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오른쪽)와 러닝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 ⓒphoto AP·뉴시스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오른쪽)와 러닝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 ⓒphoto AP·뉴시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매사 신중해 보인다.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현직 대통령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 때문에 ‘지루하다’는 평가도 듣는다. 사람들은 그가 가진 따뜻하고 소탈한 이미지 덕에 ‘엉클 조(uncle Joe)’라고 불렀다. 반면 가끔 실언을 할 때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슬리피 조(Sleepy Joe)’라고 놀렸다. 머리가 희끗한 이 노신사는 때로 ‘꼭두각시’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급진좌파 운동의 꼭두각시’라는 공격을 받은 것인데, 아마도 77세라는, 그래서 미국 역사에서 가장 나이 많은 대통령 후보라는 점이 배경에 있었을 터다.

가장 늙은 대선후보이지만 그는 젊은 날 미국에서 가장 어린 상원의원이었다. 1972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할 때 30세였던 그는 상원 출마 제한연령을 간신히 넘긴 나이에 도전했고 당선됐다. 그 뒤 30년이 넘는 세월을 상원의원으로 지냈다. 워싱턴 정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경쟁자에게 ‘슬리피’라는 형용사로 공격받지만 그는 원래 ‘싸움닭’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시 32년 차 상원의원을 부통령으로 삼은 건 그의 직설적인 언변 때문이었다. 진중한 자신과 달리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공격적으로 말하는 베테랑 정치인에게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줄 적임자라고 봤다.

지난 11월 4일(현지시각) 대선이 끝난 다음 날, 바이든 후보는 승리 선언을 하지 않았다. 모든 개표를 끝낼 때까지 승리를 선언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내가 대통령이 될 것을 확신한다”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상대였던 현직 대통령은 법원으로 가겠다며 소송전을 택했다. 이날 언론들은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백악관을 차지하기 위한 선거인단 270명을 얻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바마 정부의 부통령은 이제 바이든 정부를 이끌 기회를 잡게 된다.

봉합 위해 제안되는 거국내각

바이든이 백악관에 입성한다면 해결해야 할 일들이 가득하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것부터 모든 것은 시작한다. 일단 시급한 건 코로나19 위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계획을 내놓는 일이다. 과거 오바마-바이든 캠프에서 국내 정책을 맡았던 니라 탠던 미국진보센터(CAP) 소장은 “바이든의 첫 번째 사업은 아마도 코로나19로 생기는 사망자 숫자를 억제하고 경제적 피해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으로 찢긴 미국을 봉합하는 데 최우선으로 고려되는 건 전염병이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처음으로 하루 10만명을 넘었고 누적 확진자도 900만명을 돌파했다. 코로나19 대응에 실기한 트럼프 대통령과 차별을 두기 위해 바이든 후보는 공식 홈페이지에 코로나19 관련 대책을 게재한 지 오래다. 트럼프 정부가 등한시하는 진단과 추적, 마스크 의무제와 같은 개인 보호 정책을 꼼꼼히 다루고 있다. 실제로 바이든 후보는 당선 뒤 진단과 추적에 힘쓰겠다고 했다. 키트 생산과 배포에 집중하고 좀 더 편리한 차세대 진단기법 개발에 자원을 투입하겠다는 게 그의 복안이다.

워싱턴의 분열이 미국 사회의 분열을 불러왔기에 워싱턴 정치의 봉합은 미국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됐다. 바이든 후보의 경우에는 민주당 내부 투쟁의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그는 민주당 내에서 온건한 편이다. 민주당 속에는 그의 생각보다 더 큰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으며, 그들은 더 큰 제도적 변화에 굶주려 있다. 물론 왼쪽에 위치한 그들과 손을 잡는 일도 가능하지만 반대로 바이든 후보의 성향을 고려할 때 오른쪽으로 외연을 확대하는 일이 더 수월할 수 있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지금이 남북전쟁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에 거국정부의 구성을 바이든 후보에게 제안한 적이 있다. 내각을 구성할 때 다양한 진영의 사람들을 쓰자는 얘기인데, 그가 제시한 멤버 중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지냈던 미트 롬니 상원의원도 있다. 외연확장에 유연한 바이든 후보이기에 가능한 제안이다.

