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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3호]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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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범의 차이나워치]베이다이허 굴뚝에 ‘후춘화 연기’가 피어오르다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hbjee@chosun.com

▲ 지난 5월 28일 막을 내린 중국 전인대 13기 3차 회의에서 시진핑(가운데) 주석을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가 맨 앞줄에 앉아 있다. 오른쪽 사진은 최근 공산당 내에서 부상하고 있는 후춘화 부총리. photo 뉴시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판인 인민망(人民網)에는 ‘중국공산당신문망(中國共産黨新聞網)’이란 하위 계정이 있다. 당 기관지답게 공산당 소식만 모아놓은 페이지다. 이 웹페이지 우측에는 7인의 공산당 상무위원 사진이 서열별로 배치돼 있는데, 맨 위의 시진핑(習近平) 사진을 클릭하면 그의 활동 소식을 모아놓은 전용 페이지(/http://cpc.people.com.cn/xijinping/)로 이동하게 된다. 시 총서기의 활동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지난 8월 1일부터 21일까지 3주간 활동에 공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시 총서기는 지난 8월 1일 오전 베이더우(北斗) 3호 위성항법시스템 정식 개통 행사에 참석한 뒤 오후부터 사라져 8월 21일에야 군부대 홍수방지활동 보고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3주 동안 공식 활동이 없었다는 얘기다.
   
   
   갑자기 몽땅 사라진 중 공산당 지도부
   
   공산당 서열 2위인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8월 1일 국가안전생산에 관한 화상회의 이후 8월 14일 한 법률 개정안에 서명하기까지 2주간 아무런 공식 일정도 없었다. 리 총리가 8월 9일 스리랑카 신임 총리에게 축전을 보냈다는 활동 기록이 있지만 이는 실무진이 총리 허락을 받아 대신할 수 있는 일이다. 서열 3위 리잔슈(栗戰書) 전인대 상무위원장 역시 지난 7월 30일 이후부터 8월 9일까지 활동에 공백이 있고, 서열 5위로 사회주의 이념선전 담당인 왕후닝(王滬寧) 상무위원 역시 8월 10일 전국 청소년연맹 행사에 참석하기까지 약 열흘간 활동이 빈다.
   
   이처럼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지난 8월 1일부터 최소 9일간 일제히 관영 매체의 동정 보도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해외 언론들은 매년 8월 초·중순 열리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집단 여름 휴가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진핑 총서기의 사실상 비서로 시 총서기가 가는 곳마다 동행하는 딩쉐상(丁薛祥)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 역시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8월 10일 왕후닝이 참석한 청소년 행사에 동행한 것 역시 베이다이허 회의 개최를 뒷받침하고 있다. 베이징에서 동쪽으로 270㎞ 떨어진 발해만의 베이다이허 해변은 8월 초부터 경찰의 경비가 대폭 강화되었다고 한다. SCMP의 중국 담당 기자인 윌리엄 쩡은 8월 18일 ‘중국의 연중행사인 지도부의 베이다이허 휴가가 비밀리에 벌써 시작됐나?’란 제목의 기사에서 “지난 7월 시진핑이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거기서 2035년까지의 발전전략을 제시한 뒤, 공산당 지도부가 갑자기 사라진 것은 여름 휴가지 회의가 시작됐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인 거주지에서 공산당 간부 휴양지로
   
   베이다이허는 19세기 말 청(淸) 조정이 ‘중국인과 외국인의 혼합 거주지’로 선포한 이래 휴양지로 개발되었다.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는 북방의 베이다이허와 남방의 루산(庐山)을 군정 간부들의 여름 피서지로 이용했다. 공산당 정권 수립 후 중국은 이곳을 당군정 간부들의 휴양지로 사용하다 1953년 여름부터 마오쩌둥의 지시로 국가 지도부가 단체로 이곳으로 이동하여 회의를 열고 업무를 봤다. 이를 ‘베이다이허 회의’라 부른다. 이 회의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사라졌다가 1979년 덩샤오핑이 재개했다. 덩은 매년 여름이면 대가족을 데리고 와 이곳에서 수영을 즐겼다. 1986년 여름 82세의 덩은 이 해변에서 일본 자민당 간부 니카이도 스스무(二階堂進)를 만난 자리에서 “내가 건강을 체크하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바다 수영을 통해 신체 건강을 체크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작을 두어 두뇌 건강을 확인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덩은 당 총서기직을 장쩌민에게 맡긴 뒤에도 종종 베이다이허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자신이 실권자임을 과시했다.
   
