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에 피격돼 숨진 해양수산부 산하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해양수산서기(8급) A씨의 형 이래진씨(가운데)가 지난 9월 29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외신 기자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북한군에 피격돼 숨진 해양수산부 산하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해양수산서기(8급) A씨의 형 이래진씨(가운데)가 지난 9월 29일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외신 기자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제네바협약(Geneva Conventions)은 국제 적십자사 창설자이자 1901년 제1회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스위스 실업가 앙리 뒤낭의 제안으로 1864년 처음 체결됐다. 첫 협약은 ‘전지(戰地)에 있는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개선에 관한 조약’이다. 이후 제네바협약에는 ‘해상에 있는 군대의 부상자·병자·난선자의 상태개선에 관한 조약’(1906년), ‘포로의 대우에 관한 조약’(1929년), ‘전시의 민간인 보호에 관한 조약’(1949년) 등 3개의 협약이 추가됐다. 제네바협약을 비준한 국가들은 한국과 북한을 비롯해 194개국이나 된다. 때문에 전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제네바협약을 준수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특히 제4협약은 ‘분쟁 당사국들은 전시상황에도 민간인 부상자나 병자, 허약자 등을 특별히 보호해야 하며 조난자와 중대한 위험에 처한 자를 구조해야 하는 책무를 갖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제4협약 130조는 억류된 민간인이 사망하더라도 망자의 희망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화장할 수 없고 정중히 매장해야 하며, 131조는 피억류자가 억류국의 군인에 의해 사망했을 경우 억류국은 정식으로 조사하고 통지할 책무가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북한이 비준한 제네바 제4협약

북한이 지난 9월 22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한국의 민간인(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을 사살하고 시체까지 훼손한 만행과 관련해 국제사회가 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또 이번 사건을 투명하게 진상 조사하고, 책임자를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자국 국민이 무참하게 살해됐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북한과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등 엉뚱한 대응만 하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이번 사건에 대해 사과한 것을 두고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평가해 자신이 인권변호사 출신이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입증했다. 북한 통일전선부(통전부)는 지난 9월 25일 청와대에 보낸 통지문에서 “김정은 동지는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통지문은 당시 피격 상황에 대해 “우리(북한) 측 군인들의 단속 명령에 함구하고 불응하기에 더 접근하며 두 발 공포를 쏘자 놀라 엎드리며 정체불명 대상이 도주할 듯한 상황이 조성됐다”며 “우리 군인들은 정장의 결심 밑에 해상 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한 행동준칙에 따라 10여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다”고 밝혔다. 통지문은 “귀측 군부가 무슨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불법 침입자 단속과 단속과정 해명에 대한 요구 없이 일방적 억측으로 만행과 응분의 대가 등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강한 어휘를 골라 쓰는지 커다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제사회는 무엇보다 북한의 만행은 제네바 제4협약과 각종 국제법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북한의 한국 공무원 사살사건에 대한 통지문을 사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김정은이 이번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중요한 몸짓이지만 사과는 아니다”라면서 “북한군 병사가 지시·규정을 어기지 않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또 “북한 통전부의 통지문은 끔찍한 인권유린의 책임이 총격을 가한 당사자뿐 아니라 북한의 더 높은 권력자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긴박한 위협이 없는데도 민간인을 자의로 살해하는 것은 제네바협약을 위반하고 세계인권선언에도 저촉되는 행위”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퀸타나 특별보고관은 “북한이 희생자의 시신을 불에 태웠거나 유실했다면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라면서 “북한 정부는 희생자의 가족들에게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보상하고, 한국 정부도 이번 사건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북한에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25일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하며 코로나19로 인한 보건위기상황에 대비한 국가 비상 방역태세를 점검했다고 8월 26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photo조선중앙TV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월 25일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하며 코로나19로 인한 보건위기상황에 대비한 국가 비상 방역태세를 점검했다고 8월 26일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photo조선중앙TV 캡처

세계인권선언 3조와 5조

북한의 만행은 인권과 관련된 국제사회의 모든 법규와 규범을 위반한 행위로 전 세계적으로도 사상 초유의 엽기적인 범죄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언급했듯이, 한국과 북한이 종전이 아닌 전시상태이기 때문에 북한군의 만행은 전시 중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 제4협약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은 또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준수해야 하는 인류의 천부의 존엄성과 권리를 규정한 세계인권선언도 위반했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자유 및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면서 생명권은 전쟁과 분쟁 상황을 포함한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절대적 권리라고 강조하고 있다.

