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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3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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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통신]인종차별 금지 영국 교실에서 한국 동요가…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johankwon@gmail.com

▲ 지난 6월 3일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영국 시위대들이 런던 파리아먼트 광장에 모여 있다. photo 연합
영국에 처음 정착했을 때 들은 영국인들의 인도인 차별 언사는 사실 너무 참혹해 언급하기가 주저될 정도다. 이런 문답도 있다. ‘산길을 가다가 인도인과 뱀을 만났을 때 누구를 먼저 죽여야 하나?’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인도인을 먼저 죽여라(Kill the Indian first)’다. 이 답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인도인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과 함께 인도인이 뱀보다 더 교활해서 먼저 죽여야 안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인도 식민지 시절에 나온 것이지만 그만큼 인도인을 비하, 차별하는 언사다. 사실 인도인으로서는 식민지 시절 영국인의 압제로부터 살아남으려면 영리하고 약삭빠르게 행동해야 했다. 이런 인도인의 처세술을 비아냥거리는 영국인들의 악평이 만들어낸 말이다.
   
   영국 역사에서 인도는 단순한 식민지가 아니다. 그만큼 비중이 크다는 말이다.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든 열쇠가 바로 인도이다. 인도는 거의 영국과 역사를 같이한 ‘대영제국의 일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세기 초부터 네덜란드와 함께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를 수탈하던 영국은 이후 인도를 정식으로 식민지화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1858년부터 직접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두 나라 간 애증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인도 인구는 2억명, 영국 인구는 2100만명이었다. 거의 10배인 거인 인도를 조그만 아이가 삼킨 셈이다. 이후 1947년 8월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정식 독립할 때까지 거의 100년간 인도 대륙은 영국의 재물 창고였다. 영국에서 파견된 4000명에 불과한 영국인들이 5만명의 인도인 중간 관리인과 640만명의 지방 인도인 공무원을 통해 인도 전국을 통치했다. 당시 인도로 파견된 4000명의 공무원이 자녀를 본국으로 보내 교육하면서 퍼블릭스쿨(public school)이라고 불리는 영국 명문 기숙사립학교가 제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영국 유명인 중에서 젊을 때 인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인물은 수도 없이 많다. 윈스턴 처칠과 작가 조지 오웰도 그중 하나이다.
   
   
   해외 영국인의 소울푸드는 카레
   
   영국인에게는 인도 아대륙(亞大陸·subcontinent,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를 지칭)인들은 단순한 소수민족이 아니다. 스코틀랜드나 웨일스인만큼 친밀해 외국인이라 느끼지 않는 듯하다. 영국 어디를 가도 인도 아대륙인이 보이고 그들의 식당이 있다. 인도 아대륙 식당은 저렴하고 영국인 입맛에 맞게 맛을 바꿔 인기가 높다. 해외 영국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고향 음식도 피시 앤 칩스가 아니라 영국식 카레라니 영국인의 삶에 이들이 얼마나 파고들었는지 알 수 있다. 숫자로 봐도 그렇다. 영국 내 인도 아대륙인 인구가 320만명이다. 인도 145만명, 파키스탄 117만명, 방글라데시 45만명, 스리랑카 13만명 등이다. 웨일스가 323만명, 스코틀랜드가 525만명이니 숫자로 봐도 대단하다.
   