   1987년과 1997년 여름에는 당 지도부와 서기처 서기들이 이곳에 모여 13차 당대회와 15차 당대회 보고문을 검토했다. 매사에 조심하는 성격의 후진타오는 사스(2003년) 때 여름 휴가지 업무 제도(暑期辦公制度)를 폐지했지만, 간부들이 이곳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는 관행은 유지했다. 전·현직 최고 간부들은 이곳에서 공산당 계파 간 권력조율과 인사문제를 논의하곤 했다. 올여름 베이다이허 회합은 대략 8월 1~9일 사이에 있었다. 서방 언론은 이 회합을 교황 선출 비밀회의인 ‘콘클라베(conclave)’에 비유하기도 한다. 새 교황이 뽑히면 교황청 굴뚝에선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중 관영매체, 단 한 줄의 보도도 없어
   
   후진타오 시대까지만 해도 당정군 최고지도부의 여름 휴가 소식이 가끔 사진과 함께 보도되곤 했다. 그러나 2012년 시진핑 시대가 시작된 뒤부터 중국 관영언론은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는다.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점만 봐도 시진핑 시대는 이전보다 언론의 자유가 후퇴했다. 중국의 모든 신문, 방송, 인터넷매체는 공산당 선전부의 지휘감독을 받는데, 7인의 상무위원 중 선전업무 담당인 왕후닝은 시진핑의 책사이자 심복이다. 시진핑을 불편하게 할 보도는 그가 철저히 차단한다.
   
   시진핑 개인의 경험도 비밀주의에 한몫하고 있다. 시진핑은 일찍부터 정치적 라이벌인 보시라이(薄熙來)와 저우융캉(周永康) 세력의 강력한 견제를 받아 여러 번 암살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정보기관과 가까운 한 전직 외교관은 “중국 정치판에서 시진핑은 운이 매우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교통사고로 위장한 고의적 트럭 충돌사고, 음식에 독극물을 탄 암살 기도, 폭발 사고 등 무수한 테러 시도에도 그는 살아남았다. 그가 똑바로 걷지 못하고 약간 다리를 저는 것도 교통사고 후유증이다”라고 했다. 시진핑은 국가 부주석 시절이던 2012년 9월 보름간 잠적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교통사고로 위장한 테러를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집권 이후 그렇게 많은 공안(公安·경찰)과 군부, 지방간부들을 숙청한 것도 사법계통에 은신하여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저우융캉과 보시라이 잔존 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지금도 테러 위협에서 안전하지 않은 그는 자신의 동선(動線)에 대해 최고의 보안을 유지하며, 이 때문에 베이다이허 휴가 관련 보도도 철저히 통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외신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 비밀의 회합에 청진기를 들이댄다. 일본 니케이(日經)는 지난 7월 하순 베이다이허 회의를 전망하면서 “장쩌민, 주룽지, 후진타오, 원자바오 등 당의 원로들은 이번 회합에서 현 정부의 강경한 외교노선, 특히 미국과의 대결을 비판하면서 시진핑에게 ‘자만하지 말 것’을 주문할 것”으로 분석했다. 인도에 근거지를 둔 인터넷 경제매체인 ‘머니 컨트롤’은 회합이 이미 시작된 8월 5일 자 기사에서 “원로인 장과 주, 그리고 쩡칭훙은 초기에 시진핑의 집권을 지원했지만, 지금은 그의 통치 스타일과 정치에 분노하고 있다”면서 “베이다이허 회의는 이들이 시진핑의 정치와 파벌관리에 대한 비판을 통해 판을 뒤엎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중국에 ‘늙은 생강이 더 맵다’는 속담이 있듯이, 이 원로들이 파벌의 힘을 통해 시진핑의 권위를 훼손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늙은 생강’이 판 뒤엎으려 할 것”
   
