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주택가에 매물로 나온 집. ⓒphoto 뉴시스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주택가에 매물로 나온 집. ⓒphoto 뉴시스

미국의 대표적인 주택가격 지표인 ‘케이스-실러지수’에 의하면, 미국 주택가격은 2012년 3월 이후 계속 오르고 있다. 한마디로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제로금리와 유동성 급증 덕분에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미국의 주택가격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전고점을 돌파했을 뿐 아니라 지난 7월 주택가격이 2000년 1월을 100으로 기준했을 때보다 126.5% 정도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수를 개발한 예일대학의 로버트 실러 교수는 올해 7월 13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도심 집값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실러 교수는 2000년 닷컴버블 붕괴와 2005년 미국 부동산 시장 거품붕괴를 예측했고, 자산 거품붕괴를 역사적으로 분석한 공로로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주택, 주식, 채권 등 자산이 모두 고평가된 상황이라며 실업률이 급등하면서 경제 전망 역시 불투명해진 점을 명심하라고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부동산 데이터 분석 전문업체 코어로직은 내년 미국 집값이 9년 만에 본격 하락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내년 5월 하락률은 1년 전 대비 6.6%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코어로직은 40여년간의 주택거래 자료 등을 토대로 집값 추세를 추적하는 코어로직 HPI지수를 산출하고 있으며 매달 보고서를 통해 예측치도 공개하고 있다.

2분기 모기지 연체율 8.22%

실제 겉으로 보이는 미국 주택 경기가 호황임에도 그 속에는 또 다른 복병이 숨어 있다. 지난 8월 17일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에 따르면 올 2분기 모기지 연체율이 8.22%로 9년 만에 최고치를 보여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높았다. 상업용 모기지 6월 연체율은 10.32%로 주택보다 더 심각했다. 한편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와 소수민족·저소득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연방주택청(FHA) 보장 모기지 연체율도 2분기에 16%에 육박,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러한 연체율은 미국 정부가 지난 3월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모기지 납부 유예신청을 받은 360만가구를 제외한 수치라 심각성이 높다고 하겠다.

이렇듯 한쪽에서는 유동성 급증으로 주택가격이 오르는 호황을 맞는가 하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모기지를 내지 못하여 막다른 궁지로 몰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와 실업자 증가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지만 동시에 미국의 소득불평등과 부의 편중에도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코로나19가 미국 주택시장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대도시 도심 임대료 폭락과 주택가격 하락이다. 반면 교외 주택은 거래가 활성화하여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사람들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은 도심을 탈출해 쾌적한 교외로 옮기고 있는 결과이다. 그나마 이는 있는 사람들, 곧 상위 10%의 이야기다. 이런 와중에 모기지와 임대료를 못 내고 있는 사람들이 전체의 3분의 1에 육박하고 있다.

교외 주택가격은 오르며 부동산 경기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모기지와 임대료를 못 내는 국민이 3분의 1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은 근본적으로 미국의 빈부격차에 기인한다. 미국은 상위 10%가 미국 전체 부의 68.7%를 독식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 국민 절반의 순자산은 미국 전체 부의 1.4%에 불과해 미국 국민 50%는 거의 순자산 없이 부채에 의존해 집과 차를 사는 형편이다. 이들은 막말로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코로나19 같은 경제 위기 시에는 자력으로 이 험난한 시기를 헤쳐나갈 경제적 여력이 없다. 이들 중 태반이 임대료와 모기지를 못 내고 있다.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반성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탐욕이 제어하지 못하는 일을 코로나19가 해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틀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주도했던 통화정책과 양적완화가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면서 정재계와 금융계 리더들 사이에서 양적완화에 대한 반성이 시작됐다. 그간 양적완화가 한 일이란, 있는 사람들의 자산가격만 상승시키고 실제 국민들의 소득증대나 생활에는 전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미국의 지도층은 연준의 통화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걸 느끼고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소득불평등이 심화하면 사회적 소비수요가 부진해져 나라 전체의 경제성장이 어려워진다. 성장이 부진하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다 같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소득불평등 문제를 가장 먼저 심각하게 생각했던 사람은 로버트 루빈 전 재무부 장관이었다. 그는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으로 재무부 장관을 하면서 미국의 문제는 소득불평등 심화에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장관직을 퇴직한 다음 브루킹스연구소로 들어가 해밀턴프로젝트라는 연구를 했다. 그 주된 테마가 소득불평등 문제였다. 그 뒤 그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는 못하고 경제성장이 활발해야 파이를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에둘러 얘기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경제계와 금융계 리더들 사이에서는 현행 금융통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4년 재닛 옐런 연준 의장 시절부터 소득불평등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해 연준 자료를 보면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 가까이를 가져가는 걸로 돼 있다. 1929년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50%에 도달했을 때 대공황이 터졌다. 마찬가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50%에 도달했을 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연준이 2017년도에 발표한 자료를 기초로 작성한 소득분배 그래프를 보면 소득불평등이 부의 편중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쳐서 미국의 경우 상위 1%가 점유하는 부가 전체의 40%에 육박한다. 상위 10%가 전체 부의 76% 이상을 차지하고, 미국 국민들 90%는 전체 부의 4분의 1도 못 갖고 있다. 그나마 그것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이 붕괴된다는 이야기는 자본주의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걸 의미한다. 곧 지금 같은 시스템이 계속되면 서민경제가 몰락하기 때문에 그대로 나가면 자본주의 자체의 붕괴를 가져온다. 이제는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하고 뭔가 틀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에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했다.

