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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1호] 2020.08.17

디즈니마저… 언택트 시대 영화업계의 생존 전략

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judge003@gmail.com

▲ 월트디즈니가 코로나19의 여파로 애니메이션 ‘뮬란’ 실사판의 극장 개봉을 포기, 자사 OTT를 통해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영화 ‘뮬란’의 한 장면. photo 뉴시스
영화관을 찾는 사람은 줄었지만 그래도 영화는 계속 나온다. 그중에는 제법 덩치 큰 작품도 있다. 디즈니가 제작비 3억달러를 들인 ‘뮬란(Mulan)’은 2020년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블록버스터다. 디즈니가 1998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뮬란’은 그해 전 세계에서 3억400만달러의 극장 수익을 얻었고 당시 일곱 번째로 흥행한 영화였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뮬란’이 가족을 위해 여자란 사실을 숨기고 위대한 전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주인공 뮬란 역은 우리에게도 유명한 리우이페이(유역비)가 맡았다. 여기에 공리, 리롄제(이연걸), 전쯔단(견자단) 등 중화권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해 영화의 볼륨을 키웠다. 애니메이션 성공작이 20여년 만에 실사영화로 구현됐으니 여기에 거는 기대도 컸을 법했다. 원래 올해 여름 개봉할 작품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시기를 늦추며 계속 때를 기다리던 참이었다.
   
   일부에서는 디즈니가 ‘뮬란’을 자사 OTT(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인 디즈니플러스로 공개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대부분 터무니없는 소리로 취급받았다. 팬데믹이 골칫거리지만 디즈니가 그간 극장에서 거둬 온 실적이 있는데 그런 모험수를 두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많았다. 경쟁작으로 평가받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테넷(Tenet)’이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뮬란’이 스크린에 걸릴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지난 8월 4일 월트디즈니컴퍼니는 회계연도 2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런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뮬란’은 극장으로 가지 않는 대신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9월 4일 독점 공개하기로 공식 발표한 것이다. 기존 디즈니플러스 구독자도 29.99달러를 별도로 지불해야 볼 수 있는 별매품이다. 이 최신 블록버스터는 디즈니에는 매출의 대부분을, 관객들에게는 영화 보는 방법에 대한 통제권을 넘겨주는 방법을 택했다. 밥 차펙(Bob Chapek) 디즈니 최고경영자(CEO)가 밝힌 이유는 이랬다. “팬데믹이 소비자 서비스를 다른 접근으로 내몰고 있어서다.”
   
   
   유니버설의 길 참고한 디즈니의 승부수
   
   ‘뮬란’이 OTT를 활용할 거라는 소수 의견은 나름대로 논리가 있었다. 일단 디즈니플러스 가입자를 증가해야 하는 시점에 ‘뮬란’은 딱 어울리는 기대작이다. 디즈니플러스와 훌루, ESPN플러스 등 범디즈니 OTT 유료 가입자를 모두 합치면 약 1억명 수준이다. 반면 업계 1위 넷플릭스는 1억900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뮬란은 디즈니플러스가 언택트 시대를 맞아 추격이 필요한 시점에서 유입 동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미 비슷한 길을 걸었던 작품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가 있었던 것도 디즈니의 결정에 한몫했다. 지난 4월 말 유니버설픽처스의 애니메이션 ‘트롤: 월드투어’가 먼저 길을 텄다. 4월은 팬데믹이 그 어느 때보다 맹위를 떨치던 때였다. 극장에 개봉할 예정이던 이 애니메이션은 코로나19 문제가 심각해지자 배급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원래 메이저 스튜디오의 영화는 전통적으로 90일간 극장에 걸리는 게 표준 관행이었다. ‘트롤:월드투어’는 관행을 깨고 19.99달러의 가격에 VOD로 배급하는 디지털 공급 방식을 선택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극장을 거부한 메이저 제작사의 첫 영화는 성공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출시 3주 만에 ‘트롤: 월드투어’는 1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이익은 스크린에 걸었을 때보다 더 크다. 극장에서 상영하면 제작사와 극장이 매출을 절반씩 가지지만 디지털 공급에서는 약 80%가 제작사의 몫이다.
   
   코로나19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던 때라 영화계에서는 이 숫자에 놀랐다. 물론 ‘트롤: 월드투어’의 디지털 성공을 평가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CNN은 “일단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집에 피신한 상태에서 콘텐츠를 너무나 갈구하던 때라서 구매 욕구가 매우 강했다. 게다가 스포츠 등 이벤트들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뺏는 경쟁이 덜했다. 그리고 2016년 나왔던 전작 ‘트롤’이 전 세계에서 3억460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던 것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분석했다.
   
   그래도 디지털판 영화를 집에서 편하게 즐기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 여기에 꽤 큰 시장이 있다는 것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던 시도였다. 유니버설픽처스가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내놓은 일회성 전략인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영화 산업이 나갈 방향으로 정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확실한 건 팬데믹이 만든 ‘트롤: 월드투어’의 행보가 일시적으로나마 영화 산업을 뒤집어 놨다는 점이다. 이때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큰 극장 체인인 AMC의 반발은 생각보다 컸다. 애덤 아론 AMC CEO는 도나 랭글리 유니버설픽처스 회장 앞으로 한 통의 서한을 보냈다. “우리에게 불리한 이런 행태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AMC는 미국, 유럽, 중동의 어느 극장에서도 유니버설픽처스 영화를 앞으로 상영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이번 새로운 정책이 유니버설픽처스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선의의 협상 없이 지금까지의 ‘90일간 상영 후 철수’ 관행을 일방적으로 포기하는 다른 영화제작자들에게도 적용할 것이다.”
   
