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큰 국무장관 지명자가 국무부 부장관 시절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photo USD
토니 블링큰 국무장관 지명자가 국무부 부장관 시절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photo USD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한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은 ‘외교 천재’라는 말을 들어온 젊은 엘리트이다. 그는 1976년 11월 28일생으로 1960년대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맥 조지 번디 이후 최연소이다. 그는 나이에 비해 외교·안보 분야에서 경력이 풍부한 베테랑이다. 예일대를 졸업하고 로즈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고향인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로 돌아와 로펌 등에서 일했다. 그는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의 소개로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외교안보팀에 합류했다. 클린턴 후보의 외교 분야 연설문과 토론을 담당했었다. 클린턴 후보가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국무장관으로 발탁되자 그는 국무장관 부비서실장으로 112개국을 함께 돌면서 보좌했다. 클린턴이 국무장관을 사임하자, 당시 조 바이든 부통령은 클린턴에게 여러 차례 간곡하게 요청해서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으로 일하던 그를 자신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기용했다.

이란 핵합의 막후 협상가 설리번

특히 그는 이란 핵합의를 도출하는 데 막후 협상가로 맹활약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윌리엄 번스 국무부 부장관과 설리번 부통령 안보보좌관 및 백악관의 이란 전문가인 푸넷 탤와르 등 3명은 2013년 3월부터 오만 등에서 최소 5차례 이란 대표단과 비밀 협상을 벌였다. 이 협상은 주요 6개국(P5+1: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과 이란이 같은 해 11월 공식 회담을 할 때까지 계속됐다. 설리번은 2012년 7월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으로 있던 중 오만으로부터 이란이 대화 의사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이란의 협상 의지를 시험해 보기 위해 처음 비밀접촉에 나섰다. 그는 번스 부장관이 본격적으로 협상에 나설 때까지 수차례 이란 측과 만나 밑그림을 짰다. 그는 2013년 9월 유엔 총회에 참석한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전화통화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P5+1과 이란은 2015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에 최종 합의했다. 설리번은 2014년 8월 오바마 정부를 떠난 뒤에도 이란 핵협상 선임고문의 직함을 갖고 사실상 협상에 참여해왔다.

바이든 미국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이끌어갈 토니 블링큰 국무장관 지명자 역시 ‘최고의 국무장관감’이라는 말을 들어온 베테랑이다.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와 잠시 변호사로도 활동했던 그는 1988년 친부의 친구였던 마이클 두카키스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도우면서 공직에 입문했다. 1990년대 초 빌 클린턴 정부 1기 때 백악관에서 스피치라이터로 일하다 국가안보회의(NSC)로 자리를 옮겨 외교·안보 업무를 맡았다. 이후 의회로 가면서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총괄국장(2002~2008)으로 일하다 당시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과 호흡을 맞추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가 호주 로위연구소에서 연설하고 있다. ⓒphoto Lowy Institute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가 호주 로위연구소에서 연설하고 있다. ⓒphoto Lowy Institute

블링큰이 제시한 북핵 해법

그는 바이든이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을 때 캠프에서 외교·안보 참모로 활동했다. 당시 바이든은 경선을 중도 포기하고 오바마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됐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됐다. 이후 오바마 대통령의 국가안보 부보좌관(2013~2015)을 지낸 뒤 국무부 부장관(2015~2017)을 역임했다.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블링큰은 슈퍼스타다. 과장이 아니다”라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4년 만에 그것을 인지하고 내게서 그를 훔쳐 갔다”고 밝히기도 했다.

블링큰 지명자도 부통령 국가안보좌관과 대통령 국가안보 부보좌관 시절부터 이란 핵 문제에 관여해왔다. 그는 또 2014년 11월 번스 부장관의 후임으로 발탁된 이후 이란과의 핵협상을 떠맡게 됐다. 당시 그는 존 케리 국무장관의 협상을 지원하면서 이란과 물밑 조율을 했었다. 특히 그는 자신의 후임이자 이란 핵협상을 실무적으로 주도해온 설리번과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그는 이란과의 협상에서 이란이 무기용으로 사용 가능한 우라늄 98%를 제거하고, 원심분리기의 3분의 2 해체와 봉인 등을 합의했다면서 이는 결국 이란의 핵무기 능력을 없앤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바이든 미국 차기 정부가 앞으로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외교·안보팀의 투톱인 블링큰과 설리번이 이란 모델을 제시해 주목된다. 블링큰은 2018년 6월 11일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북한과의 핵합의에서 최선의 모델은? 이란’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북한에 부분적 경제제재 완화를 제공하는 대신 △모든 핵 시설 공개 △국제사찰을 통한 농축우라늄 시설 및 핵 재처리 시설 동결 △일부 핵탄두와 미사일 폐기 등을 골자로 하는 잠정(interim) 합의가 가능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단 잠정 합의를 통해 협상 시간을 번 다음 최종적으로 포괄적인 비핵화 로드맵 청사진이 담긴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오바마 정부 때 타결한 이란 핵합의는 바로 이 같은 접근을 통해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당시 일괄 타결을 통한 비핵화를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란 핵합의가 정교하고 현실적 해법이란 점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왔다. 그는 지난 9월 미국의 CBS방송 대담 프로그램에서 오바마 정부의 이란 핵합의를 언급하며 “나는 북한과도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설리번도 2016년 5월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이란에 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면서 “이란과의 핵협상에서 보듯이 북한에 대해선 압박과 대화 모두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전 세계의 모든 중요한 국가들이 함께 관여해서, 북한 정권에 집중적이고 지속적으로 실질적인 압력을 가하는 포괄적이고, 매우 맞춤형인 자원을 동원한 노력에 의해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블링큰과 설리번이 업적으로 내세운 이란 핵합의는 어떻게 도출됐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이란 핵합의는 이란이 핵능력을 동결하고 사찰을 수용하는 대가로 국제사회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게 골자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이란은 △2025년까지 10년간 1세대 원심분리기 1만9138개를 6104개로, 저농축우라늄 7154㎏을 300㎏으로 각각 감축 △최신 원심분리기 1008개와 농축우라늄 196㎏을 전부 포기 △나탄즈의 신형 원심분리기용 연구·개발을 계속하되 농축우라늄 저장 금지 △농축할 수 있는 우라늄 농도를 3.67% 이하로 제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이란 핵시설 사찰 등이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과 유럽연합은 IAEA가 이란과의 핵합의 이행을 검증한 이후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한 것이었다.

