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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
[2623호] 2020.08.31

트럼프 업고 큰 극우 음모론 집단 ‘큐어넌’의 정체

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judge003@gmail.com

▲ 지난 8월 2일(현지시각) 미 펜실베이니아주 윌크스배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선거 유세 집회에 참석한 한 남성이 극우 음모론 사이트 ‘큐어넌(QAnon)’을 지지하는 사인을 들고 있다. photo 뉴시스
음모론은 자극적이고 재미있다. 할리우드의 유명 인사들이나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사탄을 숭배하는 소아성애자들이고 이들이 ‘딥스테이트(deep state)’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비밀리에 지배하고 있다고 치자. 여기에는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톰 행크스, 오프라 윈프리 등 세계적 셀럽들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정의의 사도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비밀리에 전투를 벌이는 중이다. 이런 얘기를 듣는다면? 아마도 대부분 피식 웃고 넘어갈지 모른다.
   
   이 스토리는 원래 온라인의 변두리에서 흐르던 음모론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퍼지더니 이걸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미디어에서도 다루기 시작했다. 지난 8월 19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기자가 던진 첫 질문은 ‘큐어넌(QAnon)’이라는 음모론 집단에 관한 평가였다. 앞서 언급한 딥스테이트 음모론은 큐어넌의 핵심 주장인데 백악관 첫 질문에 등장했다는 건 그만큼 뜨거운 감자가 됐다는 뜻이다. “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그들은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이 음모론자들의 실체를 두둔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자 큐어넌 지지자들은 온라인에서 열광했다.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직접 나서 “대통령은 큐어넌에 대해 잘 모른다”고 급히 수습했지만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 돼버렸다.
   
   
   ‘큐어넌’의 탄생
   
   큐어넌의 탄생은 2017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국의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포챈(4Chan)에 정부의 고위 당국자라고 주장하는 익명의 사용자가 글을 올리면서 음모론 집단이 생겼다. 누군지 모를 그는 “글로벌 카르텔에 관한 기밀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최고 보안등급인 Q등급을 갖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고 스스로 ‘선명한 애국자 Q’라고 불렀다. 큐어넌이란 단어는 ‘Q’와 ‘Anonymous(익명)’의 글자를 합쳐 탄생했다. Q는 글에서 “이번 전쟁은 그들의 범죄에 대한 응징이며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폭풍으로 끝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들’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명인과 진보적인 셀럽들이고 이들은 음모론에서 악당으로 캐스팅됐다. 이 악당들은 딥스테이트의 일원으로 아이들을 학대하고 피를 먹으며 영생을 꿈꾸는 악마 같은 존재다. 게다가 전국에 아동 인신매매 네트워크를 거느리는 파렴치한으로 묘사됐다.
   
   이들의 음모론은 점점 가지를 쳐서 여러 이야기를 생산해 냈다.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했던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실제로 조사한 건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이 아니라 클린턴 전 장관과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민주당 고위 인사였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뮬러에게 지시한 사람은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선 획책을 공모한 사람이 오바마 전 대통령이라는 얘기도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건 CIA가 도와줬기 때문이라는 설도 나왔다. 이처럼 큐어넌의 음모론은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지만 관통하는 핵심 논리는 단순하다. 세계를 비밀리에 움직이는 딥 스테이트가 현 정부를 무너뜨리려 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처단하기 위해 성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케네디가 죽지 않고 Q로 활동?
   
   Q는 누구일까. 그간 많은 추측이 있었지만 실상 밝혀진 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일 거라고 믿는 사람이 많고 총탄에 절명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죽지 않고 Q로 활동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일 거라는 주장과 여러 명이 Q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주장이 혼재한다. 기밀에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익명의 게시자가 Q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속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조용히 소멸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 초기에 연방기관 관계자라고 주장하는 트위터 계정이 수십 개나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런데 유독 큐어넌은 생명을 유지한 채 더욱 번성하고 있다. 2018년 NBC는 Q의 게시물이 주류 소셜미디어 속에서 어떻게 설득력을 갖추고 퍼지는지 취재했다. 살펴보니 세 명의 음모론 각색자가 있고 이들이 유튜브와 레딧 등 더 큰 플랫폼에 어울리는 형태로 Q의 게시물을 가공했던 걸 찾아냈다. 일부에서는 이들이 Q가 아닌지 의심했지만 세 명은 모두 자신들은 Q가 아니며 Q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답했다. 어쨌든 그 세 명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큐어넌은 엄청난 양의 동영상 콘텐츠와 밈(meme)을 보유하게 됐고 커뮤니티와 채팅방 등에 많은 회원을 둔 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런 황당한 음모론을 누가 믿을까 싶겠지만, 굳게 믿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 중 일부는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을 일으키곤 했다. 2018년 6월, 한 큐어넌 지지자가 무기를 소지한 채 사제 장갑차를 몰고 후버댐 인근 도로를 가로막는 일이 있었다. 그는 클린턴 전 장관의 이메일 사건에 관해 숨겨진 법무부 보고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법무부가 발표한 보고서가 전부였지만 큐어넌 사이에서는 비밀 보고서가 따로 존재한다는 얘기가 진실처럼 돌았기 때문이었다. 마피아 두목이 일반인에게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 2019년 3월 뉴욕 5대 마피아 중 하나인 ‘감비노 패밀리’의 보스가 여러 발의 총을 맞고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범인은 큐어넌을 지지하는 20대 청년이었는데 스스로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을 받은 자경단이라고 믿었다. 살해 동기는 단순했다. 피해자를 딥스테이트의 유력 인사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월 23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코로나19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에 대한 혈장치료 긴급승인을 공식 발표했다. photo 뉴시스