   
▲ 미국 최대 극장 체인 AMC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을 폐쇄한 모습. photo 뉴시스

   “디즈니의 스트리밍 개봉, 일회성 아냐”
   
   극장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극심한 부침을 겪었다. 그래도 할리우드가 곧 스크린으로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리고 ‘뮬란’은 그 시발점이 될 작품이었다. CNBC는 “‘뮬란’은 월드 박스오피스에서 보수적으로 잡아도 10억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작품이다. 그리고 원래 그 수익은 디즈니와 영화관들이 나눠 가질 돈이었다”고 전했다. 그랬던 ‘뮬란’이 스크린이 아니라 스트리밍으로 갔으니 극장주들은 제대로 허를 찔린 꼴이 됐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는 한 프랑스 극장주가 ‘뮬란’의 광고판을 야구방망이로 부수는 장면은 그들의 분노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과 호주, 일본 등 디즈니플러스가 서비스되는 나라의 극장에서는 ‘뮬란’을 볼 수 없다. 디즈니 측은 “디즈니플러스가 서비스되지 않는 국가에서는 ‘뮬란’의 극장 상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디즈니의 결정을 결정타로 여기는 건 그 영향력 때문이다. 디즈니가 작년에 올린 전 세계 영화 매출액은 132억달러(15조6400억원)였다. 미국 영화 산업이 2019년 전 세계에서 거둬들인 매출이 425억달러(50조3600억원)였으니 약 30% 이상을 디즈니가 혼자 책임진 셈이었다. 극장 개봉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상당하기에 디즈니 입장에서도 스크린이 필요하다는 게 극장계의 기대였다. 그러니 ‘뮬란’의 디즈니플러스행이 주는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뮬란’은 29.99달러에 디즈니플러스로 가게 되면서 디즈니의 재정 목표 달성을 위해 힘내야 하지만 반대로 전 세계 영화관들의 재정은 그런 ‘뮬란’ 덕에 더욱 위태로워지게 됐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에서는 매우 급진적인 변화가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밥 차펙 디즈니 CEO는 “이번 ‘뮬란’의 행보는 일회성이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다른 디즈니 관계자는 온라인매체 ‘더버지(TheVerge)’에 “이번 일은 확실히 일회성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뮬란’이 선택한 새로운 유통경로에 대해서 디즈니 경영진들은 기대감을 표시한다. 차펙 CEO는 “새로운 출시 모델을 택한 ‘뮬란’이 디즈니플러스 가입자 증가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구입하는지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팬데믹은 많은 것들을 바꾸고 있다. 5개월 전의 세계가 지금과 같지 않듯 5개월 전의 영화 산업 역시 지금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걸 ‘뮬란’이 보여준다. 극장 개봉을 피하는 메이저 제작사의 개봉작은 과거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디즈니의 발표가 나온 뒤부터 “영화관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존의 질문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변화 때문이다.
   
   
   개봉작 90일 관행마저 무너지다
   
   제작사들은 앞으로 디지털 플랫폼과 스크린 중에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게 될까. 극장계는 점점 힘의 논리에 부치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이후 안전하게 개인 공간에서 영화 보는 걸 원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극장 역시 떠밀리고 있다. 7월이 끝나갈 무렵 유니버설픽처스는 ‘트롤: 월드투어’의 앙금을 AMC와 씻어내려는 듯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양 사는 원래 90일 동안 극장에 걸었던 개봉작 독점 상영 시기를 17일로 줄이는 내용으로 합의했다. 새 영화를 빠르게 집으로 배달하려는 제작사의 요구가 관철된 계약이었다. 다른 스튜디오들 역시 유니버설픽처스와 유사한 조건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미 워너브라더스 같은 곳은 일부 타이틀을 디지털 전용 영화로 옮기고 있고 파라마운트와 소니는 일부 영화를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와 아마존에 팔고 있다.
   
   구조적으로도 극장은 불리해졌다. 2019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 수입 425억달러 중 디즈니와 워너브라더스, 유니버설픽처스 세 곳에서 담당한 게 절반이다. 디즈니가 동참하면서 메이저 제작사들은 점점 특정한 요구를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이들이 이전보다 일찍 극장에서 영화를 내리고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갈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영화를 이동하겠다고 요구한다면? 그럴 수 있는 때가 왔고 그게 현실화된 게 이번 17일 개봉 계약서다.
   
   물론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극장의 종말을 뜻하진 않는다. 그래도 스크린의 가치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증명하고 있다. 올해 6월 초, 워너브라더스의 임원들과 놀란 감독은 7월 개봉 예정이었던 ‘테넷’의 개봉 연기를 논의하기 위해 화상회의를 가졌다. 그는 이미 올해 3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극장들을 위해 “영화관들이 문을 닫고 있는 걸 도와달라”고 워싱턴포스트에 글을 썼다. 화상회의에서도 놀란은 ‘테넷’을 극장에서 공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극장 관계자들과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테넷’ 역시 코로나19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의 잘못된 대처 탓에 이 영화는 미국 밖에서 먼저 개봉한다. 8월 26일 전 세계 70여개 국가에서 먼저 공개하며 미국에서는 9월 3일, 그것도 선별된 지역의 극장에서만 이뤄진다. ‘뮬란’과 달리 극장을 고집한 ‘테넷’은 사람들이 낯선 이와 밀폐된 곳에 오랫동안 갇혀 있는 공간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는 시험대 역할을 맡게 됐다. ‘테넷’의 시도가 실패한다면 영화의 탈(脫)극장화는 더욱 힘을 받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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