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3000만가구에 보낸 자필 서명 편지. 코로나19 비상 사태에 대한 당부를 담고 있다. ⓒphoto 뉴시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3000만가구에 보낸 자필 서명 편지. 코로나19 비상 사태에 대한 당부를 담고 있다. ⓒphoto 뉴시스

오래전 한국에서 온 국회의원 일행을 필자가 근무하던 현지 상사 지사장으로서 맞은 적이 있었다. 당시는 한국 건설사들의 중동 사업이 한창이던 때였다. 국회의원 일행은 중동 건설 현장을 둘러보러 온 국회 건설분과위원회 소속이었는데, 런던에 들른 후 리비아로 가는 일정으로 짜여 있었다. 아직 해외여행이 일반화되기 전이라 해외에 오면 제일 신경 써서 하는 일이 귀국선물 구입과 엽서 보내기였다. 특히 의원들은 득표와 관련 있는 지역구 유권자들을 비롯해 한국 관계자들에게 인사 엽서를 보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아무나 못 가는 해외에서 의원이 보낸 엽서 한 장의 효과가 대단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필자가 목격한 각 의원들의 엽서 보내기 모습은 정치 내공(內功)에 따라 천양지차였다. 경력이 오래된 의원은 철저하게 준비해 와서 수월했던 반면 경험이 전혀 없던 초선 의원들은 허둥지둥하면서 별별 고생을 다 했다.

런던에 온 한국 의원들의 엽서 소동

대사관저에서 베푼 만찬을 끝내고 돌아온 의원들이 호텔 로비에서 삼삼오오 한담을 나누는 사이 의원 비서들은 엽서 작업으로 분주했다. 초선 의원들은 런던에 도착해서야 선배 의원들로부터 엽서 보내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부랴부랴 비서들에게 비상을 걸었다. 런던을 떠나서 바로 리비아로 가니 런던에서 엽서를 반드시 보내야 했지만 런던이 초행길이고 영어도 못 하는 초선 의원 비서들은 해결을 못 해 울상이 되었다. 결국 의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라는 지시를 받고 호텔에 대기 중이던 런던 주재 각 상사 지사장들에게 SOS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상사 지사장들이 호텔 안의 그림엽서를 사모으다가 부족해지자 결국 직원들을 동원해 늦게까지 문을 여는 구멍가게를 모두 뒤져 구입하는 소란을 떨었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쉬웠다. 의원과 비서의 수첩에 기재된 의원 지인들과 유권자 주소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국제전화로 지역구 사무실에 비상을 걸어 당시 막 생긴 팩스로 주소를 받았다. 이렇게 어렵게 준비한 수백 장의 엽서에 인사말과 주소를 쓰는 일은 비서 혼자 밤을 새워도 다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결국 지사장과 상사원들이 모두 달려들어 도울 수밖에 없었다. 한 순진한 초선 의원은 수백 장의 엽서에 직접 일일이 인사를 쓴다고 밤을 새우다 손에 마비가 왔다. 그렇게 해도 수백 장밖에 준비를 못 했는데 그 엽서들마저 결국 지사장들이 우표를 사서 한국으로 보내주었다.

재선 의원의 경우는 초선보다는 조금 사정이 나았다. 한국에서 주소와 안부 문구를 인쇄해 와서 런던에서 구입한 그림엽서에 부착해서 보냈다. 그러나 영혼이 없는 인쇄물에 불과했다. 3선 의원은 재선 의원보다는 조금 더 영혼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인쇄된 안부 내용 윗부분에 수신인 이름은 비서가 손으로 쓰고 아랫부분 끝에는 의원이 서명을 했다. 발군의 내공을 발휘한 의원은 일행 중 가장 선수(選數)가 많은 5선의 야당 출신 분과위원장이었다. 호텔에 도착해서 다른 의원 비서들은 엽서 작업을 한다고 난리법석을 떠는데 5선 의원의 비서는 느긋했다. 아마 엽서를 안 보내는가 했는데 밤늦게 호텔을 떠나려는 필자에게 비서가 상당히 큰 가방 하나를 맡기면서 그 안의 엽서를 다른 사람들 모르게 우체통에만 좀 넣어 달라고 했다. 가방 안에는 놀랍게도 주소와 안부가 일일이 손글씨로 쓰여 있는 영국 엽서 5000장에 영국 우표까지 붙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엽서 내용도 하나하나 다 달랐다는 것이다. 수신인의 아들 학교 입학 여부를 묻는 내용부터 떠날 때 전화도 못 하고 와서 죄송하다는 사과까지 같은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영국 미러지가 2015년 공개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자필 편지. 자신의 모자를 만들어주는 장인(사진 아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영국 미러지가 2015년 공개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자필 편지. 자신의 모자를 만들어주는 장인(사진 아래)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5선 의원의 엽서 5000장

