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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8호]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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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미얀마 민주투사의 호소 “한국이 희망… 우리를 저버리지 말라”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silkroad100@gmail.com 2021-03-05 오후 4:56:08

▲ 지난 3월 3일 미얀마 양곤에서 시위대들이 최루가스를 피해 도망가면서 경찰이 쏜 최루가스 효과를 떨어뜨리기 위해 소화기를 분무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數發)의 쏘련제(製) 탄환(彈丸)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부다페스트의 소녀(少女)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同胞)의 치욕(恥辱)에서 역(逆)으로 싹튼 것일까’
   - 김춘수 ‘부다페스트 소녀의 죽음’에서

   
   
▲ 미얀마 인권네트워크 창립자 초 윈(Kyaw Win). photo 유튜브

   김춘수 선생과의 만남은 몇 안 되는 인생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아스라한 기억이지만 2001년 서울 문정동에 있는 선생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교과서에 실린 시 ‘부다페스트 소녀의 죽음’에 대해 물어봤다. “펜을 대는 순간 순식간에 완성된 시”라는 얘기가 기억난다. 시 속 소녀의 죽음은 헝가리 항쟁에 관한 시다. 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이 시작되던 1956년, 구소련의 무력이 헝가리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했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피를 요구해온 게 민주주의의 역사다. 2021년 3월, 헝가리 민주항쟁 이후 무려 65년이 흘러간 시점에 ‘부다페스트 소녀의 죽음’이 다시 떠오른다. 미얀마 사태 때문이다. 미얀마 군부가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운 뒤 헌법을 무력화하고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지도자들을 투옥시켰다. 시간이 발전과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구석기시대의 상식이 21세기 논리보다 더 간단하고 정확할 수 있다. 미얀마 전역에서 반(反)군부독재 시위가 확산하면서 사상자 수도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가고문(State Counsellor)인 아웅산 수치의 행방도 알 수 없다. 서방 언론은 타협점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대규모 학살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얼마나 많은 부다페스트 소녀가 미얀마에 나타날까?
   
   영국에서 미얀마 인권네트워크(www. bhrn.org.uk)를 운영하고 있는 초 윈(Kyaw Win)씨는 현재 미얀마 현지 상황에 정통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얀마 내부의 언로(言路)가 군부의 감시와 통제로 막힌 상황에서 현지의 비밀조직과 연계해 미얀마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고발해왔다. 지난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전부터 BBC, ABC를 비롯한 전 세계 미디어에 등장해 미얀마 민주주의의 위기를 알려왔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태생인 그는 본래 미얀마 내 이슬람 소수민족 인권문제를 위해 싸워왔다. 미얀마 사태 이후 부쩍 바빠진 그에게 살육의 무대로 치닫고 있는 현지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물어봤다. 그와의 인터뷰는 줌으로 런던 현지 사무실을 연결해 45분간 이뤄졌다.
   
▲ 시위대가 플래카드에 붙인 얼굴 사진에 X표가 그어진 미얀마 쿠데타의 주역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 photo 뉴시스

   - 현재의 상황(3월 1일 기준)은 어떤가. “시시각각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17명이 숨진 듯하다.(인터뷰 이후인 지난 3월 3일 크리스틴 슈래너 버기너 유엔 미얀마 특사는 미얀마에서 쿠데타 발발 이후 가장 많은 38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버기너 특사는 지난 2월 1일 쿠데타 발생 이후 총 사망자가 50명을 넘었다고 했다.) 시위대를 대하는 경찰의 대응방법이 점점 폭력화하고 있다. 그러나 버마 국민은 경찰의 잔인한 무력대응에 굴하지 않고 있다. 쿠데타 무효와 민주주의 재건, 아웅산 수치의 자유를 원하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 현재의 반(反)쿠데타 시위는 어디를 중심으로,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시위의 중심은 청년들이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이들이 민주주의 재건을 요구하는 것이 이번 시위의 핵심이다. 대학생 가운데 시위 주도자가 있긴 하지만 이번 시위가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한두 명에 국한되는 소수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시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중적 차원에서의 풀뿌리 반군부독재 운동이란 점이 특별하다. 소수의 지도자가 앞장서는 운동일 경우 방향이나 메시지가 분명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지도자의 안전이나 신변이 위험하게 된다. 지도자가 사라질 경우 운동의 역량도 급속히 식어버린다.
   