   그러나 외부의 관측만큼 이번 비밀 회합에 충격적인 소식은 없는 듯하다. 일부 해외 반중(反中) 인사들은 당 원로들이 시진핑의 대미외교 등을 비판하며 ‘시의 퇴진’까지 요구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은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확인되지는 않는다. 또 시진핑의 낙마를 원하는 해외 반중 인사들의 소망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시진핑은 비밀 회합이 끝나자마자 중앙정법위를 동원해 ‘제2의 정풍운동’에 돌입했다. 당의 기강 잡기와 반대파 제거에 나섬으로써, 자신의 힘이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음을 내외에 과시하고 있다. 시의 권력은 이미 원로세력의 비판으로 흔들릴 만큼 나약하지도 않다. 공산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정치국은 시진핑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또 중앙과 지방의 요직에 끊임없이 자기 사람들을 앉힌다. 올 들어 그는 자신의 통치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국가 핵심 두뇌집단인 발개위(發改委·발전개혁위원회)의 간부급 인력 20명을 교체한 데 이어, 7명의 중앙부처 장관을 포함한 간부를 새로 임명하고, 29명의 지방 성장급 인사도 단행했다. 당 원로 그룹의 역할과 관련, 왕페이링(王菲玲) 미 조지아공과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는 “베이다이허 회합이 전·현직 지도자들의 비공식적 만남이라 해도 전통적으로 발언은 제한되며 모니터링된다”고 지적했다. 전직 최고지도자라 해도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라는 얘기다.
   
   
   시진핑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
   
   시진핑의 권력이 막강하지만, 반대파의 도전과 공격도 멈추지 않는다. 또 중국의 권력투쟁은 대체로 외곽에서 먼저 시작된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이 ‘해서파관’을 비판하는 한 편의 글에서 시작된 것과 같다. 이는 자신에 대한 타격은 최소화하면서 상대에게는 최대의 상처를 주려는 수법이다. 시진핑이 발해만의 별장에서 여름 휴가를 끝마칠 때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겨냥한 화살이 날아들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8월 12일 중국의 최고위층 자녀와 친척들이 홍콩에 수백억원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폭로 기사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서열 1위 시진핑의 큰 누나인 치차오차오(齊橋橋)는 1991년부터 홍콩의 부동산을 매입하기 시작하여 그의 딸 장옌난((張燕南) 등의 명의로 1930만달러(약 229억원)의 고급 빌라 등 5채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또 서열 3위 리잔수의 딸 리첸신(栗潛心) 역시 1500만달러(약 178억원)짜리 4층 타운하우스를 가지고 있고, 서열 4위 왕양(汪洋)의 딸 왕시샤(汪溪沙)도 2010년 200만달러(약 24억원)짜리 집을 사들였다. 이러한 폭로 기사는 중국 전·현직 지도자 중 누군가가 정보를 제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 보도가 시진핑과 그의 지지세력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인 것은 분명하지만, 타격의 강도는 그다지 크지 않다.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의 교수를 지낸 차이샤(蔡霞)가 시진핑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낸 것도 이즈음이다. 중앙당교는 중국 공산당 이념의 학술적 연구기관이자 중간 간부 교육기관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의 보도에 따르면, 공산당 당원이자 태자당 출신인 차이샤는 지난 6월 미국에서 “공산당은 한 사람 주변을 맴도는 정치 좀비가 됐다”면서 시진핑을 마피아 두목에 비유하고, “시진핑을 교체하자는 것은 이미 당내의 컨센서스를 이루었다”고 지적했다. 이 발언으로 그는 지난 8월 18일 공산당 당적(黨籍)과 연금을 박탈당했지만, “민중의 대열로 돌아온 것이 기쁘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비판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해도,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學習時報)의 부편심을 지낸 덩위원(鄧聿文)은 “공산당 내부의 상당수 개혁주의자들은 차이샤처럼 절망하고 있다. 대부분은 시 주석에게 책임을 묻고 당내 개혁세력에 사기를 불어넣기 위해 시 주석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중국 내에 퍼져 있는 민주개혁파의 여론일 것이다.
   
