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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9호] 2021.03.15

교황이 선택한 순례지, 이라크 기독교인들의 잔혹사

▲ 이라크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3월 7일 모술의 폐허가 된 교회 터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로마 가톨릭의 프란치스코(84) 교황이 지난 3월 5일부터 나흘간 이라크를 방문했다. 로마 교황의 이라크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라크 방문은 전란(戰亂)으로 고통받는 이라크 국민과 기독교도들을 위로하고 종교 간 화해와 평화 공존을 호소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해외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라크는 현재 치안이 여전히 불안하고 코로나19 피해도 심각하다. 3월 9일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1만3000명이 넘는다. 이라크 정부가 교황의 방문기간 중 통행금지를 실시할 정도로 치안도 불안하다. 고령에 고관절 질환으로 걷기도 힘든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축을 받아가며 위험지역인 이라크를 방문하는 데 대해 세계 언론들은 경의를 표하고 있다.
   
   
   150만명이 50만명으로 격감
   
   21세기 들어서 이라크에 살고 있는 기독교도들만큼 혹독하게 고초를 겪은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사담 후세인(1937~2006) 대통령의 독재 시절까지 150만명 정도로 추정되던 기독교도들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발생한 IS(이슬람국가) 등 테러리스트들의 잔혹한 보복으로 현재 3분의 1인 50만명 수준으로 격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최근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방문을 “순례”라고 말했듯이 이라크는 기독교와 깊은 역사적 연관을 가지고 있다.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살던 에덴동산은 이라크 남부지역이라는 것에 많은 성서연구가들이 동의한다. 이들의 먼 후손이자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조상인 아브라함(이슬람교에서는 이브라힘)이 기원전(BC) 2000년경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가나안으로 떠날 때까지 살던 곳인 우르는 이라크 남부의 나시리야 근방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를 의식한 듯 지난 3월 5일 바그다드 미사에서 “믿음이 탄생한 이곳,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의 땅에서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는 사실과 우리가 서로 미워하며 그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가장 심한 모독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선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3월 6일에는 나시리야를 방문해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왕국의 유적지들을 찾았다. 이곳에는 ‘아브라함의 집’도 남아 있다.
   
   
▲ 지난 3월 6일 시아파 이슬람교 최고지도자인 알 시스타니와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

   에덴동산과 아브라함의 흔적들
   
   고래 뱃속에 들어갔던 요나도 이라크와 관련 깊은 구약성경의 중요 인물이다. 요나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가나안에 세운 유대왕국 사람이다. BC 8세기경 유대왕국에 살던 요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니느웨로 가서 타락에 대해 경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니느웨가 현재 이라크 북부의 모술 부근이다. 요나는 이를 거부하고 배를 타고 달아났다. 그런데 배가 풍랑을 맞아 위태로워지자 요나는 제물로 바다에 던져진 다음 고래에게 먹혀 어두운 뱃속에 있다가 사흘 만에 뱉어졌다. 그후 니느웨로 가서 하느님의 지시를 이행하게 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 요나서에 기록되어 있다.
   
   요나는 이슬람교에서는 유누스로 통하며 특별히 중요시되는 인물이다. 모술 부근에서 발굴된 니느웨의 유적 중에는 요나의 무덤도 있었다. 그런데 2014년 IS가 이를 파괴하였다. 유대왕국은 BC 5~6세기경에 바빌로니아 느부갓네살 왕의 공격을 받고 멸망했다. 당시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던 바빌로니아 왕국이 있던 자리가 지금은 이라크 북부이다. 포로들 중에 다니엘은 고위관리로 임명되기도 하였으며, 구약성경에 포함된 다니엘서를 남겼다. 다니엘은 온갖 고초를 겪고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라크 모술에 전해지던 다니엘의 무덤은 2014년에 IS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 밖에도 이라크와 구약성경과는 관련이 많다.
   
   예수 탄생 이후 이라크 땅 사람들에 대한 전도는 열두 제자 중 유일하게 동쪽으로 갔던 도마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라크에 이슬람세력이 들어서면서 기독교도들은 소수파로 전락했다. 20세기 후반 사담 후세인은 독재를 했지만 세속주의를 추구했다. 사담 후세인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시아파 원리주의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반면 기독교도들을 특별히 핍박하는 경우는 적었다고 한다. 기독교도들은 이슬람교도들과 거의 대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았다고 한다. 후세인은 가신(家臣)들을 주로 바그다드에 살고 있는 아르메니아 출신의 기독교도 중에서 발탁했다. 그의 애첩 중에도 아르메니아 기독교도가 있었다고 한다. 후세인은 바그다드에 성당 건립도 허가했으며, 크리스마스에는 꽃다발도 선물했다.
   
