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상원 외교위에 출석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photo 뉴시스
지난 7월 30일 상원 외교위에 출석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photo 뉴시스

‘닉슨 중국에 가다(Nixon goes to China)’라는 말은 ‘이념적 적대세력과의 화해, 혹은 그에 버금가는 정책 전환’을 의미하는 관용어구이다. 반공주의자였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1913~1994)이 1972년 2월 21~28일 중공(中共)을 전격 방문, 데탕트 시대를 출범시킨 것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당시 닉슨은 중국의 최고지도자인 마오쩌둥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영토와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 등 평화 5원칙을 내용으로 하는 상하이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길을 연 것은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 키신저 전 보좌관은 1971년 7월 9~11일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해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를 만나 양국의 화해 방안을 논의했다. 이후 양국의 상하이 공동선언을 바탕으로 1978년 5월 연락사무소를 상호 개설했고, 1979년 1월 1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6·25전쟁 때 한반도에서 총칼을 들고 싸웠던 양국이 협력의 악수를 한 것이었다.

‘신(新)냉전의 21세기판 키신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닉슨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미국과 중국의 데탕트가 실패했다면서 새로운 중국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7월 23일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요바린다에 있는 닉슨 도서관에서 ‘공산주의 중국과 자유세계의 미래(Communist China and the Free World’s Future)’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역대 미국 정부의 포용(engagement)정책은 중국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면서 “우리가 중국의 세기가 아니라 자유로운 21세기를 바란다면 중국에 대한 맹목적인 포용정책의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이를 실현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국 국민과 힘을 합쳐 중국 공산당을 변화시켜야 한다”면서 중국 공산당 정권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이른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 의지를 보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폼페이오 장관이 중국을 ‘새로운 전체주의 국가’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공산당 총서기로 호칭하면서 “시 총서기는 과거 소련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면서 “시 총서기는 실패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라고 규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폼페이오 장관은 “자유세계 국가들이 단결해 (중국이라는) 새로운 독재에 승리해야 한다”면서 “만약 자유세계가 중국 공산당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중국 공산당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중국 때리기’의 전면에 나선 폼페이오 장관의 연설은 ‘신(新)냉전의 21세기판 키신저’를 자임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미·중 데탕트 시대의 설계자가 키신저 전 보좌관(닉슨 전 대통령 재선 이후 국무장관도 겸임)이었다면 미·중 패권 대결 시대의 선봉장은 폼페이오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정부에서 가장 먼저 중국 정부를 ‘중국 공산당’(CCP·Chinese Communist Party)으로 불렀다. 이는 민주주의(미국)와 공산주의(중국)의 대결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닉슨 도서관을 연설 장소로 선택한 것은 낡은 중국 정책이 사망했고, 새로운 중국 정책을 국내외에 제시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연설 장소에 1989년 천안문(天安門) 시위 주역인 왕단(王丹)과 중국의 반체제 인권운동가 웨이징성(魏京生)까지 초청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새로운 중국 정책의 일환으로 무엇보다 반중 공동 전선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7월 28일 호주 외교·국방장관(2+2)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한 반대를 비롯해 반중 협력 체제 강화를 이끌어낸 것도 이런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는 유럽 전체의 파트너들과 인도·일본·한국 등 전 세계의 민주주의 친구들이 우리 시대의 도전과제가 자유를 가치 있게 여기고 법의 지배에 근거한 경제적 번영을 원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하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중국 공산당 체제의 변화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사실상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볼 수 있는 홍콩과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티베트 등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탄압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8월 1일 ‘중국 신장웨이우얼 지역의 인권탄압자들에 대한 제재와 관련’이라는 성명에서 “중국 공산당의 위구르족 및 다른 무슬림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탄압은 세기의 오점”이라면서 “우리는 모든 나라가 중국 공산당의 자국민들에 대한 극악무도한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데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미국으로 망명하려는 홍콩 시민들을 수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7월 초 영국을 방문했을 때 런던으로 망명한 홍콩의 민주화 운동인 ‘우산혁명’의 주역이자 야당 지도자인 네이선 로 전 데모시스토당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을 향해 티베트불교에서 달라이 라마 14세에 이어 두 번째 서열인 11대 판첸 라마의 행방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1995년 당시 망명지인 인도 다람살라에서 6세 소년 겐둔 치아키 니마를 11대 판첸 라마로 지명했지만 지금까지 실종된 상태다. 판첸 라마는 달라이 라마 14세가 사망할 경우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마일스 위 미 국무부 중국정책 수석고문(오른쪽)과 폼페이오 장관. ⓒphoto DOS
마일스 위 미 국무부 중국정책 수석고문(오른쪽)과 폼페이오 장관. ⓒphoto DOS

