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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9호] 2020.08.03

러시아 민주주의는 동쪽에서 떠오른다… 극동지방 반정부 시위 3주 째

▲ 주지사 체포에 반발해 시위에 나선 하바롭스크 시민들. photo 연합
러시아 극동의 중심도시인 하바롭스크에서 반정부 시위가 지난 7월 10일부터 지속되고 있다. 7월 11일, 18일, 25일 등 주말마다 수만 명이 시위에 참가하여 구속된 주지사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시위대의 구호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하야 등 반정부적 성격이 짙어지고 있다.
   
   지난 7월 25일 러시아의 여론조사기관인 레바다센터가 러시아 주요 도시의 18세 이상 성인 16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5%가 하바롭스크 주민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는 17%뿐이다. 개헌을 통해 2036년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는 탄탄대로를 내디딘 푸틴 대통령에게 하바롭스크 시위 사태는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 되어가고 있다.
   
   하바롭스크 시위는 러시아 수사당국이 지난 7월 9일 세르게이 푸르갈 주지사를 전격 체포하여 모스크바로 압송해 구속하면서 시작되었다. 다음 날인 10일부터 수만 명의 주민이 시내 중심 레닌광장에 몰려나와 주지사 석방 요구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수사당국은 푸르갈이 2004년부터 2년간 발생한 2건의 기업인 살인 사건과 1건의 살인미수 사건을 공모했다고 주장하지만, 푸르갈 주지사는 이를 부인한다.
   
   푸르갈은 야당인 자유민주당 소속이다. 극우 성향의 자유민주당은 인기 없는 야당이지만 푸르갈은 출마를 위하여 자유민주당을 선택했다. 그는 2018년 주지사에 당선된 이후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무원들의 급여를 삭감하였으며, 출장 시 여객기 1등석 탑승을 금지하였다. 극동의 행정중심지를 하바롭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전하려는 푸틴의 계획에도 반대하는 등 주민들의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자유민주당은 2019년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에서 35개 의석 중 34석을 석권하였다. 연방의회 450석 중 340석을 차지한 여당 통일러시아당은 당시 지방선거에서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푸틴 개헌으로 ‘32년 정권’ 길 열다
   
   러시아 내외의 언론들은 푸르갈이 체포된 이유가 높은 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주민들도 푸르갈의 뒤를 그동안 샅샅이 조사했을 당국이 이제야 그를 구속한 데에는 정치적 동기가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7월 1일 실시된 푸틴의 장기집권을 위한 헌법개정 국민투표에서 주민들의 찬성률이 현저하게 낮았다는 사실도 주지사 구속의 한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투표에 참가한 주민은 전체의 44%에 불과했으며, 찬성률도 전국 평균인 78%에 못 미치는 63%였다.
   
   러시아의 탐사보도전문지인 노바야가제타는 푸르갈 구속 직후 심층보도를 통해 최근까지 러시아 주지사와 시장의 82%가 재직 중에 각종 비리 혐의로 기소되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6년간 살인 혐의로 기소된 지방관리만 128명에 달한다고 한다. 노바야가제타는 푸틴 집권 이후 크렘린과 지방정부 간 ‘수직적 권력체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벌어진 일이라고 분석했다.
   
   주지사가 체포된 하바롭스크에선 지난 7월 11일 이후 연일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인구 60만명의 하바롭스크에서 주말마다 5만명의 주민이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주민들은 푸르갈에 대한 살인 혐의도 “푸틴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비판한다. 시위대의 구호도 ‘주지사 석방’에서 ‘푸틴 물러나라’ ‘러시아여 깨어나라’ 등 반체제적인 내용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시위 참가자들 가운데에는 정부가 통제하는 TV를 외면하는 젊은 블로거나 유튜버들이 많다. 이 때문에 하바롭스크 시위가 푸틴의 강압통치에 저항하는 새로운 방식이 되었다는 평가를 얻는다. 한 시위 참가자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듯이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동쪽에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하바롭스크 시위 사태를 방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자칫 모스크바까지 시위가 번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벌써 시위 참가자들을 붙잡아가거나 벌금형을 선고하는 등 강압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주민들은 주모자가 없기 때문에 몇 명 붙잡아간다고 시위가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푸틴이 코로나19 유행을 이유로 하바롭스크에 전격적인 봉쇄 및 격리(quarantine)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미 하바롭스크에 방역 및 의료진이 급파된 상태라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7월 1일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을 개정하여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푸틴은 48세 때인 2000년에 4년 임기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재선되어 2008년까지 집권하였다. 3연임 금지 때문에 출마할 수 없었던 푸틴은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하고, 자신은 총리직에 머물며 실세로 군림하였다. 4년 후인 2012년에는 임기가 6년으로 늘어난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2018년 재선되어 2024년까지의 임기를 남겨놓았다. 그런데도 올해 7월 헌법을 개정하여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12년을 더 집권할 수 있게 만들었다. 푸틴이 2036년까지 대통령을 하면 실권자 총리를 지낸 4년을 제외하고도 무려 32년 동안 러시아의 최고지도자를 지내게 된다. 1922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스탈린의 31년 독재 기록을 넘어선다.
   