   기독교도들의 수난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함께 시작되었다. 독실한 기독교도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이 역설적으로 기독교도들에게는 혹독한 시련을 안긴 셈이다. 후세인의 지지기반인 수니파 이슬람세력은 미국의 침공을 현대판 십자군전쟁이라고 여기며 기독교도들에 대한 보복을 감행했다. 특히 알카에다가 이끄는 무장세력은 기독교도들에 대한 살인, 납치, 포격 등을 저질렀다. 이들의 핍박으로 기독교도들은 살던 곳을 떠났으며 남아 있던 사람들은 살해되거나 노예가 되어 팔리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갈대아의 가톨릭 대주교가 살해당하는 등 성직자들이 피살되었으며, 이라크 전역에서 성당들이 파괴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5일 미사를 집전한 바그다드의 구세주성모성당은 이라크 역사상 최악의 기독교도 학살사건이 발생했던 곳이다. 2010년 10월 31일에는 IS 테러리스트들이 주일 미사가 열리는 성당을 점령하고 신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4시간 후 이라크 정부군이 급습하자 테러리스트들은 폭탄조끼를 터뜨리는 자살폭탄 공격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성직자 2명과 기독교도들을 포함, 모두 48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 이후 이라크에서 많은 기독교도들이 탈출하였다.
   
   2014년 여름에는 IS가 이라크 북부 최대도시인 모술과 니느웨 지역을 점령했다. 이들은 기독교도들에게 수니파 이슬람교로의 개종을 강요하며 수많은 인명을 살육했다. IS는 또 성당, 수도원, 성지 등 수많은 역사 유물과 건축물들도 파괴했다.
   
   IS의 가장 큰 희생자가 바로 북부에 살던 야지디족이다. 야지디족은 오래전부터 이라크 북부 산악지대에서 시리아 북부, 터키 남부까지 퍼져 살고 있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이라크전쟁 전까지 야지디족의 숫자는 최대 50만명으로 조사되었다. 산악지방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이들은 야지디즘(Yezidism)이라 불리는 독특한 종교를 지켜왔다. 야지디즘은 기독교에 가깝지만 이슬람교의 특징도 갖고 있다. 야지디즘은 구전(口傳)된다. 외부인은 신자가 될 수 없다. 만물의 창조주를 믿고, 성직자가 세례를 행하며, 동물을 희생하여 번제를 드리고, 아이들은 할례를 한다는 점에서는 기독교나 유대교와 흡사하다. 하루에 다섯 차례 기도를 드린다는 점은 이슬람적 특징이다. 야지디즘에서는 창조주의 뜻을 받은 7명의 천사 중 가장 위대한 공작천사가 세상을 다스린다. 공작은 초기 기독교에서는 불멸을 상징했다고 BBC는 설명한다.
   
   
▲ 지난 3월 7일 이라크 어빌에서 미사를 집전한 후 출국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독교인들이 배웅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IS가 학살한 야지디족의 고난
   
   야지디족은 ‘멜렉타우스’라고 불리는 공작천사에게 하루에 다섯 차례 기도한다. 그런데 공작천사의 아랍식 이름인 ‘샤이탄’은 악마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때문에 IS는 이들을 악마숭배자라며 수니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강요했다. IS는 야지디족 마을에 개종과 죽음 사이에 선택하라고 통보하고, 거부하면 포격이나 총살 등의 방법으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 이라크 정부 조사에 따르면 IS는 일부 야지디 마을에서 개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생매장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 IS에 납치당해 성노예로 팔린 야지디 여성은 7000명이 넘는다. 한 생존자는 “야지디 여성들은 가축처럼 취급당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강간을 당하거나 성노예로 취급되는 등 물리적·성적 폭력을 당했다. 그들은 모술이나 시리아 라카에 있는 시장에서 몸에 가격표가 부착된 채 팔렸다”고 말했다. 수모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 여성들도 많았다고 한다. 미국 의회, 유럽연합(EU) 의회, 그리고 유엔 등은 야지디족이 집단학살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만장일치로 공식인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지난 3월 6일 나자프에서 시아파 이슬람교의 최고지도자인 그랜드 아야톨라 알 시스타니(90)와 만나 종교적 극단주의 세력을 비난하면서 야지디족에 대한 배려를 당부했다. 알 시스타니도 이에 화답하여 모든 기독교도가 “모든 이라크인과 똑같이 헌법상의 권리를 모두 누리며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종교지도자들은 지난 수년 동안 불의와 박해를 당해 고통받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 시스타니는 2014년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에게 IS를 상대로 싸우라는 칙령을 발표한 인물이다.
   
   교황은 지난 3월 7일 모술의 폐허가 된 교회 터에서 집전한 미사에서도 “고대 믿음의 성전들이 파괴되고 무슬림, 기독교도, 야지디인 등이 강제로 쫓겨나거나 살해당했습니다. 문명의 요람인 이 나라에서 어떻게 그처럼 야만적인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까”라고 탄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 동안의 이라크 방문 기간 중 강론을 통해 가장 강조한 것은 ‘극단주의(extremism)’ 배격과 종교 간 ‘공존(coexistence)’이다. 지난 3월 6일 나자프에서 흰옷을 입은 교황은 검은 옷을 입은 시아파 이슬람교의 최고지도자인 알 시스타니와 만났다. 인류가 종교의 다름을 옷 색깔의 차이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이는 날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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