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스페이스X’를 이끄는 엘런 머스크 테슬라 CEO. (오른쪽) 우주기업 ‘블루오리진’ 설립자인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photo 연합
(왼쪽) ‘스페이스X’를 이끄는 엘런 머스크 테슬라 CEO. (오른쪽) 우주기업 ‘블루오리진’ 설립자인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 ⓒphoto 연합

테크 업계 거물 두 사람은 지금 인간을 우주로 이끌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세계 괴짜 1위라고 부를 만한 엘런 머스크 테슬라 CEO는 ‘스페이스X’라는 항공우주기업을 이끈다. 포브스가 공인한 세계 자산 1위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는 ‘블루오리진’이라는 우주기업을 갖고 있다. 지구상의 일로는 딱히 부딪치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우주에서는 치열한 경쟁자다. 일단 지난 5월 30일 스페이스X는 ‘크루 드래건(Crew Dragon)’을 쏘아 올려 우주비행사 2명을 지구 밖으로 보냈고 민간업체 최초의 유인우주선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머스크가 한발 앞서 나간 셈인데 정부가 플레이어로 뛰던 ‘우주 경쟁’의 바통을 이제 민간이 이어받은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일이다. 인간에게는 비록 작은 걸음이지만 상업적 우주산업에서는 큰 도약으로 본다.

언론과 접점이 많고 쇼맨십이 강한 머스크 덕분에 스페이스X는 유명세를 탔고 우주산업의 대표 민간기업이 됐다. 2002년 머스크는 페이팔 매각으로 얻은 15억달러의 자금을 바탕으로 스페이스X를 출범시켰다. 머스크는 우주산업에 뛰어들면서 “스페이스X의 목표는 사람들이 다른 행성에서 살 수 있도록 우주 기술을 혁신하는 것”이라고 언론에 공표했다. 그는 사람들을 화성으로 데려가 식민지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고 개인이 화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50만달러 정도가 들 것이라고 비용까지 추정했다.

반면 조용하고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베조스는 머스크보다 2년 앞선 2000년에 블루오리진을 만들었다. 머스크와 대조적인 리더십이 드러나듯 블루오리진을 만들 때 그 어떤 발표도 없이 조용히 시작했다. 첫 관련 인터뷰가 이뤄진 때가 회사 설립 후 5년이 흐른 2005년이었다. 포브스는 “베조스는 그가 이뤄온 혁신의 결과가 명백히 드러나기 전까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조용히 테스트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베조스가 가길 원하는 곳은 화성이 아니라 달이다.

우주를 향한 두 억만장자의 소송전

우주에 대한 관심을 서로 확인한 두 사람은 2004년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고 로켓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식사 자리가 유쾌했던 건 아니었다. 머스크는 당시를 기억하며 “나는 최선을 다해 조언했지만 베조스는 내 얘기 대부분을 무시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서로의 다름은 확인했지만 별다른 갈등은 없었는데 2010년대에 접어들며 두 사람의 관계가 서서히 변했다. 머스크의 전기를 쓴 애슐리 반스는 2016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흐르고 스페이스X가 성공하면서 머스크의 야심이 더욱 커진 탓이다”라고 말했다.

2013년 스페이스X는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케네디우주센터 39A 발사대를 원했다. 39A는 1969년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린 장소로 1981년부터 2011년까지는 우주왕복선 프로젝트에 활용됐지만 그 이후 우주선 발사가 중단됐다. 나사(NASA)는 비어 있는 39A를 5년간 민간에 임대하기로 했는데 스페이스X의 독점 계약이 눈앞에 있었다. 그러자 블루오리진이 “모든 회사가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며 공개적으로 딴지를 걸었고 미 회계감사원(GAO)에 낙찰자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 신청을 해버렸다. 게다가 몇몇 상원의원을 움직여 나사를 압박하기도 했다. 머스크는 공개적으로 이메일을 통해 불쾌함을 표했다. “블루오리진이 하는 행동은 거짓으로 우리를 막아서는 전략이다. 만약 그들이 향후 5년 안에 나사의 기준에 충족하며 우주정거장에 도킹할 수 있는 수단을 가져와 보라고 해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의 요구를 기꺼이 수용할 것이다.”

