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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6호]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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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통신]실패한 영국의 포르노 규제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johankwon@gmail.com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은 오욕(五慾)으로 분류된다. 재욕·성욕·식욕·명예욕·수면욕이다. 이 중 범죄와 가장 관련이 깊은 욕망이 바로 재욕과 성욕이다. 그중에서도 성욕 산업은 인터넷 시대 들어 호시절을 만난 듯 성업 중이다. 현존하는 세계 웹사이트 중 4%가 포르노(porno) 관련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4%의 성인물 사이트가 인터넷 전체 데이터 통신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도 한다. 검색엔진 검색 건수의 약 4분의 1도 성인물 관련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미성년자인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판단능력을 갖추기도 전에 무방비로 인터넷 성인물의 공세에 노출된다는 사실이다. 한 포르노 차단 프로그램 개발 회사의 통계에 따르면 90%의 소년과 60%의 소녀가 18세가 되기 전 인터넷을 통해 성인물 포르노를 접해 보았다고 한다. 더 경악할 사실은 2005년부터 2013년 사이에만 ‘10대 포르노(teen porno)’ 검색량이 3배나 늘어 하루에 50만건에 달했다는 통계다. 청소년 성학대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수요가 있으면 반드시 공급이 따른다는 자본주의 원칙으로 인해 불법 성욕 산업이 현대사회 주요 범죄로 이미 등장한 상태다.
   
   
   세계 최초 포르노 사이트 연령 확인 법안
   
   영국에서도 미성년자들의 인터넷 성인물 노출은 큰 두통거리다. 영국 집권 보수당도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2015년 총선 당시부터 대비책 마련을 위한 입법 준비를 시작했다. 그 결과 2017년 말 ‘디지털 경제법 2017’이 하원을 통과했다. 세계 최초로 성적 내용물을 게시하는 상업 인터넷 웹사이트에 사용자의 연령 확인(age verification·통상 AgeID라고 불린다)을 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는 이 법을 통과시키고 나서 “드디어 인터넷에 만연해서 청소년을 해치는 성인물 사이트를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고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는 거의 1년 이상의 준비를 거쳐 2019년 7월부터 이 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한다면서 야심 찬 시행세칙을 그해 2월에 발표했다.
   
   하지만 이 법과 제도는 오히려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시행세칙 발표 후 야기된 각종 기술적 문제와 사생활·인권 보호 논란 등으로 법 시행이 수차례 연기되다가 결국 2019년 10월 갑자기 추진이 중단되고 말았다. 중단 이후 현재까지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으나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아직도 제대로 된 규제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영국 정부가 논란을 피해갈 효율적인 방안을 찾지 못해 결국 인터넷 성인물에 대한 규제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해석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8월의 ‘컴퓨터 대학 입시 대참사’(주간조선 8월 31일 자 ‘코로나19 때문에… 영국 컴퓨터 대학 입시 대참사’ 기사 참고)와 함께 영국 정부의 연속되는 ‘2개의 대후퇴(Two Big Setback)’라는 비난이 야당과 언론에서 나올 정도다.
   
   영국 정부의 해당 법 시행 중단 이유 중 하나인 기술적 문제 중에는 아주 망신스러운 절차상 문제까지 포함되어 있다. 2020년 12월 말 영국이 유럽연합(EU)과 완벽하게 결별하기 전까지 영국은 EU법에 따라야 한다. 그에 따라 영국은 모든 법 시행 6개월 전에 EU와 소속 회원국에 통보를 해야 하는 의무 규정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의무 통보가 포르노 규제 시행규칙 준비 과정을 거치는 동안 실수로 빠진 걸 시행 1일 전에야 발견했다.
   
   
   뭘 믿고 포르노 업자에게 내 정보 넘기나?
   
