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부야 거리. ⓒphoto 뉴시스
도쿄 시부야 거리. ⓒphoto 뉴시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가 30만명을 넘는 일본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변화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인구 집중 문제가 심각한 도쿄도의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 총무성의 2020년 인구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11월 도쿄도의 전출자 수는 2만8077명을 기록했다. 이는 2019년 같은 시기에 비해 19.3% 증가한 것이다. 반면 전입자 수는 2만4044명으로 6.8% 줄어들었다. 11월 도쿄의 전출 초과는 4033명으로 10월의 2715명보다 50% 가까이 증가했다. 도쿄를 벗어나는 사람이 새롭게 들어오는 사람보다 더 많은 ‘전출 초과’ 현상은 지난해 7월부터 5개월간 계속됐다.

재택근무 확대되며 탈도쿄 현상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전출자의 증가율은 일본의 4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도쿄가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특히 도쿄도 중에서 23개 특별구는 11월의 전출 초과 수가 5081명을 기록, 도심부의 인구 유출이 두드러진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일본에서 도쿄를 벗어나는 움직임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코로나19 긴급사태를 선포하면서 각 기업에 재택근무 실시를 강하게 요구했다. 기업들은 이에 부응해 대면근무의 상징인 ‘도장 문화’를 없애면서 재택근무를 대폭 늘려왔다.

미쓰비시전기는 최근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계기로 총무·영업·인사 부서는 출근 직원의 비율을 30% 이하로 억제하고 있다. 직원이 18만명가량인 NTT도 총무와 기획 부문 등은 출근 직원을 50% 이하로 줄이는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후에도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재택근무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기업은 사무실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사원들은 만원(滿員) 전철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기에 미래의 회사상(像)을 미리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쿄 도심보다 쾌적하고 넓은 주택을 찾는 ‘탈(脫)도쿄’ 행렬이 당분간 유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도쿄도를 벗어난 이들은 전철 출근이 가능한 사이타마·가나가와·지바·도치기현 등으로 유입 중인데, 이들 지역으로부터는 환영받고 있다.

일본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외출을 자제하고 각종 모임을 줄인 결과 지난해 사망자 수가 감소한 것도 특징이다. 후생노동성의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의 전체 사망자 수는 2019년 같은 기간보다 1만4315명(1.2%) 줄어든 113만2904명으로 나타났다. 후생노동성은 11~12월의 통계를 모두 합쳐도 전체 사망자 수가 11년 만에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손 씻기나 마스크 착용 등 코로나19 대책의 효과로 다른 감염증 환자가 격감한 영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폐렴이나 독감 등의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 이들이 크게 줄었다. 이 신문은 지난해 1~7월 코로나19를 제외한 폐렴 사망자가 2019년 동기보다 9137명(16.1%) 감소한 4만7680명이라고 보도했다. 독감 사망자는 2289명(71.1%)이 줄어들어 932명에 불과했다.

순환기계 질환 사망자도 7913명(3.8%) 감소했다. 외출이 줄어들면서 교통사고 등 불의의 사고로 인한 사망도 1631명(7.1%) 줄었다.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자문기구에서 활동하는 오카베 노부히코 가와사키시 건강안전연구소장은 “코로나19 대책으로 대부분의 감염증을 억제하고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한 감염은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폐렴 사망자 작년보다 16% 줄어

일본의 지난해 1~10월 출생아 수도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약 1만7000명(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신문은 지난해 전체 출생아 수는 전년 대비 2% 감소한 84만8000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신문은 “코로나19 감염이 확대되는 가운데 2021년의 출생아 수는 80만명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고 밝혔다. 일본총합연구소의 후지나미 다쿠미 수석연구원은 “올해는 코로나19 감염 확대에 따른 불안 등으로 임신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강해졌으며 불임치료를 중단한 이도 많다”며 코로나19가 출생아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 코로나19 사태로 경이적인 흥행 기록도 나오고 있다. 애니메이션영화 ‘귀멸의 칼날(鬼滅の刃·기메쓰노 야이바)’은 지난해 10월 개봉 후 73일 만에 흥행수입 324억엔을 기록했다. 그동안 흥행수입 역대 1위는 2001년 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316억엔)이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300억엔을 돌파하는 데 253일이 걸렸지만 ‘귀멸의 칼날’은 불과 73일 만에 이 기록을 깼다. ‘귀멸의 칼날’이 개봉 3일 만에 흥행수입 46억엔을 넘어선 것도 기록이다.

‘귀멸의 칼날’은 부모가 도깨비에게 살해되고 여동생도 도깨비로 변해버리자 주인공이 복수한다는 내용으로 가족애가 깔려 있다.

작가 고토게 고요하루(吾峠呼世晴)의 만화가 원작인 이 작품은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NHK가 메인 뉴스에서 약 20분간 특집으로 다룰 정도로 사회적 현상이 됐다. 마이니치·아사히신문도 장문(長文)의 기사를 통해 ‘귀멸의 칼날’의 흥행 배경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귀멸의 칼날’ 열풍은 다른 분야로도 확산하고 있다. ‘귀멸의 칼날’ 원작 만화는 전자판을 포함, 누계 발행 부수가 1억2000만부를 넘었다. 주인공을 캐릭터화한 ‘굿즈’는 어른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영화와 관련한 캔커피는 5000만개 이상이 팔렸다. 일간신문에 ‘귀멸의 칼날’을 홍보하는 전면광고가 실리자, 이를 수집하는 붐이 일기도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코로나19 사태로 할리우드 영화가 주춤한 탓에 ‘귀멸의 칼날’이 독주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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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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