39A로 공격받은 스페이스X는 곧바로 특허 전쟁을 시작했다. 이 회사가 보유한 ‘팰컨9’은 2단계 로켓으로 궤도급 중에서는 세계 최초로 재사용이 가능했다. 재사용 로켓은 발사 비용을 줄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블루오리진은 이와 관련해 특허를 갖고 있었는데 바다 위 선박에 발사체가 착륙하는 개념이었다. 2014년 특허권을 따냈는데 스페이스X의 발사체 재사용 계획에도 선박을 이용한 발사체 착륙이 필요했다. 머스크는 발사할 때마다 베조스의 회사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게 특허 무효소송이었다. 스페이스X는 “블루오리진의 특허는 이미 구식이 된 기술일 뿐이다”라며 배 위에 로켓이 안착하는 개념은 1959년 소련의 공상과학영화에도 등장한다고 주장했다.(실제로 비슷한 개념이 영화에 등장한다.) 판사가 내린 결론은? 블루오리진은 보유한 15건의 관련 특허 중 13건이 철회되는 대패를 맛봐야 했고 스페이스X는 재사용 발사체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억만장자들의 싸움치고는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의 신청이나 소송을 넘어 공개적인 발언으로 조롱이나 비난을 주고받는 일도 적지 않았다. BBC 기자가 베조스에 관해 묻자 “제프 누구?”라고 대답하며 무시하는 머스크의 방식처럼 말이다. 쇼맨십 있는 머스크가 이러는 건 예상 가능한 일이지만 베조스도 이런 방식의 싸움에 참전하곤 했다. 우주를 향한 머스크의 비전을 비웃는 데 시간을 쓸 때도 있었다. 2019년 2월, 한 기자가 베조스에게 우주 식민지에 관한 비전을 묻자 그는 머스크의 화성 이주 계획을 비꼬며 “화성으로 이사 가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부탁하겠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먼저 올라가서 겪어봐라. 화성과 비교할 때 거긴 낙원이다”라고 말했다. 화성을 향한 비판은 같은 해 5월, 블루오리진이 디자인한 달착륙선을 선보이는 자리에서도 등장했다. 베조스의 발표 슬라이드 중에 갑자기 화성이 등장했다. ‘여러 해 동안의 여행’ ‘실시간 통신 두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지난해 12월 민간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이 쏘아 올린 무인로켓  ‘뉴 셰퍼드’. ⓒphoto 뉴시스
지난해 12월 민간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이 쏘아 올린 무인로켓 ‘뉴 셰퍼드’. ⓒphoto 뉴시스

우주산업은 돈이 된다

이들의 갈등은 역설적으로 두 사람이 갖는 우주를 향한 집착을 보여준다. 성공한 사업가이기에 그들은 우주가 돈이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위성을 활용한 통신망 구축이 대표적이다. 두 기업가 모두 방대한 수의 인터넷 위성을 지구 궤도에 띄울 계획을 갖고 있다. 사회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들에 사는,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는 수억 명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기획이다.

2015년부터 머스크는 ‘스타링크’라고 불리는 프로젝트를 언급해 왔다.

1만1943대에 달하는 위성을 지구 궤도에 띄워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2018년 11월 스페이스X는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로부터 위성 발사를 승인받았고 2019년 2월 시범적으로 2개의 위성을 쏘아 올렸다. 현재 이 계획은 좀 더 커져 쏘아 올릴 위성의 최종 목표치가 4만2000여개로 확장됐다. 스푸트니크 등장 뒤 60여년간 전 세계에서 발사한 인공위성이 9000기가 조금 못 된다는 점에서 머스크가 꿈꾸는 우주산업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머스크는 올해 2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위성통신 전시회인 ‘새틀라이트 2020’에 참석해 “스타링크가 가진 매출 잠재력은 연간 300억달러 정도다”라고 밝혔다.

