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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7호] 20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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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아베가 통제하려던 검찰, 아베를 정조준하다

김회권  기자 khg@chosun.com 2021-01-02 오전 2:53:34

▲ 2017년 4월 15일 당시 일본 총리였던 아베 신조(가운데 분홍색 넥타이)가 도쿄 신주쿠교엔에서 열린 ‘벚꽃을 보는 모임’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photo 뉴시스
일본 검찰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를 직접 조사하기로 했다. 일본에서 검찰이 전직 총리를 조사하는 건 드문 일이다. ‘임의 사정청취’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사건의 사정을 듣기 위한 조사 방법이다. 일본 검찰은 소환 조사와 방문 조사 중 소환 조사를 택했다. 아베를 직접 불러 일명 ‘벚꽃 스캔들’로 불리는 정치자금규정법 위반 혐의를 조사할 방침이다.
   
   아베 집권 말기에 주목받은 이 스캔들을 파헤치는 데는 ‘거악 척결의 상징’이라는 신화를 갖고 있는 도쿄지검 특수부가 직접 나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검찰의 리벤지 매치’라고 해석한다. 인사권을 활용해 검찰에 일그러진 관계 설정을 요구했던 아베 정부가 초래한 일이라는 얘기다.
   
   1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 2019년 11월 13일 오후 4시20분. 일본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원래 예정됐던 회견 시간보다 20분이나 늦었다. 스가 장관은 “내년에는 ‘벚꽃을 보는 모임(이하 벚꽃모임)’ 개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이날 오전 같은 자리에서는 정반대의 말을 했다. “벚꽃모임 같은 게 뭐 그리 문제인가.” 불과 몇 시간 전과 너무 다른 그의 발언은 벚꽃모임이 갖는 정치적 파장을 과소평가해서 생긴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침묵해온 검찰이 아베를 정조준한 이유
   
   1년이 지난 지금 스가는 장관이 아닌 총리가 됐다. 아베 신조는 지난 9월 건강 문제를 이유로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스가에게 정권의 바통을 넘겼다. 그런데 요즘 일본 신문 1면의 주인공은 정치 최일선에서 물러난 아베의 몫이다.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줄 알았던 벚꽃모임의 파장은 오히려 활짝 만개했다. 일본 검찰이 벚꽃 스캔들과 관련해 아베에게 출석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 정치 1번가인 나가타초에는 긴장이 흐르고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아베 전 총리 후원회가 2015〜2019년 5년간 벚꽃모임 전야제 개최에 쓴 2000만엔(약 2억860만원) 중 800만엔(8400만원)을 지원했는데 이 내용을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 누락했다고 보고 있다. 이대로라면 정치자금규정법 위반 혐의를 받게 된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건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다. 1952년부터 일본 총리가 개최한 벚꽃모임은 매년 4월 과거 일본 왕실의 정원이었던 도쿄 신주쿠교엔에서 열린다. 65종 1300여그루의 벚꽃나무가 만개하는 곳으로 일본의 대표적 벚꽃 명소로 손꼽힌다. 행사를 여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총리가 보낸 초청장을 받는다. 그간 사회적으로 공로를 인정받은 사람, 유명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 올 만한 사람들이 총리의 부름을 받고 벚꽃을 보러 모였다. 그런데 아베 정부 들어서부터는 참가자가 급증했다.
   
   아카하타는 “과거 1만명을 넘지 않았던 초청 인원은 아베 정부 들어서 1만명을 훌쩍 돌파하더니 2019년에는 1만8200명이나 참석했다”고 전했다. 모임의 질도 달라졌다. 벚꽃을 보러 야쿠자나 악덕 다단계 업체 대표가 참석하기도 했다. 그들은 아베나 스가 총리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나 날아온 초청장을 사업에 활용해 또 다른 문제를 낳기도 했다. “회장이 총리와 식사하는 사이”라는 다단계 회장의 말을 믿고 투자한 사람이 돈을 몽땅 날리는 사건도 있었다.
   
