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기지에서 ICBM인 화성-15를 둘러보고 있는 김정은. 2017년 11월 29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다. ⓒphoto 연합
미사일 기지에서 ICBM인 화성-15를 둘러보고 있는 김정은. 2017년 11월 29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다. ⓒphoto 연합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는 ‘서해위성발사장’이라는 곳이 있다. 북한은 2012년 은하 3호를 시작으로 인공위성을 탑재했다고 주장하는 발사체를 모두 이곳에서 발사해 왔다. 북한은 동창리 발사장 건설을 2000년 초에 시작해 2009년 완공했다. 김정일이 완공 직후 후계자인 김정은과 이곳을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이곳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산실로 꼽힌다.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ICBM에 사용되는 ‘백두산 엔진’도 이곳에서 개발됐다.

동창리 발사장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당시 공동성명에는 명기되지 않았지만,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두로 폐기를 약속한 곳이다. 2018년 9월 19일 제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평양공동선언에도 ‘동창리 엔진 시험장 및 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쇄’가 명시됐었다. 이후 북한은 동창리 발사장을 일부 해체한 듯한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이곳을 다시 가동했다. 북한은 2019년 12월 7일 이곳에서 ‘중대한 시험’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 엿새 만인 12월 13일 이곳에서 또다시 ‘중대한 시험’을 진행했다면서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시험 시간(12월 13일 22시41분부터 22시48분까지)까지 밝혔다.

북이 공개한 작년 12월 7일 ‘중대 시험’

당시 북한이 시험 시간이 7분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 이유는 ICBM의 성능을 개선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추정됐다.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센터의 제프리 루이스 소장은 “7분은 모터 분사·연소(burn)보다는 재진입체(RV·Reentry Vehicle)를 시험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기권 재진입체 기술은 북한의 ICBM 개발에서 남은 과제 중 하나이다. 이 기술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이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다시 진입하도록 하는 것으로, 가장 난이도가 높다. 반면 미국 과학자연맹(FAS)의 앤킷 판다 선임연구원은 “RD-250 변형 엔진을 더욱 개선하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시험 발사한 ICBM급 화성-15형에는 옛 소련제 RD-250 엔진을 모방해 개발한 일명 백두산 엔진이 탑재됐었다. 당시 북한 국방과학원은 담화에서 ‘믿음직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 ‘또 다른 전략무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시험이 성공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ICBM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충분한 성능을 보유했을까. 현재 북한이 보유한 ICBM급 탄도미사일은 화성-14형과 화성-15형이다. 북한은 2017년 7월 4일과 28일 화성-14형을, 같은 해 11월 29일 화성-15형을 각각 시험 발사했다. 주한미군사령부가 발표한 ‘2019 전략 다이제스트’ 보고서에 따르면 화성-15형의 최대 사거리는 8000마일(1만2800여㎞)로 미국 본토 전 지역을 타격할 수 있다.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화성-15형을 미국의 워싱턴·뉴욕 등 동부 지역까지 날릴 수 있다. 보고서는 또 화성-14형의 최대 사거리도 6250마일(1만㎞)로 미국 본토 대다수 지역을 타격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게다가 보고서는 화성-12형과 화성-13형의 최대 사거리를 4350마일(7000㎞)과 3418마일(5500㎞)로 추정했다. 이 정도면 괌은 물론 하와이와 알래스카까지 충분히 타격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북한은 이미 핵폭탄을 소형화하는 데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 민간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지난해 10월 30일 공개한 ‘2020 미국 군사력 지표’ 보고서에서 “평양은 이미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고, 핵무기를 장착한 장거리미사일을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고 분석했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은 “북한의 핵 소형화 능력은 핵 무력 확보의 관건인 만큼 북한이 이를 이미 확보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외교협회(CFR)도 북한이 탄도미사일 개발에 맞춰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처럼 ICBM과 핵 능력 고도화에 어느 정도 성공하자 또 다른 ICBM 개발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조선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면서 “곧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정은이 주재한 노동당 중앙군사위는 지난 5월 24일 7기 4차 확대회의에서 “국가무력 건설과 발전의 총적 요구에 따라 나라의 핵전쟁 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고 전략무력을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운영하기 위한 새로운 방침들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전략무기는 김정은의 결심만 있으면 즉각 발사가 가능한 고체연료 ICBM이나 다탄두 ICBM, 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고체연료 ICBM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화성-14형과 15형은 발사 전 연료 주입에 30여분이 걸려 사전 징후가 미국의 감시망에 노출될 수 있다.

