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 국정감사에서 답변 중인 김현미 국토부 장관.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 국정감사에서 답변 중인 김현미 국토부 장관. ⓒphoto 뉴시스

얼마 전 한 일간지에서 ‘5분 연설’로 스타가 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두 의원의 견해를 묻는 내용이었다. 윤 의원은 “부동산 정책은 시장 수요에 발맞추는 정책”이어야 한다고 말했고, 진 의원은 현 집권세력의 레퍼토리인 “주택은 투자하는 자산이 아니라 사는 곳이고 공공재”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부동산을 바라보는 여야의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뷰였다. 또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민주당이 서울의 집값 급등을 일으켰다는 생각을 새삼 각인하는 인터뷰였다. 진 의원은 현 정부의 청와대 비서관 출신으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냈다. 그는 서울의 재개발·재건축을 한사코 막았던 박 전 시장과 똑같은 부동산 시각을 가진 인물이다.

진성준 의원의 주장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흥선대원군이 떠올랐다. 일본이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으로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 칠 때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고집해 나라를 패망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다. 필자가 150년 전의 아픈 역사를 새삼 조명하는 이유는 지금 한국과 일본이 주택 공급 정책을 두고 접근하는 관점이 그 시절 두 나라의 정책적 시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150년 전 상기시키는 한·일 부동산 정책

안드레 소렌슨(Andre Sorensen) 토론토 스카보로대 교수는 그의 논문(Building world city Tokyo: Globalization and conflict over urban space)에서 ‘일본 도쿄도(都)가 도쿄의 전입인구보다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한 배경’을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그 배경에 대해 도쿄가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등과 벌이는 아시아 거점도시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박감이 작용했다고 말한다. 런던시가 발행한 ‘하우징 인 런던 2017’에 따르면 일본의 연간 주택 공급량은 기존 재고의 약 2%에 해당하는데 이는 런던, 파리, 뉴욕의 연간 주택 공급량보다 2배 많은 수준이다. 예를 들어 2013년 기준 도쿄도 주택의 수는 전체 가구 수보다 84만9000호가 많았다. 공급이 수요보다 약 90만호 많다는 것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소렌슨 교수에 따르면, 19세기 후반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지배층의 DNA에 깊숙이 자리 잡은 실용주의 정신이 도쿄의 부동산 개발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일본은 1850년대 미국 등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을 받았다. 그런데 메이지 일왕은 쇄국으로 문을 닫아버리는 대신 자신을 침략했던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법률과 각종 제도를 배워 발전의 초석으로 삼았다. 아무리 미운 적이라도 좋은 점은 배우는 것이 국가의 생존전략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실용주의 정책이었다. 메이지 일왕이 택했던 그 정신이 일본 지배층의 DNA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의미하는 글로벌화 시대에 도쿄를 생산성이 높은 도시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아시아의 거점도시로 도약하려면 개발 규제를 대폭 완화해 주거비용을 낮춰야 한다는 사실에 일본 여론이 동의했다는 분석이다. 도쿄도에 거주하는 가구의 수보다 많은 주택 공급이 이뤄진 배경이다.

최근 BBC 방송은 ‘아시아 비즈니스 리포트’라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흥미 있는 내용을 소개했다. 아시아의 금융허브인 홍콩을 대체할 수 있는 후보 도시를 거명한 뒤 각 도시의 장단점을 평가하는 내용이었다. 중국이 지난 8월 홍콩보안법을 통과시켜 홍콩의 안정성이 문제되고, 금융시장의 투자금과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 홍콩의 위상이 추락하자 BBC가 긴급 프로그램을 편성한 것이다. 이 프로에서 도쿄는 상하이, 싱가포르와 함께 홍콩을 대체할 수 있는 후보 도시로 손꼽혔다. 반면 서울은 아예 후보에 거론되지도 않았다. 서울의 저조한 경쟁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서울의 국제 금융허브 경쟁력 순위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세계 6위였지만 올해 36위로 추락했다.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 정책이 바뀌기 때문이다. 세계 3위의 경제대국 일본은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경제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경제 규모 기준으로 세계 10위권 밖에 있는 한국은 정권의 부침에 따라 경제 정책이 춤을 춘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약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부동산 정책은 정권별로 어떤 특징을 보였을까. 노무현 정부 이전 시기의 정책은 생략하고 그 이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복기해보겠다. 최초의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나 제2공화국 이후 36년 만에 여야 정권 교체를 이뤄냈던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기존의 정부 정책과 별 차이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에서 좌파와 우파의 차이

