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청 국무장관을 지내다 금융 관련 비리로 사퇴한 안젤로 베치우 추기경. ⓒphoto 뉴시스
로마 교황청 국무장관을 지내다 금융 관련 비리로 사퇴한 안젤로 베치우 추기경. ⓒphoto 뉴시스

로마 교황청이 요즘 한 추기경의 대형 금융 스캔들에 휩싸여 있다. 로마 교황청은 지난 9월 24일 시성성(諡聖省) 장관인 지오반니 안젤로 베치우(72) 추기경의 장관직 사퇴를 발표하면서 “추기경 직분과 연계된 권리 반납도 함께 수리되었다”고 밝혔다. 추기경 직분을 잃으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시스티나성당에서 열리는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에 참가할 수 없다. 모든 추기경은 80세가 되기 전까지는 교황을 선출하는 유권자가 된다.

교황청은 베치우 추기경의 사퇴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계 언론들은 베치우 추기경의 사퇴가 금융 관련 비리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런던 호화 부동산에 투자된 베드로성금

베치우 추기경이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 수사당국은 지난 10월 13일 베치우 추기경의 컨설턴트였던 이탈리아 여성 체칠리아 마로냐(39)를 횡령 등의 혐의로 체포하였다. 한편 그동안 재정개혁 문제를 둘러싸고 베치우 추기경과 적대 관계였던 호주 출신의 조지 펠 추기경이 9월 30일 로마 교황청에 도착하였다. 일부 언론은 로마 교황청의 고질적인 파벌싸움이 재연되고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베치우 추기경은 2011년 5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로마 교황청 국무장관을 지냈다. 국무장관직은 로마 교황청의 이인자로 통하며, 언제든 프란치스코(84) 교황을 알현할 수 있는 막강한 자리이다. 현재 국무장관은 베네수엘라 출신의 페냐 파라(60) 대주교가 맡고 있다.

베치우 추기경은 국무장관을 지내는 동안 교황청 자금을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이탈리아어 일간지 ‘레스프레소’ 등 서구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베치우 추기경은 크게 세 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첫째, 로마 교황청의 베드로성금을 유용하여 영국 런던의 호화 부동산에 투자하였다는 혐의이다. 베드로 성인은 로마 교황청의 초대 교황이다. 베드로성금은 전 세계에서 답지하는 성금으로 마련된 것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된다. 그런데 베치우 추기경이 자금운용을 맡긴 이탈리아 업자는 런던 첼시에 위치한 초고가 빌딩을 매입하는 데 4억달러를 투자하였다. 호화 부동산에 투자한 것 자체가 베드로성금의 취지에 어긋나는 일이다. 손해볼 것을 알면서도 강행한 이 투자로 로마 교황청은 수억유로의 손실을 입었다고 이탈리아 언론들은 보도했다.

대신 부동산 거래를 중개한 이탈리아 업자들은 수천만달러를 챙겼다. 이들은 현재 사기, 횡령, 갈취,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이탈리아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베치우 추기경은 투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동안 내부 감사를 실시했던 교황청은 투자 과정이 불투명했다며 베치우 추기경의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둘째, 베치우 추기경이 가족인 친형제들을 위하여 교황청 재정을 편법 유용한 혐의이다. 그는 동생인 토니노 베치우가 대표를 맡고 있는 이탈리아의 한 협동조합에 베드로성금 등을 통해 70만유로를 지원하도록 하였다. 베치우 추기경은 대사로 재직할 당시 동생인 프란체스코 베치우가 대표로 있는 목공회사가 성당 공사 계약을 따내도록 하기도 했다. 역시 동생인 로마 살레시오대학 심리학 교수인 마리오 베치우가 9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호텔 음료납품 업체는 베치우 추기경을 통해 이탈리아 카리타스 등과 같은 교회 단체에 음료를 납품하여 고정수익을 내고 있기도 하다. 베치우 추기경은 이러한 사실들이 보도되자 시성성 장관직을 사퇴하며 “교황께서 오해하고 있다”고 반박하며 관련 조사에 응하여 사태를 소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0월 13일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이 조지 펠 추기경을 접견하고 있다. 교황청 금융개혁을 추진하면서 베치우 추기경과 갈등을 빚은 조지 펠 추기경은 소년 성추행 혐의로 복역한 바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13일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이 조지 펠 추기경을 접견하고 있다. 교황청 금융개혁을 추진하면서 베치우 추기경과 갈등을 빚은 조지 펠 추기경은 소년 성추행 혐의로 복역한 바 있다. ⓒphoto 뉴시스

