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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4호] 2021.02.01

바이든에 저항하는 가난한 백인들… ‘깨진 용광로’ 되는 미국

▲ 지난 미국 대선 기간 필라델피아의 한 트럼프 지지자가 바이든 지지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 지우기’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월 20일 ‘통합(unity)’을 강조하며 미국의 제46대 대통령에 취임한 바이든은 취임 당일 17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사흘간 모두 30여개의 행정명령을 쏟아내며 트럼프 지우기를 서두르고 있다. 행정명령은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바이든은 파리기후변화협약 복귀에 서명했으며, 60일간 석유가스 탐사를 유예시켰다. 이어 캐나다를 잇는 송유관 건설,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잇달아 중단시켰다. 불법이민자 추방도 100일간 유예시켰다. 1000만 불법이민자들에게는 시민권 발급을 약속했고, 중남미의 미국행 불법이민자들을 위한 40억달러 지원도 약속했다. 트럼프가 금지시켰던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도 허용하였다.
   
   
   바이든의 행정명령에 반발하는 주들
   
   그러자 바이든의 트럼프 지우기에 즉각적인 반발이 나오고 있다. 텍사스 주정부는 지난 1월 22일 비시민권자 추방 100일간 유예가 위헌이라며 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했다.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은 바이든의 조치는 강제추방을 허용한 이민법을 위반했고 헌법 원칙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하원 대표인 케빈 매카시 의원도 “1000만 불법이민자에 대한 시민권 부여보다 시급한 게 1000만개의 일자리”라며 즉각 반발했다.
   
   석유가스 탐사 금지에는 바이든을 지지했던 뉴멕시코주도 반발이 심하다. 뉴멕시코 칼스배드 시장은 “수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주 경제가 파탄 날 지경”이라고 반발했다. 캐나다를 잇는 키스턴XL 송유관 건설 중단에 대한 반발도 극심하다. 키스턴XL 송유관은 캐나다 앨버타와 미국의 중서부를 지나 텍사스주까지 이어지는 송유관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송유관이 환경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건설이 중단됐다가 트럼프가 건설을 승인했던 것을 이번에 바이든이 다시 중단시켰다. 송유관 건설이 중단되면 당장 건설 관련 인력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텍사스 출신의 케빈 브래디 하원의원은 “바이든이 취임 이틀 동안 취한 석유 탐사 및 송유관 건설 중단 조치가 실행되면 텍사스에서 12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한다”며 강력 반발했다.
   
   트럼프 탄핵과 대선 공정성에 대한 평가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월 25일 ABC TV의 저명 앵커인 조지 스테파노플러스가 공화당 소장파인 랜드 폴 상원의원을 불러 “대선이 도둑질당했다고(stolen)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폴 의원은 “여러 경합주에서 개표 규정을 선거 직전 개정한 행위가 위헌이라는 것은 사실”이라며 “언론이 한쪽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둘로 나뉜 분단국”
   
   대통령 취임 직후 얼마 동안은 ‘허니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야당이 관대한 것이 미국 정치의 전통이었지만, 바이든의 트럼프 지우기 속도전에 대한 반발은 예사롭지 않다. 그동안 미국은 ‘용광로’라고 불려왔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통합을 유지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라는 ‘용광로’가 부서졌고, 뜨거운 분노만이 시뻘건 쇳물처럼 흘러넘치는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이 트럼프 지우기에 올인하고, 미디어가 트럼프 격하를 강화하고, 사법기관들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체포하는 등 ‘세상이 바뀌었다’는 징표가 뚜렷한데도 갈등이 여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은 현재 경제적으로는 둘로 나뉜 분단국이다. 미국에는 두 가지 형태의 경제가 존재하며 서로 경쟁하고 있다. 하나는 미국을 세계의 대국으로 만들어준 전통 산업 부문이다. 석유가스, 화학, 중공업, 물류산업 등이다. 그런데 거대 기술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지난 20년간 다른 부문을 완벽하게 압도하며 급속히 성장했다. 전통 산업 부문의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경쟁력이 하락하면 일자리도 사라진다. 전통 산업 부문 종사자들이 낙오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미래를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전통 산업 부문이 자리 잡은 중서부(deep America) 지역의 생활양식은 전통적인 아메리칸드림, 교회, 그리고 보수적인 가치를 대변한다. 이민자들이 머무는 대도시에는 리버럴한 가치가 압도한다. 모든 것이 뒤섞이고, 종교는 이미 사라졌으며, 모든 형태의 급진주의자들이 경쟁하고 있다. 이 두 미국은 접점이 거의 없다.”
   