   영국에 인도 아대륙인이 대거 유입된 때는 대영제국 시절이 아니라 영국이 의류 제품을 세계로 대거 수출하던 1970~1980년대였다. 1930년대만 해도 1만명에 불과했는데 영국 의류공장 종업원으로 들어와 정착한 인도 아대륙인들이 가족 친지를 불러들이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에 들어 인구가 급격하게 늘었다. 이들 이민 2~3세가 영국 주류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영국 사회에 대한 영향력도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특히 정계 진출이 놀랍다. 이들은 2019년 12월 총선에서 전체 하원의석 650석의 6%인 39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39석 중 파키스탄 계열이 18석, 인도 16석, 방글라데시가 4석, 스리랑카가 1석 등이었다. 영국 내 인도 아대륙 인구(320만명)가 전체 인구 6318만명의 5%에 달하니 6%는 언뜻 보면 당연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영국 하원의원 선거가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단 한 표라도 더 많아야 당선되는 절대다수선출(first past the post) 제도라는 걸 감안하면 6%는 대단하다고 평가해야 한다. 우선 지역구에서 영국 양대 정당인 보수당·노동당 후보가 되는 일부터 쉬운 게 아니다. 그후 영국 유권자의 표를 얻어야 하니 보수적 영국인의 성향으로 보아 아무리 현대화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인도 아대륙계가 인구 비율에 견줘 대단히 많은 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을까. 우선 이들이 정치 지향적이기도 하지만 주로 모여서 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런던 히드로공항에 도착한 한국인은 공항에서부터 인도 아대륙계 영국인이 많은 것에 놀란다. 특히 히드로공항 인근 런던 서부지역은 인도 아대륙계가 많기로 유명하다. 인도에서 하도 오래 비행기를 타고 와 지친 나머지 멀리 안 가고 공항 근처에 정착했다는 농담을 영국인들이 할 정도이다. 섬유산업이 한창이던 1950~1960년대 이민 온 인도 아대륙 계열 노동자 후손이 몰려 사는 잉글랜드 중부지방에 가면 여기가 인도인지 영국인지 모를 정도다. 이렇게 몰려 사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후보 선출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인도 아대륙계는 영국 650개 선거구 중 15개 선거구에서는 유권자의 40%, 46개에서는 20%, 122개에서는 20%를 차지하고 있다.
   
   
   650석 중 39석 차지한 인도 아대륙계 후보들
   
   후보가 되고 최종 득표에 이르기까지 인도 아대륙인 특유의 친화력도 발휘된다. 이들은 우선 극단적이거나 과격하지 않다. 영국에 살면서 인도인이 술 먹고 주정 부리거나 목청을 높여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다. 무뚝뚝하긴 하지만 그래도 유순하다. 식민지 시대를 살아서인지 눈치도 빨라 세(勢)의 유불리(有不利)에 따라 줄을 잘 선다는 평도 있다. 자신을 죽이고 친구도 잘 사귀고 좀처럼 적을 만들지 않는다면서 영국인도 좋아한다. 거기다가 일단 힘이 있는 사람에 대한 인도인의 충성심은 영국인 누구나 인정한다. 이런 모든 특유의 성품이 정치인으로서는 아주 적합하다. 결국 오랜 투자로 영국인의 신임을 얻어서 후보가 되면 당을 보고 투표하는 성향으로 인해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사실 인도인의 ‘정치성’은 식민지 시대부터 유래한다. 영국 통치를 오래 받으면서 왕성한 본국의 정치환경에 익숙해져서인지 영국에 와서도 다른 이민사회들과 달리 정치활동이 왕성하고 활발하다. 인도 아대륙 계열 특유의 억양과 발음이 있기는 하지만 영어 구사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보니 바로 정당활동에 뛰어들 수도 있다. 특히 인도 아대륙인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정치인을 키우기 위해 수많은 정당 후원 단체를 운영한다. 예를 들어 ‘Conservative Friends for India’ ‘Hindu Forum of Britain’ ‘Pakistan, India & UK Friendship Forum’ ‘British Sikh Association’ 등이 그런 단체이다. 이런 단체들은 청년 정치 신인들을 키우기 위한 후원활동도 많이 한다.
   
   전통적으로 영국 소수민족들은 인종차별에 많은 관심을 가진 노동당 지지자가 많았다. 2017년 총선의 경우 노동당이 소수민족 유권자들로부터 77%의 지지를 받은 데 비해 보수당은 20%밖에 받지 못했다. 무슬림 유권자 87%가 노동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인도 아대륙인을 중심으로 이런 성향도 바뀌고 있다. 특히 평균 시간당 수입이 백인보다 많은 인도인 중에서 보수당 지지가 늘고 있다. 2010년은 30%, 2017년은 40%, 2019년에는 45%로 계속 보수당 지지가 늘어왔다. 인도인이 부유해지면서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 탓이라고 영국 정치평론가들은 말한다. 부를 축적한 인도인은 고율의 세금과 과도한 사회복지에 반대하며 노동당에서 떠나가고 있다. 그와 함께 이전에는 거의 보기 힘들던 인도 아대륙 계열 정치인의 보수당 내 존재감이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 보리스 존슨 내각의 인도계 장관들. 왼쪽부터 서열 2위인 리시 수낙 재무부 장관, 프리티 파텔 내무부 장관, 알록 샤마 상무에너지산업장관, 수엘라 브레이브맨 정부 법률자문관. photo 뉴시스