   현재 버마 사태를 보면 누구 한 명이 앞장서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나 역시 지도자 역할과는 무관하다. 2021년 시위는 소수 지도자에 의존하지 않는, 동시다발적·횡적 풀뿌리 운동이란 점에서 다르다. 대학생이 주도하지만 특별히 어떤 대학이 나서서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대학교가 횡적으로 연결된 채 시위에 앞장서고 있다. 굳이 주류 대학생을 찾자면 이공계 전공 대학생들이 중심에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공계 전공 대학생은 버마 민주주의의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미얀마(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는 버마(Burma)로도 불리는 나라다. 각국의 신문·방송에서는 대부분 미얀마로 쓰지만 초 윈과 아웅산 수치는 항상 버마라 부른다. 왜일까? 군사정권이 종래의 국명인 버마를 미얀마로 바꿨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미얀마라는 국명은 군사독재의 잔재라는 것이 미얀마 민주인사들의 시각이다. 따라서 미얀마를 버마로 부르는 사람은 군부를 부정한다고 볼 수 있다. 초 윈이 인터뷰 내내 국명을 버마로 고집한 이유이기도 하다.
   
   - 현재 아웅산 수치는 어디에 있는가. “집에 감금된 상태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 중이지만, 아웅산 수치가 신체적 고문이나 압력을 받고 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는’ 없다. 아웅산 수치는 수많은 역경을 겪어온 인물이다. 지금까지 군부가 아웅산 수치를 고문하거나 폭력을 가한 적도 없었다. 군부는 아웅산 수치를 장기간 감금하면서 재판을 통해 범죄자로 몰아갈 것이다.”
   
   - 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는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2017년 벌어진 로힝야 이슬람 학살에 관한 문제다. 이번 쿠데타의 주역은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버마군 최고사령관이다. 바로 국제사회가 지목한 4년 전 이슬람 학살사건의 주범이다. 언젠가 법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의 임기다. 현재 64살로 내년이 정년이다. 최고사령관직에서 물러나야만 한다. 매년 1년씩 정년을 늘려왔지만,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자신이 군부에서 멀어질 경우 앞으로 닥칠 상황을 몹시 불안하게 느꼈을 듯하다. 이슬람 학살에 대한 책임을 면하자는 개인적 목적과 함께, 엄청난 부를 축적한 가족의 미래를 보장하려는 심리에서 쿠데타를 벌였다고 볼 수 있다. 국가적 차원의 결단이 아니라 ‘권력, 돈, 가족’과 같은 극히 개인적인 목적이 쿠데타의 전모라고 본다. 다시 군부독재로 나서면서 종전에 누렸던 파워와 돈을 유지하겠다는 속셈이다. 결국 새로운 독재자의 출현이다.”
   
   민주주의에 관한 정의는 다양하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 중 하나는 퇴임 지도자의 거취와 자유다. 아직도 기억하지만, 조지 부시 미 대통령(43대)의 퇴임 직후인 2009년 초봄의 얘기다. 대통령에서 일반 시민으로 돌아갔을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를 누군가 물어봤다. “아침에 혼자서 개와 함께 집 주변 산책을 했다. 가던 도중 개가 대변을 봤기 때문에 플라스틱 봉지로 쓸어담았다. 그때 손끝에 생명체의 온기가 퍼져나갔다. 내가 평범한 미국 시민이 됐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현대 지도자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한의 김정은, 중국의 시진핑도 민주주의 수호신처럼 행세한다. 모든 증거는 퇴임 후에 나타난다. 개와 함께 산책이 가능할지, 길을 가다 아무나 붙잡고 얘기를 나눌 수 있을지, 손자의 생일축하 파티를 위해 저녁식사 예약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 우울한 얘기지만 한국 정치사를 보면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그 같은 퇴임 후 생활을 이어간 대통령은 없어 보인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직 멀다는 의미다.
   
▲ 지난 3월 2일 미얀마 양곤에서 시위대들이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 미얀마 시위대가 얼마 전 양곤 한국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군사 쿠데타를 인정해주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등 한글로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한국에도 미얀마 사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한국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뭔가. “우리는 우리를 지지하고 함께할 친구를 원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은 사실 버마와 아주 가까운 나라다. (런던에 살고 있는) 나 자신도 깜짝 놀라지만 버마인들의 한국에 대한 친근감은 상상 이상이다. 버마인 대부분은 한국의 영화, 노래, 춤에 거의 미친 상태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다. 한국 문화와 한글에 대한 버마인들의 관심은 엄청나다.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버마인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배경과 환경을 감안할 때, 한국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버마인들에게 특별한 역할과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익 챙기기에 바쁜 아세안 나라들과는 다른, 소프트파워 대국이자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한국의 가치와 의미다.”
   