하지만 고체연료 ICBM은 배터리처럼 연료를 추진체에 끼우는 형태인 만큼 연료 주입 없이 즉각 발사할 수 있다. 핵 강국들은 모두 고체연료 ICBM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북한도 핵 강국의 반열에 올라가기 위해 고체연료 ICBM을 개발·생산하려고 총력을 기울일 것이 분명하다. 또 여러 발의 핵탄두를 장착한 다탄두 ICBM도 북한이 추구하는 목표라고 볼 수 있다. 한 번에 여러 개의 표적을 공격할 수 있는 다탄두 ICBM은 디코이(decoy·가짜 탄두)를 함께 발사하면 요격하기도 힘들다. 핵탄두들 가운데 하나만 성공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여러 개의 탄두를 서로 다른 표적에 투하하려면 후추진체(Post Boost Vehicle)가 필수적이다. 후추진체는 1단과 2단 추진체보다 더 오랫동안 연소하면서 탄두를 실은 재진입체를 각각의 투하 지점에 정밀 유도하는 장치다. 동창리 발사장에서 시험한 7분간 연소한 엔진이 후추진체 개발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7월 8일 공개된 평양 원로리의 정체

신형 SLBM이 새로운 전략 무기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초 북극성-3형 SL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잠수함이 아닌 수중 바지선에서 발사돼 아직 본격적인 전력화에 이르진 못했다. 하지만 진수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3000t급 잠수함에 북극성-3형을 탑재해 수중 발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험이 성공하면 은밀하게 미국과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전략 능력을 입증하게 된다. 특히 일본 열도를 넘겨 2000㎞ 안팎 비행 거리를 보여준다면 미·일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 북한이 시험 발사한 SLBM은 모두 고각으로 발사돼 일본 열도를 넘긴 적이 없다. 신형 3000t급 잠수함은 북극성-3형 SLBM 3발을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체 ICBM 개발과 관련해 북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곳은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북한 전문 사이트 ‘비욘드 패러렐(Beyond Parallel·분단을 넘어서)’이 지난 5월 5일 공개한 평양 순안국제공항 인근에 있는 신리이다. 조셉 버뮤데즈 CSIS 선임연구원은 이 사이트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이곳은 44만2300㎡ 규모로 북한이 보유한 모든 탄도미사일과 이동식 발사대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크기”라고 밝혔다. 버뮤데즈 연구원은 “해당 시설이 차량 이동통로로 연결된 3개의 대형 건물과 대규모 지하시설, 위성에 관측되지 않도록 가려진 철로 터미널 등으로 구성돼 있는 점이 서해 위성발사장, 신포조선소와 유사하다”면서 “구조와 크기, 지하시설 등을 감안했을 때 근처의 탄도미사일 부품 제조공장들에서 기차로 실어온 부품을 조립하는 공간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평양에서 북서쪽으로 17㎞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을 2016년 중반 이후부터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가동 준비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신리는 고체연료 ICBM을 제작하기 위한 곳인 것 같다”고 추정했다. 이안 윌리엄스 CSIS 연구원은 “북한이 최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해온 의도는 고체연료 ICBM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곳은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가 지난 7월 8일 공개한 핵탄두 제작공장으로 추정되는 평양 만경대구역 원로리다. 이와 관련, 판다 FAS 선임연구원은 최근 출간한 ‘김정은과 폭탄’이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북한이 원로리에서 핵탄두를 생산해 왔다고 밝혔다. 루이스 소장은 “북한은 핵 협상 때나 지금이나 계속 이곳을 가동해 왔다”면서 “핵탄두 제작 시설이라고 분석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 이곳에서 핵탄두 소형화 작업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로리에서 북쪽으로 14㎞ 떨어진 곳에는 신리가 있다. 원로리에 핵탄두 제조 설비가 있다면 완성·비축한 핵탄두를 신리로 옮겨서 ICBM에 장착할 수 있다. 북한은 극도의 보안유지를 위해 원로리와 신리를 지하로 연결해 핵탄두를 운반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원로리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곳에는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는 강선이 있다. 강선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에게 ‘영변+α’를 제시하며 폐기를 요구한 핵시설 중 한 곳이다. 당시 김정은이 이를 거부하면서 하노이 회담은 결렬됐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은 강선에서 제조한 고농축우라늄(HEU)을 원로리로 가져와 핵탄두를 제작하고 이를 신리로 옮겨 ICBM에 장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이 핵탄두 장착 ICBM으로 미국을 겨냥하는 것을 레드라인(red line·금지선)으로 삼아왔다. 레드라인은 국제정치학적으로 외교적 수단에서 무력대응 등 비외교적 수단을 택하게 되는 분기점(turning point)을 뜻한다. 미국의 핵·미사일 전문가들과 민간 연구기관들은 북한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한참 넘어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국방부와 정보기관들도 북한이 핵폭탄 소형화, ICBM의 대기권 재진입 등의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테런스 오쇼너시 미국 북부사령관 겸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관은 “북한은 핵 탑재가 가능한 ICBM으로 미국을 계속 공공연히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국무부도 지난 6월 23일 의회에 제출한 ‘2020 군비통제·비확산·군축 합의와 약속의 준수 및 이행 보고서’에서 북한이 지난해에도 핵 활동을 계속해 왔다고 평가하면서 북한에 확인되지 않은 추가 핵 시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ICBM 조립공장으로 추정되는 평양 인근 신리(왼쪽)와, 핵탄두 제조공장으로 추정되는 원로리(오른쪽)를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모습. 신리는 지난 5월 5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북한 전문 사이트 ‘비욘드 패러렐’이, 원로리는 지난 7월 8일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가 각각 공개했다.
북한의 ICBM 조립공장으로 추정되는 평양 인근 신리(왼쪽)와, 핵탄두 제조공장으로 추정되는 원로리(오른쪽)를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모습. 신리는 지난 5월 5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북한 전문 사이트 ‘비욘드 패러렐’이, 원로리는 지난 7월 8일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가 각각 공개했다.

