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GRU 장교들 앞에서 연설하는 푸틴 대통령. 푸틴 대통령 뒤에 걸린 문양이 GRU 부대 마크다. ⓒphoto 뉴시스
2018년 1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GRU 장교들 앞에서 연설하는 푸틴 대통령. 푸틴 대통령 뒤에 걸린 문양이 GRU 부대 마크다. ⓒphoto 뉴시스

러시아 군(軍) 정보기관인 정찰총국(GRU)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시 올림픽조직위원회를 해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스페인 언론들은 GRU가 카탈루냐 분리독립 사태에 관여했으며 이에 대해 스페인 사법당국이 조사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보도가 나오면서 외국에서 각종 공작을 자행하는 러시아군의 GRU라는 조직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2017년 일어났던 카탈루냐 분리독립 시도와 시위 사태에 GRU가 개입했다는 보도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카탈루냐가 독립할 경우 러시아 측이 1만명의 군대를 파병하여 카탈루냐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편 대외채무도 갚아주겠다는 제의를 GRU를 통해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페인 주재 러시아대사관은 지난 10월 28일 “하필 100만이 아니라 1만명이냐”는 등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반(反)러시아 캠페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언론들은 독일 정보국 관계자를 인용, “러시아 GRU가 극단주의적 시민단체들을 지원하며 서방 측의 불안정과 분열을 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1970년대에 미국의 퍼싱 중거리 미사일의 서독 배치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반핵평화 시위에 소련 정보기관이 개입한 사실이 소련 붕괴 이후 드러나기도 했었다.

카탈루냐 지역은 2017년 10월 1일 주민투표를 통해 90%의 압도적인 지지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스페인 정부가 이를 거부하며 지역정부를 해산하고 주모자들을 체포하여 독립은 무산되었지만 불씨는 사라지지 않은 상태다.

카탈루냐의 독립과 러시아 GRU와의 연관을 처음 제기한 곳은 스페인의 유력지 ‘엘 파이스’이다. 지난해 9월 ‘엘 파이스’는 러시아 GRU 요원들이 2016년 1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바르셀로나를 수차례 방문하였다고 보도했다. 특히 장성급인 데니스 세르게예프가 세르게이 페도토프라는 가명으로 여러 차례 출입국 경로를 바꿔가며 바르셀로나를 여행한 데 주목하고 있다. 스페인 당국은 이들이 카탈루냐 독립운동과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관여했는지 테러 수사 차원에서 조사 중이다. ‘엘 파이스’는 GRU 내에서도 인터넷이나 무기 전문가가 포함된 20여명 규모의 29155부대가 조사 대상이라고 지목하였다.

망명 스파이에 독극물 공격

GRU의 29155부대는 이전에도 국제적으로 주목을 끌었던 전력이 있다. 2018년 3월 영국에서 일어났던 망명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 율리아를 상대로 한 독극물 노비촉 공격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스크리팔은 GRU 소속 대령으로 영국 정보기관 MI6에 포섭되었다가 러시아에서 체포됐던 인물이다. 스파이 맞교환으로 영국으로 이송됐지만 딸 율리아와 함께 런던 남부 솔즈베리의 쇼핑몰 벤치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영국 정부는 GRU 29155부대 요원 알렉산더 페트로브와 루슬란 보시로브(가명)가 스크리팔의 집 현관 손잡이에 몰래 발라놓은 노비촉에 이들이 중독되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영국은 보복조치로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했었다.

29155부대는 2016년 10월 몬테네그로에서 발생한 쿠데타 시도와 관련해서도 연관설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2명의 러시아 스파이가 몬테네그로 법정에서 궐석재판을 통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당시 재판에서 2015년 불가리아의 무기상 암살시도, 몰도바공화국에서의 정치불안 조성 등과 관련해서 29155부대가 범인으로 지목됐다.

해킹과 관련해서는 GRU 소속 74455부대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10월 19일 GRU 소속 74455부대가 한국의 평창올림픽 당시 해킹을 저질렀다고 발표하고 6명을 기소했다. 미 법무부가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일명 샌드웜(Sandworm)팀이라고도 불리는 74455부대 해킹팀은 올림픽조직위원회와 파트너사들의 컴퓨터 수천 대에 파괴적인 악성소프트웨어(malware)인 ‘올림픽 디스트로이어(Olympic Destroyer)’를 설치하였다. 이로 인해 서버가 망가져 12시간 동안 수송·숙박·선수촌 관리·유니폼 배부 등 4개 영역 52종의 서비스가 전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 GRU가 자국 선수단이 도핑 때문에 올림픽에 참석할 때 러시아 국기를 달지 못하게 되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그리조두보바 거리에 위치한 GRU 본부. ⓒphoto 뉴시스
모스크바 그리조두보바 거리에 위치한 GRU 본부. ⓒphoto 뉴시스

평창올림픽 조직위 컴퓨터 수천 대 공격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GRU 74455부대는 2015년 12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우크라이나의 전력망, 재무부 등에 악성소프트웨어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2017년 4~5월에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정당인 ‘전진하는 공화국’을 겨냥한 스피어피싱 공격 및 해킹과 정보유출도 시도하였다. 2017년 6월 27일에는 악성소프트웨어 ‘낫페트야(NotPetya)’를 사용하여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헤리티지밸리 헬스시스템, 페덱스 관련사, 미국의 대형 제약회사 등 병원 및 의료시설의 컴퓨터를 감염시켜 10억달러의 피해를 끼치기도 했다. 2018년 4월에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와 영국 국방과학기술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父女) 관련 독극물 공격 조사를 겨냥해 스피어피싱 공격을 가했고, 조지아에서는 주요 언론사와 의회를 상대로 스피어피싱 공격을 벌인 바 있다.

