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7일 매복 공격으로 사망한 이란의 핵물리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27일 매복 공격으로 사망한 이란의 핵물리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photo 뉴시스

이란의 핵 개발 책임자로 알려진 핵물리학자 모센 파크리자데(62)가 지난 11월 27일 이란의 테헤란 부근에서 매복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소행이라며 즉각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해외공관 등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미국은 니미츠 항모 전단을 걸프 해역에 배치하는 등 중동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이란이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제재 해제를 기대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자제할 가능성도 있다. 이란과 미국과의 긴장 고조는 선거결과에 불복하는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파놓은 무시무시한 함정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핵물리학자이자 혁명수비대 고위 장교인 파크리자데는 테헤란에 위치한 이맘후세인대학에서 핵물리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이란 혁명수비대의 고위 장교이다. 유엔안보리에 따르면 파크리자데는 이란의 물리학연구센터장이며, 국방부와 육군 소속 연구개발 책임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파크리자데를 미사일 핵탄두를 개발하는 비밀 프로젝트인 ‘아마드(AMAD)’의 책임자로 파악하고 있다.

2018년에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이란의 핵 개발 관련 극비문서들을 테헤란에서 획득했다. 문서들의 왼쪽 위에는 파크리자데의 친필 서명이 있었다고 한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파크리자데가 아직도 이란 국방부 내에서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며 “이 이름 ‘파크리자데’를 기억하라”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리트윗한 이스라엘 저널리스트

파크리자데의 암살 이후 이스라엘의 저널리스트인 요시 멜먼은 파크리자데가 이란의 비밀 무기 프로젝트의 책임자였으며, 지난 수년간 모사드의 추적을 받아왔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멜먼은 이 트윗에서 “그의 죽음이 이란에는 가장 심각한 심리적, 실무적 타격”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사람의 트윗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리트윗하였다. 9000만명의 팔로어를 가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프리랜서 언론인이 주장하는 내용의 신뢰성을 확인해준 셈이다.

파크리자데의 죽음에 이란으로서도 보복을 다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란 의회는 지난 11월 29일 우라늄 농축 수준을 20%로 올린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으로는 이스라엘의 해외공관에 대한 공격,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이용한 공격, 예멘의 후티족을 이용한 드론 공격, 사이버 테러, 미사일 공격 등이 예상된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트럼프가 이란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 명분을 주기 때문에 보복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은 1979년 이란에 이슬람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란에 경제제재를 가해왔다. 시아파 이슬람정권인 이란은 중동 전역에서 팽창 정책을 펴왔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이후에는 이라크 내에서 미군과 수니파 이슬람교도들을 상대로 한 공격을 강화하였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지역의 수니파 아랍국가들은 이란이 시아파들의 반정부 활동을 배후조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협정 파기와 바이든의 복구 노력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이란의 핵 활동을 제한하는 대신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JCPOA)’을 이란,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와 함께 체결하였다. 경제제재 조치도 해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5월 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최대한 압력(maximum pressure)’ 정책을 취했다.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과 중동에서 미국에 저항하는 활동을 벌이는 데 대한 불만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란이 경제제재에 굴복하면 협상테이블로 나올 것이라는 게 트럼프의 주장이었다. 이후 이란은 JCPOA 협정에는 3.67%로 되어 있는 우라늄 농축 수준을 두 배로 높이는 등 핵 개발을 본격 추진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JCPOA에서 탈퇴하지는 않았다. 프랑스, 영국, 독일은 JCPOA를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란의 핵 개발과 팽창 정책에 위협을 당하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아랍국가들과의 동맹을 적극 추진하였다. 이란은 시아파지만 사우디 등은 수니파로 종교적으로도 적대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을 이란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아랍 동맹’, 또는 ‘이스라엘-수니파 동맹’으로 엮으려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 8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의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한 미국, 이스라엘, UAE의 ‘아브라함 협정’으로 공식화되었다. 이후 바레인, 오만, 수단 등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도 곧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바이든 당선자는 선거 기간 동안 미국의 신뢰도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며 트럼프가 탈퇴한 JCPOA 복귀가 최우선 과제라고 공언했다. 토니 블링큰 국무장관 내정자도 최근 “이란이 (핵 개발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우리는 JCPOA에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핵물리학자 모센 파크리자데가 매복 공격으로 사망한 현장. 이란은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란 핵물리학자 모센 파크리자데가 매복 공격으로 사망한 현장. 이란은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트럼프 ‘이란 폭격해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

트럼프가 바이든의 JCPOA 복귀를 그대로 두고 볼 사람은 결코 아니다. 트럼프는 당장 이란에 대한 무력 공격을 검토하였다. 이란의 주요 시설 53곳을 폭격하여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는 복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둘러 철군하는 트럼프가 인구 8000만명의 대국과 새로운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관측이 유력했다.