   특수부의 주목을 끈 부분은 아베의 선거구인 야마구치현 지지자들이다. 그들 역시 수십 대의 단체버스를 타고 도쿄에 벚꽃을 보러 왔다. 지난 11월 24일 요미우리신문은 1면에 단독 기사를 내보냈다. 신문은 “매년 호텔에서 벚꽃모임 전야제 겸 만찬을 했는데 여기서 생긴 부족한 비용을 아베의 비서가 대표를 맡고 있는 ‘아베 신조 후원회’가 충당해왔고 이를 증빙할 호텔 영수증과 명세서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신문 기사는 “호텔 측은 아베 측으로부터 차액을 수령했다는 증거로 영수증을 아베 측에 보냈다고 했다. 도쿄지검 특수부도 영수증의 존재를 이미 파악한 상태다. 호텔 관계자, 아베의 제1비서 및 사설비서, 아베 신조 후원회 관계자 등 이미 20여명으로부터 임의취조를 끝냈다”고 지적했다.
   
   아베는 그동안 이 문제에 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전야제는 참가자들의 회비로 진행했고 비용이 충당되지 않을 경우에는 호텔 측이 선의를 베풀어 해결해 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보전을 한 적도 없고 따로 지출도 없었으니 수지보고서에 기재를 할 필요도 없었다고 말해왔는데 요미우리 보도대로라면 줄곧 거짓말을 해온 셈이다.
   
   그간 아베 정부 8년 동안 벌어졌던 각종 스캔들에 대해서 일본 검찰은 침묵해왔다. ‘정치 주도’를 강조하고 충성도에 따라 인사권을 행사하며 줄세우기를 강조해왔던 아베 정부의 기조에 검찰마저 길들여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베 부부가 직접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았던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아베 총리 지인 사학에 국유지를 헐값에 매각했다는 스캔들), 가케학원 스캔들(아베 총리 지인 사학에 수의학부 신설 특혜를 줬던 스캔들) 때도 아베는 생채기 하나 없이 건재했다. 정치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은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때 검찰은 문서 조작 의혹을 받은 관계자 38명 모두를 불기소 처분했다. 이후 검찰 심사회가 불기소가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도쿄지검 특수부는 재차 불기소 판정을 내렸다. 검찰 심사회는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관한 타당성을 사후적으로 검토하는 시민 기구로 기소독점주의에 대한 견제장치 역할을 한다.
   
   
▲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의 핵심 인물인 가고이케 야스노리 모리토모학원 당시 이사장이 2017년 3월 23일 도쿄의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검찰 인사권 잡겠다는 아베 정부의 집착”
   
   그렇게 무기력했던 검찰이 이번 벚꽃 스캔들을 두고 유독 아베의 턱밑까지 칼날을 대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는 그 시작점을 무리한 인사권이 발동됐던 시점에서 찾는다. 특히 언론들이 “유례없는 조치”라고 평가 내린 구로카와 히로무(黑川弘務) 당시 도쿄고등검찰청 검사장의 정년 연장이 출발점이다. 지난 1월 31일 구로카와 검사장의 정년이 아무런 근거 없이 6개월 연장됐다. 그는 원래 2월 7일 정년퇴임하기로 돼 있었는데 정부의 조치로 8월 7일까지 검사장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됐다. 언론들은 7월에 퇴임하는 이나다 노부오 당시 검찰총장 자리를 그에게 물려주기 위한 꼼수라고 봤다.
   