중국이 욕하는 마일스 위의 역할

폼페이오 장관의 새로운 중국 정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중국 국민과 공산당 정권을 분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국무부 중국 정책 수석고문인 마일스 위(중국명 위마오춘·余茂春)에게서 나왔다. 중국 출신으로 미국에 귀화한 위 고문의 사무실은 폼페이오 장관 집무실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져 있지 않다. 1962년 8월 중국 충칭에서 태어난 위 고문은 청소년기에 문화대혁명 10년을 겪은 뒤 1979년부터 1983년까지 톈진의 난카이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와 스와스모어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각각 취득한 후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활동해왔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국무부 산하 정책기획실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지난 3년간 트럼프 정부의 중국 전략을 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숨은 참모였다. 그는 역대 미국 정부가 베이징과 수교한 이후 미·중 관계를 자기 뜻대로 끌고 갈 수 있다고 과신한 게 잘못의 시작이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그는 역대 미국 정부의 중국 정책 중 최대 착오는 중국 공산당과 국민을 구분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그의 전략은 물과 물고기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오쩌둥 전 주석은 “공산당원이 물고기라면 국민은 물이라면서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듯 공산당도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만 살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이런 이론에 입각해 그는 물과 물고기를 분리하는 것이 중국 공산당을 멸망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은 중국 국민을 친구로, 공산당을 적으로 각각 대하라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을 비롯해 미국 고위 관리들이 시 주석을 ‘중국 국가주석’이 아닌 ‘중국 공산당 총서기’라고 부르는 것도 위 고문의 이런 전략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그를 ‘국보’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그를 ‘한간(漢奸)’이라고 부른다. 한간은 한족 출신 간신이라는 뜻으로, 만주족인 청나라 시절 만주족의 통치에 협력한 한인들을 이른다. 치욕의 근대사를 겪은 중국에서 한간은 외국 침략자와 내통하거나 부역, 협력해 중화민족에 해를 끼친 사람을 말한다.

대(對)중국 태스크포스의 면면

그는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에서 ‘전략적 경쟁자’로 정책을 바꾸도록 조언해온 핵심인물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위 고문을 비롯해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홍콩 출신 미국 학자인 멍 치앙 퍼듀대 공대 학장, 마이클 필스버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 소장 등과 함께 대(對)중국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새로운 중국 전략을 짜도록 했다. 치앙 학장은 과학과 기술 분야의 전문가이다. 필스버리 소장은 ‘중국 2049: 100년의 마라톤’의 저자로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목표는 미국 주도의 경제, 지정학적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키론 스키너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은 “폼페이오 장관이 중공을 사실상 ‘문명의 적’으로 규정하며 새로운 전략을 설계할 것을 지시했다”면서 “중공과의 패권 경쟁은 그동안 미국이 경험하지 못한 전혀 다른 문명 및 이데올로기와의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스키너 국장은 레이건 전 대통령의 소련 정책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정치학자 출신이다. 트럼프 정부가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를 비롯해 홍콩국가보안법, 남중국해 영유권,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인권 문제, 대만 문제, 기술 및 지식재산권 문제 등 각종 주요 분야에서 강경한 중국 정책을 추진해온 것은 이 팀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폼페이오 장관이 새로운 중국 전략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실시되는 대선에서 재선하기 위해 ‘중국 때리기’에 나선 것과는 달리 폼페이오 장관은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48년간 지속돼온 역대 정부의 중국 정책을 아예 근본적으로 전환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3년 차까지는 무역전쟁을 통해 중국에 공세를 펴왔지만 시 주석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등 중국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강경한 정책을 추진하지는 않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말을 들어온 폼페이오 장관은 그동안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정책을 말 없이 보좌해왔다. 그러다 폼페이오 장관은 올해 초부터 중국에 대한 진정한 매파(the hawks)로 변신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육사(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의무 복무를 마치고 대위로 예편했다. 그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동·서독이 통일될 때 베를린에서 근무했다. 당시 그는 베를린장벽 너머로 소련 공산정권의 꼭두각시인 동독의 독재체제를 직접 목격했다. 이후 하버드대학 법과대학원을 거쳐 로펌과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뒤 하원에 진출한 그는 4선 의원으로서 정보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하루 2시간씩 안보평가보고서를 읽는 등 나름대로 국제 정세를 조망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았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임명됐고, 2018년 4월 국무장관으로 취임한 그는 그동안 이란과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왼쪽부터)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photo 뉴시스 / 마이클 필스버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 소장 photo 허드슨연구소 /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photo 백악관 / 멍 치앙 퍼듀대 공대 학장 photo 퍼듀대닷컴
(왼쪽부터)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photo 뉴시스 / 마이클 필스버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 소장 photo 허드슨연구소 /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photo 백악관 / 멍 치앙 퍼듀대 공대 학장 photo 퍼듀대닷컴

트럼프 외교안보팀의 ‘원톱’ 사령관

그는 지난해 중반부터 지역구인 캔자스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직에 출마하는 것을 고려해왔다. 공화당 소속인 팻 로버츠 상원의원이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출마를 만류했고 이에 따라 지난 1월 공화당 지도부에 불출마를 공식 통보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상원의원 출마의 뜻을 접은 것은 무엇보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수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파워게임을 벌였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해 9월 사임하면서 폼페이오 장관은 외교·안보 정책의 ‘원톱’ 사령탑이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물론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 외교·안보라인은 모두 폼페이오 장관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그가 적극적으로 추천한 인사일 뿐만 아니라 한때 그의 밑에서 일했기 때문에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심지어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 지나 하스펠 CIA 국장, 윌리엄 바 법무장관 등도 폼페이오 장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외교·안보 정책을 좌우하는 핵심 고위인사들은 폼페이오 장관의 육사 동기생(82학번)들이다. 에스퍼 국방장관, 울리치 브레치벌 국무부 고문, 브라이언 불라타오 국무부 차관. 데이비드 어반 미국전쟁기념위원회 의장 등과 마이클 그린 하원의원(공화당)은 지금까지도 끈끈한 전우애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 군사력의 중요성을 체험한 세대다.

고령인 조 바이든 변수

또 다른 이유는 폼페이오 장관의 대권 야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차기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하거나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차차기 대선의 유력 후보로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올해 78세의 고령인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82세가 되는 2024년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에 강경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만큼 폼페이오 장관으로선 자신의 새로운 중국 전략이 차차기 대권 도전의 포석이 될 수 있다.

아무튼 베를린장벽 붕괴로 ‘철(鐵)의 장막’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폼페이오 장관의 목표는 ‘죽(竹)의 장막’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야심은 더 높은 곳에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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