   “페이스북 내에 수천 개 큐어넌 관련 그룹”
   
   이런저런 사건 속에서도 양지에서는 무시당했던 큐어넌이 백악관 질문에 등장할 정도가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음모론에 빠진 소수의 일탈로 무시해서는 곤란하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왔다. 미국 내 주류 언론은 사회가 생각하는 것보다 큐어넌의 음모론이 널리 퍼져 있다는 걸 증명했다. 지난 8월 11일 NBC는 페이스북 내부 보고서를 통해 “페이스북 내부에 수백만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수천 개의 큐어넌 관련 그룹과 페이지가 존재한다”고 보도했다. 대부분 사적인 그룹이라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던 건데 조사에서 확인된 상위 10개 그룹의 회원 수를 합하면 100만명이 넘었다.
   
   또 다른 지표도 있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7월 중순 큐어넌을 검색한 횟수가 1월 중순과 비교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게다가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페이스북의 큐어넌 페이지와 그룹들은 7월 말 기준으로 전년 대비 10배나 더 많은 ‘좋아요’를 얻었다. 그룹센스의 자료에 따르면 큐어넌의 인기 있는 해시태그를 사용한 일일 평균 트윗 수가 반년 전에 비해 190%가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양적 지표가 증가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코로나19 팬데믹과 맞물린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혼란이 큐어넌에 좋은 소재이자 환경이 된 셈이다. 이미 큐어넌 지지자들은 “코로나19는 인구를 통제하기 위한 딥스테이트의 음모”로 정의해 알려왔다. 여기에 원래 큐어넌과 결이 달랐던 테러나 백신 관련 음모론자들이 코로나19 음모론에 합류하면서 덩치가 커졌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콩코르디아대학 연구팀의 자료를 인용해 “큐어넌과 관련한 페이스북 상호작용의 대부분은 전염병이 시작된 이후에 일어났다. 올해 3~7월 사이에 큐어넌 페이스북 그룹에서는 7420만건의 상호작용이 있었고 2017년 10월부터 존재해온 164만명의 큐어넌 관련 페이스북 그룹 회원 중 120만명이 올해 3월부터 가입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부작용을 우려해 플랫폼이 개입한다고 해도 이런 음모론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본다. 트위터는 7월 말 큐어넌과 관련한 7000개의 계정을 삭제했다. 틱톡은 큐어넌과 연관성이 큰 주요 해시태그 두 개의 검색을 막아버렸다. 이런 차단은 큐어넌 지지자들에게 성전이다. 딥스테이트의 일원인 플랫폼 기업들의 탄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안 도노반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주요 큐어넌 인플루언서를 없애려면 플랫폼 회사들 사이에 긴밀한 조정이 필요하다. 그게 안 되면 큐어넌은 계속해서 다시 나타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소셜미디어의 틀을 벗어나 방송에 진출했다. 친(親)트럼프 매체인 케이블뉴스 채널 OAN이 담당하는 역할이다. 이곳의 기자들은 입증되지 않은, 입증할 수 없는 큐어넌의 주장을 자주 소개한다. 앞선 트위터의 계정 삭제를 두고 “딥스테이트가 저항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기자의 리포트가 버젓이 방송을 탄다.
   
   
   음모론자들 어휘로 FDA 공격한 트럼프
   
   또 다른 우려는 정치세력화에서 찾을 수 있다. ‘Q’라는 알파벳이 정치 행사에 처음 등장한 건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였다. 2년이 흐른 뒤 이들 중 일부가, 비록 소수일지라도 워싱턴 입성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졌다. 언론 감시기구인 ‘미디어 매터스’에 따르면 오는 11월 연방하원 선출직에 도전하는 후보 중 경선에서 승리하거나 결선 투표에 오른 14명이 큐어넌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와 실제 모습에서 큐어넌의 언어와 해시태그를 당당하게 사용한다. 여성 정치인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 대표적인데 당선 가능성이 큰 조지아주에서 결선 투표를 거쳐 공화당 하원 후보가 되면서 큐어넌의 주류화에 불씨를 댕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대단한 승리”라며 격려했던 인물이다. 이런 흐름에 일각에서는 과거 티파티(Tea Party)가 공화당 주류에 합류했던 것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
   
   가디언은 “큐어넌은 나이가 많은 공화당원들과 복음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큐어넌 속에는 마치 성경 공부와 비슷한 방식으로 Q의 메시지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하위문화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들의 논리에는 적(赤)그리스도가 있고, 아마겟돈과 같은 전쟁들이 있어서 마치 성경의 복음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전체 스토리에서 메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이고 그만이 큐어넌 지지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들을 자제시키기보다 자신을 위해 활용할 모양새다. 지난 8월 22일에는 재선을 막기 위해 FDA(미식품의약국)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늦추고 있다며 “FDA 내부의 딥스테이트가 실험자 확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트윗을 날렸다. 큐어넌의 단어를 사용한 메시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다만 CNN은 “이미 그들은 무모한 음모론에 관해 폭력적으로 행동하려던 의지를 보여준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용기를 줬으니 극도로 위험해졌다. 매우 위험해졌다”며 걱정했다. 그 걱정의 근원은 그들의 공격성에 있다. 큐어넌은 2019년 미 연방수사국(FBI)이 미국 내 테러의 잠재적 위협이라고 평가 내린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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