   문제는 정년 연장에 합당한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베 정부는 검찰청법과 공무원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했다. 법의 의도는 좋았다. 숙련자의 지식이나 경험을 활용하도록 공무원의 정년 연장을 추진하자는 것이고 자연스레 검사의 정년도 연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개정안에는 ‘정부의 판단으로 직책에 따라 정년을 조정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원래 일본 검찰청법은 검찰총장의 정년을 65세, 기타 검사의 정년을 63세로 정하고 있는데 이걸 모두 65세로 늘리겠다고 했다. 다만 내각이 인정할 경우 검사장 이상 직급은 최대 3년간 정년을 연장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뒀다. 68세까지 보직을 지키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내각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은 결국 검찰 고위직이 되고 정년 연장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면서 독립성 시비를 낳았다. 그럴 때마다 아베 정부는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리 마사코 법무상은 “검찰은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고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민주적 통제를 행사하기 위해 내각과 법무상이 인사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년 연장 수혜자로 꼽히던 구로카와 검사장은 1983년 검사에 임용된 뒤 엘리트 코스인 법무성 형사국 총무과장, 대신관방장, 법무성 사무차관을 거쳤다. 수사통이라기보다 정무 문제를 담당하는 법무성 관료의 길을 주로 걸었다. 이런 이력을 가진 검사가 드문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정치와의 거리감이었다. 관방장 3년10개월, 사무차관 2년4개월 등 총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구로카와는 아베 정부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래서 얻은 별명이 ‘아베 정부의 수호신’이었다.
   
   아베 정부에서 벌어진 갖가지 부정과 스캔들을 두고 검찰이 기소조차 제대로 못 했던 배경으로 그동안 구로카와를 지목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문예춘추는 2017년 6월호에서 아베 정부 각료들의 비리 사건에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당시 사무차관으로 있던 구로카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문지기 같았던 그가 정년 연장이 이뤄지고 검찰총장으로 거론되던 때는 벚꽃 스캔들이 터지고 이에 대한 조사 요구가 커지면서 아베 정부의 인기가 추락하고 있을 때였다.
   
   이 사건은 싱겁게 끝이 난다. 검찰청법 개정안은 거센 반대 여론에 밀려 보류하기로 했다. 이 개정안 때문에 아베 정부 지지율은 30%대 붕괴를 우려해야 했다. 사임 압박을 받던 구로카와는 어이없게도 기자들과 내기 마작을 한 게 들통나 불명예스럽게 사직했다. 검찰총장 자리는 원래 검찰에서 차기로 밀던 하야시 마고토 나고야 고등검찰청 검사장이 물려받았다.
   
   이 사태에 대해 TBS 메인뉴스인 뉴스23의 캐스터 호시 히로시(星浩)는 “일련의 과정에서 불거진 것은 검찰을 포함한 관료의 인사권을 끝까지 잡겠다는 아베 정부의 집착이었다. 그들은 그게 권력의 원천이라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난리 끝에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검찰은 정치로부터의 독립이란 숙제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기소는 어려워도 정치적 영향력 무너져
   
   총리 관저 아래 검찰을 두려던 아베 정부의 시도가 이렇게 끝이 났고 불과 몇 개월 뒤 아베는 총리에서 물러난다. 이때부터 도쿄지검 특수부는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문예춘추 온라인판은 “보통 검찰 내부에서 ‘붉은 벽돌파’로 불리는 법무성 관료라인이 정부의 의중을 헤아려 특수부의 ‘현장 수사파’에 제동을 걸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새로 취임한 하야시 총장이 아베 수사를 용인하는 걸 넘어 지지하고 있다는 설까지 돌고 있다. 7월 도쿄지검 특수부장에 취임한 아라카와 다카시는 과거에 아베 정부 수사를 두고 쓴맛을 본 적이 있는 인물이다. 오사카지검 특수부 시절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에 얽힌 배임과 공문서 폐기 혐의를 수사했지만 결국에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번 수사는 그에게 재도전인 셈이다.
   
   칼을 뽑아 들었다지만 도쿄지검 특수부가 아베를 기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많지 않다. 도쿄지검과 오사카지검에서 특수부 검사를 지냈던 평론가 마에다 쓰네히코는 “국회 회기 중에는 정치 사건을 수사하지 않는다는 검찰의 불문율이 있는데도 특수부가 조사를 하고 있다. 이건 연내에 고발을 마무리하고 그대로 불기소로 끝낼 경우에 있는 패턴이다”라고 말했다.
   