상원의 통제도 비슷한 맥락이다. 바이든 후보가 백악관에 들어가는 순간 상원의 존재는 매우 중요해진다. 미국의 50개 각각의 주에서 선거로 선출된 2명씩, 총 100명으로 구성된 미 상원은 외교 문제나 파병, 공무원 임명 등 대통령의 중요 결정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라면 백악관이 질주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바이든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하더라도 상원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공화당이다. 바이든 후보는 과거에 “민주당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숨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의회를 가장 잘 이해하는 지도자라는 건 그의 큰 자산이다. 의회에서 수십 년간 쌓은 경험은 온건한 공화당 의원들에게 초당적 지지를 얻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지난 11월 4일 개표 진행 중에 승리 선언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4일 개표 진행 중에 승리 선언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 ⓒphoto 뉴시스

바이든의 방향성은 ‘고립’보다 ‘협력’

대내적인 균열을 넘어 대외적인 균열도 메워야 한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한 덕에 미국이 중심이었던 다자간 기구와 합의는 이미 일그러졌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멤버였던 벤 로즈 고문은 “바이든 정부가 할 일 중 하나는 국제 질서를 재건하는 것이다. 국제 규범이나 합의, 조약에 다시 한번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 협력에 등 돌렸던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열혈 팬은 있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백악관에서 그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다”고 말했고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그를 지지한 유일한 유럽연합(EU) 내 지도자였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역시 “트럼프를 매우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권위주의자나 포퓰리스트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 지지대열에 섰다. 반면 바이든 후보는 그들과의 브로맨스보다는 찢긴 국제 협정을 되살리고 전통적인 미국의 리더십을 부활시키길 원한다.

지난 11월 4일 바이든 후보의 승리가 유력해지던 그날은 공교롭게도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날이었다. 이것 역시 되돌려야 할 중요한 과제로 그는 인식하고 있다.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국내 친환경주가 급등한 사실만 봐도 기후변화에 대한 그의 스탠스를 알 수 있다. 대선 출마를 고려하던 때부터 그는 기후변화 공약을 주요 정책으로 밀어붙였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 국제적 협력이 필수인 기후변화는 민주당 내에서 의료보험과 함께 주요 안건 중 하나였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바이든 후보는 오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제로(0)’로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향후 10년간 청정에너지 개발을 위해 1조7000억달러(약 2000조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후보의 기후변화 공약은 민주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의원이 제안한 급진적인 ‘그린뉴딜(GND)’의 목표와 유사하지만 오히려 구체성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청정에너지 개발에 들어갈 1조7000억달러는 트럼프 정부가 향후 10년간 기업에 약속한 세금 감면을 원상복구해서 마련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런 바이든 측의 외교 접근법은 코로나19라는 국내의 숙제를 해결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하다. 차기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코네티컷)은 가디언에 “외교 정책이야말로 코로나19와 싸우는 열쇠”라고 말했다. “글로벌 공중보건 예방 인프라를 구축하고 글로벌 백신 노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맹이 필요하며 친구가 없다면 궁극적으로 이 바이러스나 혹시나 출몰할지도 모를 새로운 바이러스와 싸우는 게 불가능하다”는 그의 지적 역시 바이든 후보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

“트럼프의 기록적인 2위 기억해야”

바이든 후보가 물려받을 미국은 분노하고 양극화된 국가다. 그래서 바이든 후보의 앞길은 가시밭길에 가깝다. 높은 투표율 덕분에 그는 미국 대선 역사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고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역시 2위로서는 역사적인 득표를 기록했다는 건 부담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1월 3일의 기록적인 투표율에서 얻은 진정한 교훈은 미국이 격렬하게, 그리고 거의 균등하게 분열돼 있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후보는 “미국의 영혼을 회복하겠다”라고 매번 공언했지만 미국인들은 그가 말하는 영혼 회복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선거 결과를 보면 유권자의 절반가량은 트럼프주의를 반박하지 않은 셈이 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이 이기면 불가능한 임무를 상속받는다”고 내다봤다. 공화당 상원이 백악관과 타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연방대법원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겠다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일주일 전 에이미 코니 배럿 지명자를 대법관으로 인준해 대법원의 보수 색채를 한층 덧칠했다. 이런 환경에 더해 바이든 후보는 23만5000여명의 미국인을 죽이고 지금은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전염병 유행기에 집무실을 열어야 한다. 여기에 수반되는 경제적 혼란에도 대처해야 하고 공화당 상원이 반대하는 경기부양책도 통과시켜야 한다. 코로나19로 더욱 심해진 소득불평등 문제도, 뿌리 깊게 박혀 있다가 올해 제대로 터진 구조화된 인종차별 문제도 한시바삐 풀어야 할 과제가 됐다. 게다가 의료보험 개혁, 녹색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 중산층 대학생을 위한 무료 등록금 등 미국을 과거로 되돌리기 위해 밀고 있는 의제가 꽤 많다. 어렵게 승리했지만 더 큰 어려움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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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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