어떻게 한국에서 영국 엽서를 구해 영국 우표까지 붙여 왔느냐는 필자의 물음에 비서는 당시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의원 아들이 보낸 엽서를 한국에서 복사 인쇄해서 준비했다고 답했다. 런던에서 일일이 사는 것과 비교하면 복사 엽서는 정말 엄청나게 쌀 수밖에 없었다. 엽서와 함께 영국 우표도 같이 보내와 한국에서 우표 붙이는 작업까지 다 마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궁금한 질문은 ‘어떻게 의원이 자필로 5000장의 엽서를, 그것도 모두 다른 내용을 쓸 수 있었느냐’였다. 비서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걸 어떻게 의원님이 다 쓰셨겠어요? 비서 한 명이 한 달간 엄청난 수고를 했지요”라고 답했다. 의원의 친필을 감쪽같이 흉내 내는 재주를 갖고 있던 비서가 의원의 지시로 대필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의원과 오래 일한 덕분에 지역구 사정까지 꿰뚫고 있어 수신자 각각의 상황과 시기에 맞는 안부 편지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정치는 이렇게 성의 있는 노력과 함께 경험에서 우러난 요령을 피워야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도덕의 잣대를 대고 보면 옳은 일은 아니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고의 득표 전략이었다.

나중에 5선 의원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감동’을 언급했더니 그는 “궁즉통(窮則通)의 고육지책이 친필 편지 보내기”라고 강조했다. 자신은 야당의원이어서 정치자금도 없기 때문에 가성비 높은 득표 전략인 친필 편지를 애용한다고 토로했다. 오랜 기간 이런 친필 편지로 지역 유권자들과 친밀감을 쌓아 5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편지 보내는 데는 누구 신세를 질 필요도 없기 때문에 5선까지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정치를 할 수 있었다는 말도 했다.

해외에서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지인들로부터 오는 성탄카드와 연하장이 많다. 요즘은 편리한 이메일과 소셜미디어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다 보니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정을 듬뿍 담아 보내는 성탄카드와 연하장이 연말연시를 훈훈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혼 없는’ 성탄카드와 연하장, 인사장도 참 많이 받는다. 인간 냄새가 전혀 안 나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내용의 인사말이 인쇄된 우편물들 말이다. 영혼이 없는 인사장은 주로 지방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보내는 것이지만 심지어는 대통령 인사편지마저도 그냥 단순한 인쇄물이다. 진정이 담긴 안부 인사가 아닌 영혼 없는 인쇄물이 자신의 이름으로 보내져서 어떤 효과를 내는지를 당사자는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또 자신의 상관을 위해 경비와 수고를 들여 준비하는 실무자들은 이런 영혼 없는 인쇄물 인사편지가 매일 집 우체통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크 메일(junk mail)과는 다른 취급을 받으리라고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필자 주위의 교민들 중에는 한국에서 오는 이런 인사편지는 아예 뜯어 보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기도 한다.

정크 메일 같은 인쇄 편지

영국 정치인들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정말 수많은 우편물을 보낸다. 영국 하원의원은 일단 자신의 지역구 유권자가 편지를 보내오면 반드시 회답을 한다. 한국과 비슷한 유권자 수에, 하원의원 숫자도 한국의 두 배가 넘는 650명이다 보니 유권자 한 표 한 표가 절실해서이기도 하다. 만일 편지가 절절한 내용이라면 자필로 쓰지만 바빠서 프린트된 편지를 보낼 때도 반드시 서명은 본인이 하는 것이 원칙이다. 심지어 총리나 여왕까지도 중요한 편지에는 자필 서명을 한다. 이때도 조금 성의를 보이려면 편지 머리의 수신인 이름과 서명은 자필로 한다.