제5조는 어느 누구도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인 형벌과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1990년 발효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모든 인간이 고유한 생명권과 함께(제6조)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제9조)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이 역시 위반했다. 유엔해양법 협약(제98조)도 모든 국가는 자국 선박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는 한 바다에서 조난 위험에 빠진 어떤 인명에도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북한은 비준을 하지는 않았지만 1982년 유엔해양법에 서명한 바 있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는 1989년 채택한 결의에서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즉결처형은 금지돼야 한다’며 유엔 회원국들에 수용을 촉구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이 한국 민간인을 해상에서 구조하지 않은 채 총격을 가해 사살한 것 자체만으로도 유엔 결의 위반이기도 하다.

게다가 국제인권단체와 인권전문가들은 북한이 코로나19 예방을 명분으로 내세워 만행을 저지른 것에 더욱 분개하고 있다. 미국 인권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코로나19를 예방하겠다고 민간인의 무고한 목숨을 잔인하게 빼앗고 시신을 불태우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며 “북한 정권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했다”고 규탄했다.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은 단순히 북한 내 인권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에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사안”이라며 “이번 일은 북한이 인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한국인들도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켜줬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코헨 전 미국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이번 사건은 북한의 무법 행위를 보여주는 두드러진 사례”라면서 “인간의 모든 권리 중 가장 신성한 궁극적 권리인 생명권을 노골적으로 침해하는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해경이 지난 9월 28일 인천 소청도 인근 해상에서 해앙수산부 공무원 북한 총격 사망 사고와 관련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photo 해양경찰청
해경이 지난 9월 28일 인천 소청도 인근 해상에서 해앙수산부 공무원 북한 총격 사망 사고와 관련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photo 해양경찰청

“인간 기본권 박탈한 잔혹 행위”