   중국·인도계, 백인보다 평균임금 높아
   
   특히 중앙정치권의 영향력은 보리스 존슨 총리 정권 들어 아주 뚜렷해지고 있다. 영국 권력의 최고 정점인 내각 요원 26명 중 4명이 인도 아대륙 출신이고 4명 중 2명이 여성이다. 차기 총리 후보 영순위인 내각 서열 2위 재무부 장관 리시 수낙(40·3선)을 비롯해 4위인 내무부 장관 프리티 파텔(48·4선), 상무에너지산업장관 알록 샤마(52·3선), 장관급인 정부 법률 자문관(attorney general) 수엘라 브레이브맨(40·3선) 등이 모두 인도계다. 특히 수낙 재무부 장관은 코로나19 봉쇄 이탈로 세간의 비난을 받고 있는 총리 수석보좌관 도미닉 커밍스와의 불화로 전격 사임한 사지드 자비드 직전 재무부 장관(50·4선·파키스탄) 밑에서 차관을 하다가 바로 승진한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2선 하원의원을 하다가 2016년 런던 시장이 된 노동당 출신의 사딕 칸(49)도 파키스탄 계열이다. 이렇게 보면 인도 아대륙 계열이 인구 비율에 비해 권력의 중심을 대단히 많이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거기에 비하면 중국인 이민자 43만명 중에는 하원의원이 한 명밖에 없고, 정치계나 경제계에서 중책을 맡은 중국인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인도 아대륙인 중에서도 특히 인도인이 정부 중책을 맡는 인재를 배출하는 이유는 높은 교육열 때문이다. 영국 내에서 인도 부모의 교육열은 유대인 부모와 함께 유명하다. 한때 유명 사립학교 한 곳 학생의 4분의 1이 인도 학생이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막노동을 하거나 주택가 골목의 코너숍(corner shop)이라 불리는 잡화 구멍가게를 하면서도 자식은 자신의 전 수입에 해당하는 연간 5000만원이라는 고액의 학비가 드는 사립학교를 보내는 인도 부모가 많다. 오후 5시면 정확하게 문을 닫는 영국인 가게와는 달리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밤 늦게까지 일하는 1세대 인도 부모의 헌신과 희생으로 교육을 잘 받은 2세들의 3분의 1이 의사, 변호사, 회계사, 공인부동산감정사(chartered surveyor) 같은 전문직에 종사한다. 특히 4만명의 인도계 의사가 영국의료보험(NHS)에 종사 중인데 이는 전체 의사의 20%에 달하는 수치다. 인도 아대륙계 2세들은 학연·지연·혈연이 출세에 중요한 영국 사회에서 백인과의 경쟁이 필요한 주요 회사와 기관에 취직하기보다는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격증이 필요한 전문 직종으로 진출한다.
   
   영국의 인종 간 시간당 평균임금을 보면 중국인(15.8파운드·2만3700원)이 제일 많고 다음이 인도인(13.5파운드), 그 다음이 백인(12파운드) 순이다. 거기에 비해 파키스탄(10파운드)과 방글라데시계(9.6파운드) 영국인은 제일 밑바닥에 있다. 인도인의 이민 역사가 긴 데 반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아직 1세대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탓이다. 인도계는 인도계대로 요즘 고민이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자식들이 아버지 세대가 운영하던 소매업이나 식당을 물려받지 않으려고 해서다. 영국 동네 어디를 가도 있는 9500개의 인도 식당이 매년 10%씩 줄어든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중국 식당도 비슷한 상황이다.
   