하지만 하원의원들은 유권자들과 한꺼번에 소통하기 위해서 편지를 대량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자필 서명이 불가능할 때도 생긴다. 그러나 이때도 진지한 노력과 성의 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요령’을 최대한 피운다. 우선 유권자들에게 한꺼번에 편지를 보낼 때도 편지 내용 글씨와 봉투 주소 글씨를 인쇄체로 프린트해서 보내지 않는다. 봉투와 편지 내용을 청색 잉크 펜으로 쓴 듯한 필기체로 인쇄해서 보낸다. 그렇게라도 하면 수신인은 인쇄된 줄 알긴 하지만 그래도 성의를 느낄 수 있어서다. 편지 머리에도 각각의 수신인 이름이 반드시 들어가 있다. 프로그램에 편지 내용과 수신인을 동시에 입력하면 같은 내용의 편지 수만 장에 각각 다른 수신인 이름이 편지 머리에 인쇄된다. 이런 작업은 요즘 같은 세상에는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보다 더 정성 들인 편지는 당원들의 자원봉사로 만든다. 편지 내용은 인쇄하더라도 편지 머리 각각의 수신인 이름은 자원봉사자들이 쓰고 편지 끝에는 의원 후보가 자필 서명을 한다. 봉투의 주소도 봉사자들이 일일이 손으로 쓴다. 워낙 광고성 정크 메일이 많이 들어오기에 인쇄된 주소가 쓰인 우편물은 아예 뜯어보지도 않는 사람이 많다. 그걸 피하고 보다 성의 있게 보이기 위해 수만 장의 편지 봉투에 손으로 직접 주소를 쓴다. 편지는 필기체로 인쇄되어 있으니 훨씬 더 정감을 느낀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이름이 손으로 쓰여 있고 의원 후보의 자필 서명이 있으면 소중하게 취급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식의 성의 있는 인쇄물 발송은 오로지 당원들의 자원봉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선거철이 되거나 이슈가 있으면 지구당 사무실에는 당원들이 도시락 두 개와 음료수를 싸갖고 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유인물 작업을 한다. 누가 활동비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와서 봉사한다. 자신이 믿는 바를 이뤄줄 정당의 승리를 위한 직접참여 정치의 일환이다.

지난해 영국 총선 당시 하원의원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하원의원이나 후보들의 편지는 이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작성된다. ⓒphoto 영국 보수당 홈페이지
지난해 영국 총선 당시 하원의원 후보 선거사무실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하원의원이나 후보들의 편지는 이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작성된다. ⓒphoto 영국 보수당 홈페이지

지구당 당원들의 편지 봉사

영국 선거의 투표권은 주소지에 등록된 모든 주민에게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사전에 주소지로 날아온 유권자 등록 서류를 작성해 우송해야 투표권이 주어진다. 선거 전에 이렇게 등록된 유권자를 상대로만 선거가 치러진다. 그래서 영국 정당들은 유권자 명부를 이용해 각종 유인물을 보내 득표 활동을 한다. 그렇게 할 때도 단순하게 같은 내용의 유인물을 지역구의 모든 유권자에게 똑같이 보내지 않는다. 몇 차례에 걸친 선거에서 당원들이 발로 뛰어 파악한 각 유권자의 정치 성향에 따라 다른 내용의 유인물을 보낸다. 그냥 내가 이런 정견을 가지고 있으니 내 유인물을 읽고 당신이 판단해 나를 선택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식의 일방통행이 아니다. ‘나는 당신의 정치 성향이 어떤지 알기에 거기에 대해 이런 의견을 제시한다’는 식의 양방향 소통을 시도한다.

실제 영국 유권자들은 이런 식의 양방향 소통에 아주 익숙해서 편안하게 토론하길 즐긴다. 영국은 선거철은 물론 평소에도 정당 요원들의 가가호호 방문을 규제하지 않는다. 미디어를 통해 말로만 정견과 정책을 밝혀서는 유권자들과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영국인들은 믿는다. 유권자들과 직접 소통하고 의견을 양방향으로 주고받길 차라리 권장한다. 그렇게 해야 제대로 된 민의를 적시에 파악할 수 있어 즉각 대처할 수 있는 기동성을 갖는다고 믿는다. 또 그래야만 정치인이 성의를 가지고 자신들을 대한다고 유권자들이 믿는다는 것이다. 특히 소수의 표에 의해 당락이 결정되는 지방자치단체 정치에서는 그런 풀뿌리 민심을 얻을 기술과 요령이 더욱 중요하다.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아주 세심한 배려와 고도의 소통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런 소통기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영혼 없는 편지는 바로 반발과 함께 실표(失票)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결국 정치란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답장 편지 안 하면 왕따당한다