   법 시행 중단의 또 다른 이유인 사생활과 인권 보호 문제는 성인물 사이트 사용자 연령 확인을 위한 기술적 절차 때문에 야기되었다. 연령확인증인 ‘AgeID’를 받기 위해서는 운전면허증이나 여권 같은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제출해야 한다. 바로 이 단계가 영국 여론을 악화시켰다. “도대체 뭘 믿고 ‘성인물 취급상(porn peddlers)’들에게 내 인적사항과 신용카드 내용을 주어야 하나?”라는 반발이 일어났다. ‘peddler’라는 영어단어는 보통 마약상이나 밀매꾼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이기에 성인 웹사이트 업자를 영국인들이 그런 수준으로 취급한다는 뜻이다.
   
   성인물 사이트를 이용하는 일도 결국 사생활인데 자신이 누구인지 신분증으로 밝히라는 발상 자체에 영국인들은 경악했다. ‘성인물 사이트를 보기 위해 운전면허나 여권을 스캔해서 업로드하라?’ 영국인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흡사 성인용품 가게나 창녀촌을 출입하는데 여권을 스캔해서 등록한 후 성인임을 증명하고 이용하라는 것과 같다고 영국인들은 생각했다. 물론 현재도 술집에서 술을 사거나 담배를 살 때 혹은 성인용품 상점 출입 시에는 신분증을 요구해 나이를 확인한다. 그러나 보여주는 것과 기록을 남기는 일은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것이 영국인들의 생각이다. 더군다나 성인물이란 ‘개인의 성 취향(individual sexual preferences)’에 따라 선택하기 마련인데 그걸 영국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다? 사생활 문제에 엄청나게 민감한 영국인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성적 취향은 어떤 권리보다 보호받아야
   
   영국인은 개인의 성적 취향은 어떤 권리보다 더 보호되어야 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다고 믿는다. ‘빅 브라더 컴퓨터(Big Brother Computer)’의 존재를 이미 아는 영국인들은 “법이 시행되더라도 그런 기록은 해당 기관이나 회사가 가지고 있지 정부는 보지 않는다”는 영국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소규모 수공업 형태의 성인물 웹사이트 회사나 개인들을 어떻게 믿느냐는 주장도 여론의 동의를 받은 근거이다. 가장 큰 염려는 바로 정보 누출 문제다. 이런 민감한 자료의 소장처는 항상 해커들의 타깃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 민감한 자료가 누출돼 무차별적으로 공개되거나, 자료를 이용해 개인적으로 협박당하는 사태에 대한 염려도 언론 지면을 대거 장식했다. 성인물 사이트에 개인정보를 제출한 영국인들로서는 그 사이트가 해킹당한다고 생각하면 분명 악몽을 꿀 일이다. 이런 여론 악화로 인해 결국 영국 정부는 고심 끝에 법 시행 중단을 결정했다.
   
   사실 심각한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은 처음부터 상당했다. 일단 영국 정부가 성인물 사이트들이 어떻게 연령을 확인할지 그 방법과 기준도 정해주지 않고 무조건 알아서 하라고 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연령 확인 기술을 확보한 상업회사들이 성인물 사이트를 고객으로 삼아 준비를 하긴 했는데, 주로 소액의 인증 수수료를 소비자나 성인물 사이트가 물고 이용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정부의 보증이 있어도 믿을까 말까 한데, 심각하고 민감한 정보를 일반 상업회사를 믿고 밝힌다는 것은 의심 많은 영국인들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다시 궁여지책으로 나온 방안이 동네 구멍가게에서 성인물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포르노 패스(porn pass)’를 교통카드 사듯 사는 것이었다. 영국에는 한국의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증이 아예 없으니 운전면허증이나 여권을 제시하고 본인 확인을 한 뒤 ‘포르노 패스’를 사면 웹사이트에 기록이 남는 걸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상점을 방문해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뭘 사야 한다는 정말 구차한 방안이다.
   