   러시아 해외정보국 요원으로 미국에서만 20년간 근무한 안드레이 베즈루코프 대령의 분석이다. 현재 러시아국제관계대학원 교수인 그는 최근 러시아 한 주간지와의 회견에서 “미국의 정치체제가 비틀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정치체제는 엘리트들의 통합이라는 토대 위에 건설되었다. 엘리트들이 단결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나 정직함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밀려나며, 어마어마한 돈과 권력을 향한 충돌만 남게 된다. 지금 미국에서 민주주의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국민이 두 그룹으로 분열되어 서로 미워하고 있다.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 지난 1월 26일 해리스 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바이든 대통령. photo 뉴시스

   숫자 적지만 GDP 비중 높아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갈등의 원인을 경제 격차에서 찾는 분석이다. 이는 통계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2016년 트럼프에 패했던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GDP(국내총생산)의 70%를 담당하는 ‘생산적인(productive)’ 지역에서는 자신이 승리했다고 자랑했다. ‘생산적인’ 지역과 ‘비생산적인(unproductive)’ 지역의 양극화는 2020년 선거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바이든은 역사상 가장 적은 520개 카운티에서 승리하고 당선되었다. 트럼프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미국 GDP의 71%를 담당한다. “바이든을 뽑은 카운티는 지난 10년간 스타트업 회사들의 83%, 고용증가의 73%, 인구증가의 67%를 담당했다”고 경제혁신연구소의 존 레티어리 소장은 설명했다. 바이든은 또 미국의 100대 도시 가운데 91개 도시에서 승리했다.
   
   반면 전통적인 산업 지역은 경제적 쇠퇴와 함께 마약으로 황폐화되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대선 직후인 지난해 11월 말 ‘미국은 어디로 잘못 갔나?’라는 기사를 통해 전통 백인사회 몰락의 원인으로 약물남용을 꼽았다.
   
   “오하이오와 켄터키 등 중서부 지역들은 2000년대 이후 합성마약 오피오이드(opioid)에 황폐화되었다. 이 알약 진통제는 헤로인 효과를 낸다. 퍼듀제약사가 팔았다. 시골 의사들이 대표적인 오피오이드인 옥시콘틴(Oxycontin)을 처방한다. 이들은 옥시콘틴을 팔아 백인 수백만 명을 중독자로 만들었다.… 크랙이 1990년대 대도시 흑인들의 마약이었다면, 옥시콘틴은 시골 백인들의 마약이 되었다. 옥시콘틴의 희생자들은 백인 아버지와 어머니들이었다. 부모들이 오피오이드에 중독된 가정에서 아이들이 자랐다. 정부당국이 이 약을 중단시키자 알약을 구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웨스트버지니아, 켄터키 등의 백인 슬럼에는 이 약을 남용한 중독자들로 넘친다.”
   
   중서부 지역의 분노한 백인들의 성장과정을 잘 묘사한 ‘힐빌리 엘레지(Hillbilly Elegy)’라는 자서전으로 유명한 J D 밴스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부모가 약에 중독되어 조부모 손에서 컸다. 해병대에 입대한 뒤 나중에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였다. 그는 예일대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탄산수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오하이오주 시골 친구들은 자신들은 쉬지 않고 일하는데 일자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세상이 자신들을 적대하며, 누군가 자신들을 속였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대부분 트럼프 지지자들이다”라고 말했다.
   
   
   합성마약에 망가진 가난한 백인들
   
   지난 1월 6일 워싱턴에서 발생한 의사당 난입사건으로 체포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온 부자, 군, 소방관 출신은 물론 허리케인 재난 때 목숨을 걸고 구조활동을 벌여 언론에 영웅이라고 보도됐던 전직 해병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러시아 베즈루코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언론에서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하건 말건, 이들은 ‘미국 중서부’에서 자라고, 선의를 믿고, 아주 잘 조직되었으며, 무장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한 혁명전쟁(Revolutionary War) 시대 때부터 전해지는 미국의 메시지에 공감한다. 즉 ‘당신이 정부를 좋아하지 않으면 무기를 들고일어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끄럽게 구호만 외치는 도시 사람들과는 다르다.”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을 지지했던 매거진 ‘내셔널리뷰’는 취임식이 열린 지난 1월 20일 ‘바이든은 미국의 절망을 보고 있는가?(Does Biden See American Despair?)’라는 제목의 논평을 올렸다. 내셔널리뷰는 프린스턴대 앤 케이스와 앵거스 돌튼 교수의 ‘절망 끝의 죽음(deaths of despair)’이라는 논문을 인용했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백인 미국인의 평균수명이 알코올중독, 마약남용, 자살 때문에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이다. 몇몇 마을이나 쇼핑타운이 황폐해지는 데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방대한 지역에서 소련 몰락 직후의 러시아처럼 백인들이 경제적·사회적 정상 생활에서 축출되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논문은 중국과의 무역으로 인해 미국이 엄청난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질병통제국(CDC)에 따르면 지난 12개월간에도 8만1000명이 약물남용으로 사망했다. 이전보다 20%나 증가한 수치이다.
   
