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지난 2월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최대 신용평가업체 에퀴팩스 내부망에 침입해 미국인 1억5000만명의 민감 정보를 탈취한 혐의로 중국 해커 4명을 기소한다고 발표했다. ⓒphoto 뉴시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지난 2월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최대 신용평가업체 에퀴팩스 내부망에 침입해 미국인 1억5000만명의 민감 정보를 탈취한 혐의로 중국 해커 4명을 기소한다고 발표했다. ⓒphoto 뉴시스

미국 법무부는 지난 7월 21일 코로나19 백신 정보를 포함한 미국 기업의 각종 기밀을 훔친 중국인 2명을 체포, 기소했다. 미국이 코로나19 백신 정보 해킹 혐의로 중국인을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1개 혐의로 기소된 중국인은 리샤오위(李嘯宇·34)와 둥자즈(董家志·33) 두 명. 이들은 중국의 대학에서 컴퓨터 앱 기술을 공부한 뒤 10여년간 수백 개의 전 세계 기업과 정부기관, NGO(비정부기구)를 해킹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물론 중국과 홍콩에 거주하는 반체제 중국인과 성직자,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개인정보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백신 훔치기에 혈안인 중국

미 법무부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연구하는 4개 미국 기업을 해킹하여 백신과 테스트기술, 치료법에 관한 정보를 훔쳐 수억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혔다. 또 이들의 해킹 대상에는 첨단 제조기업은 물론 의료기기, 의약, 교육과 게임 소프트웨어, 태양광에너지, 방위산업 등 거의 전 분야가 망라돼 있다. 국가별로도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 벨기에, 독일, 일본,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심지어 한국도 표적으로 삼았다. 미 법무부 사이트에 따르면, 이들은 일반인 사이에 널리 사용되는 앱이나 협업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한 뒤, 피해자들이 ‘휴지통’ 등에 숨겨둔 문서를 훔치고 이를 암호화해 피해자가 정보 도난을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데이비드 보디치 미 FBI(연방수사국) 부국장은 “이들은 중국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MSS) 산하 광둥성(廣東省) 안전부와 협력해왔다”면서 “중국은 이제 러시아, 이란, 북한과 함께 사이버 범죄자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치욕스러운 국가 클럽에 들었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가 지난 7월 24일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의 폐쇄를 전격 결정한 것도 중국의 코로나19 백신 정보 절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미 FBI는 텍사스대학에 이메일을 보내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분야를 포함한 미국 대학의 연구결과를 불법으로 입수하려 한다”며 “이와 관련된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텍사스대학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단백질 스파이크(돌기)를 이용해 체내 세포와 결합한 뒤 침투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바이러스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스파이크 성분을 체내에서 미리 생산해 면역력을 확보하는 연구에서 앞서가고 있다.

이 대학 분자생물학과의 제이슨 맥렐런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미국 제약사 모더나와 노바백스가 각각 개발 중인 백신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구팀의 왕녠솽(王年爽) 연구원은 중국 다롄기술대학 출신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안정시키는 유전적 돌연변이를 규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이 이 대학의 연구결과를 ‘도둑질’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총영사관 폐쇄를 예고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은 스파이 활동과 지식재산권 절도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한 것으로 보아, 관련 정보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를 조기에 차단하지 않아 전 세계로 확산시킨 중국 정부는 국제사회에 이를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해커를 동원해 코로나19 백신 기술 훔치기에 혈안이 돼 있다는 사실이 미국 정부의 수사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美 국가안보 4인방, 中의 기술 도둑질에 총력 대응 천명

미국의 분노는 지난 6월 말부터 7월 말까지 약 한 달 사이에 미국의 국가안보와 범죄수사, 사법정의를 책임지는 4인방(四人幇)이 차례로 대중국 정책 연설회를 개최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6월 24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시 주정부에서 ‘중국 공산당의 이념과 국제적 야망(The Chinese Communist Party’s Ideology and Global Ambitions)’이란 주제로 중국의 도전을 경고한 것을 시발로, 7월 7일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의 허드슨연구소 연설(‘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미국 경제와 국가안보에 가하는 위협’), 7월 16일 윌리엄 바 법무장관의 미시간주 제럴드포드박물관 연설(연설 제목은 따로 없지만, ‘미국 국민과 정부, 기업이 중국 공산당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함께 나서야 한다’는 요지), 7월 23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캘리포니아주 닉슨도서관 연설(‘공산 중국과 자유세계의 미래’·주간조선 2020년 8월 3일 자 참조)이 이어졌다.