   
   동네 가게에서 ‘포르노 패스’를 사라는 궁여지책
   
   어찌 되었건 1450만명의 청소년을 보호하자고 영국 성인 인구 5200만명의 거의 절반인 2500만명의 성인(연령 확인 절차에 대비해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던 업체들 추정)들이 연령 확인을 하게 만드는 불편을 끼치게 한다는 발상 자체가 인기가 없었다. 반대하는 측은 이런 모든 소동이 미성년자의 성인물 사이트 이용을 막자는 취지였다면 부모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해결될 문제라고 주장한다. 부모들이 하면 될 일을 왜 국가가 하느냐는 항변이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포르노 차단 프로그램으로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기도 하다.
   
   만일 법이 시행되어 성인물 사이트 성년 인증이 확실하게 된다고 부모들이 믿는다면 사실 더욱 더 위험한 사태가 벌어 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음주와 흡연 문제도 법이 확실하여 판매처에서 규제가 되니 안전하다고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은 걸 누구나 안다. 영국도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가짜 성인 신분증을 구입할 수 있다. 또 실제 미성년자가 술과 담배를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연령 확인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부모들이 청소년 컴퓨터에 인터넷 성인물 차단 프로그램(porn block and filter program)을 설치하라고 권한다. 성인물 차단 프로그램은 성인 차단은 물론 아이들이 어떤 사이트에 얼마나 접속하는지까지 모니터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차단만 하지 말고 자력으로 성인물 사이트 접속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굳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라고도 권한다. 예를 들어 ‘안티도파민 폰 블로커(Antidopamine Porn Blocker)’라는 프로그램은 포르노 사이트 차단도 하지만 동시에 웹을 사용하는 습관을 보다 건설적인 쪽으로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생산적인 쪽으로 사용자를 유도하고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웹과 성인물 웹을 광범위하게 차단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차단 프로그램을 사는 성인들 중에는 미성년자 자녀들이 아니라 성인물 중독에 빠진 자신을 위해 사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차단 프로그램을 사서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겨우 1~2주만 하고는 결국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부모들이 할 일에 왜 국가가 나서나
   
   또 다른 논란의 요점은 영국 내 성인물 사이트라 하더라도 영국 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IP(Internet Protocol) 주소만 대상으로 연령 확인 절차를 밟으라고 했다는 점이다. 법률 제정 의도로 봐서는 문제가 없지만 현실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 예를 들면 가상사설망(VPN·Virtual Private Network)을 이용하면 자신의 IP주소를 영국이 아닌 걸로 등록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성인 웹사이트는 가려낼 방법이 없다. 가짜 신분증으로 나이를 속이는 행위는 불법이지만 이 방법은 불법도 아니다. 개인 사생활 보호가 가장 큰 관심사인 영국인 대다수는 법이 실제 시행되었다면 연령 확인을 하느니 차라리 VPN을 이용해 성인물 사이트에 접속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국 정부가 국민들을 과보호하는 유모국가(nanny state)가 되려고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세상에는 수백만 개의 성인물 사이트가 있고 그들 사이트에는 매시간마다 수만 개의 이미지와 동영상이 올라오는데 성인 인증을 받아 들어가야 하는 웹사이트인지를 누구가 어떻게 가리는가”라며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동영상과 사진은 성인 인증을 받아야 하고, 저건 안 받아도 된다는 결정을 어떻게 내리느냐는 의문에 부딪히면 영국 정부의 시도는 사실 불가능한 실험이었다. 인공지능이 언젠가 기가 막힌 알고리즘을 개발해서 천지개벽식의 변화가 있지 않는 한 그런 시도는 결국 헛수고로 돌아가고 만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실패의 예로 미국의 금주조치를 드는 사람도 많다. 금주조치 이후 실제로는 술 소비가 더 늘어났고 밀주를 제조한 마피아들이 엄청난 돈을 벌어 현재까지 미국 마피아가 살아남게 됐다는 역설이다. 그런 이유로 네덜란드는 대마초를 비롯해 일부 마약은 합법화했다. 마약 단속이 실행되어 마약이 구하기 힘들어지면 마약 값이 오히려 오르게 되고 어떻게든 마약중독자들은 마약을 구하니 마약상들은 더욱 돈을 많이 벌게 된다는 것이 네덜란드 정부의 논리였다. 이렇게 인간의 욕망은 사실 법으로만 규제하기 어렵다.
   
