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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9호]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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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범의 차이나워치]2021년 ‘시진핑 대 反시진핑 세력’ 암투 거세진다

지해범  전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hbjee@chosun.com

▲ 지난 10월 29일 열린 중국 공산당 19기 5중전회에서 시진핑 주석(가운데)을 비롯한 공산당 최고 지도부가 거수 투표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2021년은 중국의 국가 운명에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새해는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지 9년째 되는 해이다. 두 번째 임기가 반환점을 돌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제는 국민 앞에 실적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그러나 시진핑을 둘러싼 안팎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정치도, 경제도, 외교도 모두 어렵다. 그가 2021년을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따라 중국은 미국을 위협하는 초강대국으로 승승장구할 수도, 반대로 쇠락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새해 중국의 정세를 국내 정치 분야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겉은 평온, 속은 부글부글
   
   중국 정치는 늘 질서 있고 평온해 보인다. 현시점에서 관영언론의 보도는 항상 그렇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1949년 공산당 정권 출범 이후 중국의 현대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죽(竹)의 장막 속에서 대약진운동, 대기근과 수백만 명의 아사(餓死),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사인방의 흥망성쇠, 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趙紫陽)의 실각, 천안문 민주화사태 등 온갖 풍파와 굴곡이 있었다. 그렇다면 겉으로 아무 일 없어 보이는 지금의 베이징은 어떨까? 내부에서 어떤 갈등도 권력투쟁도 없는 것일까? 시진핑 일인 통치체제는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중국 정치는 ‘겉은 평온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外穩內沸)’ 형국이라는 것이 중화권 차이나와처들의 분석이다. 새해에는 이러한 내부 모순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진핑은 1차 임기 5년(2012년 말~2017년 말) 동안 자기 손에 많은 피를 묻혔다. 그가 일인자 자리에 오른 것은 공산당 내 여러 계파 간 타협의 산물이었다. 전임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는 자신의 후계자인 리커창(李克强) 당시 부총리(현 총리)를 당 총서기로 밀었지만, 가장 큰 세력이었던 상하이방 장쩌민(江澤民)의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자 태자당(太子黨·중국 건국시기 당정군 고위간부의 자녀)의 어른 격인 쩡칭훙(曾慶紅)이 대안으로 시진핑을 추천했고, 이에 나머지 두 계파가 양해하면서 시진핑 시대가 열렸다. 자신의 집권 과정이 그랬듯이, 시진핑은 타협과 화합의 정치를 펼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집권 이후 그는 돌변하여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나섰다. 자신의 집권을 저지하려 한 보시라이(薄熙來)와 저우융캉(周永康) 세력을 척결하고, 그 배후에 있는 상하이방의 대부 장쩌민 세력을 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5년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군부(인민해방군)와 경찰(공안), 사법부의 반대파 세력을 부패한 구악 적폐로 몰아 감옥에 집어넣었다. 심지어 자신을 옹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태자당 세력마저 시진핑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그 결과 시진핑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적이 생겼다. 자신을 지지했던 상하이방과 태자당이 가장 큰 정적(政敵)으로 변했다. 자신을 황제로 만들어준 태자당의 맏형 쩡칭훙은 그의 퇴진을 주장할 만큼 반(反)시진핑 인사로 돌아섰다는 것이 해외 중화권 언론의 보도다.
   
   
   집단지도체제에서 일인통치체제로 퇴행
   
   이러한 업보 때문에 시진핑은 2기 임기(2017년 말~2022년 말) 들어 ‘불안한 독재자’의 행보를 보여주었다. 적이 많은 독재자는 퇴진 후 자신의 안위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직에 있을 때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장기집권을 도모한다. 많은 독재자가 그런 전철을 밟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곤 했다. 시진핑은 2기 임기가 시작되는 2017년 가을 19차 당대회 때 그간의 공산당 권력교체의 관례였던 ‘격대지정(隔代指定)’을 깨버렸다. 격대지정이란, 현 지도자가 한 대를 건너뛰어 차차기 지도자를 지정하여 키우는 관례를 말한다. 덩샤오핑이 장쩌민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후진타오를 점찍었고, 장쩌민은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시진핑을 민 것이 이 관례에 따른 것이다. 이는 현 지도자가 다음 지도자의 결정에 관여하거나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치의 안정성과 당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장치였다. 같은 방식으로 후진타오는 시진핑을 이을 후계자로 자파인 공청단(共靑團·공산주의청년단) 계열의 후춘화(胡春華)를 지정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2017년 가을 19차 당대회에서 후춘화의 정치국 상무위 진입을 막음으로써 전임자의 결정을 틀어버렸다. 심지어 시진핑은 후춘화와 같이 차세대 지도자로 커오던 상하이방 계열의 쑨정차이(孫政才)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를 부패혐의로 체포해 낙마시켰다. 시진핑의 이러한 조치에 공산당 원로와 고위 간부층, 각 계파는 격노했지만 현실 권력인 시진핑에게 정면으로 맞설 수 없어 속으로만 앓고 있다.
   