이들 4인방의 연설은 공통적으로 중국 공산당이 자유세계의 개방성을 역이용하여 자유세계 자체를 붕괴시키는 치밀한 공작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점을 경고하고, 중국 공산당의 지배음모를 깨기 위한 전쟁에 미국 국민과 기업은 물론 세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국가들이 동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와 사법부 책임자들이 모두 나서 ‘중국의 위협’을 경고한 것은 1970년대 초 ‘핑퐁외교’로 미·중 화해를 이룬 이후 약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4인의 연설 내용은 가히 ‘대중국 장기전 선전포고’이자 ‘대국민 경계령 발동’이라 할 만하다. 양국이 총만 쏘지 않았지 사실상 준(準)전시 상태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국 간에 작은 불씨만 있어도 ‘냉전(冷戰)’이 ‘열전(熱戰)’으로 바뀔 수 있는 심각한 국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최근 남중국해의 중국 인공섬을 점령하기 위한 군사훈련에 돌입한 데 이어 대만과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FBI 국장 “상황이 이 이상 더 중대할 수 없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분노와 위기감은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이 국가정보기관은 물론 기업과 유학생, 재미화교 등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미국이 힘들게 개발한 첨단기술을 ‘도둑질’했다는 데 근본 원인이 있다. 이와 관련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우리는 중국 정부의 야심의 크기를 직시해야 한다. 중국, 즉 공산당은 경제와 기술의 우월성에서 미국을 추월하기 위하여 여러 세대에 걸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중국은 이 투쟁을 합법적 혁신이나 공정한 경쟁, 그리고 자국민에게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전개하지 않는다. 그 대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가 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총력전(a whole-of-state effort)을 펼치고 있다. 둘째, 중국은 정보기관뿐 아니라 국유기업, 겉은 사기업으로 위장한 기업, 대학원생, 연구원, 그리고 중국을 위해 일하는 다른 모든 종류의 배역을 활용하여 첨단기술을 훔쳐가고 있다. 중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도약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는 어려움을 택하지 않고 미국의 지적자산을 훔치고 그것을 이용해 미국 기업과 경쟁하여 미국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중으로 골탕 먹이고 있다. 중국은 군사장비에서부터 풍동(風洞) 장비와 옥수수 씨앗까지 모든 것을 노리고 있다. 상황이 이 이상 더 중대할 수 없다. 이러한 도둑질 행위가 미국 경제에 끼치는 해악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다. 다음으로, 백악관 안보보좌관 오브라이언도 지적했듯이, 미국의 기술을 훔치기 위한 은밀한 공작(clandestine efforts)이다. 2017년 중국의 군부는 미국의 개인신용정보업체 에퀴팩스(Equifax)를 해킹해 미국인의 절반, 미국 성인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1억5000만명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훔쳐갔다. 2015년에는 건강보험업체인 앤섬(Anthem)으로부터 8000만명의 가입자 개인정보를 뽑아갔다. 2014년에는 연방정부 인사관리처에서 2100만명의 공무원 정보를 훔쳐갔다. 중국이 훔쳐간 인적자료는 그들이 더 많은 비밀 정보를 수집하는 일에 사용할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데 활용된다.”