   현재 영국 정부는 한발 물러나서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혹은 단체를 만들어 자율규제를 하라는 식으로 유도하고 있다. 광속으로 번져가는 인터넷의 악영향을 법률로 규제해서는 효과가 없다고 국가적·사회적 합의에 어느 정도 도달한 셈이다. 원래 영국은 정부 규제를 사전에 막기 위해 업체 자체로 자율 규제를 선택하는 전통이 강하다. 비디오나 영화를 사전에 심사해서 등급을 매기는 영국 영화등급분류위원회(BBFC·British Board of Film Classification)가 정부기관이 아니라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는 1912년 영국 영화업계가 자체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또 영국 통신회사들과 인터넷서비스업체(ISP·Internet Service Provider)를 비롯해 인터넷 관련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기술회사들이 거의 모두 참여해서 만든 인터넷 감시재단(IWF·Internet Watch Foundation)이라는 조직도 있다. 유해한 웹사이트 차단 업무부터 인터넷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법행위를 감시하는 단체이다. 민간인들의 헌금으로 유지하는 자선단체이지만 EU로부터 재정 지원도 받는다. 이 조직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영국에서 제작된 아동성학대 관련물이 1996년 전 세계에서 18%를 차지하다가 2018년에는 0.04%로 떨어졌다며 업적도 홍보한다. 지난해 IWF에 신고된 2200개의 청소년 성학대 관련 사이트는 거의 모두 영국 밖의 것이라고 한다.
   
   사실 IWF를 비롯한 각종 유관 단체들과 ISP 자체 노력으로 영국의 유해 사이트는 많이 차단되고 있다. 차단된 사이트 해당 페이지를 찾으면 다른 경고문 없이 단순하게 ‘해당 페이지의 URL(웹페이지 주소)을 찾을 수 없다(URL not found page)’라고만 뜬다. 이렇게 차단된 웹사이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자율규제 전통과 자유사상
   
   영국 정부의 연령 확인 제도 도입이 실패한 것은 결국 영국인 특유의 자유사상 탓이라는 분석도 많다. 영국인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특히 중요시한다. 인터넷 규제조치조차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감시·감독하려는 ‘인터넷 검열(censorship)’이라고 부르며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영국인들은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자신들의 생활을 규제하는 것에 대한 거의 동물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다. 보통 영국인은 자신들의 자유를 ‘소극적인 권리(negative right)’라고 정의하는데 누구도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권리라는 의미다. 그래서 좋은 목적에서 시작한 인터넷 규제라도 언론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도전으로 취급한다. 폭력적이거나 불쾌한 발언이 거슬린다고 규제하기 시작하면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결국 언젠가는 침해받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폭력적이고 불쾌한 발언이라도 실제 행동으로만 옮겨지지 않으면 용인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공공의 이익과 사회 통념 등등의 이유로 규제라는 이름의 검열을 시작하면 결국 “정부는 우리가 실제 말하는 것 말고 우리가 믿는 것마저 제도적으로 규제하려고 할 것(Government systematically legislating not just what we say but what we may believe)”이라는 걱정을 한다. 그러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똑같은 목적에서 다른 접근을 권하는 견해도 있다. 차라리 법을 제정해서 확실하게 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데 더 유리하기에 법 제정을 서두르자는 자유주의자들의 목소리다. 이들은 “헐겁고 융통성 있는 영국식 불문헌법으로는 정부의 권력을 제한할 수가 없다”는 일리 있는 주장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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