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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7호] 2021.03.01

미얀마 군부 태국처럼 군복 벗고 총선?

우태영  자유기고가 wootaiyoung@hanmail.net 2021-03-04 오전 11:07:55

▲ 지난 2월 22일 미얀마 만달레이의 기차역 인근에서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기로에 섰다. 지난 2월 1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이 나라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76) 국가고문을 가택연금하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양곤, 만달레이, 수도 네피도 등 주요 도시에서는 항의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2021년 2월 22일에는 대도시들에서 이른바 ‘22222시위’가 벌어졌다. 23일 현재 군경의 발포로 인한 사망자는 4명이며, 체포된 사람은 1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쿠데타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65) 장군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아시아 국가로는 일본과 싱가포르가 아웅산 수치의 석방을 요구하며 쿠데타 비판대열에 동참했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양곤 등 대도시에 병력을 증강하고 있다고 외신은 23일 보도했다. 군과 시위대의 충돌이 격화할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군 지도자들이 민간인으로 ‘신분 전환’한 뒤 선거를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지난해 11월 8일 실시된 총선거가 부정선거라는 명분을 제시했다. 선거 이전부터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연맹(NLD)의 압승이 예상되었는데 개표 결과 전체 의석 476석 가운데 NLD가 396석을 얻었고 군부가 지원하는 통합연대 및 발전당(USDP)은 3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군의 입장에서는 큰 실망이었다. 헌법은 군에 의석의 4분의 1을 보장한다.
   
   쿠데타의 원인을 놓고 각국 언론들은 다양한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태국의 방콕포스트는 흘라잉의 권력욕이 쿠데타의 원인이라는 분석을 제기했다. 흘라잉은 오는 7월 퇴역한다. 후임자는 실권자인 수치가 임명하게 된다. 그럴 경우 인권탄압이나 부정축재 혐의로 사법처리당할 것을 우려한 흘라잉이 수치를 몰아냈다는 설명이다.
   
   수치의 과도한 친중(親中)정책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얀마 군은 역사적으로 확고한 반중(反中)이다. 미얀마는 16세기에는 현재의 태국을 포함하는 제국을 건설하였다. 태국의 유명한 관광지 아유타야의 폐허는 미얀마 제국이 남긴 흔적이다. 미얀마는 명(明)나라의 침략에 대처하느라 태국을 포기하였다.
   
   
   아웅산 수치와 중국과의 밀월
   
   20세기에 들어서도 중국은 미얀마에 가장 큰 안보위협이었다. 미얀마 군은 중국과 싸우면서 성장했다. 중국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는 것이 군의 가장 큰 임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50년대에는 중국 국민당 잔존세력이 윈난성에서 미얀마로 침입하여 북동부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였다. 이른바 ‘골든트라이앵글’의 기원이다. 1960년대에는 중국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공산반군이 같은 경로로 침략하여 영토를 차지하였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에야 뿌리가 뽑혔지만, 중국의 지원을 받는 세력들은 여전히 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이들 지도부는 모두 중국어를 하는 중국계”이며 “이들이 차지한 지역에서 한 해에 750억달러어치의 필로폰이 생산되며, 수백 개의 카지노가 설치되어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미얀마의 역사학자인 민트 우는 최근 미국 ‘포린폴리시’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1967년에도 중국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버마공산당이 수도였던 양곤에서 대규모 무장반란을 일으켰지만 군에 진압되었다.
   
   중국은 2010년 이후 새로운 실크로드라는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하면서 미얀마 북부에 미트소네댐 건설을 제안했지만 흘라잉 등 현 군부가 환경악화를 이유로 거부했다. 중국은 2014년에 중국 윈난성과 미얀마 서부 벵골만의 차우크퓨항(港)을 잇는 철도의 공동건설을 제안했지만 역시 군에 거부당했다. 그 후 중국은 수치 정부와는 대단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중국은 수치의 높은 대중적 인기를 이용하여 반중 정서가 강한 미얀마에 진출하였다. 수치는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역사적인 미얀마 방문 시에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호응하며 미얀마의 인프라 건설 관련 33개 협정에 서명했다. 수치는 군사쿠데타로 체포되기 3주 전에는 중국 윈난성~미얀마 차우크퓨항 철도 연구용역도 승인했다고 러시아의 미디어 ‘이즈베스티야’가 최근 보도했다. 미얀마 경제는 원료공급지로서 중국과 점점 유착해가고 있다. 동남아시아 언론들도 수치 정부 2기 출범을 기대했던 중국이 군사쿠데타로 난감해하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에 대해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세력은 수치의 석방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얀마에서 군사쿠데타와 민주화 시위의 갈등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미얀마에서는 1962년 네 윈 장군의 쿠데타 이후 군사독재가 시행됐다. 하지만 1988년 이른바 ‘8888봉기’로 알려진 민주화시위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 나라도 민주주의의 세례를 받게 된다. 당시 경제가 파탄 상태에 처하자 대학생과 승려들의 시위가 발생했다. 1988년 8월 8일 시위가 정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8888봉기’라고 불린다.
   