코헨 전 부차관보는 “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지역 협력을 촉구했지만 코로나19 방역 등을 구실로 한국인을 사살해 불태운 북한 정권의 만행은 이런 협력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과 도전을 제기한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유엔 사무총장과 세계보건기구(WHO)에 진상조사와 협력을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의 브래드 아담스 아시아지부장은 “북한의 만행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한 잔혹한 행위”라면서 “만약 북한의 방식이 맞는다면 전 세계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수천만 명을 모두 죽여야 하는데 이는 명백하게 반인륜적인 행동이며 납득할 수 없는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민간단체인 북한자유연합 수잔 숄티 대표는 “이번 사건은 북한 정권의 절대적인 잔혹성을 보여준 매우 끔찍한 일”이라면서 “코로나19와 이번 사태를 연관시키는 것 자체가 바로 공산주의 국가의 행태이며 북한에선 지금까지 코로나19에 걸리면 그냥 죽이기 때문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이번 사건과 관련해 주목할 점은 북한의 만행을 지시한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고 국제인권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인권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고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의 라비나 샴다사니 대변인은 “이번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위법행위 증거가 발견된다면 국제인권법에 따라 관련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조치가 취해져야 하고 향후 비슷한 사건이 다시 발생할 것을 막기 위한 절차도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칼라튜 HRNK 사무총장은 “국가수반이라도 국제범죄에 책임이 있다면 면책되지 않는다는 뉘른베르크원칙(Nuremberg Principles)에 따라 이번 사건의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주 대법관 출신의 마이크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위원장은 “이번 사건에 대한 유엔 차원의 조사가 실시돼야 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만행을 저지른 북한의 책임자를 ICC에 제소해 처벌할 수 있을까. ICC에 관한 로마규정 제13조에 따르면 ICC가 관할권을 갖는 경우는 세 가지다. 첫째 당사국에 의해 사건이 회부된 경우, 둘째 유엔 안보리에 의해 회부된 경우, 셋째 ICC 소추관(검사)이 독자적으로 사건에 착수한 경우 등이다. 로마규정 제12조 제2항에 따르면 첫째와 셋째의 경우 범죄가 발생한 국가나 범죄 혐의자의 국적국이 로마규정을 수락했거나 아니면 ICC의 관할권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실현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북한이 로마규정에 동의하거나 이번 사건에 대해 ICC의 관할권을 수락해야만, ICC가 이번 사건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이 로마규정을 수락하거나 이번 사건에 한해 ICC의 관할권을 인정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둘째의 경우처럼 이번 사건을 안보리에 회부했을 경우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안보리가 이번 사건을 ICC로 넘길 수 있다. 이 경우 북한의 로마규정 수락 여부와 ICC의 관할권 인정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이번 사건을 ICC에 넘기는 것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국제인권 전문가들은 뉘른베르크원칙을 이번 사건에 적용할 경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데 국제사회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뉘른베르크원칙은 나치 독일 전범들을 처벌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유엔 총회가 1946년 12월 만장일치로 결의한 국제법의 기본 조항들이다. 그 주요 내용을 보면 국제법상의 범죄를 실행한 자의 형사책임(원칙 1), 국내법이 형벌을 가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하는 국제법상의 형사면책의 불가(원칙 2), 국가원수 또는 책임 있는 형사면책의 불가(원칙 3), 평화에 대한 죄, 전쟁범죄, 인도에 대한 죄의 가벌성(可罰性)(원칙 6) 등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북한 정권의 최고지도자를 처벌할 수 있다.

각국 대표들이 194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 제4협약을 논의하고 있다. ⓒphoto ICRC
각국 대표들이 194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 제4협약을 논의하고 있다. ⓒphoto ICRC

“공무원 피격 책임자는 김정은”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은 절대로 정장(대위)의 독자적인 결정으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북한군 서해함대 8전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탈북자도 북한군은 월북자를 발견한 즉시 인민군 해군 8전대에 보고하고, 8전대는 해군사령부에, 해군사령부는 인민군 총참모부와 최고지도부까지 각각 보고한다고 밝혔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군은 NLL(서해북방한계선), DMZ(비무장지대)와 같은 군사적 분쟁 지역에서 평양의 지시 없이는 총이나 포탄을 발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의 책임자는 김정은이라고 말할 수 있다. ICC는 지금까지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과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평의회 의장 등 현직 국가원수들에 대해 반인도적 범죄 혐의 등으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유엔 공식기구인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채택한 보고서에서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에 ‘가장 책임 있는 자’를 ICC에 회부해야 한다고 적시해왔다. 유엔 제3위원회는 COI의 이런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만든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15년째 채택해왔고, 유엔 총회도 전체회의에서 제3위원회에서 통과된 결의안을 통과시켜왔다. 한국은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결정에 따라 김정은을 처벌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 유엔 제3위원회 결의안의 ‘공동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국제사회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 정권과 ‘최고존엄’인 김정은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문재인 정부는 이번에도 유엔 제3위원회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자국 국민을 무참하게 살해한 북한의 만행에 대해서도 규탄에 앞장설 가능성이 낮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유엔 차원의 국제진상조사단 구성이나 안보리 회부와 ICC 제소 등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종전선언을 하자는 주장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이던 2017년 4월 “북한은 도발 즉시 국가적 존립을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문재인은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 정권과 김정은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 최고지도자의 가장 큰 책무라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평화를 외쳐도 인권 보장 없는 평화는 무의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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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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