이처럼 러시아군의 정보기관인 GRU는 각종 사건에 연루되며 이미 국제적으로 악명을 떨친 상태다. GRU 본부는 수도 모스크바의 그리조두보바(Grizodubova) 거리의 현대식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부대를 상징하는 강철로 만든 기념비에 ‘당신의 영광스러운 행동에서 위대한 조국이 탄생한다(The greatness of the Motherland is in your glorious deeds)’는 부대훈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GRU는 올해로 창설 100년이 넘은 기구이다. 러시아에서는 17세기부터 비밀리에 군사활동을 체계적으로 펼쳐온 기록이 있다. 소련 이전의 제정러시아에도 군사정보 수집과 후방공작을 담당하는 군 기관이 있었다. 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1810년 프랑스 나폴레옹의 침입에 대비하여 비밀원정군을, 1812년에는 군사정보를 담당하는 특별사무국을 각각 설치하였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의 군사학자들은 GRU의 원형을 소련 초기 군사혁명위원회가 1918년 11월 5일 적군(赤軍) 야전군사령부에 설치한 ‘정보등록과’로 본다. 정보등록과 적군의 여러 정보조직의 활동을 조정하고, 사령부에 제출할 정보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정보등록과 설치는 레온 트로츠키가 주도하였다. 이 때문에 스탈린은 이 기구를 신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구는 GRU로 변신하며 활동영역과 기구를 확장하였다. 2차대전 이전에 이미 유럽 전역과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GRU 요원들이 활동하였다. 나치독일군과의 전쟁에서도 독일군 후방에서의 빨치산 활동은 대부분 GRU 소속 요원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21세기 초까지 유지된 쿠바 내 감청기지

2차대전 이후에도 GRU는 조직을 확대하여 군사적 위협에 대한 조기경보기능을 담당하였다. 1960년대에는 쿠바에 미국 전역의 통신을 감청할 수 있는 기지를 구축하였다. 이를 통해 소련은 미 국방부의 통신을 감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부터 정찰(reconnaissance)과 감청이 GRU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자리 잡는다. 쿠바 내 감청기지는 21세기 초까지 유지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연방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측근들은 러시아에 적(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군사 정보기관들도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였다. 이 때문에 GRU는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러시아 접경국가들에 배치된 요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해외 주재 요원들을 철수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GRU는 다시 활동을 강화한다. 푸틴은 GRU를 위한 현대식 건물도 건설하였다. 8층짜리 GRU 본부는 유리창이 많아 미래의 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건물에는 각종 휴식시설이 있기 때문에 요원들은 본부 건물을 떠나지 않고도 몇 주 동안씩 일할 수 있다. GRU 본부에는 거대한 전자지도가 펼쳐진 상황실이 있다. 이 상황판에는 미국의 핵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 항공모함 등의 위치, 러시아 접경지역의 군 배치 등이 실시간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푸틴은 2006년 11월 8일 직접 헬기를 타고 이 GRU 본부 건물에 도착하여 부대의 활동을 격려하며 군 정보기관의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현재 국제환경에서 러시아가 직면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GRU의 지속적인 활동과 역량 개선이 요구된다. 나는 GRU의 활동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여러분 전투부대들은 GRU 소속의 특수부대가 동원된 대테러작전에서 분명하고,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활동한다. GRU가 생산하는 시의적절하고 정확한 정보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데 밑바탕이 되고,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데 이바지한 경우가 많다. GRU는 국가의 안보체계에서 특별하고 독특한 활동을 한다. GRU는 국가이익을 수호하는 데 필요한 강력하고 효율적인 기구이다.”

푸틴 대통령 집권 후 다시 역할 강화

2012년 GRU 책임자였던 이고르 세르군 소장은 당시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변화된 국제환경에서 정보의 우선적 중요성과 이를 활용하기 위한 기구가 필요하다”며 “국가와 군 지도부는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 지원 문제에 대해 깊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시간으로 (군사) 정보 첩보(intelligence information)를 수집, 분석, 처리하는 데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이다. 이를 위해 최신의 정보통신 기술과 방법을 제공하고, 군의 정보업무 담당 요원들의 전문교육 수준을 높이고, 군사정보의 모든 영역에서 지속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군사정보의 관심영역은 지역적·국지적 무력충돌, 외국의 군사력, 장비, 무기, 군사작전 시의 장비들뿐만 아니라 군과 관련된 경제 상황 등이 포함된다. 국경 부근에서 과거에 발생했던 모든 사건이 현재에도 발생하고 있으며, 미래에도 발생할 것이다. 이는 군사정보 당국의 주요 관심사로 조심스럽게 평가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GRU는 어려운 시험과 훈련을 통해 요원을 선발한다. 현재 2~3개 외국어를 하는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으며, 500명 이상의 박사급 요원이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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