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유세 중인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photo 연합
지난 6월 30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유세 중인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photo 연합

오는 11월 3일 뽑히는 제59대 미국 대통령은 각 주에서 뽑힌 선거인단의 투표로 선출된다. 선거인단은 모두 538명이므로 270표를 먼저 확보하는 후보자가 당선된다. 결과를 예상하려면 전국적 여론조사보다는 선거인단 확보 수를 미리 파악해 보는 게 낫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연구기관인 쿡 리포트의 에이미 월터스 연구원은 6월 현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4명,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248명의 선거인을 각각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최근 분석했다.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나머지 88명 중 트럼프는 66명이 필요하지만, 바이든은 22명만 얻으면 된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미시간(선거인단 16명), 펜실베이니아(20명)의 여론은 민주당으로 돌아서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였던 애리조나(11명), 노스캐롤라이나(15명), 텍사스(38명) 등도 민주당으로 기울어지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가 곤경에 빠진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인종 문제 대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언론에서는 트럼프가 승리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바이든이 대승을 거둘 가능성도 있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고 판문점에서도 만났다. 그러나 하노이회담의 결렬 이후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지속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민주당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북 관계에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나온다. 과거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 시절 미국과 북한 간의 수교(修交) 논의가 깊이 있게 진행된 적이 있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북한에 유화적인 정책이 다시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나오는 것이다.

“트럼프가 독재자 공인해줬다” 비판

하지만 바이든 후보는 김정은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세 차례나 만난 것도 독재자를 공인해주었다며 비판했다. 북한도 지난해 5월 바이든에 대해 “IQ 낮은 바보”라고 하고, 11월에는 “미친개… 더 늦기 전에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한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바이든은 북한의 욕설은 “명예훈장”이라고 대꾸하였다.

바이든은 오바마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되기 전에 상원 외교위원장을 세 차례나 역임한 관록의 정치인이자 외교전문가이다. 바이든이 트럼프와 김정은을 비판하는 것도 미국 외교정책의 전통적인 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11일 뉴욕시립대에서 집권 후의 외교정책에 관해 설명하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은 분명한 목표와 온전한 전략을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며 (트럼프처럼) “트위터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실수투성이고, 충동적이고, 부패하기까지 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은 미국 외교정책의 3대 목표를 “국가안보, 경제번영, 미국이 지지하는 민주적 가치”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민주적 가치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면서 트럼프가 김정은과 회담한 것을 콕 집어내 비판하였다. 그는 트럼프가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고, 살인 독재자(murderous dictator)와 사랑에 빠졌다”고 비판하였다. 바이든은 “미국의 지도력과 외교는 신뢰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데 트럼프가 미국 외교의 신뢰성을 크게 훼손하였다”며 자신은 “외교를 전문가들에게 맡기겠다”고 다짐하였다. 바이든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목표는 “비핵화(denuclearization)”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될 경우 “트럼프처럼 돌발적인 톱다운 방식의 외교를 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한 고위 외교관계자는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정상회담이라는 최고 수준의 카드를 써버렸기 때문에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될 여지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이 트럼프처럼 사진을 찍기 위해 김정은과 만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어 북핵 문제를 전문가나 실무자들이 담당할 경우 6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6자회담은 당사자가 많아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과거 6자회담 당시 북한의 안전보장 분과를 담당한 러시아는 회의를 열지도 않았다. 일본은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하였다. 현재는 미·중 관계 및 한·일 관계가 악화되어 어떤 합의점을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은 있을까. 지난 6월에도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4자 평화회담을 개최하여 “북·미 관계 개선을 견인하고 비핵화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교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초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에 미국과 북한은 연락대표부 설치에 합의하고 인선(人選)까지 마무리했다. 그러나 북한 측이 최종적으로 이를 거부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반미(反美) 선동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북한 정권 입장에서 수도 평양에 미국 성조기가 휘날리고, 미국인들이 활보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김정은도 평양에 미국 성조기가 휘날리는 상황을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한 핵 문제를 6자회담이나 4자회담을 통한 외교전문가들의 협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면 문제는 다시 미·북 간의 협상으로 귀결된다. 미국의 목표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이고, 북한의 목표는 경제제재 해제이다. 미·북 간 협상은 입구론(入口論)과 출구론(出口論)을 오간다. 입구론은 북한이 핵을 동결하는 대가로 미국이 제재를 일부 완화하는 것이다. 출구론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미국도 경제제재를 완전히 해제하는 상황이다.

