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일(현지시각) 홍콩에서 경찰이 홍콩반환기념일 시위자를 붙잡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2일(현지시각) 홍콩에서 경찰이 홍콩반환기념일 시위자를 붙잡고 있다. ⓒphoto 뉴시스

베이징이 통과시킨 새로운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은 이내 홍콩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홍콩 민주화 인사의 책은 이제 도서관에서 찾을 수 없는 금서가 됐고 정부 비판 포스트잇을 붙인 ‘노란 식당’에는 홍콩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날아들었다. 매년 홍콩에서 항의의 날이었던 7월 1일 시위에서는 ‘홍콩 독립’이라는 깃발을 든 15살 청소년까지 체포됐다. 7월 1일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홍콩의 통치가 넘어간 날이다. 온라인에서 추적당할 것을 우려하는 홍콩인들은 소셜미디어 계정이나 왓츠앱 내 그룹들을 삭제하고 있다. 굳이 비용을 들여 방화벽을 만들거나 모니터링을 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알아서들 없애고 숨죽인다.

홍콩 민주화 관련 기사를 게재하고 있는 ‘인미디어 HK’의 베티 라우 편집장은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필자들이 자신의 글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미 그런 글을 100개 이상 삭제했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새로운 규칙들은 홍콩인을 침묵하게 강제하고 있다. 중국의 온라인 검열을 추적하는 단체인 ‘그레이트파이어’는 “중국의 행동은 홍콩에서 성공적으로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수십억달러의 검열 장치가 따로 필요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홍콩보안법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확장성이다. 홍콩보안법 38조는 중국 영토를 넘어 세계 어느 곳에 있든 홍콩을 대변하는 사람들 역시 적용 대상으로 삼는다. 중국을 반대하거나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글·영상·트윗을 남긴 미국인, 영국인, 심지어 한국인도 자신의 집 책상에 앉아 남긴 콘텐츠 때문에 홍콩에 발을 들이는 순간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자기 검열을 강제당하고 통제당하는 홍콩이 비단 그곳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27 대 53, 중국 정부의 승리 선언

국제사회의 주요국들은 홍콩보안법을 두고 중국을 저격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는 홍콩보안법이 실시되기 전날인 지난 6월 30일, 성명 전쟁이 벌어졌다. 국내에 주로 소개된 건 27개국이 모여 발표한 성명이다. 반(反)중국 성명은 영국의 입을 통해 나왔다. 주제네바 영국대표부 대사는 “우리는 중국과 홍콩 정부가 법의 시행을 재고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린 곳은 영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 유럽 국가들이 중심이 됐고 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참가해 총 27개 나라가 함께했다.

같은 날 영국의 발언에 맞서 주제네바 쿠바대표부 대사도 성명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홍콩보안법은 국가의 입법권으로 세계 그 어떤 나라도 존중받아야 하며 이번 건은 인권 문제가 아니므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토론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 그리고 중국의 조치를 존중한다’는 지지 발언에 쿠바와 함께 동참한 나라는 반대파의 두 배나 되는 53개국이나 됐다. 이집트, 가봉, 감비아, 시에라리온, 소말리아, 수단 등 아프리카 국가들 상당수가 여기에 포함돼 있었고 쿠바, 도미니카,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 일부도 중국을 지지했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중동 지역 국가들도 중국 지지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성명 대결은 유엔 인권이사회를 지정학적 대결의 장으로 바꿔버렸다. 서방국가를 중심으로 중국을 반대한 27개국이 한 팀을 이뤘고 제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53개국이 중국 지지로 반대 팀을 만들었다. 정치 체제에서도 확연하게 차이를 보였다. 비정부기구 프리덤하우스가 매년 평가하는 ‘세계자유지수(Freedom in the World)’에서 반중국에 선 27개국은 모두 정치적 자유를 갖춘 나라로 평가받는다. 반면 중국 편에 선 53개국은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곳들이다. 면면을 보면 대부분은 자유롭지 못한 나라(Not Free)이고, 일부는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나라(Partly Free)로 평가받은 곳들이다.

53개 나라는 왜 중국을 지지했을까. 일단 ‘세계자유지수’에서 ‘자유’라는 평가를 받은 3개 나라가 홍콩보안법을 지지하고 있는 건 이채롭다.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해 미국 앞마당에 자리 잡은 앤티가바부다, 도미니카, 수리남인데 중국과 경제적으로 얽힌 게 많은 나라다. 이들은 모두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라는 카드를 들고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곳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활용법을 보려면 데시 바우테르서 수리남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을 보면 된다. 중국을 방문한 바우테르서 대통령에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대일로를 통한 대규모 경협 선물을 안겼다. 수리남의 대통령은 화답으로 “홍콩 문제는 중국 내정이며 이를 간섭하는 어떤 행동도 반대한다”고 지지했고 이번 성명에서도 그 약속을 지켰다.

지적만 하는 미국 vs 부채 탕감해주는 중국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Axios)는 “적어도 40개의 홍콩보안법 지지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서명한 곳”이라고 전했는데 상당수의 아프리카 국가도 여기에 속한다. 게다가 이들은 채무 관계로 중국과 얽혀 있다.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과 협상을 해왔는데 역시 ‘빚’ 때문이다. 빈국의 부채 탕감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주빌리부채캠페인(JDC)의 추정에 따르면 2018년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외 부채 중 약 20%는 중국에 빚진 것이다.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이 펴낸 ‘중국-아프리카 연구(CARI)’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은행들이 2000~2018년 사이 아프리카 국가들에 제공한 차관 규모가 1150억달러(137조5000억원)나 된다.

빚의 상환은 가난할수록 시급한 문제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변수는 아프리카 빈국들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내심 빚을 좀 탕감해주길 원했다. 그 결과가 6월에 나왔는데 시 주석이 직접 “올해 연말 만기가 돌아오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채무는 상환을 면제하겠다”며 희소식을 전했다. 어떤 국가들이 얼마나 탕감받을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없지만 적어도 ‘빚’을 둘러싼 협상과 결정에 정치적인 고려가 작동한 건 분명해 보인다. CNN은 “코로나19 확산 책임이나 홍콩 문제 등으로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아오던 중국이 아프리카에 손을 내밀었다”고 풀이했다. 서방에 둘러싸여 공격당하던 중국은 지난 몇 달 동안 아프리카를 중요한 외교정책 전략 지역으로 정하고 공을 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6월 마지막 날 아프리카 국가들은 빚 대신 이름을 올려 보답했다.

미국에 대한 반감도 작동했다. 키스 하퍼 전 주제네바 미국대표부 대사는 “이와 같은 성명은 종종 중국과 미국 사이의 싸움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2018년 6월 유엔 인권이사회를 탈퇴했고 이제는 인권을 둘러싼 협상테이블에 앉지 않는다. 그런 미국을 향해 최근 아프리카 국가들이 뭉쳐 목소리를 내는 일이 있었다. 조지 플로이드의 동생 필로니스 플로이드는 지난 6월 17일 유엔 인권이사회 긴급 화상 증언대에 섰는데,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인권이사회까지 끌고 간 건 아프리카 국가들이었다. 젠다이 프레이저 미 외교관계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아프리카인들은 미국이 세계 인권의 파수꾼이라는 도덕적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인권 후진국이라고 공격받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한데 뭉쳐 복수한 셈인데, 중국과 미국의 싸움이 된 홍콩보안법 문제에서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이런 반감이 엿보인다는 얘기다.

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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