50만유로 받은 여성의 정체

그런데 10월에는 베치우 추기경의 세 번째 비리가 터져나왔다. 베치우 추기경으로부터 50만유로를 받은 혐의로 이탈리아 수사당국이 10월 13일 체칠리아 마로냐라는 여성을 체포한 것이다. 이에 앞서 로마 교황청은 그녀에 대해 횡령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하였다면서 인터폴에 통보하였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이 여성을 ‘추기경의 여인’ 또는 ‘바티칸의 여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베치우 추기경과 같은 고향인 사르데냐 출신인 마로냐는 2018년 12월에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 로그시크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탈리아의 유력신문인 ‘쿠리에 델라 시에라’는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목표로 설립된 이 회사는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은 유령회사라고 보도했다. 그녀는 이 회사를 통해 바티칸으로부터 거금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마로냐는 2015년 베치우 추기경에게 안보에 관한 이메일을 보내 처음 알게 되었다며 바티칸에서 1시간30분 동안 면담한 뒤 교황청 국무원의 안보보좌역 및 전략가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쿠리에 델라 시에라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각지에 파견된 성직자와 선교사들을 환경 위협이나 테러조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 여러 관계망을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회사를 슬로베니아에 설립한 것도 “발칸반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증진할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실제로 마로냐는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받은 돈을 값비싼 명품백 등 사치품을 구입하거나 호화 여행을 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로냐는 명품 구입이나 여행도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로마 교황청의 금융 스캔들이 터진 배경을 놓고 교황청 내부의 권력투쟁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취임 이후 로마 교황청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특히 교황청 운영의 투명성과 금융부문의 개혁을 강조하였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인기를 끌었던 영화 ‘두 교황’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후임자로 거의 지정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사실에 기반하여 제작되었다는 이 영화에서 나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된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교황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는 베네딕토 16세에게 “예수님은 항상 빵을 나주어주셨다”며 “혼자 식사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 다음에 뭘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금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답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금융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된 다음 경제성 장관인 호주 출신의 조지 펠(79) 추기경에게 재정개혁을 전담시켰다고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베드로성금이 예산적자를 메우는 데 전용되는 것을 억제하고, ‘베치우 방식’이라고 불리는 불투명한 집행을 방지하는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런데 조지 펠 추기경의 개혁에 맞서는 반(反)개혁의 중심인물이 바로 베치우 추기경이었다고 한다. 베치우 추기경은 2018년 추기경에 서품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위에서 말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행동과 에너지를 지닌 인물”이지만 “개혁은 점진적이어야 하며, 로마 교황청 내부에서의 개혁은 항상 점진적이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베치우 추기경으로부터 50만유로를 받은 혐의로 이탈리아 수사당국에 체포된 체칠리아 마로냐. ⓒphoto unionesarda.it
베치우 추기경으로부터 50만유로를 받은 혐의로 이탈리아 수사당국에 체포된 체칠리아 마로냐. ⓒphoto unionesarda.it

성추행 대 횡령, 물밑 파벌싸움인가?

베치우 추기경과 대립하던 펠 추기경은 1990년대 호주 멜버른 대주교 시절 소년 2명을 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어 밀려난다. 그는 2019년 경제성 장관직에서 해임된다.

이에 대해 베치우 추기경 등 바티칸의 구세력이 꾸민 음모라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바티칸에서 펠 추기경을 10년간 보좌했던 엘리엇 주교는 최근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펠 추기경의 아동성추행 의혹과 관련해서 바티칸 내부에 있는 펠 추기경의 적들과 마피아와의 협력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쿠리에 델라 시에라는 지난 10월 16일 베치우 추기경이 펠 추기경에 대한 재판이 호주에서 진행되는 동안 교황청 자금 70만유로를 호주로 송금했다고 보도하며 이 돈이 펠 추기경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음모는 펠 추기경의 명성에 먹칠을 하여 그가 바티칸의 재정을 투명하게 하고 부패를 척결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꾸며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이러한 보도에 대해 피해당사자 부모들은 분노하고 있다.

펠 추기경은 소년 성추행 혐의에 무죄를 주장하였지만 호주 법원에서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펠 추기경은 13개월을 복역하다가 지난 5월 호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그는 베치우 추기경이 사임한 뒤 일주일 만인 지난 9월 30일 로마 교황청으로 귀환하였다. 그리고 10월 13일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펠 추기경을 만나는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하였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1년 만에 보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성추행으로 복역한 펠 추기경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듯한 면담이었다. 교황은 펠 추기경을 경제성 장관직에서 해임한 후에도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펠 추기경이 경제성 장관에 재임명될 가능성과는 관계없이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의 재정개혁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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