바이든 “세계가 근본적으로 변했다” 신념

입구론에서 시작하면 북한은 핵 개발을 동결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핵시설을 신고하고, 사찰을 받으면 된다. 북한 핵시설이 영변에만 있을 때는 이게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하여 지금은 우라늄농축시설 등 미신고시설이 늘어났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신고하고 사찰받아야 할 범위도 확대되었다. 북한이 미신고시설에 대한 사찰과 검증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거의 없다. 하노이회담이 결렬된 이유도 미신고시설을 신고하라는 미국에 대해 북한이 “벌거벗으란 말이냐”라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고위 외교관계자는 “미·북 간 협상이 훨씬 어려워졌다”며 “시간적인 여유는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북한의 셈법이 변하지 않는 한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북핵 문제 타결은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핵 보유를 고집하면 중국의 지원을 받으며 미국의 경제제재를 견뎌나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중 관계가 개선되어 북한이 원하는 대로 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을까. 지난 3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토머스 라이트 국장은 바이든 외교팀의 노선에 대한 주목할 만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조용한 개혁을 추진하는 바이든 외교정책’이라는 논문에서 바이든의 외교는 지난 20년 동안의 민주당 외교 노선과 크게 다를 것으로전망했다. 라이트 국장이 지적한 바이든 외교팀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오바마는 임기 말년에 중국 및 러시아에 맞서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지정학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피했다. 오바마는 미국과 민주주의가 역사에서 승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바이든의 외교팀은 오바마와도 다르고 트럼프와도 다르다. 이들은 중국에서 시진핑이 집권하고, 러시아에서 푸틴이 재집권하고, 오바마가 재선된 2012년 이후 세계는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 8년간 서방에서 민주주의는 쇠퇴하고, 민족주의적 포퓰리즘은 성장했으며, 국제적으로 권위주의는 강화되었다고 본다. 기후변화나 팬데믹 같은 국가 공동의 문제는 악화되었지만, 국제적 협력은 더욱 달성하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바이든 외교팀은 미국의 외교정책 목표가 오바마처럼 리버럴한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도 물론 국제 협력과 가치에 바탕을 둔 외교정책을 믿지만, 글자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바이든은 ‘자유세계(Free World)’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바이든 외교팀은 미국의 성공이 미래에도 보장된 것은 아니며, ‘자유세계’가 지난 수십 년 동안처럼 자유롭고 영향력 있는 상태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도록 보장된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바이든 외교팀은 세계를 미국과 중국 간의 지정학적 경쟁이 일어나는 공간이라고 본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 극동 및 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낸 커트 캠벨과 바이든 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엘리 래트너는 최근 논문에서 미국의 대중 정책을 뒷받침하는 대전제는 중국을 경제적으로 포용하면 중국 경제가 자유화되고 중국이 국제질서의 책임 있는 당사자가 된다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대전제는 잘못된 것이었다고 단언했다. 권위주의 정권들을 다룰 때 최우선 과제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부패를 척결하는 문제와 이러한 도전이 5G,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합성생물학 등의 신기술과 엮여 있는지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의 안보보좌관이던 제이크 설리번과 오바마 행정부 고위관리였던 제니퍼 해리스는 최근 논문에서 미국이 무역협상을 개혁하여 조세회피지역(tax haven)을 겨냥하고, 타국의 통화 조작을 방지하고, 미국 내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산업정책을 활용하여 중국과 특별히 신기술 분야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외교팀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중국의 도전에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럼프처럼 나토 동맹국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2% 수준으로 상향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일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이들은 미국의 막대한 국방비를 감축하긴 해야 하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군에 신기술을 활용하여 현대화하고 개혁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중국과의 경쟁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듯

바이든 외교팀은 트럼프가 중국에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고 나토 회원국에 방위비 문제를 놓고 강력하게 대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들은 트럼프의 방식에 전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주의의 쇠퇴를 방지하고, 미국에 대한 공세에 대처하고, 글로벌 경제를 개혁하는 데 민주당도 이러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100만의 위구르인과 신장 소수민족들에 탄압을 가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어느 정도 보복을 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바이든이 트럼프처럼 중국 공산당 자체를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이미 의회에서 많은 민주당 의원이 동조하고 있다.

결국 바이든 외교팀이 중국과의 경쟁을 최우선 목표로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라이트 국장의 분석이다. 세종연구소의 김기수 박사는 “미국 정계에서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데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다”며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더 강하게 중국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입장에서 북한은 중국에 딸린 종속변수에 불과하다”며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북한과의 협상을 서두를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전망했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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