한국에서 국가적 어젠다를 두고 좌파와 우파를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미래 세대에 엄청난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 등 4대 연금 개혁을 차일피일 미룬 것은 우파 박근혜 정부나 ‘공정’을 밥 먹듯이 노래하는 좌파 현 정부나 똑같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코로나19로 사업의 호기를 맞이한 원격의료는 1990년부터 지금까지 30년째 시범사업만 하고 있다. 본 사업이 지체되는 이유는 전직·현직 대통령들이 유권자의 표심을 잃어 권력을 내놓기 싫어해서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의료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원격진료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일본 스가 총리가 달리 보인다. 이 땅에는 어찌해서 권력을 탐하는 정치꾼만 있고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진정한 정치가는 없는 것인지 안타깝다.

최광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좌파·우파의 판별 기준으로 ‘개인을 강조하거나 중심에 두면 우파이고, 공동체나 집단을 강조하면 좌파’라고 해석한다. 좌파는 집단, 공동체를 강조하여 정치적으로는 인민민주주의 체제,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 지시(계획)경제 체제를 신봉하는 반면, 우파는 정치적으로 자유주의 사상,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경제 정책은 가치 판단의 문제다. 정책 입안과 집행 권한을 가진 자의 이념적 성향이 경제 정책에 반영된다. 좌파와 우파는 경제 정책을 대하는 이념적 접근이 다르다. 좌파는 시장경제가 무질서하여 시장 실패가 발생하므로 정부가 해결사 역할을 하는 큰 정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증세(增稅)를 선호한다. 반면 우파는 정부 역할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정부 조직의 비효율, 권력남용, 부패를 일으키고 정부 실패로 이어진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우파는 작은 정부와 감세(減稅)를 지향한다. 즉 우파는 기업 활동의 독과점이 낳는 폐해는 국가가 심판자로 나서서 해결하지만 치안, 사법 등 각종 행정권한을 국가가 독점하면서 발생하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는 치유가 불가능하므로 작은 정부를 만들어 정부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좌파의 관점으로 본다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이해할 수 있다. 분양가상한제와 전월세상한제 등을 실시한 것도 시장이 실패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성준 의원이 “주거권은 기본권이고, 주택은 필수 공공재”라고 말하고 “부동산 정책의 기본 목표는 1가구1주택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은 온전히 좌파의 세계관이다. 그 결과 다주택자는 공적(公敵)이라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수요 측면의 논리를 정리하면 좌파는 ‘우리가 남이냐’며 공동체를 중시하므로 주택은 1가구1주택이면 충분하다로 귀결된다.

좌파는 공급 측면에서 공공의 역할을 강조한다. 시장은 ‘악’이고 ‘공공’이 선이라고 이미 선을 그어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 공급은 공공이 해야 하는 일이고 만일 민간이 공급한다면 개발업체와 분양받는 개인의 이익은 최대한 회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들이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이유는 부동산의 이익은 공공이 도로 등의 생활 인프라시설을 깔아줘서 가능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서다.

필자의 판단으로 최초의 좌파정부라고 볼 수 있는 참여정부의 정책을 살펴보자.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이라크 파병, 한·미 FTA와 같은 국정과제에서는 실용주의에 입각한 우파적 접근을 했다. 그러나 부동산 분야에서 참여정부의 정치적 색채는 좌파의 모습을 보였다. 참여정부는 처음으로 종합부동산세를 시행했고 재산세율 인상,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원가 공개 등 기존 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규제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렇다면 현 정부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가 도입했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폐기되었던 종부세, 분양가상한제 등을 부활시켰다. 게다가 새롭게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임대차신고제를 시행 중이거나 관련 법령을 통과시켰다. 또한 10월 말부터는 수도권 주택을 매입할 때 거래가액을 불문하고 자금조달 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중국 등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규제가 버젓이 세계 10위권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파는 정부의 역할은 국방, 치안, 공중보건 및 교육 등의 분야에 치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빈부격차 확대 등의 후유증을 제거하기 위해 사회보장제도와 소비자 보호에 힘쓰고 기업의 반독점행위 감독 등에서 추가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규제 설치 순식간, 제거에 5년 이상