결국 트럼프의 현실적 선택은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강화였다. 미국의 정보 전문 사이트인 악시오스(AXIOS)는 지난 11월 8일 이스라엘의 고위 소식통을 인용,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 및 걸프국가들과 함께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내년 1월 20일까지 이란에 대한 가능한 한 많은 제재 조치를 추가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이러한 조치는 “이란에 압박을 가하는 한편 바이든 행정부가 JCPOA로 복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내년 1월 20일까지 매주 이란에 대한 제재 조치를 추가할 예정이다. 이러한 제재는 핵 개발과 관련된 것만이 아니다. 핵 개발 관련 제재는 해제되기 쉽다는 게 트럼프의 판단이다. 트럼프는 이란의 미사일 개발, 테러 지원, 인권 위반 등과 관련해 광범위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바이든이 이를 해제할 경우 정치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1월 23일 쿠웨이트를 방문해 알 사바 외무장관을 만나 이란에 최대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을 지지한 쿠웨이트에 감사를 표한다. 이란이 중동 전역에서 테러를 저지르는 데 활용할 돈, 자원, 부(富), 무기를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파크리자데가 암살당하기 직전에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여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비밀회담을 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파크리자데 암살 다음 날인 11월 28일 폼페이오 장관은 “이란의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민감한 기술과 물품을 제공한 혐의”로 러시아와 중국의 4개 회사에 제재를 가했다고 발표했다. 폼페이오는 “이란의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중국과 러시아 회사처럼 미사일과 관련한 물자와 기술을 제공하는 외국의 공급자들에게는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UAE 등 걸프지역 아랍 국가들도 바이든이 JCPOA에 복귀하는 데 반대한다. 이 협상이 이란의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규정도 없고, 시아파 테러리스트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는 규정도 없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이스라엘 총리실의 안보보좌관 자키 하네그비는 지난 11월 29일 이스라엘이 걸프 아랍국가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며 “바이든 정권이 이란과의 JCPOA로 복귀하려고 하는데 이는 걸프 아랍국가들의 존립을 위협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이란의 모하메드 자리프 외무장관은 일찍부터 미국이 JCPOA에 복귀하면 이란도 복귀한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의 JCPOA 탈퇴와 경제제재로 2000억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미국이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이란은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해 경제가 피폐해진 상태이다. 이란 리알화의 달러 대비 가치는 연초에 비해 50% 이상 폭락하는 등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며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다고 아랍 뉴스는 전했다. 두바이에 있는 국제재정기구(IIF)에 따르면 이란 경제는 올해 마이너스 6.1% 역성장이 예상된다. 만약 바이든이 경제제재를 해제하면 2021년에는 4.4%의 성장이 예상된다. 또 2022년에는 6.9%, 2023년에는 6%씩 성장이 예상된다. 석유 수출도 늘어나 2023년까지 1094억달러의 외환을 보유할 수 있을 전망이다. 2021년 말까지 미국의 제재 해제를 전제로 외국인 직접투자는 올해의 8억9000만달러에서 2025년에는 64억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 반면 경제제재가 유지된다면 내년의 성장률은 1.8%에 머물며 외환보유고도 현재의 800억달러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3년에는 469억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이 JCPOA에 복귀하면 이란은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중동지역에서 입장도 더욱 강화되는 등 정치적 이득도 상당하다.

바이든의 유화책 기다리는 이란 개혁파

이란으로서는 파크리자데의 죽음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여 바이든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이든도 이란 정부에 보복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당선자의 비공식 외교 접촉은 미국 법에 위배된다.

2016년 12월 트럼프가 당선자 시절 대통령이던 오바마는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며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했다. 당시 트럼프의 안보보좌역인 마이크 플린 장군은 주미 러시아대사와 은밀히 접촉하여 보복행동을 자제하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이 부분이 미국 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연방수사국(FBI)의 혹독한 수사를 받고 위증죄로 기소되었다. 민주당은 이를 조사한다며 특검을 구성하도록 하였으며, 마침내 트럼프에 대한 탄핵 발의로 이어지는 등 4년 동안 줄곧 발목을 잡았다. 트럼프는 최근에야 플린 장군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같은 논리로 만약 바이든 당선자가 이란 측에 보복을 자제하라고 전한다면 미국 법에 위배가 될 수 있다. 바이든으로서는 트럼프가 당선자 시절에 당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트럼프의 이란에 대한 강공을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이란의 개혁파인 로하니 정권은 지난 2월 총선에서 보수강경파에 패했다. 내년 6월 대선에서도 고전이 예상되고 있다. 이란 내부에서는 미국의 공격설이 나올 때마다 서둘러 북한처럼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이란의 로하니와 미국의 바이든은 이란에서 반미강경파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6월 이전에 협상을 타결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파크리자데의 죽음은 미국의 바이든과 이란의 개혁파 지도자 로하니 모두에게 또 하나의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키워드

#국제
우태영 자유기고가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