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저장탱크에서 호스를 옮기고 있는 작업자들. ⓒphoto 뉴시스
후쿠시마 오염수 저장탱크에서 호스를 옮기고 있는 작업자들. ⓒphoto 뉴시스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에 대형 악재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1년 노심용융(爐心鎔融·Meltdown)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를 방사성물질의 농도를 낮춘 후 해양 방류하는 방안을 조만간 결정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은 지난 10월로 예상됐던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 결정을 일단 보류했으나 연내(年內)에 이를 결정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가지야마 히로시(梶山弘志) 경제산업상은 지난 10월 기자회견에서 “(오염수가) 매일 증가하는 것을 고려하면 처분 방침을 결정하지 않고 미룰 수는 없다”며 이같이 시사했다. 결정이 내려지면 오염수가 실제로 바다에 흘러나가는 시기는 내년 도쿄올림픽이 끝난 후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연내 결정 움직임에 정부 긴장

일본의 이런 움직임이 알려지면서 한국 내에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최근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주일 대사관 국정감사의 주요 현안은 바로 이 문제였다. 외통위 의원들이 앞다퉈서 관련 질의를 하며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요구했다. 정의당은 주한 일본대사관을 방문해 오염수 방류 움직임에 대해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단 한 방울의 후쿠시마 오염수도 용납할 수 없다”며 “일본 정부가 방류를 강행하면 한·일 양국의 법정과 국제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건강과 관련된 중요 문제로 인식함에 따라 실제로 해양 방류가 결정되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다시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도 긴장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9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에 대한 관계부처 회의를 차관급으로 격상시켰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1월 4일 “청와대 내에도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모니터링하면서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일관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일본 정부의 난제(難題) 중 하나다. 스가 총리가 지난 9월 취임한 지 10일 만에 후쿠시마원전 시찰에 나선 것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요즘도 매일 약 150t의 오염수가 생산되고 있다. 9년 전 폭발로 방사능오염 사고를 일으킨 원자로 해체 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인데 이곳으로 지하수, 빗물 등이 흘러들어 오염수가 계속 생겨나고 있다.

기자가 지난해 10월 이곳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약 1000개의 대형 원통 탱크였다. 셀 수 없이 많은 드럼통이 마치 줄 맞춰서 사열을 준비 중인 것처럼 보였다. 바로 이 탱크에 해양 방출 여부로 주목받는 ‘처리수’(방사능오염수에서 상당수 핵 물질을 제거한 물)가 보관돼 있었다. 이곳에는 2011년 대규모 방사선 유출 사고 발생 후 높이 10~15m, 저장용량 700~2000t의 탱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당시 116만t 의 처리수가 장기 보관돼 있었는데 올해 9월 현재 123만t으로 늘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만난 도쿄전력 마쓰모토 준이치(松本純一) 폐로추진실장은 “2022년이면 현재 처리수를 저장하는 탱크가 ‘만땅’(가득 채운 상태)이 되지만 현 시점에서 새로운 탱크를 만들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조만간 오염수 처리 방안을 어떤 식으로든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당시 도쿄전력 관계자들은 해양 방출, 수증기 방출, 지하 매립 등의 6가지 방안 중에서 해양 방출을 적극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잠실체육관만 한 오염수 처리시설에 들어갈 때는 혹시 있을지 모를 피폭(被曝)에 대비해 방재복, 방재 마스크, 방재 장화를 착용했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이용한 오염수 처리는 현재 해체 작업 중인 원자로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원통 게이트를 차례로 거치게 하면서 3단계로 필터링을 하는 구조로 돼 있었다. 게이트 사이사이에 방사능이 어느 정도 제거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전자장비와 계측기가 복잡하게 설치돼 있었다.

도쿄전력은 이런 절차를 거쳐도 방사성물질인 트리튬(삼중수소)이 제거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여러 실험 결과를 제시하면서 인체에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도쿄전력 ‘리스크 커뮤니케이터’ 오야마 가즈요시(大山勝義)는 “트리튬은 인체에 큰 해가 없다. 인체에 들어가면 대부분 방출된다”고 했다.

지난 10월 28일 국회에 출석한 스가 총리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위해 마지막 세부 사항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8일 국회에 출석한 스가 총리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위해 마지막 세부 사항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photo 뉴시스

IAEA “일본 입장 이해”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IAEA는 오염수 처리 문제가 부각될 때부터 일본의 입장에 이해를 표명하고 지지해왔다. 지난 2월 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국장이 도쿄를 방문,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를 만났다. 그로시 사무국장은 이때 후쿠시마 처리수를 해양 방류 등을 통해 방출하는 것에 대해 지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전문가들이 제안한 해양 방출이나 대기 중으로 수증기 방출에 대해 모두 적절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오염수 처리) 방법이나 시기의 결정은 일본 정부의 문제”라며 “우리의 최종적인 분석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일본 전문가들의) 제언은 이치에 맞는 방법과 체계적인 대응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해양 방출에 대해 “다른 곳에서도 바다로의 방출이 이뤄지고 있어 새로운 것은 아니며 불상사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IAEA의 지지를 바탕으로 우리 정부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 해양 방류를 밀어붙이려고 한다. 일본 정부는 2013년 이후 10번째로 IAEA에 후쿠시마 오염수와 관련한 조사를 요청, IAEA 조사단이 지난 11월 4일부터 관련 활동에 착수한 것도 명분 만들기일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국민의 불안을 씻어주지 못하고 있다. IAEA의 판단대로 원전 폭발사고 이후 방류되는 오염수가 일반 원전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지를 검증해서 국민에게 알려야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국민의 건강에 관련된 만큼 일본이 신중하게 움직이도록 해야 하지만 이 같은 외교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국민의 반일 감정은 고조되는 분위기다. 한·일관계와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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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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