리.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또 바라 보았네

그 광경이 불러다 준 즐거움을.

내가 때로는 한가하거나 우수에 잠겨

내 침상에 누워 있을 때

수선화가 내 한적함의 축복인 양 하고

내 꿈 속으로 홀연히 들어 온다.

그러고 나면 내 가슴은 기쁨으로 넘쳐나고

그리고는 수선화와 같이 춤을 추었네.’

Daffodils

I WANDER’D lonely as a cloud

That floats on high o’er vales and hills,

When all at once I saw a crowd,

A host, of golden daffodils;

Beside the lake, beneath the trees,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Continuous as the stars that shine

And twinkle on the Milky Way,

They stretch’d in never-ending line

Along the margin of a bay:

Ten thousand saw I at a glance,

Tossing their heads in sprightly dance.

The waves beside them danced; but they

Out-did the sparkling waves in glee:

A poet could not but be gay,

In such a jocund company:

I gazed—and gazed—but little thought

What wealth the show to me had brought:

For oft, when on my couch I lie

In vacant or in pensive mood,

They flash upon that inward eye

Which is the bliss of solitude;

And then my heart with pleasure fills,

And dances with the daffodils.

여기서도 시구 끝의 단어 끝 발음에 주의해 보자. Cloud, crowd 의 d와 발음, 그리고 다음 줄의 hills, daffodils의 ills와 ils, 그리고 trees, breeze에 이르면 거의 모든 시구가 압운을 맞추지 않으면 형성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음 단락의 shine, line과 Way, bayd와 glance, dance와 glee, gay, company와 thought, brought그리고 그 다음 단락의 lie, eye와 mood, solitude 그 다음의 fills, dafodils에 가면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단어 어미 일치의 압운은 단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영국 시인들은 고달프다. 시의 의미는 물론 압운을 위해 거기에 맞는 단어를 찾아야 하니 말이다. 시를 낭송할 때 운이 맞아 떨어지는 즐거움을 맛보려는 이유다. 영국인들은 그래서 시 낭송을 좋아한다. 이런 시인들의 배려는 현대 시인들도 충실히 따른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수 밥 딜란이 존경해 마지 않아 자신의 성을 ‘딜란’이라고 따라 개명한 영국 국민 현대 시인 딜란 토마스 마저도 수백 년 전 선배 시인들의 압운을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한다.

영국의 호수지방에 속하는 버터미어의 절경. ⓒphoto telegraph.co.uk
영국의 호수지방에 속하는 버터미어의 절경. ⓒphoto telegraph.co.uk

영국인에게 ‘호수지방’이란

영국인들이 위 두 시를 접할 때는 바로 워즈워스가 태어나고 살다가 죽어 묻힌 ‘호수지방(The Lake District)’을 머리에 그린다. 해외여행이 일반화 되기 전 잉글랜드 서북부의 호수지방은 영국인들에게는 낭만과 서정의 고향이었다. 수도 없는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골짜기 마다 늘어 선 호수지방은 바로 영국인들의 선망의 휴양지였다. 이 지상의 천국 같은 호수지방에 살면서 낭만적인 시를 쓴 시인들이 바로 호수파 시인들이다. 워즈워스를 비롯해 사무엘 테일러 콜러리지, 로버트 서디, 그리고 워즈워스의 여동생 도로시 워즈워스, 찰스 램, 메리 램, 코마스 드 퀸시의 이름만 들어도 영국인들은 가슴이 뛴다.

워즈워스는 이렇게 낭만적인 시만 쓴 순수 시인으로 살지 않았다. 일찍이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중 대혁명 중인 프랑스를 여행했을 때 대혁명의 대의에 너무나 공감해 공화파가 되었다. 비록 워즈워스는 정치는 하지 않았지만 당시 여러가지 사회제도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특히 자신의 이익과도 직접 연관이 있는 저작권 기간 연장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는 작품이 출간된 후 작가의 생존 여부에 상관없이 14년까지만 작가의 권리를 인정했다. 그에 반해 출판사의 권리는 거의 무기한이었다. 모든 작가는 출판사에게는 항상 을의 위치였다. 워즈워스는 이를 고치고자 사방으로 뛰어 다녔다. 특히 1808년 당시 고위직 하원의원이던 리차드 샤프에게 편지를 써서 작가 사후14년에서 28년으로 저작권을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계류 법안이 충분하지 않다고 항의를 하면서 평생에 걸친 저작권 연장 운동을 시작했다. 출판 후 28년 마저도 많은 경우 작가의 명성을 세상이 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는 논지였다. 때로는 그 보다 훨씬 뒤에 가서야 세상이 작가를 알아보는 경우도 많기에 최소한 직계 가족이 득을 보기 위해서는 저작권 기한이 더 길어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사후 61년이 지나 이뤄진 꿈