   시진핑은 2018년 권력 강화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해 봄 열린 전인대(全人大·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헌법을 수정하여 ‘국가주석의 임기는 2기(10년)로 제한한다’는 조항을 삭제해 버린 것이다. 임기제한 조항이 사라지면 국가주석직을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다. 원래 임기에 따르면 시진핑은 2022년 말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헌법 개정으로 그는 5~10년 더 집권할 수 있고, 심지어 2035년까지 수렴청정 형태로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부터 굳어져 온 공산당 집단지도체제, 즉 7~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권력을 분점하는 전통을 파괴하고,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일인통치체제로 되돌아가는 퇴행(退行)의 과정이었다.
   
   외관상 시진핑 체제는 매우 강고해 보인다. 공산당은 시진핑의 리더십하에 단결돼 있고, 누구도 그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중국 정치가 항상 그랬듯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시진핑이 국민의 폭넓은 신망을 받는다면 굳이 자신의 권력 강화에 몰입할 필요가 없다. 독재체제는 불안의 산물이다. 지난 8년간 시진핑이 걸어온 길은 일반적인 공산당원의 기준에서 너무나 벗어나 있기 때문에 광범위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총서기와 총리가 정치적 앙숙관계
   
   시진핑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온다. 첫째는 집단 견제를 당한 공청단 세력이고, 둘째는 시진핑과 같은 부류인 훙얼다이(紅二代·공산혁명 원로의 2세) 세력이며, 세 번째는 깨어 있는 지식인과 청년 대학생, 기층민중이다. 공청단 세력의 대표는 리커창 현 총리다. 통상 중국 최고 지도부는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국정의 총괄과 군사외교를 맡고, 총리는 경제와 사회 부문을 담당해왔다. 가령 장쩌민과 주룽지(朱鎔基), 후진타오와 원자바오(溫家寶)는 일인자와 이인자로서 좋은 파트너가 되어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었다. 그러나 시진핑 시대 들어 국가주석과 총리는 정치적 앙숙 관계로 변했다. 두 사람은 거의 모든 사안에서 부딪쳤다. 시진핑은 리커창 총리의 영역인 경제·사회 부문까지 소조(小組)를 만들어 자신이 소조장을 맡음으로써 총리를 무력화시켰다. 1990년대 이래 중국에서 당 총서기와 총리가 이렇게 부딪친 적이 없다.
   
   가령 2020년 5월 28일 전인대 마지막 날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리 총리는 시진핑의 ‘경제성과’를 폄하하는 듯한 발언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리 총리는 코로나19의 영향과 실업자 대책을 묻는 인민일보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중국은 인구가 많은 개발도상국으로서 1인당 연간 가처분소득이 3만위안(약 515만원)이다. 그러나 6억의 중저소득층과 그 이하 집단이 있고, 그들의 월평균 수입은 1000위안(약 17만1000원·연간 205만원) 안팎이다. 1000위안으로는 중급 도시에서 집세를 내기도 어렵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맞았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민생이 가장 중요하다.” 리 총리의 발언은 시진핑 주석이 2021년까지 달성하겠다고 내건 ‘전면적 샤오캉(小康·삶에 여유가 있는 수준) 사회’ 실현 목표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시 총서기와 리 총리는 ‘노점상 경제(地攤經濟)’를 놓고도 충돌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많은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현실에 대해 리 총리는 “중국에는 9억의 노동력이 있다. 이들이 취업하지 못하면 9억개의 밥 먹는 입(口)이 있을 뿐이지만, 이들이 취업하면 거대한 재부를 창조할 수 있는 9억쌍의 손(手·노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2주 전 서부의 한 도시에서 3만6000개의 이동상점(流動商販·노점상)을 설치했더니 결과적으로 하룻밤 사이에 10만개의 일자리가 생겼다는 보도를 봤다”면서 ‘노점상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리 총리의 언급 이후 청두(成都), 우한(武漢), 상하이(上海), 칭다오(靑島) 등 전국 대도시에서 노점상(地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리 총리는 전인대가 끝난 후 6월 1일 산둥성(山東省) 옌타이(煙台)의 주택가를 방문해 감자두부·야채볶음 요리를 판매하는 노점상을 찾아 “노점상 경제는 중요한 일자리의 근원으로서 중국 경제의 활기”라고 강조해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또 “국가는 인민이 만드는 것이다(國家是人民組成的). 인민이 살기 좋아져야 국가도 비로소 좋아진다(人民好了 國家才能好)”라고 말했다. 공산당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시진핑과 달리 리커창은 인민을 강조한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에 터졌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6월 4일 중문판에서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주요 관영 매체에 ‘노점상 경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과장된 것으로 밝혀졌지만, 베이징 정가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또 국영 중앙방송(CCTV)은 6월 7일 논평을 통해 “노점상 경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맹목적으로 이를 추구할 경우 뜻하는 바와 정반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진핑이 장악하고 있는 당 중앙선전부와 CCTV가 리커창 견제에 나섰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중국의 권력구조상 시진핑이 당 정치국과 상무위를 모두 장악했기 때문에 리커창으로서는 반대의견만 제기할 뿐 시진핑의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남은 임기(2022년 말까지) 동안 ‘할 말은 하는 총리’가 되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또 그의 배후에는 7200만 공청단원이 있다. 이들은 시진핑 집권 후 공청단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자신들의 대표인 리 총리가 철저히 견제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 2019년 서울에서 만난 공청단원 출신의 한 중국인 학자는 “내가 졸업한 베이징 중앙정치학원이 시진핑의 지시로 문을 닫았다”며 “이는 공청단 세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시진핑이 공산혁명의 순수성을 더럽히고 있다”
   