   경제적으로 양극화된 상태에서 정치인들이 갈등을 부채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의 정치행정 전문매거진 ‘거버닝’은 최근 ‘수십 년 만의 미국 분단’이라는 기사에서 “현대의 정치는 항상 부정적”이라며 정치인들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상대방이 부패하고 위험하며 급진적이고 미국의 가치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들을 펼쳐왔다”고 평가했다. 거버닝은 “빌 클린턴 이후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까지 대통령들은 모두 미국인 절반으로부터는 경멸당했다. 그들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이들은 미국의 통합자가 아닌 분열자로서 통치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오바마는 시골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총과 종교, 반이민, 반무역 감정에 집착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대도시를 “더럽고 추악하고, 쥐가 들끓고, 무정부주의자들이 재판을 하는 곳”이라고 비난했다.
   
   
▲ 바이든이 건설 중단 명령을 내린 키스턴XL 송유관. photo 뉴시스

   정치인들이 심화시킨 수십 년 만의 분열
   
   정치지도자들의 이러한 발언은 분노의 정치를 심화시킨다고 거버닝은 비판한다. 시골이나 소도시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발전에서 소외된다고 느끼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대도시 주민들은 자신들이 의회에서 너무 적은 의석수를 가지고 있다면서 차별에 분노한다는 것이 거버닝의 분석이다. 언론과 미디어는 위기를 보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정치인의 첫 번째 스킬은 노이즈마케팅”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불신이 심화하면서 정치는 생활양식, 종교, 교육, 경제적 배경 등에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거대정체성(mega-identity)’이 되었다고 거버닝은 분석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는 이러한 추세를 심화시켰다. 소셜미디어는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긍정적인 소통을 강화시켰다. 공화당의 고문인 데이비드 카니는 “누구든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끼리만 정보가 유통된다. 논쟁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좌파든 우파든 분노한 사람들과 대립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는 아무 이야기도 들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사람들을 단합하게 만드는 것은 상대편을 증오하는 사람들 편에 합류하는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음모론자들이 보수주의의 진면목이라고 보는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급진좌파들이 바이든 행정부를 지배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소셜미디어가 증오로 들끓게 된 배경이다.
   
   현재 민주·공화 양당은 이념, 경제, 교육수준, 문화, 종교, 젠더, 인종에 대한 생각 등에서 극단적으로 분화되고 구분된 사람들만 대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정치가 양극화하고 독성이 강해지는(toxic)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 나온다. 거버닝은 제3당이 등장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본다. “정치적으로 지지정당을 찾기 어려운 유권자가 아무리 많아져도 양당은 점점 더 극단화되어 간다. 선거에서 최악의 결과는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가 낙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증오하는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공포를 부풀린다. 한편이 이긴다 해도 상대편은 다음 선거에서 신속하게 승리하여 복귀한다. 설득이 가능한 극소수의 유권자들이 선거결과를 결정한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은 서로 협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협상은 상대편에 구걸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권력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현재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양극화는 (컴퓨터 작동불능인) 디폴트 모드(default mode)처럼 정치가 작동되지 않게 만든다. 미국인들은 인종, 장소, 플랫폼으로 분리되어 있다. 미국인들은 정치인들과 미디어 편식 때문에 두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상대편을 적으로 간주한다.”
   
   
   바이든, 민주당판 트럼프 되나?
   
   이러한 상황에서 바이든이 취임사에서 ‘통합’을 강조한 것은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행정명령을 연발하면서 트럼프 지우기 속도전에 열을 올린 것에 대해선 비판을 받는다. 내셔널리뷰는 지난 1월 25일 ‘바이든의 첫 번째 실책’이라는 논평에서 “대통령이 되어서 할 수 있는 것은 한두 가지뿐”이라며 바이든은 “경제회복과 코로나19 백신의 원활한 보급”만 추진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둘 다 미국인이면 누구나 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바이든이 독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의원들과 협조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행정명령을 자주 사용했다. 그런데 바이든은 현재 야당의 협조를 쉽게 얻어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당적 태도를 취하지 않고 “행정명령에 의존”하였다. 이 때문에 바이든은 스스로 가장 원치 않았던 ‘민주당판 트럼프(Democratic echo of Trump)’가 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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