中 대학 교수가 20년 걸려 개발한 美 기술 도둑질

레이 국장은 중국의 이러한 정보 도둑질이 미국 대학의 과학자를 대상으로 한 천인계획(千人計劃)을 통해서도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면서, “중국은 비밀리에 미국 과학자에게 돈을 대 그 지식과 혁신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다. 결국 미국의 납세자들은 중국의 기술발전에 돈을 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국은 불법으로 획득한 기술로 미국 연구소와 기업의 활동을 방해하고 미국의 산업발전을 둔화시키며 일자리를 갉아먹는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점점 더 많이 목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이 국장이 예시한 중국의 기술 도둑질에는 일반인이 알 수 없는 전문 분야의 기술을 포함하며, 중국은 관련 기술을 훔치기 위해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다른 신분으로 위장해 미국에 파견하거나 재미화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무선통신 기술을 훔친 장하오(張浩) 톈진대학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2006년부터 미국의 통신기술회사인 스카이웍스 솔루션과 아바고에서 FBAR(Film Bulk Acoustic Resonators·박막 체적 탄성파 공진기)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2009년 중국으로 돌아가 톈진대학에서 교수로 일했지만, 이는 사실상 미국 기술을 빼돌리기 위한 위장전술이었다. 그는 미국 아바고에 입사한 2006년부터 공모자인 팡웨이와 함께 톈진대학 내에 벤처기업을 세우고 스마트폰의 주파수 대역폭을 커버하는 FBAR 필터 기술과 무선통신장비들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FBAR 기술은 스마트폰과 군용 통신기기에서 더욱 작고 효율적인 통신기기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군용 통신장비를 고성능·소형화하려면 이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아바고는 미국에서 이 분야의 선두를 달리는 업체로서, FBAR 기술을 개발하는 데 20년 이상의 연구개발 과정이 필요했다. 장하오는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아바고에서 훔친 기술과 장비를 톈진대학의 벤처회사로 옮겼는데, 이 기술이 중국의 군사통신장비 개발에 이용되었을 것이란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와 동료는 또 기술탈취를 숨기고 미 정부의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케이맨제도에 ‘노바나’라는 이름의 회사까지 설립했다. 그는 2015년 5월 미국에서 열리는 과학기술회의 참석차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내렸다가 체포됐고, 지난 6월 26일 열린 재판에서 경제스파이 및 무역비밀 절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 거주하는 재미화교인 셔산(石山·55)은 지난해 7월 29일 컬럼비아 특별구 법원으로부터 무역비밀 절취 모의 혐의로 16개월의 징역형과 34만달러의 재산몰수 명령을 받았다. 미 법무부 사이트(www.justice.gov/)에 따르면, 미국 시민권자인 그는 2013년경 중국 저장성 타이저우에 있는 중푸신소재과학기술유한공사(CBMF)와 계약을 맺고, 중국 최초의 ‘심해시추부력(浮力) 소재’ 제조라인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그는 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 CBMI라는 회사를 세운 뒤, 미국의 유리기포 강화 플라스틱 제조회사인 트렐레보그에 근무했던 퇴직자들을 고용해 ‘특허기술을 노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이 회사와 기술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이 기술은 가볍고 단단하며 질긴 구조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며 특히 잠수함 건조에 필수적인 소재로 알려져 있다. 트렐레보그의 전직 직원들은 CBMI와 피고인(셔산)에게 독점 정보를 이전했고, 셔산은 이 정보를 사용하여 중국에서 유리기포 강화 플라스틱 제조 프로세스를 완성했다. 그는 또 이 기술을 거대 국영기업인 중국해양석유(CNOOC)와 인민해방군(PLA)에 판매하려고 했다. 게다가 그는 미국에서 훔친 기술로 중국에서 특허를 낸 뒤 이 특허를 이용해 미국 기업과 합작회사 설립을 협상하기도 했다. 셔산과 그를 도운 5명의 미국인은 2017년 6월 체포됐다. 셔산이 휴스턴에 거주한 것으로 미루어, 그가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의 ‘지휘’를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평범한 중국 유학생이 과학기술 스파이로 돌변

이처럼 중국은 첨단과학과 군사기술에서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유학생과 기업인을 활용해 광범위한 스파이 행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에는 매년 10만명 이상의 중국 유학생과 연구자가 입국한다. 이들 전부가 정부의 스파이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장하오의 사례처럼 처음에는 순수한 학생 신분이었다가 어느 정도 기술을 익히면 공산당의 명령에 따라 ‘스파이’로 변하게 된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활동하도록 명령받은 로봇 같은 변신술을 연상하게 된다.

2019년 11월 유죄 판결을 받은 미국 영주권자 탄훙진(譚紅進·36)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중국 난징대학을 졸업하고 칼텍(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17년 6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미국의 한 석유회사에서 연구자로 근무했다. 그는 고정 에너지 저장장치 개발을 위한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 분야에서 일했다. 1년 반의 짧은 근무 기간 동안 그는 고용주의 허가 없이 수백 개의 파일을 다운로드받아 중국으로 넘겼다가 FBI에 적발됐다. 그가 넘긴 기술정보의 가치는 10억달러에 달한다. 탄훙진은 두뇌가 우수한 중국 인재가 미국으로 유학해 학위를 받은 뒤 미국의 첨단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는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 밖에도 아동용 엑소솜 분리 키트 관련 의학정보나 심장혈관 유전질환 관련 정보를 훔쳐 중국에 넘기려던 중국인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런 사례를 통해 볼 때, 중국은 과학기술 및 군사 분야에서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중앙정부 차원의 지휘본부를 두고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여 장기간 치밀한 ‘스파이 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국가안전부와 과학기술부 등 정부 부처와 인민해방군, 각 대학 연구소 등이 망라된 ‘해외선진기술 획득팀’이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레이 FBI 국장은 “중국 정부는 독재 특유의 효율성을 가지고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절도 행위와 악성 로비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그들은 집요하며 인내력이 있다. 중국 공산당은 앞으로도 우리의 사상을 악용하고, 우리의 정책결정자들에게 영향을 행사하며, 우리의 여론을 조작·왜곡하고, 기술과 자료를 훔쳐가는 행위를 지속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죽하면 미국 정부의 고위 관료 4명이 차례로 등장하여 미국민과 기업에 경각심을 일깨웠겠는가.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이처럼 광범위한 과학 절도 작전을 펼친다면, 반도체 분야 등 일부 산업에서 앞선 한국에 대해서는 어떤 스파이 활동을 벌이고 있을까? 우리 정부는 중국의 스파이 행위에 과연 제대로 대비하고는 있을까?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