미군의 9월 탄도미사일 방어 훈련

이 때문에 미국은 레드라인을 이미 넘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태세에 들어갔다. 미군이 오는 9월 괌과 하와이 및 알래스카와 일부 본토 등 태평양 주요 지역에 대한 대규모 탄도미사일 방어 훈련을 실시하는 것도 사실상 북한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더그 램본 하원의원은 “북한 등 적성국들이 ICBM으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가능성을 우려해 탄도미사일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또 핵 억제력의 3대 축인 전략폭격기 B-52H 3대를 3년 만에 알래스카에 재배치했고, B-1B 랜서 4대를 괌 앤더슨 기지에 배치하는 등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미국 전략사령부는 지난 7월 9일 국가 안보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전략폭격기, 핵잠수함, ICBM 등 3대 핵전력이 전 세계에 24시간, 연중무휴 작전을 펼치면서 육상, 해상, 공중 어디서든 위협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는데도 정작 문재인 정부는 레드라인조차 설정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각종 단거리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등에 핵폭탄을 장착할 경우 주요 정부 및 군사시설은 물론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들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오로지 남북관계 개선과 미·북 대화 중재에만 매달리고 있다. 레드라인을 이미 넘은 북한과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제재 조치를 완화하거나 해제할 경우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는 환상에만 빠져 있는 듯하다.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할 때도, 9·19 군사합의를 폐기하겠다고 위협할 때도 문재인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해 왔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오는 8월 예정인 한·미연합군사훈련도 축소 또는 취소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서 각종 도발을 일삼을 경우 한국으로선 이에 대항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은 더 이상 엄포가 아닌 한국의 생존을 좌우하는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이미 레드라인을 넘어선 만큼 이제는 미국과 함께 나토식 핵공유 등 ‘플랜 B’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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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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