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 출품될 보티첼리의 ‘원형 장식을 든 남자’. ⓒphoto 뉴시스
내년 1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 출품될 보티첼리의 ‘원형 장식을 든 남자’. ⓒphoto 뉴시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화가 보티첼리가 그린 초상화 한 점이 경매에 나온다. 전문가들은 보티첼리의 명성과 초상화의 양호한 보관상태 등을 근거로 8000만달러(900억원) 수준에서 거래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티첼리의 명화 못지않게 소유자의 절세기법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그림은 미국 뉴욕의 부동산 재벌 셸던 솔로(92)가 약 40년 전 경매를 통해 130만달러에 구입하였다. 만약 이 그림이 8000만달러에 팔리면 솔로는 미국 세법에 따라 3300만달러의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러나 솔로는 공공전시나 자신이 설립한 비영리재단 기부 등의 방법을 통해 이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

세계적 경매회사인 소더비는 최근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의 초상화 ‘원형 장식을 든 남자’가 내년 1월 미국 뉴욕 경매에 출품된다고 발표했다. 보티첼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한 명.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1483~1520) 등 3인을 르네상스 대표 작가로 꼽지만, 한 사람을 더 들어보라고 하면 대개는 보티첼리를 꼽는다. 다빈치 등 3인의 대가가 종교화를 많이 남긴 반면, 보티첼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한 ‘비너스의 탄생’(1485)과 ‘봄’(1482)이라는 두 대작으로 유명하다. 보티첼리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두 작품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서도 ‘비너스의 탄생’과 ‘봄’은 가장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는 작품이다.

소더비, 8000만달러 낙찰 예상

보티첼리는 종교화로도 명성을 누렸다. 미켈란젤로의 걸작 프레스코화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있는 바티칸의 시스티나성당 내부에도 보티첼리의 작품들이 있다. 식스토 4세 교황의 요청에 따라 그는 1480년대 초에 성당 내부의 양쪽 벽면에 ‘그리스도의 유혹’ ‘모세의 심판’ ‘반역자 처단’ 등 예수와 모세의 일생을 소재로 한 프레스코화 3점을 그렸다.

보티첼리는 1490년대부터는 피렌체를 장악한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수도사였던 지롤라모 사보나롤라(1452~1498)를 추종하며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사보나롤라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멀리해야 한다며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서 값비싼 미술품들을 불태우는 ‘허영의 소각’ 행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때 보티첼리도 자신의 그림들 일부를 불태웠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교황에게 파문당하고 화형당한다. 보티첼리가 사보나롤라를 추종하기 직전인 1480년대가 화가로서의 절정기였다고 평가된다. ‘비너스의 탄생’이나 ‘봄’ 등 대표작들도 대부분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내년 1월 경매에 출품되는 ‘원형 장식을 든 남자’는 1470년부터 1480년 사이에 보티첼리가 그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시기는 보티첼리가 화가로서의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할 무렵이다.

목판에 그려진 이 유화 그림은 제작된 지 5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원형 그대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라고 외신은 전한다. 그림 속의 남성은 성인(聖人)의 얼굴이 그려진 원형 장식을 들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잘생긴 남성의 얼굴과 물결치는 금발머리, 똑바로 선 자세,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 등이 현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토스카나 지방의 푸른 하늘을 담은 창문 배경도 단순하지만 상쾌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이 남성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티첼리를 후원하던 메디치가문의 인물로 추정된다.

경매를 맡은 소더비 측 역시 ‘원형 장식을 든 남자’의 낙찰가를 8000만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보티첼리의 명성이나 인기도에 비해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작품이 저명한 미술관들에 보관되어 있다. 벌써부터 각국의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이 이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역사상 가장 비싸게 거래된 예술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살바토르 문디(구세주 예수)’로 201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려 4억5000만달러에 낙찰되었다. 이 그림을 산 사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살바토르 문디’는 그러나 지금도 위작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초상화 중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Ⅱ’가 2006년에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8790만달러에 낙찰되었다. 구매자는 미국의 유명한 사회자인 오프라 윈프리였다. 윈프리는 이 그림을 공공미술관에 전시하다가 2016년에 한 중국인 사업가에게 1억5000만달러에 판매하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화 ‘가셰 박사의 초상’은 1990년 일본의 사업가 사이토 료에이가 8250만달러에 구입하였다.

보티첼리의 작품 가운데에는 ‘어린 세례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자’가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000만달러에 팔린 적이 있다. 내년 1월에 ‘원형 장식을 든 남자’가 8000만달러에 낙찰되면 보티첼리의 작품들 가운데에서는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이 된다.