워즈워스의 뜻은 작가들이 그냥 자신의 작품을 통해 경제적인 이들을 취하자는 뜻이 아니었다. 작가가 작품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작가는 물론 가족들의 희생과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기에 작가 사후에 생계 대책이 없는 직계 가족 만이라도 혜택을 주자는 주장이었다. 최소한 출판 후 60년은 저작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워낙 출판사 입김이 세서 작가들이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워즈워스는 만년에는 계관시인이 될 정도로 워낙 유명한 인사였고 고위층에 지인들도 많아 출판사의 미움을 받는 이런 일에 앞장설 수 있었다. 그러나 죽기 8년 전인 1842년이 되어서야 출판 후 42년, 혹은 작가 사후 7년 중 긴 쪽으로 저작권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저작권 기한이 겨우 연장되었다. 결국 워즈워스의 꿈은 워즈워스가 죽고도 61년 지난 뒤인 1911년에야 이뤄졌다. 그때 작가 사후 50년으로 저작권이 연장되었다가 1995년에 이르러 지금 처럼 작가 사후 70년으로 연장되었다. 어찌 되었건 워즈워스는 자신의 생의 절반을 저작권 연장에 몸바쳤으니 현재 세계의 작가들은 워즈워스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다.

판권에 관계되는 일화라면 찰스 디킨스도 빠질 수 없다. 디킨스는 중급관리였던 아버지가 빚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어 중산층 집안에서 사립학교에 다니다가 갑자기 구두약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런 아픔이 있던 디킨스는 영국 작가 중 유난히 구두쇠로 유명했다. 그런 디킨스가 1842년 1월 부인과 같이 미국 순방을 나섰다. 미국 구경도 할 겸 자신의 소설이 워낙 미국에서 인기가 있다니 차후 작품을 위한 조사도 할 겸 나선 길이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디킨스를 우상화해서 현대 록스타를 환영하 듯 했다. 당시 미국인들의 환영 분위기를 비틀즈의 1964년 첫 미국 방문과 비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흥분에 차 있던 디킨스는 저속한 문명과 세태에 젖은 미국인과 미국에 실망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에 지천으로 깔려 있던 자신의 해적판 소설책을 보고 기절할 정도로 놀라면서 격분했다. 심지어는 해적판인지 모르고 서명을 받으러 책을 들고온 독자를 소리질러 내쫓기까지 했다. 당시는 미국과 영국 사이에 판권협약이 맺어져 있지 않았다. 해서 미국 출핀업자들은 마음 놓고 디킨스 책을 펴내서 재미를 보고 있었다.

특히 경제관념이 유별난 디킨스로서는 분노에 기절할 지경이었다, 여기 저기 초청 강연회 가서 돈 내고 들어온 미국 청중들이 듣고자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판권문제를 빠지지 않고 언급해 급기야 미국 언론과 여론도 나빠졌다. 디킨스는 영국 친구에게 ‘나는 현행법에 의해 가장 손해를 보는 생존 작가다’라고 편지까지 썼다. 디킨스를 위대한 작가로 봤는데 돈만 밝히는 ‘천한 신분출신’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로서는 영국도 미국 인기 작가 에드가 알렌 포의 작품을 마구 출판해서 재미 보면서 왠 난리냐는 항의였다. 결국 디킨스의 미국 첫 방문은 이렇게 비극으로 끝났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디킨스와 ‘미국과의 불화(Quarrel with America)’이다. 결국 디킨스는 영국에 돌아와 천한 미국인과 미국을 조목조목 맹렬하게 비난하는 ‘어메리칸 노트 (American Notes)’를 써서 미국인들을 더욱 격분하게 만들었다. 디킨스는 어메리칸 노트에서 ‘미국인들은 하루 세끼를 동물음식(animal food)을 들여마시고(swallow) 있다’고까지 혹평했다.

키워드

#런던 통신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