   두 번째 도전 세력은 훙얼다이다. 훙얼다이 세력은 정계와 기업계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江綿恒)이다. 그는 전기공학 박사 출신으로 중국과학원 부원장까지 지냈다. 그는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중국 IT산업의 대부로 불렸으며, 그를 통하지 않고는 IT업계에 발을 들여놓기 어렵다는 말까지 돌았다. 그의 후원으로 큰 대표적 기업인이 알리바바의 마윈(馬雲)이다. 장몐헝은 68세로 시진핑보다 한 살 많다. 그의 아버지 장쩌민이 국가주석직에 있을 때 두 사람(장몐헝과 시진핑)의 힘의 관계는 어쩌면 장몐헝 쪽이 우위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 시대가 되면서 둘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장몐헝을 필두로 IT산업계의 기업인들이 상하이방의 돈줄로 알려지면서, 이들은 철저한 감시와 견제를 받고 있다. 가령 마윈은 지난 10월 24일 상하이 와이탄에서 열린 금융서밋에서 정부의 금융정책을 비판했다가 당국에 불려가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그는 회장직에서 물러났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자신의 기업지분까지 공산당에 넘기겠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윈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인이 최근 체포되거나 실종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로운 투자와 경제활동을 원하는 이들 민영기업가들이 시진핑의 일인독재와 공산당 중심의 리더십을 좋아할 리 없다.
   
   2020년 3월 시진핑을 ‘벌거벗은 광대’에 비유했다가 체포돼 18년형을 받은 런즈창(任志强·69) 전 화위안(華遠)그룹 회장과 “시진핑을 바꾸자는 것이 공산당 내 보편적인 생각”이라며 시진핑 퇴진을 주장하다 미국으로 도피한 차이샤(蔡霞·68) 중앙당교 교수도 대표적인 훙얼다이다. 과거 시진핑과 한 배를 탔던 이들은 시진핑이 공산혁명의 순수성을 더럽히고 권력을 사유화했다고 비판한다. 자신들의 아버지 세대가 피땀 흘려 이룩한 국가를 시진핑이 망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막강한 인맥과 재력, 정보를 가진 훙얼다이 집단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시진핑의 약점을 폭로하고 공격해 그의 권력을 허무는 데 앞장설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 도전 세력은 깨어 있는 지식인과 청년 대학생, 그리고 권리침해나 불이익을 참지 못하는 기층민중들이다. 우한 코로나19 발생 때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통렬히 비판했다가 학교에서 쫓겨난 칭화(淸華)대학 법대 쉬장룬(許章潤) 교수, ‘중국공민운동(中國公民運動)’이란 해외 중국어 사이트에 ‘권퇴서(勸退書)’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시진핑에게 퇴진을 권유한 쉬즈융(許志永) 변호사, 의사 리원량(李文亮) 사망 후 그의 명예회복과 언론자유 보장을 요구한 우한대학 핑톈위(憑天瑜), 화중(華中)사범대학 탕이밍(唐翼明) 등 10명의 교수가 대표적이다. 미국, 유럽 등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거나 해외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이들은 시진핑의 시대 역행적인 정치행태에 강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이들은 일신의 구속과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통렬한 글로 시진핑을 비판하고 국민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청년 대학생들의 인식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이른바 ‘주링허우(90後)’ 세대는 혼자서 부모와 조부모의 사랑과 경제지원을 독차지하여 매우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해외여행 경험이 많아 개방적이며 일류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도 높다. 이들은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중국의 발전상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중국의 후진적 행태에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가령 2020년 초 우한의 코로나19 발생 사실을 알렸다가 경찰의 조사를 받고 끝내 숨진 의사 리원량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언론자유’를 강하게 요구한 집단이 이들 청년세대다. 이들이 마스크나 종이에 ‘뿌넝 뿌밍바이(不能 不明白·리원량 사건의 진실을 밝혀라)’란 글자를 써넣어 인터넷 동영상으로 공유하는 모습은 전 세계에 화제가 되었다. 기층민중의 의식도 예전 같지 않다. 과거에 중국 농민들은 자기 집 주변에 혐오시설이 들어서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으나, 2000년대 들어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져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또 실직당하거나 토지나 부동산을 수용당할 때 자신의 법적 권리를 지키려는 인식도 강해졌다.
   
   중국에서 ‘반(反)시진핑 세력’이 단기간에 조직화하거나 큰 세력으로 부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진핑의 폭정과 실정이 거듭된다면 민심은 이반(離反)할 수밖에 없고, 분노한 물결은 큰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2021년은 중국에서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여 장기집권의 기틀을 다지려는 시진핑과 그에 저항하는 세력 간의 암투(暗鬪)가 격화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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