마음을 얻는 일에 편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아직도 편지 주고받기를 고수하는 영국 유권자들에게 영혼 없는 단순 인쇄물이 분명한 인사편지는 보내지 않는 것만 못하다. 영국에서는 생일파티와 결혼을 비롯해 거의 모든 모임 관련 초청은 이메일이나 문자와 함께 종이로 된 공식 초청장이 반드시 따라온다. 옛날에는 초청장을 보낼 때 참석 여부를 알려 달라는 RSVP(Répondez S’il Vous Plaît·참석 여부 회답 요청)용 우표 부착 회신봉투도 같이 보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하면 된다. 초청장을 받으면 참석 여부를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만일 이런 회신에 소홀하면 아주 무례하다는 평을 들을 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소리 없는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러면 다시는 누구로부터도 파티 초청을 못 받는다. 파티에 초청 못 받는 따돌림을 당하게 되면 인격살인을 당하는 것과 같다고 영국인들은 느낀다.

유럽인에게 편지는 단순한 소통의 방법이 아니다. 일종의 대화 같은 것이다. 그래서 편지에는 성의와 진심이 담겨야 한다. 그런 편지에 회답을 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에게 말을 했는데 대답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례한 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편지를 받으면 반드시 회답을 해야 하고 초청장을 받으면 참석 여부를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한국 회사들과 거래하는 영국 회계법인 대표 말을 들어보면 한국인에게 초청장을 보내면 참석 여부를 알려주는 비율이 20%도 안 된다고 한다. 한국대사관에서 국경일 행사 초청장을 보내면 외국 회사들은 거의 100% 회신을 하는 데 비해 한국 주재 상사들의 회신율은 20%를 넘지 않는다는 얘기도 언젠가 들었다.

파티에 초청받아 갔다가 잘 즐기고는 “고맙다”고 하고 돌아오면 끝이 아니다. 영국 예절에 의하면 반드시 파티 초청자에게 감사편지를 보내야 한다. 그때 꽃을 감사편지와 같이 보내면 금상첨화이지만 그냥 감사편지나 카드만 보내도 최소한의 예의는 차린 셈이 된다. 반면 감사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예절을 모른다고 취급받는다. 필자는 한국 기관이나 단체들의 영국 기관 단체방문을 많이 주선하는데 문제는 다녀간 한국 기관들이 방문했던 영국 기관에 감사편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국 기관들은 촉박한 요청을 자신들의 업무를 희생하면서 수용했고 방문 기간에는 성심성의를 다해 안내했는데 돌아가고 나서 편지 한 장 없더라고 섭섭해한다. 그럴 경우 필자는 “한국에는 감사편지라는 관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지만 잘 설득이 안 된다. 그러고 나면 이후 같은 기관에서는 섭외가 잘 안 된다. 심지어는 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 신분의 파견 기간 공직자들마저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의 이런 편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

편지는 인간에 대한 예의

그러고 보면 유럽 문인들 중에는 마치 집착하듯이 엄청난 양의 편지를 쓴 작가들이 있다. 그중 첫 번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다. 헤세는 평생 독자들과 친지들로부터 온 편지 5만통에 회답을 한 걸로 유명하다. 대하소설 ‘전쟁과 평화’로 유명한 러시아의 레프 톨스토이도 세계 각지로부터 온 5만통의 편지에 자필로 1만통의 회답을 했다. 두 문호는 초인적인 노력으로 초기에는 거의 자필 회답을 하다가 타자기가 발명되면서부터는 부인과 비서의 신세를 져서 훨씬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톨스토이의 손 편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편지에 영어로 쓴 답장이다. 이들이 작품활동에 쏟아도 모자랄 시간을 쪼개 얼굴도 모르는 독자들의 편지에 손수 회답을 한 이유는 인간에 대한 예의였다. 당시 편지 한 통 우편료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그런 거금을 들여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독자들에게 회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순수한 인간애였다. 더 나아가 한 인간이 보내온 편지에 회답을 하지 않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이고 인간을 만든 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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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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