   미얀마 독립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1915~1947)의 딸인 수치도 이때 정치에 투신했다. 수치는 NLD의 지도자로 등장하며 민주화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러나 한 달 후 군부가 유혈진압을 벌여 수천 명이 사망했다. 수치는 군부의 출국 요구를 거부하며 가택연금을 당했다. 1990년 총선거에서 NLD가 다수당을 차지했지만, 군부는 선거결과를 무시하며 수치의 가택연금조치를 지속했다. 수치는 1991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미얀마의 군정은 2007년 경제난으로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연료가격 급등에 항의하는 승려들의 시위를 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전국적 시위가 잇따랐다. 주홍색 가사를 걸친 불승들의 시위로 시작된 사태였기 때문에 ‘사프란혁명’이라고 불린다. 2008년 사이클론으로 인해 20만명이 사망하고, 북부 지방 소수민족과의 내전 격화 등으로 위기에 처한 군부는 개헌안을 발의해 국민투표로 통과시키며 민정 이양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헌법의 주요 내용은 의석의 4분의 1은 군이 차지하고,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영국인과 결혼한 수치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한 꼼수였다. 수치는 가택연금에서 풀려났다.
   
   
▲ 미얀마 쿠데타 주역인 민 아웅 흘라잉 장군. photo 뉴시스

   “수치와 군부가 권력 분점, 사이비 민주주의”
   
   2015년 총선에서는 NLD가 석권했다. 헌법상 대통령 자격이 없는 수치는 ‘국가고문’이라는 직함으로 총리처럼 국정을 운영하였다. 서구 언론들은 미얀마를 아시아 민주주의의 성공스토리로 묘사했지만, 미얀마 내부의 학자들은 회의적으로 보았다. “수치와 군부가 권력을 분점하는 체제는 민주주의도 아니었으며 처음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역사학자 민트 우는 설명했다. 군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이비 민주주의(pseudo democracy)’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8888봉기’와 ‘사프란혁명’ 이후처럼 이번 군사쿠데타 이후에도 민주주의 이행이 중단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미얀마의 한 시위지도자는 “우리는 30년간 민주화투쟁을 벌였으며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메일을 외부로 보냈다. 지난 2월 2일부터 시위대들은 양곤에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는 악귀를 쫓는 전통행사이지만, ‘8888봉기’ 당시 시위대의 전략이었다. 미얀마의 한 젊은 기자는 이메일을 통해 “1988년에 냄비를 두드리며 시위를 벌이던 청년이 2021년 중년이 되어서 또다시 냄비를 두드리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2월 4일부터 청년들은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CDM)도 벌이고 있다. 이는 앞 세대가 쓰지 못했던 전략이다. 시위대는 인터넷 차단에 대비하여 블루투스를 사용하는 메시지 앱인 브리지파이(Bridgefy)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 이들은 태국, 홍콩의 민주화네트워크인 밀크티동맹(Milk Tea Alliance)과의 연락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가 물러설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역사학자 민트 우는 설명했다. “미얀마의 군은 지난 75년 동안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가장 잔혹하게 시위를 진압해온 군대이다. 군은 승려들을 포함, 민간인 시위대를 상대로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일을 주저한 적이 없다. 군은 17세부터 국가의 유일하고 진정한 수호자라고 교육받는다. 군 내부 균열이 공개적으로 발생한 적도 없다.”
   
   민트 우는 현재의 정치위기를 미얀마의 복합적인 위기상황과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얀마는 지난 70년간 수십 개의 무장조직과 내전을 치르고 있는 나라이다. 중국의 지원을 받는 가장 큰 무장조직의 병력은 2만5000명에 달한다. 소수민족들로 구성된 민병조직도 수백 개에 달하며 북부 고원지대를 장악하고 있다. 나라 안에 수백만 명의 난민이 살고 있다. 국가제도는 극단적으로 취약하여 세금도 못 걷는 실정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제는 붕괴되었다. 하루 소득 1.9달러 이하의 극빈층은 전체 인구의 16%에서 지난해 10월에는 63%로 급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부의 제재가 취해진다고 하루아침에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민트 우는 주장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흘라잉 장군은 1년 후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흘라잉은 최근 태국의 쁘라윳 짠오차 총리에게 미얀마의 ‘민주주의 발전(democratic process)’을 도와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태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태국에서는 2016년 쁘라윳 짠오차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뒤 민간인으로 신분 전환한 후 선거를 통해 총리가 되었다. 흘라잉이 미얀마에 태국의 모델을 적용한다면 수치와 NLD를 배제하고 총선을 실시한 다음 대통령이나 총리가 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태국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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