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해 6월 20일 평양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photo 연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지난해 6월 20일 평양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photo 연합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은 중국 공산당 정권이 6·25전쟁을 공식적으로 부르는 명칭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한국의 침략에 맞서 조선(북한)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뜻이다. 6·25전쟁은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의 승인하에 김일성의 북한이 기습 남침해 시작됐는데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 정권은 남침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그동안 모든 역사책에서 6·25전쟁을 ‘북침’으로 기록해왔다. 게다가 중국 공산당 정권은 6·25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자(미국)가 중국 인민에게 강요한 전쟁이라면서 침략에 맞선 ‘위대한 정의의 전쟁’이며 ‘승리한 전쟁’이라고 강변해왔다. 중국 공산당 정권의 이런 주장들은 옛 소련 붕괴 이후 각종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됐다. 특히 중국은 승리했다는 주장과 달리 항미원조 전쟁에서 엄청난 인적·물적 피해를 입으며 패배했다.

‘조선전쟁에서 중국의 역할’

중국 공산당 정권이 주장하는 항미원조 전쟁의 실체는 지금까지 중국 내에선 물론 국제사회에 철저하게 감춰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 영주권자인 정치학자 쉬쩌룽(徐澤榮·영어 이름 데이비드 추이)이 1999년 영국 옥스퍼드대에 제출한 ‘조선전쟁에서 중국의 역할’이란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항미원조 전쟁의 진실이 일부 드러났다. 이 논문은 중국의 기밀자료를 인용해 ‘마오쩌둥과 김일성이 한국이 침략을 당해도 미군이 개입할 리가 없다고 오판하면서 소련과 함께 6·25전쟁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추이 박사는 광둥성 사회과학원 부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던 2000년 8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때문에 체포됐다. 추이 박사는 1980년대 홍콩으로 건너와 관영 신화통신사에 재직하며 홍콩 중문(中文)대에서 정치행정학 석사를 마쳤으며, 이후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추이 박사는 2002년 1월 국가기밀 누설 등의 혐의로 징역형 1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11년 7월 석방됐다.

추이 박사의 당시 논문에는 마오와 중국 공산당 정권이 김일성과 북한의 남침을 어떻게 지원했고, 무엇 때문에 참전했는지 등이 들어 있다. 내용을 보면 첫째, 마오는 1949년 5월 중국 인민해방군에 배속됐던 조선족 3개 사단 병력을 북한에 넘겨달라는 김일성의 특사 김일의 요구를 흔쾌히 수락해 북한군이 일거에 한국군을 무너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둘째, 마오는 1950년 5월 중순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에게 남침으로 전쟁이 벌어져 외국 세력이 개입하는 경우 중국이 병력을 동원해서 북한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셋째, 마오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1950년 2월부터 인민해방군 병력 44만여명을 동북지방에 집결시켰다는 것이다. 이후 이들은 ‘중국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참전했다. 중국인민지원군이 1950년 10월 25일 압록강을 넘으면서 참전을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중국 공산당 정권은 이미 미국의 6·25전쟁 참전 이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 정권은 1950년 8월 23일 전쟁 예산을 확정해 마오에게 보고했다. 중국군은 1950년 5~10월 9차례 참전 관련 회의를 열었으며, 1950년 7월부터 일본 관동군이 쓰던 만주 일대의 31개 비행장 개·보수에도 들어갔다.

넷째, 마오는 중국군이 1950년 말 제2차 공세에 들어갔을 때 당시 중국군 지휘관들에게 “미군과 영국군, 한국군 5개 사단을 전멸시킨다면 조선반도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우리 군에 최상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해 중국의 참전 목적이 한반도 통일에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중국 공산당 정권이 6·25전쟁에 참전한 것은 미국이 한반도를 점령할 경우 동북3성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과는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추이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당시 중국 공산당 정권은 심지어 6·25전쟁 결과에 따라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한반도 일부와 대만을 맞바꿀 가능성까지 고려했다는 것이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을 맞은 가운데 한반도를 비롯해 동북아의 국제 정세가 당시와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소련과 중국은 공산주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지원했다. 특히 중국은 아예 한반도를 자국의 영향력에 묶어두기 위해 직접 병력까지 투입해 미국을 비롯해 유엔 16개 회원국이 파병한 유엔군과 전쟁까지 벌였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까지 침공할 가능성이 있자 6·25전쟁이 발발한 지 이틀 만인 1950년 6월 27일 대만해협에 제7함대를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1950년 6월 30일 일본에 주둔했던 스미스부대 병력의 한국 투입을 신속하게 결정한 것도 소련과 중국의 계획을 저지하겠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해 북한의 남침을 규탄하고 유엔군을 파병했다. 말 그대로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단결해 공산주의 진영의 도발에 맞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이 신(新)냉전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가운데 양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정면충돌하고 있다. 양국이 현재 치열하게 격돌하고 있는 곳은 홍콩이다. 중국은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통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 체제)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일국양제는 국가는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이지만 홍콩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 등에 따른 각종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영국과 중국은 1984년 체결한 ‘영·중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에서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에도 50년(2047년)간 홍콩에 일국양제를 보장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정권은 당시와는 달리 일국양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병행할 수 있다는 경제체제의 원칙을 가리킨 것일 뿐, 정치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일국양제 약속을 깨뜨린 것에 대해 홍콩 시민들은 지난해 6월 송환법 반대 시위 투쟁을 6개월간 벌이면서 반발했다. 그러자 중국은 아예 반중세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자 중국은 영국과 체결한 홍콩반환협정에 국제적인 의무가 없다고 반박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영·중 공동선언은 영국에 대한 약속이 아니며 국제 의무 위반의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중국군 병사들이 1950년 10월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중국군 병사들이 1950년 10월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대만과 홍콩 문제로 격돌하는 미·중

