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과 주한미군이 연합훈련의 일환으로 부교 설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US Army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연합훈련의 일환으로 부교 설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US Army

문재인 정부의 반미친중(反美親中) 노선으로 한·미 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리고 있다. 특히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문 정부의 ‘확증편향’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미국 조야에서 한·미 동맹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확증편향이란 심리학적 용어로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을 뜻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수혁 주미 한국대사의 ‘망언’을 들 수 있다. 이 대사는 지난 10월 12일 화상으로 진행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주미 대사관 국정감사에서 “한국이 70년 전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향후 70년도 미국을 선택해야 하느냐”라면서 “70년 동맹을 맺었다고 앞으로도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것은 미국에 대한 모욕”이라고 밝혔다. 이 대사는 유고슬라비아와 독일 주재 대사와 국정원 1차장 등을 지낸 전형적인 외교관 출신이다. 또 국회의원도 지냈고 더불어민주당에서 국제위원장과 정책위원회 상임부의장 등을 지낸 노련한 국제통이다. 정식 명칭인 특명전권대사는 주재국에 국가를 대표하는 자격을 가지고 상주하는 최고위 외교관이다. 때문에 대사의 연설이나 발언은 자국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다. 이 대사의 국감 답변은 앞으로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볼 때 문 정부가 추진하는 외교·안보 노선의 분명한 방향을 증명한 셈이다.

주미 대사 발언 문제 삼은 미국

미국 국무부는 이 대사의 발언과 관련해 “70년 역사의 한·미 동맹과 역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한·미 동맹이 이룩한 모든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는 논평을 이례적으로 내놓았다. 국무부는 “한·미 양국은 동맹이자 친구로서 공유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국제사회 질서를 훼손하려는 자들을 비롯한 새로운 도전들에 맞서기 위해 지속해서 함께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국무부가 주재국 대사, 그것도 동맹국 대사의 발언을 정면 반박하는 것은 흔치 않을 뿐만 아니라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국무부가 주미 한국대사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은 전례가 없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한국이 미래에 다른 파트너를 선택한다면 학자들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했던 70년을 한국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번영했던 시기로 기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사는 지난 6월에도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는다”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당시에도 미국 국무부는 “한국은 이미 수십 년 전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때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고 반박했었다.

그런가 하면 문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외면하고 ‘종전선언’에만 집착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국 조야에선 그 의도에 대해 상당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월 23일 화상으로 열린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종식돼야 한다”면서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도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당시 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8일 화상으로 열린 한·미 친선 비영리재단인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만찬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라며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해 한·미 양국이 협력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북한군의 서해 표류 공무원 사살 사건 직후의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 이어 2주 만에 다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꺼내든 것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만이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오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에 한국 등이 참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photo DOS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에 한국 등이 참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photo DOS

종전선언 제안은 김여정 담화에 대한 답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은 지난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 대한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김여정은 ‘비핵화 조치 대 제재 해제’라는 미·북 협상의 기본 틀을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 대 미·북 협상 재개’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여정의 담화는 제재 해제를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로 바꾼 게 아니라, 미·북 협상 재개를 위한 조건을 추가한 것이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김여정이 요구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를 한반도 종전선언으로 잘못 해석했다. 특히 김여정이 주장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는 사실상 한·미 동맹 폐기를 요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정권은 그동안 미국 정부에 적대시 정책 철회의 일환으로 한·미 연합훈련 폐기, 주한미군 철수, 미·북 평화협정 체결 등을 요구해왔다. 종전선언은 당초 노무현 전 정부의 구상이었다. 노 전 정부의 의도는 종전선언과 함께 미국과 북한이 협상을 시작하고 핵을 폐기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종전선언을 지지한다”면서도 “북한이 핵을 폐기한다면”이라는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문 정부가 또다시 노 전 정부의 전철(前轍)을 그대로 밟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노동당 창당 75주년 열병식에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전략 무기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비롯해 한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초대형 방사포 등 이른바 ‘신무기 4종 세트’와 신형 전차, ‘북한판 스트라이커’ 장갑차 등 최신예 전술 무기들을 공개하면서 오히려 전쟁할 수 있는 군사력을 대폭 강화했다.

특히 2018년 이후 남북, 미·북 정상회담과 9·19 군사합의로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되는 상황을 이용해 북한 정권은 한국을 직접 위협하는 신형 재래식 무기 전력을 증강함으로써 적화통일의 야욕까지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문 정부의 주장대로 종전선언을 한다면 자칫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유엔사 해체, 한·미 동맹 폐기 등을 주장할 명분만 줄 수 있다.