2019년이 시작되자 블루오리진에서도 ‘프로젝트 카이퍼’가 시작됐다. 3236개의 위성을 발사해 전 세계 외딴 지역에 고속 광대역 통신망을 구축하는 게 목표인 사업이다. 베조스 입장에서도 아마존이라는 전자상거래 기업에 잠재적으로 득이 될 수 있는 시도다. 스타링크와 닮은꼴인 이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라지브 바디얄은 스페이스X 부사장을 지내며 스타링크 사업부를 맡았던 인물이다. 개발 속도에 불만을 품은 머스크가 그를 해고하자 돌연 베조스 품으로 오게 됐다. 자신의 이전 임원과 함께 비슷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베조스에 대해 머스크가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다. 베조스는 머스크가 트위터에 쓴 ‘베조스 카피캣’이라는 문구와 만나야 했다.

위성통신 네트워크는 아직 매출을 만들지 못한다. 반면 로켓을 쏘아 올리는 것만으로도 돈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은 우주산업의 민영화를 앞당기고 있다. 미국 인공위성산업협회(SIA)는 이런 발사체 서비스 시장의 연간 규모를 55억달러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최근 여러 해 동안 스페이스X는 발사체를 재사용해 기존 위성 발사보다 낮은 가격에 상업용 위성을 올려보냈다. 이 회사의 큰 고객이 바로 나사다. 과거 러시아 로켓을 이용하던 나사를 위해 스페이스X는 19번의 화물 운송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2020년 스페이스X는 15번의 상업 로켓 발사를 할 것으로 보이는데 포브스는 “한 번 발사할 때 평균 8000만달러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추정했다. 2020년 로켓 발사로 얻는 매출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머스크의 회사와 달리, 베조스의 블루오리진은 아직 궤도 밖으로 무언가를 쏘아 올리진 못했다. 다만 스페이스X에 뒤진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 베조스는 개인 자산을 블루오리진에 계속 밀어넣는 중이다.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베조스의 재산은 포브스 추산 1130억달러, 우리 돈 약 137조원에 달한다. 그는 과거 비즈니스인사이더와 가진 인터뷰에서 “매년 아마존 주식을 팔아 10억달러 정도를 블루오리진에 투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2020년에도 이미 1월 31일~2월 3일 사이에 18억4000만달러 규모의 아마존 주식을 매각했다. 그 역시 발사체 사업을 달에서 벌이는 걸 꿈꾼다. 블루오리진을 대규모 달 이동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목표다.

머스크와 베조스가 보여주는 비전을 유토피아처럼 바라볼 수도 있다. 기술 업계의 억만장자들이 큰 로켓에 막대한 돈을 부어 우주에 도전하고 있으며 미지의 세계에 새로운 터전을 만들려고 하니 마치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를 사랑하듯 격려하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하다. 스페이스X가 유인우주선을 발사하기 직전, “스페이스X가 해낼 수 있다면 첫 민간 유인 우주 비행은 이 세계가 어두운 시간을 겪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에 희망의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언급한 인터넷매체 악시오스(Axios)의 시선처럼 말이다.

지난 5월 30일(현지시각) 미국의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첫 민간 유인우주선 팰컨9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5월 30일(현지시각) 미국의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첫 민간 유인우주선 팰컨9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그들의 우주 식민지 경쟁

반대의 시선도 있다. 가디언은 “우주 탐험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지구 위의 문제들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억만장자들은 지구 밖을 식민지로 만들고 이익을 얻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2050년까지 100만명 규모의 화성 식민지 건설을 제시하고 있는 머스크는 자신의 비전에 끌리는 잠재적 고객층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는 “화성에는 많은 일자리가 있고, 돈이 없는 사람들이 화성행 티켓을 사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대출이 있을 것”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베조스는 달에 지속적으로 인간을 정착시키는 게 목표다. 블루오리진이 달 착륙선을 일찍부터 만든 까닭이다. 그는 2019년 7월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달로 나가야 하는 이유를 공개한 적이 있다.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어서 반드시 우주여행이 필요하다. 인간이 계속 번성하는 문명을 유지하려면 우주로 가야 한다.” 베조스는 지구가 죽어가고 있으니 무엇을 하자는 게 아니다. 문명을 지탱하기 위해서 우리가 했던 파괴적인 행동을 지구 밖으로 아웃소싱하자고 강조한다. 그는 비전을 이루려면 지구 밖 노동력 확장을 위해 인구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그들의 비전은 억만장자들의 현재 행동을 지구 밖으로 확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글로벌 미디어 와이어드(Wired)의 지적은 우주 민영화가 장밋빛 미래만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경고다.

김회권 국제·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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