   러시아 사람들은 흔히 ‘크렘린에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온다’는 말을 한다. 일단 권력을 차지하면 죽을 때까지 놓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련 시절 살아서 크렘린에서 나온 지도자는 축출된 개혁파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와 소련이 붕괴하면서 자리가 없어진 미하일 고르바초프뿐이다. 푸틴에 앞서 러시아연방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은 경제난과 대형 부패 사건, 건강악화 등으로 임기 종료를 1년 남겨놓은 1999년 사임하였다. 옐친이 후계자로 지명한 사람이 바로 푸틴이다.
   
   푸틴은 사회적인 혼란을 수습했다는 평가와 함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비판의 핵심은 푸틴이 소련 시절 악명 높은 비밀경찰인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을 통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탄압하며 강압적으로 장기집권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은 소련 시절 KGB 중령 출신이다. KGB의 후신인 FSB는 전지전능한 권력을 누리며 지금까지 푸틴의 장기집권을 뒷받침했다. FSB는 초법적인 도청, 수색을 벌인다. 자체적으로 감옥을 운영하며 사람들을 구금하고, 정치공작과 암살 등을 저지른다고 비판받는다. 현재 FSB의 인원은 국경수비대와 협력자 등을 포함해 20만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다. 러시아 국민 700명당 1명이 FSB 종사자인 셈이다.
   
   FSB는 이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하여 푸틴에 반대하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을 제거해왔다. 러시아 연구가들은 푸틴의 국가운영을 신(新)스탈린주의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푸틴은 “스탈린의 유산을 평가할 때 흑백을 가르듯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FSB 국장으로 재직 중인 알렉산드르 보로트니코프는 1937년 일어난 스탈린의 ‘대숙청’도 긍정한다. 스탈린은 공산당과 군대 내의 반당분자와 부농들을 청산한다며 100만명 이상을 처형하였다. 소련 공산당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했다. 그런데 보로트니코프는 2017년 12월 숙청당한 사람 중 “상당수가 객관적으로 범죄 혐의가 입증된다”고 말해 충격을 던졌다. 문화인들 사이에서는 스탈린식 대숙청이 우려된다며 또 하나의 ‘새로운 1937년’에 대한 경고가 본격적으로 나왔다.
   
   러시아의 대표적 연극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51)는 푸틴 치하의 러시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러시아의 노예제는 조금도 완화되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 자유로운가? 러시아에서 농노제와 강제수용소는 해체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러시아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는 그것들을 토해내지 못했으며 뿌리 뽑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점차 모든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다. 지금은 권력의 요구에 따라 농노제가 일종의 사회계약이라는 등의 새로운 주장이 나타날 정도가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하나의 가치로서의 자유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은 자유를 위하여 투쟁한 적이 없다. 러시아에서 자유란 항상 위에서부터 주어진 것이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인들은 자유를 혼돈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자유는 필요 없다고 결정하였다. 슬픈 일이다.… 러시아의 권력구조는 소련 이후 변한 게 전혀 없다. 러시아에서 권력은 너무 강해서 통제할 수 없다.”
   
   
▲ (좌) 지난 7월 1일 헌법개정을 통해 84세까지 재임할 수 있게 된 러시아 푸틴 대통령. (우) 푸틴에 맞서다 횡령 혐의로 기소당한 러시아의 유명 영화감독 세레브렌니코프. photo 연합

   언론 탄압 강화 공포 분위기 조성
   
   푸틴이 2036년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헌법개정안 국민투표 이후 러시아 당국은 언론인들에 대한 탄압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법원은 지난 7월 6일 언론인 스베틀라나 프로코피에바가 테러행위를 정당화하는 보도를 했다는 혐의로 50만루블(약 70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프로코피에바가 2018년 발생한 17세의 무정부주의자 청년이 FSB의 한 지국 건물 로비에서 자폭한 사건을 푸틴 정권과 연관 지어 기사를 썼다는 이유였다.
   
   당국은 7월 8일에는 언론인 이반 사프라노프를 국가반역 혐의로 구속하였다. 일간지 코메르산트에서 국방을 담당했던 그가 취재 중에 얻은 기밀을 체코 정보기관에 넘겼다는 주장이었다. 유죄 판결이 나면 징역 20년형이 나오는 중범죄이다. 사건 관련 구속자는 20명이 넘는다. 러시아 언론들은 사프라노프가 무기의 대외 수출과 관련한 권력층의 비리에 대해 보도를 했기 때문에 구속되었다고 보고 있다. 언론인을 국가반역 혐의로 기소한 사건은 러시아에서도 20년 만에 처음 발생한 일이다. 게다가 코로나19를 이유로 그를 독방에 가두어놓고 있다.
   
   러시아 정치분석가인 알렉산드르 키네프는 러시아포브스에 기고한 ‘하바롭스크 주지사 구속 후 예상되는 사태’라는 분석을 통해 푸틴의 장기집권을 허용한 “개헌에 반대한 유권자가 대도시들의 경우에는 35~40%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는 “2000만표 이상으로 추산되는 부정투표 수를 제외하더라도 지난 15년간 실시된 각종 투표 가운데 반정부 성향이 가장 높게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 이에 놀란 푸틴과 FSB가 “자신들이 집권자라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만한 목표물을 찾다가 힘없는 언론인들과 하바롭스크 주지사 구속이라는 카드를 선택했다”고 그는 분석했다. 키네프는 그러나 “정권이 이들을 탄압한다는 인상을 주어 야당 지지자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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