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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호] 2020.09.28

스캔들로 망명 떠난 카를로스 스페인 전 국왕의 운명

▲ 해외 망명길에 오른 스페인 후안 카를로스 1세. photo 뉴시스
지난 2014년 스캔들에 휩싸여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줬던 스페인 후안 카를로스 1세(82) 전 국왕이 최근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머물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지난 8월 해외 망명길에 올랐던 전 국왕이 마스크를 쓰고 주위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는 모습이 공개되자 동정의 여론도 일고 있다. 스페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후안 카를로스를 둘러싸고 스페인에서는 민주주의를 확립한 그의 공로를 인정하자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이번 기회에 군주제 자체를 재평가하자는 주장도 일고 있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1975년 11월 프랑코 총통 사망 직후 국왕이 되었다. 당시 나이가 37세에 불과했다. 당시 프랑코가 왕으로 지명했지만 명목상의 군주가 아니라 실제 통치하는 군주였다. 젊은 국왕은 예상과는 달리 파시스트 체제를 해체하고 스페인이 민주주의 국가로 이행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1978년에는 입헌군주제를 담은 헌법을 국민투표로 통과시켰다.
   
   
   아부다비 호텔서 모습 드러낸 카를로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1981년 2월 23일 발생한 군사 쿠데타를 무산시키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당시 안토니오 테헤로 중령이 2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의회에 진입하여 의원들과 각료들을 18시간 동안 인질로 잡았다. 20%가 넘는 실업률과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 등으로 불안한 정국에서 의회 지도자들이 무능한 모습을 보이자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었다. 발렌시아 지방에는 군대가 배치되기도 하였다. 프랑코 독재 이후 전체주의 체제를 수립하려는 군의 마지막 시도로 평가되는 사건이었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쿠데타 발발 다음 날인 2월 24일 오전 1시 최고사령관 자격으로 군복을 입고 행한 TV 연설에서 “국가의 영속성과 통합의 상징인 국왕은 스페인 국민들이 국민투표로 승인한 헌법의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력을 사용하여 방해하려는 그 누구의 시도나 행동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왕의 연설을 계기로 군사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스페인이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발전하여 유럽의 일원으로 발돋움하는 데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스페인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군림하며 명성을 누리던 후안 카를로스 1세는 플레이보이였다. 젊은 여성들과의 염문이 끊이지 않았다. 부인인 소피아 왕비와는 1990년부터 왕궁 내에서도 별거하였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2012년 4월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코끼리 사냥을 가면서 곤경에 처하게 된다. 당시 여행에는 내연관계였던 덴마크 출신의 여성 사업가 코리나 라르센(56)이 동행하였다. 국왕은 텐트에서 낙상하여 고관절 부상을 입고 스페인으로 급히 귀국하는데 귀국 후 스페인 언론에 ‘사냥’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내연녀와 아프리카 코끼리 사냥
   
   스페인 언론은 국왕이 보츠나와에서 무게 5t이 넘는 30살짜리 코끼리를 사냥했다고 ‘폭로’하였다. 국왕의 여행에 동행한 금발의 외국인 여성 라르센도 언론 보도의 초점이었다. 독일에서 태어난 그녀는 영국 런던에서 두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2004년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연인관계는 2009년에 끝났지만 친구관계는 유지됐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그녀의 두 아들을 매우 좋아하였다고 한다. 스페인 언론들은 런던, 모나코, 스위스 등에 있는 라르센의 아파트 주위에 진을 치고 파파라치처럼 따라다니며 폭로성 보도를 하였다. 언론들은 호사스러운 사파리 여행의 경비를 누가 댔는지 등을 따졌다. 이와 동시에 국왕 사위의 부패스캔들도 터져나왔다. 국왕이 소피아 왕비와 별거 중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소피아 왕비는 스페인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다. 당시 스페인 언론들은 국민들이 경제난으로 고통을 겪는 와중에 내연관계의 외국 여성과 호사스러운 사파리 투어를 즐기는 국왕을 맹비난하였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결국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였지만 그의 권위와 이미지는 회복불능의 타격을 입었다. 결국 그는 2014년에 아들 펠리페 6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사냥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전 국왕이 2008년에 파나마에 있는 회사의 스위스 계좌로 1억달러를 보냈는데, 최종 수취인이 후안 카를로스 1세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거금은 3년 뒤에 시작된 사우디의 메카~메디나 간 고속철 건설사업을 스페인 회사들이 담당하게 된 것과 관련한 커미션인지 의심을 샀다. 사우디 고속철 사업은 건설비만 5000억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이 중 7600만달러를 라르센에게 송금하였다. 스페인 언론이 라르센의 사생활을 추적하기 시작한 직후였다. 라르센은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큰 선물을 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국민들은 분노하였다. 돈을 스페인에 보내라는 온라인 청원에는 25만명이 서명하였다. 국내 여론이 들끓고 스페인과 스위스 검찰이 수사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지난 8월 갑자기 스페인을 떠났다. 사실상 해외 망명을 선택한 것이다.
   