미국 조야는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마크 내퍼 국무부 한·일담당 부차관보는 “한국의 외교부와 청와대 등 각 부처 대표들과 미국의 관계부처 대표들이 마주 앉아 공동 목표인 비핵화와 남북 관계가 함께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엄격히 보조를 맞춰야 한다”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의지에 부응하지 않고 핵 및 불법 미사일프로그램을 해결하지 않는 한 압박 캠페인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상원 외교위원회의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민주당)도 “북한의 비핵화에 진전이 있을 경우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 타당한 순서일 것”이라고 밝혔다. 상원 군사위원회의 댄 설리번 상원의원(공화당)도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종전선언을 논의할 수 있다”면서 “종전선언을 위해서는 38선 인근에 배치된 북한의 도발적인 병력 문제도 함께 제기돼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12년 만에 삭제된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은 “종전선언은 중국, 러시아, 북한이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한·미 연합훈련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구실만 줄 뿐”이라면서 “한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미국 의회, 행정부의 입장과 이렇게 일치하지 않는 연설을 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혹평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정책 조정관은 “미국은 비핵화 조치가 수반되는 핵 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종전선언이라는 카드를 사용할 의사가 있지만, 그렇지 않고는 종전선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문 대통령이 거꾸로 알고 있는 것 같다”며 “종전선언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의 열쇠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 달성이 한국전쟁의 영구 종식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제의하면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뿐 아니라 재래식 병력위협 감소에 대한 진전이 없으면 종전선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심각한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양국 정부는 지난 10월 14일 워싱턴에서 열린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서욱 국방장관이 각각 대표로 참석한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과 방위비 분담금 문제, 주한미군 유지, 사드 배치 등을 놓고 충돌했다. 회의 종료 후 예정됐던 양국 국방장관의 기자회견도 취소됐다. 특히 이번 SCM 공동성명에는 ‘주한미군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라는 표현이 빠졌다. 해마다 SCM 회의가 끝난 이후 공동성명에 포함됐던 조항이다. 이런 조항이 삭제된 것은 2008년 이후 12년 만이다. 지난해 11월 15일 서울에서 개최됐던 SCM 회의에서 한·미는 공동성명에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공동성명에는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의 무력분쟁 방지와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지속 수행할 것임을 재확인했다’라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 정부에 주한미군 병력 유지 조항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지만, 미국 정부는 이를 거부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데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이행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번 공동성명의 11항을 보면 ‘에스퍼 장관은 2020년 말까지 지난 2016년 작성된 위기관리합의각서를 최신화해야 할 필요성에 주목하였다’라는 대목이 있다. 위기관리합의각서란 양국의 연합위기관리 대응 지침을 규정한 최상위 문서로서 그 범위가 규정돼 있다. 현행 위기관리합의각서에는 연합위기관리의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로 제한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 문구를 수정해 ‘미국 유사시’라는 조항을 추가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미국 유사시’는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을 말한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2조는 ‘당사국 중 어느 1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이 서로 협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제3조는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서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 정부로선 한·미동맹이 상호방위조약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에 한국이 자국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요청대로 위기관리합의각서를 개정할 경우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할 것을 우려해 이를 거부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이 추진하는 ‘쿼드 플러스(Quad Plus)’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수혁 주미 대사가 지난 10월 12일 국회 외통위 주미 대사관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photo 국회방송
이수혁 주미 대사가 지난 10월 12일 국회 외통위 주미 대사관 국정감사에서 답변하고 있다. ⓒphoto 국회방송

중국 의식한 위기관리합의각서 개정 문제

문재인 정부는 또 미국이 화웨이 등 중국 IT 기업들을 배제하기 위해 적극 추진하고 있는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 구축에도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0월 14일 워싱턴에서 화상으로 열린 키스 크라크 국무부 경제차관과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이 각각 대표로 참석한 제5차 한·미고위급 경제협의회(SED)에서 문재인 정부에 클린 네트워크 구축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클린 네트워크는 5G 통신망과 모바일 앱, 해저 케이블, 클라우드 컴퓨터 등에서 화웨이와 ZTE 등 미국이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중국 IT 기업 제품을 배제하려는 정책으로,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동참을 촉구해왔다. 실제로 미국 국무부는 중국산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사례로 다른 나라 기업들과 함께 한국의 KT와 SKT를 포함시켰다. 미국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LG유플러스의 화웨이 사용 중단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동통신 사업자가 특정 업체를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는 문제는 관계 법령상 민간 기업이 결정할 사항”이라면서 미국의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양국 정부가 안보와 경제 분야에 이처럼 극명한 이견을 보이면서 앞으로 한·미 동맹 관계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 직면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특히 11월 3일 실시되는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이 되든, 미국 정부가 앞으로 중국과의 대결 노선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문재인 정부의 친중 노선은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주한미군 없이는 안보를 지킬 수 없고, 미국 업체의 부품과 기술 없이는 한국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미·한 동맹은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개방적인 정보 접근, 자유무역 등 양국이 공유하는 가치와 이상에 기반을 뒀지만, 한국은 중국과는 어떤 가치와 이상도 공유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도 “한국이 중국과의 경제 관계, 북한과 관련한 중국의 중요성, 미·한 동맹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한 동맹을 강화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상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튼 미·중 간의 신냉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하지 않을 경우 자칫하면 한국의 안보와 경제가 파탄 날 수도 있다는 점을 문재인 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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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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