2015년 7월 14일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및 이란 외교장관들이 핵합의 후 기념찰영을 하고 있다. ⓒphoto USD
2015년 7월 14일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및 이란 외교장관들이 핵합의 후 기념찰영을 하고 있다. ⓒphoto USD

본질부터 다른 북한 핵과 이란 핵

이란이 미국과 협상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2010년 들어 미국이 국방수권법에 의거해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 3국이 유류 운송보험을 중단시키면서 이란의 원유 수출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란은 원유 수출 중단으로 인한 경제난을 견디지 못했다. 다시 말해 미국의 압박뿐 아니라 유럽의 동참으로 이란에 경제적 타격을 가하면서 이란이 미국과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유럽 3국은 모두 이란의 유전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고, 이란과의 교역량도 상당했다. 특히 유럽 3국은 이란산 원유를 대량으로 수입해왔다. 유럽 3국은 이란이 핵개발을 할 경우 자국의 안보는 물론 중동 정세가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해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 적극 참여했다. 이에 따라 유럽 3국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를 감수했다. 당시 중국과 러시아는 이란에 대한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이란에서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퇴진하고 제재조치로 경제난에 빠진 국민들이 중도온건파인 하산 로하니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이 진전을 보기 시작했다.

바이든 정부는 북핵 문제도 이 같은 이란 모델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다자적이고 단계적인 방안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 핵과 이란 핵은 본질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개발 초기 단계인 이란과 달리 사실상 핵보유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란 핵합의는 핵능력을 현재의 상태에서 일단 묶어 놓는 ‘동결’이다. 한국의 입장에선 미·북이 동결에 합의할 경우 북한의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북한이 일부 제재 해제 또는 완화의 대가로 동결에 합의할지도 미지수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하노이 협상에서 제재 해제와 영변 핵시설 폐쇄만을 주장했을 뿐 영변 이외 핵시설 폐기와 사찰 검증 등은 거부한 바 있다. 김정은이 이란 핵합의처럼 모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고 국제사찰단의 사찰을 받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특히 북한은 바이든 정부와의 협상에서 핵군축을 주장하면서 한·미 연합훈련 폐지나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중국이 유럽 3국처럼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 적극 동참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7월 미국 외교위원회(CFR)와의 문답에서 “오바마 정부의 역사적인 이란 핵합의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봉쇄했으며 이는 효과적인 대북 협상의 청사진을 제공한다”라면서 “동맹국들 및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과 함께 비핵화된 북한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지속적이고 조율된 노력에 시동을 걸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링큰도 바이든 정부의 중국 정책과 관련, “미국과 중국 관계는 적대적·경쟁적 측면뿐 아니라 협력적 측면도 갖고 있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한 협력적 측면은 기후변화 문제나 코로나19 대응뿐만 아니라 북핵 문제의 협력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중국이 유럽 3국처럼 북한 제재에 적극 나서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중국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뒷배가 돼왔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로 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부대표는 최근 중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위반해 최소 2만명의 북한 노동자를 계속 수용해왔다면서 지난해 북한에서 555차례에 걸쳐 중국으로 석탄 등 기타 제재 물품을 운반하는 선박이 목격됐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김정은 정권이 붕괴될 경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통일 한국’과 국경을 맞대야 한다는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미국을 견제하려면 완충지대와 전략적 균형을 갖기 위한 지렛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북한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바이든 정부가 북핵 문제에 중국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핵 해결 전 평화협정 반대

때문에 바이든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선 중국을 강력하게 압박할 필요가 있다. 물론 블링큰과 설리번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지원 전략과 의도 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블링큰이 “우리는 한국, 일본과 같은 동맹과 긴밀히 협력하고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진정한 경제적 압력을 가하기 위해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며 “북한의 다양한 수입원과 에너지 등 자원 접근 통로를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힌 것도 중국에 대한 압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설리번도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와 함께 2017년 7월 5일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한 ‘북한에 대한 중국 카드를 사용하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제목의 공동 기고문에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자금줄을 쥔 중국이 협상의 중심이 돼야 한다”면서 “중국이 북한을 설득해 비핵화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미국의 이런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북한에 대한 국제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북한과 거래한 중국의 기업들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중국을 압박할 명분과 기회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바이든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세컨더리 보이콧 등 중국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정부는 또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유화 정책을 하지 말라고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블링큰은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 포기 전 평화협정 협상이라는 북한의 희망을 묵인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이는 미국의 오랜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트럼프 정부에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왔다. 때문에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블링큰이 평화협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대북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 남북관계 개선 등 기존의 정책을 고수한다면 바이든 정부와 불협화음이 날 수도 있다. 바이든 정부가 일단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해 보고 진전이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고도의 대북 압박 정책을 구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는 북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볼 수 있는 인권 문제를 들어 압박을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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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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