우파는 이 같은 시각에서 부동산 정책을 펼쳤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한 뒤 노무현 정부가 심어놓은 규제를 제거하기 시작했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서야 그 규제는 해소될 수 있었다. 규제 설치는 순식간이었지만 제거하는 데는 5년 이상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좌파와 우파의 부동산 정책 중 어느 쪽의 선택이 옳았을까. 2003년에서 지금까지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의 상승률 추이를 보면 규제가 많았던 참여정부와 현 정부에서 집값은 오히려 급등했음을 알 수 있다. 좌파의 규제 위주 정책이 잘못됐음을 알려주는 증거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 상승률 그래프를 보자. 이 그래프상의 집값, 전셋값 상승률은 각 시점에서의 전년 대비 상승률이다. 참여정부 시절 집값과 전셋값은 모두 상승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평가는 제외하겠다. 왜냐하면 2008년 9월 발생한 미국 금융위기로 인해 미국 주택시장은 2011년까지, 한국 주택시장은 2012년경까지 짓눌려 시장이 침체되어 정상적인 시장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파정부였던 박근혜 정부 시절의 매매가와 전세가 추이를 보면 좌파 노무현 정부와 차이가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매매가와 전세가 상승률은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매매가와 전세가격이 동반 상승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의 상승률은 조금 다르다. 현 정부는 2017년 6월 1일 출범했다. 2017년에서 2018년 초까지 매매가는 급등해 2018년 가격상승률의 정점을 찍었다. 그 뒤 2018년 말까지 매매가는 하락했으나 2019년 이후 매매가는 다시 거침없이 상승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이 공개한 월간 KB주택가격동향 시계열 자료는 2020년 9월까지 수집한 데이터이다. 지난 8월 부동산 시장을 뒤흔든 대형 사건이 있었다. 바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다. 전월세상한제가 8월부터 시행되었기에 전월세상한제가 아파트 매매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한 올 연말까지는 더욱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30대를 중심으로 매매가 급등으로 인한 공포감 때문에 ‘패닉 바잉’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래프에 나타난 최근의 주택 매매가격 상승 탄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져서 참여정부 시절의 매매가 상승률을 추월할 것으로 우려된다.

전세가격 동향은 어떤가? 우파정부 시절과 좌파정부 시절의 매매가와 전세가의 추이를 비교해보면 우파정부 시절 매매가와 전세가격이 한꺼번에 상승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일시적인 현상에 그쳤다. 그러나 2019년 초부터 매매가와 전세가는 동반 상승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가을과 봄은 이사 시즌이다. 현재 서울의 아파트 전세 물건이 매우 희귀한 상황이므로 향후 전세가 상승률은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좌파정부의 그릇된 이념 추구에 죄 없는 국민들이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현대 도시계획의 원조국가인 영국의 도시계획을 우리와 비교해보면 참고할 지점이 적지 않다.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그린벨트라는 용어를 만든 영국 또한 대도시의 집값 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도시계획 정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그린벨트에 집 짓자는 영국 노동당

크리스티안 힐버(Christian Hilber) 런던정경대 교수는 영국의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정부의 융통성 없는 도시계획제도를 꼽았다. 올해 초에 나온 이코노미스트의 심층분석 기사에는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잉글랜드의 5개 대도시에서 역세권에 근접해 있고 도심 접근성이 탁월한 4만7000㏊의 나대지가 그린벨트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 나대지가 무늬만 그린벨트이지 실제는 ‘그린’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평균적인 주택 밀도를 기준으로 이 땅에 최소 25만호 이상의 주택을 지을 수 있는데도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 때문에 주택난을 겪고 있던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민심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야당인 노동당까지 젊은 세대를 위한 주택을 대량공급하기 위해 그린벨트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원하고 나섰다.

