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1일 열린 사뮈엘 파티 국가 추도식의 운구 장면.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1일 열린 사뮈엘 파티 국가 추도식의 운구 장면. ⓒphoto 뉴시스

파리에서 서쪽으로 30㎞쯤 가면 콩플랑-생트-오노린이라는 소도시가 있다. 센강과 우아즈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강변 산책로가 아름다운 곳이다. 평화로운 교외도시인 이곳에서 지난 10월 16일 중학교 교사가 대로변에서 목이 잘려 살해된 사건이 벌어졌다. 잔악한 범행 방식에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체가 공포와 충격에 빠졌다.

범인은 18세 무슬림 소년이었다. 숨진 교사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을 수업시간에 보여줬다는 사실에 분노해 계획적인 테러를 저질렀다. 이 사건은 프랑스 주류 사회와 점점 덩치를 불리는 무슬림 사회가 종교와 관습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한 성격을 띠고 있다.

비극의 시작은 지난 10월 5일이다. 콩플랑-생트-오노린 시내의 브와돈중학교에서 역사·지리를 가르치는 교사 사뮈엘 파티(47)는 수업시간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만평을 보여줬다. 표현의 자유를 가르친다는 명분이었다. 샤를리 에브도가 게재했던 무함마드 만평은 오래전부터 무슬림 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교는 무함마드를 그리는 것조차 금기시하는데,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은 무함마드를 저속한 표현으로 조롱한다.

결국 2015년 1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에 난입해 편집국장을 포함해 모두 12명을 살해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당시 범인들을 도운 사람들에 대한 재판이 올해 9월 개시됐고, 그에 맞춰 샤를리 에브도는 5년 전 참사를 부른 무함마드 만평을 그대로 다시 게재했다. 이를 계기로 교사 사뮈엘 파티도 학생들에게 만평을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만평을 보여주기에 앞서 “종교를 불문하고 거북하면 교실 밖에 나가 있어도 좋다”고 했다고 한다.

프랑스 무슬림 600만명

파리 외곽의 도시들이 대개 그렇듯 콩플랑-생트-오노린에도 무슬림들이 제법 살고 있다. 한 무슬림 여학생이 파티의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을 집에 와서 이야기했고, 이 여학생의 아버지가 잔뜩 화가 났다고 한다. 사흘 뒤인 지난 10월 8일 이 남성 학부형은 브와돈중학교 교장실에 찾아가 파티를 종교차별주의자라며 수업에서 배제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 학부형은 페이스북에 띄운 영상을 통해 파티를 비난하며 그의 이름과 학교를 적시했다. 이 동영상을 접한 압둘라 나조로프(18)라는 소년은 파티를 살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압둘라는 러시아 내 무슬림 자치 지역인 체첸공화국 출신이다. 나조로프는 6세 때인 2008년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했고, 지난 3월 가족과 함께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나조로프가 사는 곳은 에브뢰라는 노르망디 지역의 작은 도시다. 콩플랑-생트-오노린과는 자동차로 70분 거리라서 가깝다고 보기 어렵다. 나조로프는 교사 파티와 다툼을 벌인 남성 학부형의 연락처를 알아내 서로 통화를 하고 왓츠앱 메신저로도 연락했다는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결국 10월 16일 오후 5시쯤 나조로프는 커다란 부엌칼을 들고 브와돈중학교 근처에 있다가 퇴근하던 파티의 목을 베었다.

나조로프는 파티를 참수한 직후 트위터에 잘라낸 머리 사진을 올리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향한 저주의 말을 띄웠다. ‘반역의 수괴인 마크롱, 너의 강아지 중 하나를 처단했다.’ 길바닥에 버려진 파티의 시신을 발견한 주민들이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나조로프와 대치하던 중 실탄을 발사해 사살했다. 흉기를 버리라는 요구에 불응했기 때문이다. 범행 속보가 나오자마자 프랑스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참수 살인은 현대 유럽에서 전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고 당일 밤 브와돈중학교를 찾아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범죄”라고 규정했다.