   
   40년간 살면서 인종차별 경험 없어
   
   필자가 40년 전 영국에 처음 왔을 때 인도 아대륙인과 관련해서 놀란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인종 관련 용어다. 우리 한국인은 당연히 스스로를 아시안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영국에서 보통 아시아인이라면 대개 인도 아대륙인을 칭하는 걸로 인식되어 있다. 영국의 공적 서류에 나오는 인종 구분에도 아시아인은 인도 아대륙인을 뜻한다. 그래서 한국인은 ‘기타 아시아(other Asian)’란 항목에 기입해야 한다. 다음으로 놀란 것은 인도인의 자부심이다. 인도 아대륙인 중에서 특히 인도인의 자부심은 백인 못지않다. 흡사 자신은 백인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인도인을 많이 봤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중국·일본 같은 동양인보다 자신들이 훨씬 더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가진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인도인이 많았다. 그런 인식을 모른 채 인도인을 처음 제대로 겪어 본 후에는 상당한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엄격하게 따져 보면 찬란한 문화나 오랜 역사, 나라 크기로 봐서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인도는 제3세계라는 인식을 갖고 있던 당시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영국에서 거의 40년을 살고 있지만 운이 좋아서였는지 한번도 면전에서 인종차별 경험을 당해본 적이 없다. 물론 영국인이 모두 성숙한 시민이어서 인종차별 개념을 아예 갖고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영국인의 실제 마음속이 어떤지는 모른다. 더군다나 영국인들끼리 모여서 인종차별에 관해 뭐라고 말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상식 있는 영국인은 일단 밖으로는 인종차별 발언이나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다. 세계 인구의 거의 4분의 1을 지배한 덕분인지 영국인은 인종차별을 밖으로 나타내지 않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게 됐다. 영국에는 인종차별 범죄에 대한 법률이 1965년 제정된 후 계속 보강되어 왔기에 일단 법적 장치도 잘 마련되어 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인종차별을 제도적으로 금하고 인종 간의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인종차별 금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증오범죄(hate crime)를 막고 처벌하는 법령도 제정되어 강력하게 시행 중이다. 영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이나 증오범죄가 중죄라는 인식은 사회적 통념이 된 지 오래다. 영국 정치인이 인종차별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면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난다. 심지어 브렉시트 투표 통과 이후 세력이 거의 소멸되어버린 극우정당 ‘브렉시트 당’에서조차 인종차별 발언을 공개석상에서 하면 바로 출당시켜 버렸다. 그만큼 영국 정치인에게 인종차별은 금기의 화제이다. 직장에서도 인종차별 발언을 하면 바로 해고 사유가 된다. 학교에서도 인종차별은 정학이나 퇴교의 사유에 해당한다. 경찰이 인종차별 발언이나 증오범죄를 저지르면 중범으로 다룬다.
   
   
   한국 동요 부르는 다인종 학생들
   
   영국 학교에서는 인종차별 금지 교육을 어릴 때부터 시작한다. 필자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런던 근교의 한인촌 공립학교는 한인 학생 10%를 비롯해 학생의 반이 얼굴 색깔과 모국어가 다른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되어 있다. 해서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인종에 대한 편견 없이 삶을 시작한다. 거기다가 학교생활 중 인종차별에 대해 대단히 엄중한 교육을 받는다. 특히 교장은 매주 조회시간에 학생들이 세계인의 일원이라는 점을 은연중 강조하기 위해 항상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려준다. 동시에 어떤 피해가 한 나라에 생기면 학생들과 같이 모금을 해서 보내기도 한다. 물론 교과에도 세계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과목들이 상당한 비중을 두고 채택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인종에 대한 편견을 없애준다.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이 학교 전체가 1년간 한국을 공동 프로젝트로 삼아 자료조사하고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 학생들의 과제물을 모아 학기 마지막 날 전시하면서 학부모를 초대해서 보여 주었는데 당시 학생들 합창 곡목 중에 놀랍게도 한국 동요 ‘오빠 생각’이 들어 있었다. 백인·흑인·인도·말레이시아 학생들과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를 노래하던 까만 머리의 한국 아이들이 있었다. 그 속에 필자의 딸도 들어 있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뭉클하다. 인종의 전시장 같던 한국어 4부 합창단의 한국 노래 실력과 감성은 한국의 여느 어린이 합창단 못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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