이러한 양적완화에 대한 반성은 사실 미국보다는 유럽 쪽에서 먼저 나왔다. 유럽도 양적완화를 하지만 유럽의 자본주의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약간 다르다. 미국은 말 그대로 효율을 중시하는 금융 자본주의이고 유럽의 자본주의는 사회보장을 중요시하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사회주의를 가미한 자본주의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많다.

미국 국영 모기지 보증기관인 패니매 워싱턴 본사. ⓒphoto 뉴시스
미국 국영 모기지 보증기관인 패니매 워싱턴 본사. ⓒphoto 뉴시스

소득재분배에 방점 찍는 재정정책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난 후 미국의 통화주도권은 연준에서 정부로 넘어오고 있다. 연준은 그간 월스트리트를 통해 유동성을 풀었지만 정부는 소비자와 기업이 있는 메인스트리트의 필요한 곳에 선별 지원해주는 ‘점적 관수식’ 통화공급을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연준이 돈을 푼 통화정책은 정부가 재정정책으로 푼 유동성에 비하면 5분의 1도 안 된다. 연준이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2조9000억달러에 달하는 양적완화를 시행했다고 했는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상반기에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거의 절반을 연준이 사들였다. 재무부 국채는 경매를 통해 팔리는데 경매에서 안 팔린 물건들은 연준이 떠안는 구조다. 곧 연준 자체가 능동적으로 양적완화를 한 게 아니라 2조9000억달러 중 1조5670억달러를 재정정책에 쓰려고 발행한 국채를 사들이는 데 썼다. 이러한 정부 국채 떠안기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양적완화가 아니다. 양적완화는 시중 국채나 모기지 증권을 사들이면서 시중에 유동성을 풀었을 때를 의미하는데 이번 경우는 재정을 뒷받침해준 것이다.

원래 재정정책은 크게 3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 자원배분 기능, 경제안정화 기능, 소득재분배 기능이 그것이다. 민간영역에서 할 수 없는 공공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예를 들어 인프라를 구축한다거나 이윤과 관계없는 공기업을 운영한다거나 하는 자원배분의 조정이 재정정책의 가장 큰 기능이다. 그다음은 경제안정화 기능으로, 경제가 잘나갈 적에는 크게 관여를 안 하지만 경제가 무너졌을 때에는 경기부양책을 내놓는다. 그간 재정정책의 주요 포인트는 여기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재정정책의 또 다른 기능인 소득재분배 쪽에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 그간 경기부양 정책 위주에서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미국의 상반기 재정집행 금액은 3조4500억달러였다. 그중 거의 절반이 개인들에게 지출됐다. 사회보장이나 실업보험, 기본소득 등 주로 저소득층 국민들을 대상으로 집행한 것이다. 이 금액이 어느 정도 컸냐 하면 연방정부 지출의 절반에 달할 뿐 아니라 지난해 대비 55%나 증가한 수치이다. 그다음 두 번째로 많이 쓴 게 기업대출과 국방예산 같은 정부 지출로 이것 역시 작년에 비해 30% 증가했다.