   
   리커창 총리의 후임은 후춘화?
   
   최근 중국 정치판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후춘화(胡春華·57) 부총리(정치국원)의 부상이다. 그는 후진타오에 의해 6세대 지도자로 발탁되었으나, 장기집권을 꾀하는 시진핑의 견제로 2017년 정치국 상무위원회 진입에 실패했다. 그러나 2019년 10월 24일 국가빈곤탈피투쟁전면조사영도소조 조장을 맡은 이후 그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지방 시찰과 각종 공작회의 개최와 독려, 외국 경제인 접견 등 리커창 총리가 직접 하기 어려운 수많은 현장 활동을 후춘화가 대행하고 있다. 게다가 그의 활동을 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중앙방송(CCTV)이 적극 보도하기 시작했다. 인민망(人民網)에서 ‘후춘화’를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기사 건수가 2014년 6건, 2015년 3건, 2016년 4건, 2017년 5건, 2018년 3건에 그쳤다가 2019년 8건으로 늘어나더니, 2020년 8월부터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뉴스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용을 보충해서 여러 번 보도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4명의 부총리(한정, 쑨춘란, 후춘화, 류허) 가운데 가장 왕성한 활동과 관영매체의 보도를 보여준다. 당 기관지의 보도는 곧 시진핑의 인정을 의미한다.
   
   이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후춘화는 리커창과 마찬가지로 후진타오 전 주석 중심의 ‘퇀파이(공청단파)’에 속한다. 이 때문에 3년 전 그는 시진핑의 가혹한 인사보복으로 당 정치국원에 머물러 정치생명이 끝나는 듯했다.
   
   그랬던 그를 살려준 것은 시진핑도 후진타오도 아니라, 중국 민심이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2017년 말 19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을 뽑는 전국대표 선거이다. 이 선거에서 반대표가 한 명도 없었던 사람은 오직 두 사람, 즉 시진핑과 후춘화뿐이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당 대표들은 시진핑과 함께 그에게 ‘반대 0표’의 명예를 안김으로써 그를 보호했다. 그만큼 그는 기층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 투표 결과는 ‘후춘화는 이 나라의 재목이니 누구도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라’는 민심의 표현이었으며, 이것이 시진핑에게도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했다고 나는 본다. 후춘화는 성격이 온화하고 덕망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국무원 부총리로서 전국을 누비며 농촌 빈곤탈피, 식량안보, 취업문제, 심지어 코로나 방역활동에 대한 격려 등의 업무를 지휘할 때 권위주의적인 태도는 찾아볼 수 없고 현지인들과 잘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2022년 가을 열리는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그가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하는 것은 물론 리커창을 이어 국무원 총리를 맡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홍콩의 시사잡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전망했다.
   
   시진핑은 자신의 라이벌인 리커창의 권력은 철저히 짓밟으면서도, 장차 자신을 보필할 후춘화를 키움으로써 후진타오 세력과의 갈등을 완화하고, 장쩌민 세력과 구 태자당 세력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듯하다.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는 그동안 권력을 독점하던 시진핑이 계파 간 안배와 권력분점을 통해 ‘집단지도체제’의 전통을 일부 되살림으로써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고, 이를 토대로 외부의 도전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거중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은 앞으로 미국과의 군사충돌을 최대한 피하고 서방과의 마찰을 줄이면서, 주변국 외교를 강화하여 미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확산기에 국제사회를 향해 성난 얼굴로 눈을 부라렸던 중국의 ‘늑대전사(戰狼) 외교관’들이 요즘 웃는 얼굴과 부드러운 말로 주변국을 대하는 까닭이다. 목표는 그대로고 전술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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