   - 미얀마인들은 이웃 아세안 국가들은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비극이지만 버마마인은 아세안 국가들을 믿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버마인들을 지지하기는커녕 이해타산 대상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원하는 버마인을 위해 싸우거나 지지를 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세안은 항상 군부를 지지했고, 버마인들을 무시해왔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원칙도 없는 나라가 아세안이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고 믿는다. 소프트파워 대국인 동시에, 원칙에 입각해 민주주의를 자력으로 쟁취한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 한국이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가. “배신과 배반은 근현대 버마의 역사 그 자체다. 그 같은 상황을 한국을 통해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다. 버마인 모두가 민주주의 선진국인 한국에 기대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부탁한다. 우리를 지지하고, 우리와 함께 나아가길 원한다. 한국은 버마가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미래의 나라다. 소프트파워만이 아니라 경제적 풍요와 최근의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봐도 한국은 특별한 나라로 인식된다. 현재 버마는 아주 어려운 시련에 직면해 있다. 고통스러운 시간일수록 한국의 버마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빛을 발할 것이다. 한국의 지지와 도움이 있다면 민주주의를 향한 버마인의 피도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 미얀마 군부 내에 애국심에 불타는 청년장교들도 많을 듯하다. 흘라잉 장군의 ‘이기적·개인적 욕망’이 진짜 쿠데타의 원인이라면 애국적 청년장교들의 정서에 반할 듯한데? 군인들의 흘라잉 장군에 대한 지지나 충성도는 어떤가. “민주주의 투쟁사에 관한 한 한국도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일단 같은 조직 속에 있을 경우, 생각이 다르더라도 반대를 하면서 따라가기가 어렵다. 찬성은 안 하지만, 적극 나서서 반대를 하지는 못하는 것이 군부의 내부 사정이다. 무슨 화가 미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로 인해 그냥 말없이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군부의 대부분은 변화의 추이를 냉정히 분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충성심 때문에 흘라잉 장군의 쿠데타를 적극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흘라잉 장군이 약해지면 곧바로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이라 믿는 군인은 극소수다.”
   
   - 군부 내부에서의 이견이나 반(反)흘라잉 분위기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이다. 어떤 화가 미칠지 모르는 공포정치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변할 경우 군부 내 반발도 나타날 것이다. 2007년 8월 버마의 민주주의 봉기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에도 군부는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결국 국제사회로부터의 각종 경제제재가 몰려왔다. 당시의 상황과 교훈은 2021년 버마 정세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국제사회가 각종 경제제재를 가해오자 군부 내부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나라가 엉망이 되는 상황 속에서는 독재의 명분도 무용지물이 됐다. 결국 2007년 봉기에서 촉발된 군부 내 균열은 이후 2015년 총선거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압승으로 연결된다. 앞으로 군부에 대한 경제제재가 포괄적으로 시행될 경우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내가 국제사회에 군부에 대한 각종 제재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군부에서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프로파간다를 살포하고 있다. 거짓말이다. 군부를 돕는 경제활동은 버마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범죄행위에 준한다. 경제제재를 통한 군부 내부의 균열이 중요하다.”
   
   26년 전인 1995년 8월 아웅산 수치를 인터뷰하러 랑군(현 양곤)에 들른 적이 있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당시 가택 연금 중이던 아웅산 수치와 만날 수 있었다. 강하고 재능이 넘치고 머리 회전이 빠른 인물이란 것이 첫인상이었다. 인터뷰 내내 여성이란 느낌은 안 들었다.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 아웅산 장군의 피를 이어받은, 민주주의 지도자로서의 고행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아웅산 수치와의 직접 대면은 이후 두번 더 있었다. 2012년 9월과 2016년 9월, 전부 워싱턴DC에서였다. 2012년은 미얀마 야당 민주주의 지도자 자격으로, 2016년은 미얀마 국가고문 자격으로 워싱턴에 들러 싱크탱크에서 연설을 했다. 필자가 30대 때 인터뷰를 했던 추억도 있고 해서 아웅산 수치의 워싱턴 연설을 현장에서 모두 들어봤다. 2012년은 민주주의 청사진에 관한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2016년은 뜻밖의 얘기가 추가됐다. 미얀마 내부에서 벌어진 이슬람 학살 문제다. 국제사회의 비판과 달리, 이슬람 학살이란 문제 자체가 없다는 것이 당시 아웅산 수치의 얘기였다. 민주주의 지도자에서 현실 정치가로 변해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2020년 1월 아웅산 수치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만나 양국의 공동번영을 부르짖는 인물로 변해갔다. 미얀마가 중국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참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생각이라 믿고 싶지만, 26년 전 아웅산 수치와 너무도 달라진 행보로 보였다. 이번 쿠데타는 그 같은 상황 속에서 터져나왔다. 민주주의 세력 간의 분열과 반목이 심해지자, 그 틈을 비집고 군부독재가 재등장한 것이고 본다.
   