정부가 개인에게 직접 돈 풀어

연방정부 지출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상반기 연준이 지출한 금액 중 절반은 개인들에게 지급한 돈이었다. 그다음 2순위가 기업대출 등에 쓰인 돈이었다. 곧 미국의 경기부양책을 들여다보면 그간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기본소득과 현대 통화이론이 전격 채택된 셈이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이런 개념이 정부 차원에서 채택됐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를 갖는다. 그간 미국의 금융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금융이 산업뿐 아니라 미국의 경제체제, 사회체제 심지어는 정치체제까지 뒤에서 관여했다. 금융통화시스템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통화시스템의 주도권이 정부로 넘어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렇게 재정정책의 근본 틀을 바꾸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저소득층 지원이다. 그간 미국의 재정이 소득재분배 기능을 통해 상대빈곤율을 얼마만큼 개선시켰는지 따져보면 유럽에 비해 많이 낙후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이 재정을 통한 소득재분배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반면 미국식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소득재분배 비중이 굉장히 적었다.

미국의 경우 재정의 상대빈곤 개선율 비중이 37.1%였는데 재정 예산이 예년에 비해 55% 이상 증가했기 때문에 이제 미국도 개선율 지표가 크게 올라갈 전망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런 측면에서는 미국보다도 굉장히 열악한 형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차제에 우리나라도 미국의 바뀌는 기본 틀을 참고해 재정정책 방향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

미국의 재정정책을 들여다보면 상반기에만 3조4500억달러의 재정을 집행했는데 재무부 국채를 가장 많이 산 계층은 자산운용사와 헤지펀드 등이었다. 이들이 절반 이상을 구매했다. 예전에 단골고객이었던 각국 중앙은행들은 미 국채 매입을 거의 중단했다. 그 통에 연준이 물량의 절반 가까이 되는 47%를 인수했다. 만약 연준의 매입이 없었다면 미국 국채시장은 붕괴하고 말았을 것이다. 곧 국채시장을 떠받들고 있는 마지막 보루가 연준이다.

미 정부의 특단대책, 모기지 납부유예

부의 불평등과 저소득층 문제를 잘 아는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마자 3월에 모기지 관련 긴급대책을 발표했다. 연방주택기업감독청(FHFA)이 모기지를 못 내는 주택소유자를 돕기 위한 모기지 납부유예 지침을 발표한 것이다. 국책 모기지 회사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은 미국 주택 모기지 시장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 두 회사를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에게 납부유예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이다. 모기지를 납부하지 못하는 주택소유자에 대한 차압은 최소 60일, 최대 12개월까지 유예신청을 받았다. 여기에는 이미 진행 중인 차압도 포함된다. 이로써 모기지 연체 문제는 내년 2월까지 임시 봉합해둔 상태이다. 또한 임대료를 못 낸 임차인에 대한 퇴거도 최대 3개월 동안 유예해주었다.

8월 9일 현재 연방정부의 주택담보대출 상환금 납부유예 조치에 따라 납부유예를 신청한 가구는 360만가구이며 대출액 기준으로는 전체의 7.2%에 달했다. 그런데도 2분기 연체율이 8.22%에 달했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징조이다. 모기지 납부유예 조치를 했는데도 8월 20일 현재 기압류된 주택이 387만가구에 달하며 압류 대기물량이 237만가구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2월 유예기간이 종료되면 연체율은 4배로 폭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비해 미 정부는 지난 5월 또다시 특단의 추가대책을 내놓았다. 주택소유자가 모기지 납부유예 금액을 집을 파는 시점에 내거나 모기지 융자액을 다 상환한 후에 낼 수 있도록 하는 옵션을 발표했다. 이 구제책은 국영 모기지 보증기관 패니매와 프레디맥으로부터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주택소유자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1년간 유예되었던 모기지는 그렇게 처리한다 해도 내년 2월 이후 모기지를 제대로 상환할 수 있을지는 현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되어 예전처럼 경기가 회복되고 일자리가 늘어나야 가능한 이야기다.

겉으로 보이는 부동산 시장의 활황과 속으로 곪아가는 저소득층 주택문제는 미국 경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가 불러온 금융자본주의의 현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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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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