보티첼리 ‘원형 장식을 든 남자’를 소유 중인 미국의 부동산 재벌 셸던 솔로(왼쪽)와 그가 소유한 뉴욕 센트럴파크 남쪽의 50층짜리 빌딩. ⓒphoto 뉴시스
보티첼리 ‘원형 장식을 든 남자’를 소유 중인 미국의 부동산 재벌 셸던 솔로(왼쪽)와 그가 소유한 뉴욕 센트럴파크 남쪽의 50층짜리 빌딩. ⓒphoto 뉴시스

비영리재단이 절세 창구로

보티첼리의 그림만큼이나 주목을 받는 사람이 바로 원소유자인 뉴욕의 부동산 재벌 셸던 솔로이다. 뛰어난 절세 기법으로 거액의 세금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셸던 솔로는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뉴욕 요지에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건물이 센트럴파크 바로 남쪽에 붙어 있는 50층짜리 빌딩이다. 센트럴파크를 조망할 수 있는 이 건물은 뉴욕에서도 임대료가 가장 비싼 건물로 통한다. 이 건물에는 돈 잘 버는 헤지펀드들이 입주해 있다.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인 구찌도 이 건물에 입주해 있다.

솔로는 2015년에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을 1억2600만달러에 판매하는 등 고가의 예술품 거래에도 일가견을 가진 사업가이다. 그는 보티첼리의 ‘원형 장식을 든 남자’를 1982년 130만달러에 구매하였다. 솔로가 그림을 구입한 이후 작품 가격은 급상승하였다. 횡재를 한 셈이지만, 그에 따라 거액의 세금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이 세운 비영리재단인 ‘솔로 예술 및 건축 재단’에 기증하는 한편 워싱턴DC의 국립미술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MOMA)에 장기간 임대 전시하였다.

미국에서는 예술품 소유자가 미술관에 그림을 빌려주어 대중에 전시하게 하면 세금을 공제받는다. 그리고 기증한 작품의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다. 그는 2001년까지 4000만달러로 평가되는 그림의 지분 71%를 ‘솔로재단’에 기증하였다. 2015년에는 이 재단이 그림의 지분 99%를 보유하게 된다. 재단이 작성한 소득신고에 따르면 이 그림의 가치는 8420만달러에 달한다.

‘솔로재단’은 솔로빌딩의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고가의 현대 미술품과 르네상스 미술품 수집가인 솔로는 건물 1층에 전시실을 마련하고 재단 소유의 고흐, 마티스, 호안 미로, 바스키아 등의 작품들을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전시실에 들어갈 수는 없으며 유리창을 통해 외부에서 들여다보는 것만 가능하다. 때문에 솔로가 그림들을 공공전시하는 시늉만 내고 세금공제만 받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솔로가 보티첼리의 그림을 구매한 이후 미국의 양도소득세 최고 세율은 28%에서 50%로 상승하였다. 그러나 그가 작품을 자신이 만든 비영리재단에 기증했기 때문에 8000만달러에 판매하여도 3300만달러의 양도소득세를 공제받는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앞서 그는 그림을 공공전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미 수십 년 동안 개인소득세를 공제받았다.

또 하나, 고령의 솔로가 사망한 후 아들들이 그림을 물려받을 경우 상속세를 피할 수 없다. 미국 법률에 따르면 1158만달러(약 130억원) 이상으로 평가되는 재산을 상속받으면 40%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8000만달러짜리 그림을 물려받으면 3200만달러를 상속세로 내야 하는 것이다.

솔로가 재단을 설립하여 고가의 예술품들을 기증하고 아들인 스테판 솔로비예프(아들은 솔로 집안의 러시아 성인 솔로비예프를 사용한다)에게 운영을 맡긴 것은 거액의 양도소득세뿐만 아니라 상속세도 회피할 수 있는 절묘한 세(稅)테크인 셈이다. 아들 스테판 솔로비예프는 최근 미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재단이 보티첼리 그림의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버지가 수익금 사용계획을 이미 세워놓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예술관련법’의 저자인 랄프 러너는 “솔로는 그림을 재단에 기증하여 거액의 세금공제를 받았다”라며 “그의 재단은 이 돈을 세금을 내지 않고 자선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이어 “명작들이 공공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예술품 투자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투자종목으로서 예술품은 현금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평가하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모건스탠리의 한 분석가의 말을 인용, “예술품은 보관, 보험, 저장, 운반 비용이 든다”고 지적했다. 랄프 러너도 “최소한 5년마다 소장한 예술품의 가치를 재평가받아야 한다. 싸게 산 물건이라도 엄청나게 가격이 올라 있을 수 있으며, 비싸게 산 작품들도 어떤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는 가치가 폭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취향도 변하기 때문에 미술관들이 예술품 기증을 받지 않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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