▲ 지난 3월 3일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총을 든 군인들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 2007년과 비교할 경우 큰 변수 하나가 ‘차이나 팩터’라고 본다. 미얀마가 경제적으로 중국과 밀착된 상태에서 경제제재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 “중국과 관련된 검증되지 않은 신화가 하나 있다. ‘서방 제재가 심해질 경우 버마의 중국 종속화가 한층 더 강해질 것이다’라는 신화다. 중국이 버티고 있는 한 경제제재도 무의미하다는 신화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미 버마는 중국의 영향권 속에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뱀과 같은 존재다. 버마 국토 전체를 뱀의 몸으로 칭칭 감은 채 쥐어짜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고 버마를 분열시키고 인권을 무시하면서 이익추구에만 혈안이 된 상태다. 버마인의 피를 전부 빨아들이는 무서운 존재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2007년 민주주의 봉기 당시에도 이미 존재했다. 왜 새삼스럽게 2021년 그런 얘기를 들어야만 하는가?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중국 신화를 우선시하면서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서방 경제제재의 피해는 버마만이 아니라 중국에도 미친다. 소수의 고위급 군부와 그들에게 기생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사회 주도하의 경제제재가 절실하다.”
   
   - 미얀마 군부의 중국에 대한 신뢰도는 어떤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웃고는 있지만, 군부의 상당수는 중국을 ‘증오(Hate)’하고 있다. 외신에도 보도됐지만, 중국은 버마를 적으로 삼는 군사조직을 암암리에 후원하고 있다. 버마와 인도가 테러 조직으로 규정한 아라칸(Arakan Army)이 중국의 도움을 받고 있다. 최첨단 무기와 엄청난 자금이 제공됐다. 버마 북단에서 암약하는 아라칸을 지원하면서 버마와 인도와의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 중국의 내심이다. 만약 군부가 약해질 경우 아라칸을 중국 대리인으로 내세울 계획일 것이다. 버마 군부가 ‘결코’ 중국을 신뢰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다. 버마 국민도 느끼지만, ‘중국=배신자’라는 생각이 군부에 만연해 있다. 서방도 버마가 중국에 흡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중국은 천안문사태를 일으킨, 인권과 무관한 나라다. 아무리 중국의 영향력이 크다 해도, 중국에 완전히 의존하거나 중국 한 나라가 버마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방의 경제제재가 효과를 발휘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흘라잉 장군과 군부 지도자들은 지금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나. 쿠데타를 통해 궁극적으로 뭘 달성하려 하는가. “여러 가지 감언이설이 많다. 발전, 행복, 변화 같은 얘기들이 넘친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 누구도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못 믿고 안 믿는다. 군부 그 자체가 엄청 부패해 있다는 점도 불신을 조장하는 이유 중 하나다.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제기된 군부의 얘기는 거짓말 외 아무것도 아니다. 1962년 당시 아시아를 대표하는 부국에서 현재 전 세계에서 최고 가난한 나라로 밀려난 곳이 버마다.”
   