그린벨트에 관한 언급은 영국 정치권에서 그동안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주택난이 심각해지자 좌파 노동당까지 그린벨트를 헐어 집을 짓자고 나선 것이다. 영국 정치권 역시 좌우로 갈라져 정권을 놓고 싸우는 것은 한국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영국 노동당이 그린벨트 완화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을 보면 이 땅의 좌파와는 다르게 현재 영국의 야당은 사고가 유연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일부 정치인은 그린벨트를 완화해 주택을 건설하자는 주장이 자신의 정치적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 학자들은 집값 급등의 원인을 두고 많은 논쟁을 벌였다. 일부는 유동성이 집값 상승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수는 경직된 도시계획제도가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한다. 도시계획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집단은 또 있다. 관료들이다. 각국의 엘리트 관료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글로벌 금융시장을 탓하기보다는 통제할 수 있는 국내의 도시계획 체계를 조정하는 것이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독일조차도 2017년 도시계획법령을 뜯어고쳐 고밀도 개발의 장애물을 제거해 영국 정부에 모범을 보였다. 영연방국가인 캐나다 온타리오주와 뉴질랜드 오클랜드시 등이 도시계획법령을 개정하는 것은 정부가 ‘넘치는 돈’만 탓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인 셈이다.

한국이 주거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눈여겨볼 나라는 스위스다. 스위스는 미국 같은 연방국가로, 연방정부는 국방과 외교를 맡고 그 밖의 분야는 지방정부가 권한을 행사한다. 스위스는 주요 현안을 두고 국민투표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데 투표는 전국적 규모에서 시 규모까지 다양하다. 2019년 도시확산(urban sprawl) 법안은 국민투표에 부쳐져 부결되기도 했다. 스위스연방공화국의 자가보유율은 2017년 기준 38%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8만달러가 넘어 영국보다 잘사는데 스위스의 집값, 임대료는 2016년 자가보유율 65%의 영국보다 낮다. 부자나라인데 자가보유율은 낮고 주택시장은 안정되어 있는 셈이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집값 잡은 스위스의 세금제도

유럽의 비영리단체(‘The Academy of Urbanism’)가 2019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 비결은 실용적인 스위스의 도시계획 정책에 있다. 스위스의 도시계획 목표는 현존하는 건축물의 이용 수준을 최대한 고도화해서 농업 지역과 미개발 토지의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토지를 최대한 콤팩트하게 이용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목적으로 스위스 연방정부는 주, 시, 타운 등 각급 지자체와 함께 전국적인 집적전략(agglomeration strategy)을 수립한다.

스위스의 주택시장이 안정된 이유는 또 있다. 세금제도다. 세금제도는 유연한 도시계획 정책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다. 지방정부는 취득세, 양도세 등 각종 세금을 징수해 모두 그 지역에서 사용한다. 이 세제가 바로 주택시장 안정의 핵심 포인트다. 부동산 개발과 거래 등에서 발생하는 모든 세금을 지자체가 징수하고 전액을 해당 지자체가 사용한다. 그러니 지방정부가 개발 사업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지자체는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으니 우리처럼 용적률 상향이나 인허가를 가지고 사사건건 개발업체에 시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이 있으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중재하여 부동산 개발이 이루어지도록 독려한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세수가 증가할수록 지역에 돌아가는 혜택이 커지므로 님비현상이 영국, 미국 등 영어권 국가처럼 심하지 않다. 결국 스위스가 집값 잡기 프로젝트에 성공한 것은 강력한 지방분권제도를 시행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의 유력 정치인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신봉한다고 말해왔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통령 후보 시절에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임기가 1년 반도 남지 않았는데 지방분권 얘기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은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서라도 국민에게 약속한 지방분권 공약을 실천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각 지자체에 지급하는 교부금 등 재정적 이유로 스위스처럼 양도세 징수 권한을 지방정부에 모두 이양할 수 없다면 지자체가 양도세의 일부라도 가져갈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각 지자체가 양도세의 일부라도 지방 세수로 확보할 수 있다면 서울의 주택 공급을 늘리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서울시는 추가 세수를 확보해 주민복지 등을 위해 쓸 수 있으니 마다하지 않을 것이고 도심혼잡, 건축 고도제한 90m 등을 핑계로 도심 고밀건축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도쿄는 일왕의 거주지 주변에서도 250m 높이의 건축을 허가하는데 서울 도심의 고도제한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관건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시행되는 이 나라에서 대통령을 꿈꾸는 유력 후보들이 과연 지방분권을 허용하겠는가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인사들은 과연 무엇을 하기 위해 최고통수권자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답을 해야 할 시간이다.

김원중 부동산학 박사·WJ부동산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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