프랑스인들은 사뮈엘 파티를 대대적으로 추모했다. 지난 10월 18일 파리를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수만 명이 참석해 추모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내가 사뮈엘이다’ ‘내가 교사다’라는 팻말을 들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10월 21일 소르본대학 캠퍼스에서 파티에 대한 국가 추도식을 열어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서훈했다. 교육계는 그가 근무하던 브와돈중학교의 이름을 ‘사뮈엘 파티 중학교’로 개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동시에 프랑스 정부는 이슬람 세력에 대한 강경 대응에 나섰다. 파티와 다툼을 벌인 학부형과 함께 학교를 찾아가 항의했던 이슬람 사제가 만든 ‘셰이크 야신’이라는 이슬람 단체를 해산시키기로 했다. 이 사제는 프랑스 정보기관인 국내안보총국(DGSI)이 테러 요주의 인물들을 열거한 ‘피슈 에스(Fiche S)’라는 범죄자 파일에 이름이 들어 있다. 따라서 프랑스 검·경은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어린 나조로프를 꼬드겨 범행을 지시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프랑스 내무부는 ‘피슈 에스’에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들 중 종교적 극단주의 성향을 가진 231명을 추려내 국외로 추방하는 절차도 밟고 있다.

이슬람교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는 문제는 프랑스 사회가 직면한 커다란 사회적 현안이다. 유럽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프랑스다. 전체 인구의 9%가량인 600만명 안팎에 달한다. 가톨릭에 이어 이슬람이 제2의 종교다. 과거 식민지에서 유입되는 무슬림도 많지만, 기존에 이주한 무슬림들이 보통의 프랑스 가정보다 자녀를 더 많이 낳기 때문에 갈수록 세력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무슬림 인구가 점점 불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동시에 프랑스 주류 사회와 무슬림 사회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자유분방한 프랑스인은 유럽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유독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전통이 있다. 샤를리 에브도 만평이 저속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라는 사람이 많다. 이런 문화적 관습이 무슬림과 충돌을 부르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이슬람 신도에 의해 참수된 교사 사뮈엘 파티를 위한 국가 추도식에 참석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1일 이슬람 신도에 의해 참수된 교사 사뮈엘 파티를 위한 국가 추도식에 참석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photo 뉴시스

이슬람, 프랑스 제2의 종교로 부상

프랑스 사회 일각에서는 이슬람교를 제어하기 위해 엄격한 정·교 분리 원칙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프랑스는 1905년 일명 ‘라이시테법’을 제정해 정부가 종교에 개입할 수 없도록 철저히 막고 있다. 라이시테란 ‘세속’이라는 뜻이다. 라이시테법을 개정하자는 이들은 정부가 제도적으로 공인한 틀 안에서만 무슬림들이 활동하게 만들어야 할 시기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이슬람 성직자를 가리키는 ‘이맘’을 정부가 공인하는 단체에서 길러낸 사람으로만 공식 인정한다든가, 이슬람 단체가 모금하고 집행하는 자금을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지금은 라이시테법에 막혀 이런 개입이 불가능하다.

테러 방지를 위해서도 라이시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된다. 일부 과격 이슬람 단체들이 중동에서 자금을 건네받아 테러활동의 밑천으로 쓰는 행위를 감시하고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라이시테법 개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프랑스 내 보수 가톨릭계가 반대한다. 정부가 가톨릭 교회를 간섭하는 근거를 만들 수 있다며 거부감을 표시한다. 또한 이슬람교를 제도적으로 양성화하는 것을 반대하는 프랑스인도 적지 않다.

2015년 작가 미셸 우엘베크는 2022년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무슬림이 승리한다는 도발적인 줄거리의 소설 ‘굴복’을 펴냈다. 이 작품을 계기로 프랑스인들이 내면에서 어렴풋하게 무슬림에 대해 느끼던 두려움과 당혹감이 구체화됐다. 이런 감정은 해소되기는커녕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는 분위기다. 이슬람 사회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에 프랑스란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진석 조선일보 특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