   1962년은 박정희의 5·16군사정변이 터진 바로 다음해다. 시기적으로 한국의 군사 쿠데타가 미얀마 군부에 영향을 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도 다르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며 국가번영에 매진했고 한국은 1970년대 이후 아시아의 용으로 부상했다. 미얀마는 다르다. 원래 영국 식민지로 한국보다 월등히 잘살았던 나라였지만 1962년 쿠데타 이후 쇄국정책과 군부의 부패로 급추락한다. 50대 이상 세대는 기억하겠지만, 1970년대 초 국제축구시합에서 한국의 경쟁국 중 하나가 미얀마였다. “버마 선수들의 체력이 한국 선수들을 압도합니다. 어릴 때부터 영양보충이 잘된 나라이기에 몸이 다릅니다”라는 축구 중계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 아웅산 수치는 현재 75살이다. 군부는 아마 그녀가 세상에서 사라지길 원할 듯하다. 만약 아웅산 수치가 없다면, 미얀마 민주주의 운동이 어떤 식으로 나아갈 것이라 보는가. “부모 없이 자랐거나, 극단적인 가난 속에서 자란 사람들을 보면서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역경을 딛고 훌륭한 인간 모델로 자리 잡는다. 마찬가지다. 아웅산 수치가 없는 버마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은 노파심에 불과하다. 아웅산 수치가 버마 민주주의에 공헌한 인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가 없다고 해서 버마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아니라, 지금도 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는 버마인을 보라. 총과 폭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현재 목격하고 있지만, 버마에는 수많은 아웅산 수치가 등장하고 있다. 인간 개개인보다, 제도적 차원의 접근도 중요하다. 점·선·면으로서의 유명한 민주 지도자보다 입체적 조각으로서의 제도화된 민주 버마가 한층 더 중요하다. 정당·법원·매스컴 같은 것들이다. 그들이 살아 있는 한 버마 민주주의 역사도 계속 발전돼 나갈 것이다. 현재 버마는 제도화된 3차원적 조각품을 원한다. 그런 것들을 통한 민주주의 구현이 보다 더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이다. 버마 군부가 강한 이유도 바로 그 같은 제도화된 조직체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 미얀마가 본격적인 민주주의에 들어선 것은 2015년부터다. 이후 경제도 개방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정착된 듯하다. 일반 국민들도 변화 속에서 발전을 느꼈다고 보는가. “이미 반세기 전부터 나라가 엉망이 됐다. 한꺼번에 전부 발전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부분적으로 일상 속의 성장이나 발전도 체득할 수 있었다. 거꾸로 민주화 이전에 부자였거나 권력자들은 불평을 연발했다. 이유는 원래 행하던 불법 거래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시장이 개방되면서 법이 등장하자 불법거래도 사라졌다. 부정부패에 익숙하게 살아온 사람들로, 보통 국민들과는 유리된 특권층이다.”
   
   - 현재 시위에 대해 NLD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상황에 맞춘 플랜 A, B, C 그런 것들이 없다. 민주주의 시위를 앞장서서 주도할 인물이 안 보인다. 군부는 최근 아웅산 수치 산하의 정부 장관들을 전원 파면한 상태다. 이럴 경우 의회를 장악한 NLD가 곧바로 나서서 후임 장관을 임명하고 외국의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군부가 아니라 NLD를 중심으로 한 의회와 국민이 주인이란 걸 전 세계에 과시해야만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국민이 주인인 합법정부가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정치력, 지도력의 부재다.”
   
   - 미얀마 안에서는 여러 가지 제약과 위협이 있을 것이다. 상황이 어려울 경우 외국에 망명정부를 세우려는 논의가 있는가. “이미 시작됐다. 구체적인 계획이 이뤄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구체화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 위기가 닥칠 경우 희생양을 만들어 피해가는 것이 독재자들의 습성이다. 이슬람 소수민족에게 화가 미칠 수도 있을 듯한데. “내부 극비 정보지만, 최근에 반이슬람 정책에 앞장선 인물이 군부 최고 수뇌부에 올랐다고 한다. 이슬람 가족 모두가 아주 걱정하고 있다. 책임이나 위기를 면하기 위해 어떤 공작을 벌일지 알 수 없다. 명심할 부분은 쿠데타 주모자 흘라잉 장군이 원래 반무슬림 정책의 선구자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쿠데타 세력들은 이슬람을 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닥친 ‘뉴노멀’ 상황에 필적한다고나 할까?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이제 기권표를 던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탈북자를 마치 적같이 대하면서, 북한 관련 증언을 자세히 검증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지금의 한국 정부다. 하지만 불과 4년 전 한국은 국제사회의 미얀마 민주주의 지지 운동에 동참했던 나라다. 당시 민주주의 탄압에 대한 우리 정부의 유감 발언과 함께 국회의원 42명이 서명한 성명서를 미얀마 군사정부에 전달했다. 희극인지 비극인지, 당시 서명한 42명의 국회의원 중 상당수는 2021년 지금의 정부 여당에 포진해 있다. 이른바 586 운동권 정치가들이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문제도 내팽개친 상태에서 2021년 미얀마 민주주의 운동이 이들의 눈에 들어올지 의문이다.
   
   그러나 지금 미얀마는 한국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민주주의 승리’의 나라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 소녀의 죽음’은 21세기, 아니 22세기에도 이어질 인류의 영원한 비극이자 숙제일지 모르겠다. 지금 당장 미얀마만이 아니라 북한 곳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차가운 현실이다. 민주주의 달성이 전부는 아니다. 마치 종교의 순교자처럼, 주변을 응원, 지원하면서 확산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책임이자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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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호랑이의 해 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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