   
▲ 지난 8월 사우디아라비아 고속철 ‘뒷돈’ 스캔들이 터진 후 스페인 시민들이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국왕 비판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망명 몰고 온 사우디 고속철 사업 ‘뒷돈’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지난 8월 3일부터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있는 에미리트팰리스호텔에 숙박하고 있다. 이 호텔에는 길이 1.3㎞의 해변이 딸려 있는데 ‘팰리스’라고 불리는 최고의 스위트룸은 하루 숙박료만 1만2600유로(1737만원)에 달한다.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머무는 스위트룸은 이보다는 작은 280㎡ 크기지만 역시 하루 숙박비가 6000유로(827만원)의 고가이다. 황금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방에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널찍한 테라스가 있고, 집사가 항상 대기하며, 쇼핑센터 직행 헬기용 착륙장도 있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이 호텔에서 9월 19일까지 44일간 숙박료로만 26만4000유로(3억6405만원)를 썼다.
   
   스페인 언론들은 “후안 카를로스 1세에게는 3명의 경호원만 붙어 있는데도 할 일이 없어 매우 외로워한다”고 관계자를 인용하여 보도했다. 방과 체육관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는 점점 더 외로워하고 있으며, 가끔 스페인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로 “다시 요트를 타고 항해할 수 있도록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후안 카를로스 1세와 통화한 한 측근은 언론에 “그는 스페인에 돌아갈 구실을 찾기 위하여 변호사와 종일 이야기한다. 휴가차 멀리 있는 것과 돌아갈 수 없어서 멀리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라고 말했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특히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바닷가 휴양지 산센소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국왕의 양위가 소피아 왕비와 정치인들 간의 음모의 결과라고 라르센이 주장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라르센은 프랑스 ‘파리마치’와의 인터뷰에서 국왕과의 내연관계가 2012년에 드러난 것도 치밀하게 꾸며진 국왕 폐위 음모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당시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나는 두 개의 전선에서 싸운다. 하나는 내 아내가 측근들과 형성한 전선이다. 그녀는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서두르고 있다. 왕비는 나보다도 아들에 대한 영향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두 번째 전선은 라호이 총리와의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그의 목표는 왕의 힘을 거세하고 군주정을 약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라르센은 “왕가는 쿠데타를 꾸미고 있었으며 외국인인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오랜 별거 소피아 왕비와 정치권의 음모?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스캔들 이후 스페인에서 군주정에 대한 여론은 악화되었다. 특히 청년층은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군사 쿠데타를 좌절시킨 사실 자체를 잘 모른다. 이들은 스페인의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군주정에 대한 호감도는 1995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의회에는 ‘군주정을 평가하자’는 청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소피아 왕비는 9월 초 마스크를 쓰고 해변을 청소하는 행사에 참석하였지만 아들 펠리페 6세는 거의 은둔생활을 한다. 왕궁의 경비도 크게 줄어들었다. 아버지인 후안 카를로스 1세의 귀국 여부에 대해서도 “(펠리페 6세가)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마드리드에 발을 내딛는 순간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게 최근 한 언론의 보도 내용이다.
   
   그러나 전 국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후안 카를로스 1세의 통치를 옹호한다’는 지식인 성명서도 발표되었다. 엘리지오 에르난데스 전 검찰총장은 지난 9월 11일 ‘공화주의자이지만 후안 카를로스 1세의 통치를 옹호한다’고 주장하면서 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했다.
   
   “범죄적인 수준의 미디어 재판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 스페인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최종심에서 유죄평결을 받을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어야 한다는 헌법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헌법에 따라 스페인 국가의 정치체제인 의회군주제의 상징인 국왕에게도 그러한 원칙은 적용되어야 한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의심의 여지 없이 (민주주의로의) ‘이행(Transition)’을 설계한 사람이다. 그는 프랑코 체제 이후 기적과도 같은 정치개혁법을 이끌어냈다. 스페인 역사상 처음으로 군사 쿠데타나 내란을 거치지 않고 하나의 정치체제가 변화하였다.”
   
   
   “쿠데타를 진압한 민주주의의 상징”
   
   특히 에르난데스 전 검찰총장은 후안 카를로스 1세 집권 당시 제정된 1978년 헌법의 가치를 강조했다.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참여하여 제정할 수 있었던 1978년 헌법은 역사상 처음으로 두 개의 스페인을 하나로 통합하는, 역사상 가장 초월적이며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이 헌법은 내전의 최종적인 종식을 상징하며, 오랜 독재와 시민항쟁을 끝내고 40년간의 정치적 안정, 사회·경제적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1981년 2월 23일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국왕이 아니라 공화국 대통령이 국가수반이었다면 쿠데타는 성공했을 것이다. 오직 국왕만이 쿠데타를 중지시킬 수 있었다.”
   
   후안 카를로스 1세에 대한 법적인 처리가 진행된 것은 없다. 스페인이나 스위스 검찰도 후안 카를로스 1세에 대한 공식 조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변호사를 통해 “검찰의 적절한 처분에 응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만 발표하였다. 당초 스페인 검찰이 8월 중에 수사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무런 발표를 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서두를 일이 없다. 우리는 이 문제로 나라가 더 소란해지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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