   언론들도 검찰이 비서진은 약식 기소를 하더라도 아베를 기소하는 건 어렵다고 본다. 아사히신문 자매 주간지인 ‘아에라’는 “검찰은 잃었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탈(脫)아베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스가 정부의 반응도 살펴야 한다. 아베 불기소 시나리오는 국민에게는 검찰의 집념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현 정부에 주는 타격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건강 문제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던 아베는 퇴임 직후 언제 그랬냐는 듯 왕성하게 움직였다. ‘창생일본’이라는 의원연맹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스가 총리의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아베가 세 번째 총리 자리에 올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던 타이밍에 검찰이 그를 불렀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에도 이런 사건이 있었을 때 비서뿐 아니라 그 위 정치인들의 정치생명도 사실상 끝났다. 그래서 아베의 정치생명은 끝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을 통제하겠다며 던진 무리수가 가져온 아베의 몰락이다.
   

   도쿄지검 특수부의 추락
   검찰 독립성 상징에서 ‘존폐 논란’ 대상으로
   
▲ 도쿄도 지요다구에 위치한 도쿄지방검찰청사.

   1976년 일본 검찰은 새롭게 태어났다는 평가를 들었다. 록히드 사건은 재탄생의 계기였다. 1976년 도쿄지검 특수부 소장검사들이 주도해 미국 록히드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구속하면서 온갖 압박들을 이겨내고 검찰 역사에 남는 실적을 남겼다. 당시 다나카는 집권 자민당 내 최대 파벌 수장이었고 상왕(上王)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그를 단죄하면서 독립 검찰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살아 있는 권력과 싸워왔다’는 일본 검찰의 신화가 영원할 순 없다. 도쿄지검 특수부로 대표되는 일본 검찰의 독립성은 금권정치로 물들었던 일본 정계와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반면 위상이 높아질수록 자신들이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 번복하거나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문제가 됐다. 2010년은 그런 문제들이 폭발한 때다. 2010년 9월 10일 일본 오사카 지방법원에서는 이례적인 판결이 나왔다. ‘부하에게 허위 공문서 작성을 지시’한 혐의로 오사카지검 특수부가 기소한 무라키 아쓰코 전 후생성 국장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이 충격을 준 건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마에다 쓰네히코가 구속됐기 때문이다. 그는 피고인의 허위 증명서 발급 기록을 담은 플로피디스크의 최종 업데이트 날짜를 고친 혐의를 받았는데 기소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다. 특수부 검사가, 그것도 오사카지검의 에이스가 증거를 직접 조작했다는 얘기였다.
   
   같은 해 도쿄지검 특수부도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의 정치자금 의혹사건 수사로 헤매고 있었다.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오자와를 조사했지만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 불기소했다. 특수부는 탈세로 수감된 건설회사 회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를 벌였다. 게다가 오자와는 검찰 개혁에 앞장서온 인물이란 게 문제였다. 민간인 검찰총장을 발탁하고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 방식에 대대적으로 손댈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도쿄지검 특수부의 무리한 기소가 오자와를 몰락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이유다. 불기소와 기소를 여러 번 반복했던 이 사건은 2년 뒤 오자와의 무죄로 결론 났다.
   
   선배들이 쌓은 실적 덕분에 특수부는 재갈을 물릴 상부 조직이나 관료가 없었다. 법무상이 검찰총장을 통해 지휘권을 발동할 수는 있지만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수 있어서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2010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특수부의 존폐 논란까지 거론될 정도로 심각했다. 2010년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란 책이었다. 저자는 “증거로 기소하던 특수부가 시나리오를 만들어 조작하는 집단으로 변질됐다”고 특수부를 비난했다.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자 정치권에서는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도쿄신문은 “2010년 사건으로 특수부가 큰 타격을 입은 뒤 정치인 관련 사건 수사에 소극적인 경향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특수부가 그간 특별하지 않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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