중국 공산당 정권이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홍콩의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할 경우 대만과의 통일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티베트와 위구르 등 소수민족들의 독립과 자치권 요구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는 그동안 중국 정부에 홍콩처럼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해줄 것을 촉구해왔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중국의 홍콩화’가 촉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민주화 세력이 서구식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할 경우 자칫하면 공산당의 일당 독재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 결국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금융·무역·관광 등의 측면에서 볼 때 홍콩이 아직까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제정을 통해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또 일국양제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하고 있는 대만에 대해서도 무력 통일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지난 5월 20일 취임연설에서 “대륙의 일국양제는 수용할 수 없다”면서 “양안(중국과 대만)이 서로 대등한 관계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선언했다. 차이 총통의 이런 선언은 중국 공산당 정권이 그동안 압박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차이 총통의 집권 2기 취임에 미국 국무장관으로선 사상 처음으로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은 오랫동안 대만을 세계의 선한 세력이자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간주해왔다”면서 “미국은 차이 총통과 함께 대만과의 동반자 관계가 계속 번성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차이 총통의 호칭을 ‘총통’이라고 부르고 대만을 ‘믿을 만한 파트너’라고 규정한 것은 대만을 사실상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의도는 대만 카드를 활용해 중국에 대한 봉쇄 전략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이에 맞서 대만을 무력침공할 수도 있다며 대만해협에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최고위 장성인 리쭤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 참모장(미국의 합참의장 격)은 “대만과의 평화 통일의 가능성이 사라질 경우 인민해방군은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고 경고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이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 정부가 대만의 역할을 중국을 견제하는 ‘불침항모(不浸航母)’로 만드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중국의 남중국해와 서태평양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대만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당시 미국은 중국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미국과 대만은 상대국 수도에 대사관 성격의 대표 기구만을 두고 비공식적으로만 접촉하거나 왕래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최근 들어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에 맞서 매달 군함을 대만해협에 통과시키고 어뢰 등 각종 무기를 판매하면서 대만의 안보를 지원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2월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photo 연합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2월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photo 연합

경제난으로 중국에 다시 매달리는 북한

중국 공산당 정권은 이런 미국의 대만 카드에 맞서 ‘북한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북한도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중국과의 국경을 폐쇄했지만 미국의 제재 조치와 압박을 견디려면 중국의 손을 잡아야만 한다. 김일성이 70년 전 미군 등의 반격으로 압록강까지 밀리면서 6·25전쟁 패배를 막고 자신의 생명과 정권 유지를 위해 중국에 대규모 파병을 요청했듯이, 김정은도 중국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적극 지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 노동신문은 “중국이 국가 안전을 해치는 행위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 것은 지극히 정정당당한 주권행사”라면서 “홍콩은 서방의 홍콩이 아니라 중국의 홍콩”이라고 강조했다.(지난 6월 11일 자)

북한은 현재 코로나19에 따른 교역중단과 경제파탄 등으로 심각한 식량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6월 9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식량부족과 영양실조 문제가 코로나19 사태로 크게 악화했다고 밝혔다. 퀸타나 보고관은 “꽃제비 어린이를 포함해 노숙자가 북한 대도시에서도 증가세이며 의약품 가격이 급등했고 상당수 가정이 하루에 두 끼 정도만 먹을 수 있거나 옥수수를 먹으며 연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도 북한 주민 1000만여명이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남북관계 단절과 군사도발 위협 등 문재인 정부에 연일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자칫하면 ‘제2의 고난의 행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미국과의 핵 협상 중단과 남북 경제 협력 프로젝트를 재개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면서 북한의 의도적인 위기 조성은 대북 관계 개선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열망을 이용하려는 속셈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런 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중국의 ‘뒷배’ 덕분이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도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상황을 평가하는 연례 보고서에서 “김정은과 시진핑 주석의 관계 복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을 무력화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압박해 대북제재를 놓고 한·미 간 갈등이 유발될수록 한반도 정세에서 자국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화춘잉 대변인이 “미국은 실제적인 행동으로 북한의 발전과 안보상 우려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를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중국 공산당 정권 대북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북한의 비핵화보다 북한을 통해 미국과 한·미 동맹을 견제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북한의 핵 보유로 6·25전쟁 때와 비교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은 약화됐지만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렛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정은이 정권을 유지하려면 중국과 경제 협력은 물론 원조를 받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 협력 때문에 시진핑 주석의 연내 방한에 목을 매는 등 친중 성향을 보여왔다. 시 주석은 이를 간파하고 연내 방한을 약속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의 전략은 북한과 한국을 모두 활용해 미국과의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제2의 항미원조’ 전략이다.

아무튼 중국이 북한과 소련과 더불어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戰犯)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70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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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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