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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8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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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통신]일본의 고령화와 재해가 만났을 때 벌어지는 참사

도쿄= 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may2@chosun.com

▲ 침수 피해를 입은 집을 떠나 수용시설에 머물고 있는 일본 노인들. photo 뉴시스
세계에서 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일본 사회에 예상하지 못한 적(敵)이 나타났다. 이상기후에 따른 폭우와 무더위로 재해약자(災害弱者)인 고령자가 가장 먼저 희생되고 있다. 고령화가 재해가 닥쳤을 때 참사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구마모토(熊本)현 구마무라(球磨村)에 위치한 2층짜리 노인요양시설 센주엔(千壽園). 70명의 고령자를 수용하는 이곳은 7월 초만 해도 폭우에 대해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수년 전, 이곳 앞을 흐르는 하천의 수위 상승을 막기 위한 시설이 만들어졌다. 1년에 두 차례 요양원 침수 상황을 상정해 2층으로 수용자를 옮기는 훈련도 해왔다.
   
   하지만 지난 7월 4일 새벽 3시30분쯤 갑작스러운 폭우로 하천이 범람, 물이 차올라 왔을 때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날 새벽 시간당 최고 100㎜가량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구마(球磨)강이 범람했다. 구마모토현의 유노마에마치(湯前町)는 24시간 강수량이 489㎜로 관측 사상 최고를 기록할 정도였다.
   
   센주엔 직원들이 고령의 수용자들을 깨워 모두 2층으로 옮기려 했지만 침수 속도가 워낙 빨라 역부족이었다. 날이 밝았을 때 입소자 14명이 익사(溺死)한 채 심폐정지로 발견됐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구마모토현에 쏟아진 폭우로 사망한 64명 중 36명(56%)이 65세 이상의 고령자였다. 이들은 모두 자택이나 요양시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폭우가 쏟아져 하천이 범람해 집에 급속히 물이 차올랐지만 미처 대피하지 못해 익사한 것이다.
   
   
   침수 사망자 중 80%가 70세 이상 고령자
   
   재해약자가 큰 피해를 입은 이번 사태는 2018년 7월 200명이 넘게 사망한 서일본 폭우 당시와 유사하다. 당시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비가 내렸다. 일본 고치(高知)현에는 3일간 연평균 강수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091㎜의 비가 쏟아졌다. 기후(岐阜)현도 같은 기간에 1000㎜ 넘는 비가 내렸다. 당시 일본 기상청은 서일본에 폭우가 내릴 것으로 보고 십수년에 한 번 발령될까 말까 하는 ‘대우(大雨) 특별경보’를 교토(京都)·나가사키(長崎)를 포함한 11개 부현(府縣)에 단계적으로 발령했다. 하지만 한밤중에 폭우가 쏟아져 다수의 고령자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집에서 익사체로 발견됐다. 오카야마(岡山)현 구라시키(倉敷)시의 마비초에서는 4600가구가 침수됐는데 46명의 사망자 중 70세 이상의 고령자가 80%였다.
   
   2018년에도 호우경보 체제와 고령자 보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올해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지난 7월 구마모토현에 호우특별경보가 내려진 것은 4일 오전 4시50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3시30분쯤 하천 물이 넘쳐 주변의 집이 침수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처럼 갑자기 큰비가 내릴 경우 피해 지역을 예상하기 어렵다고 변명했을 뿐이다.
   
   고령자를 위협하는 것은 폭우뿐만 아니다. 해마다 여름의 기온이 더 올라가면서 열사병의 일종인 넷추쇼(熱中症)로 희생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일본 총무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넷추쇼로 병원에 긴급이송된 인원은 7만1317명이었다. 이 중에서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3만7091명으로 전체의 52%를 차지했다. 매년 약 200명 넷추쇼 사망자의 절반 이상은 고령자라는 통계도 있다. 무더운 날 에어컨을 틀지 않고 지내다가 기력이 없어서 사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본의 고령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2018년 70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의 20% 선을 넘어섰다.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은 70세 이상의 고령자인 셈이다. 일본의 고령자들은 대체로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다. 노년의 부부끼리 사는 경우가 많다. 독거(獨居)노인이나 60대 이상의 고령자가 자신보다 더 고령의 가족을 돌보며 사는 ‘노노(老老)간병’ 인구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폭우가 내려 강이 범람하거나 날씨가 무더워지면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지방의 경우 매년 거세지는 폭우에 견딜 만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고령자가 많이 사는 일본의 농촌은 전통적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지방 어디를 가도 곳곳에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다. 그러면서 난개발이 됐지만 그 지역의 낡은 인프라가 정비되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도쿄에서 ‘아쿠라 라인(해저터널로 연결된 고속도로)’을 타고 맞은편의 지바(千葉)현으로 건너가면 아파트는 찾아보기 어렵다. 도쿄에서 불과 30분 떨어져 있는 곳인데 “여기가 수도권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낡고 오래된 집이 많다. 쇼와(昭和)시대 초기에 지어진 것 같은 집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도로는 좁고 오래돼 교행이 어려운 곳도 적지 않다. 전신주 지하화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 최근 폭우로 극심한 침수 피해를 입은 일본 구마모토현 구마무라. 이곳 노인요양시설 센주엔의 입소자 14명이 익사한 채 발견됐다. photo 뉴시스

   정전 사태 피해자도 거동 어려운 고령자들
   
   그렇다 보니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강하게 불면 무너지는 집과 전신주가 수두룩하다. 지난해 태풍이 잇달아 덮친 지바현은 송전탑이 무너지고 전신주가 2000개가량 쓰러지는 피해를 입었다. 지바현 64만가구, 가나가와현 13만가구 등 100만가구가 정전됐다. 지바현에 정전 사태가 1주일 가까이 이어졌을 때 가장 큰 피해자는 거동이 어려운 고령자들이었다.
   
   
   일본 정부는 고령화사회를 위협하는 이상기온 문제를 중시, ‘국토 강인화(强靭化)’ 정책을 추진 중이다. 다케다 료타 방재담당상은 최근 일본 정부의 내년도 예산 편성의 지침이 되는 ‘호네부타 호신(骨太方針)’에 재해 피해를 막기 위한 국토 강인화 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은 면적이 38만㎢로 한반도의 1.7배에 이르고 재정 악화 상황이 계속돼 인프라 재건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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