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 뮌헨의 마누엘 노이어가 지난해 8월 23일(현지시각) 파리 생제르맹(PSG)과의 2019~20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바이에른 뮌헨의 마누엘 노이어가 지난해 8월 23일(현지시각) 파리 생제르맹(PSG)과의 2019~20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유럽 축구는 56시간 동안 대혼란에 빠졌다. 12개의 빅클럽이 반세기 동안 유지됐던 축구 생태계를 부수겠다고 선언하면서 생긴 일이다.

지난 4월 18일 오후 1시(이하 영국 현지시각) 더타임스의 보도가 출발점이었다. 5개의 잉글랜드 클럽(토트넘 홋스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널, 리버풀)이 20개 팀으로 구성될 유러피안 슈퍼리그(ESL)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부터다. 이후 맨체스터 시티까지 포함한 잉글랜드의 빅6에 더해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탈리아의 유벤투스·AC밀란·인터밀란이 슈퍼리그에 참가한다는 보도가 전 세계로 타전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부유한 구단들로 구성된 이 12개 팀은 포브스 선정 2020년 구단 가치 순위에서 1~16위 사이에 모두 포함돼 있다. 오후 11시, 예상대로 12개의 클럽은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우리는 슈퍼리그의 일원이 될 것”이라며 동시 다발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클럽의 서포터즈가 격렬히 반발했고 축구계 인사들의 저격도 더해졌다. BBC 헤드라인은 슈퍼리그 속보로 계속 교체됐다. 5월 6일 지방선거를 앞둔 영국은 여야 정치권 할 것 없이 모두 “잉글랜드 클럽들이 슈퍼리그에 참가하는 걸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빅6 클럽의 서포터즈를 만나고 다녔고 올리버 다우든 영국 문화부 장관은 “정부의 모든 지원을 재검토할 것이고 클럽의 소유 구조 개혁 등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0일 오전 11시 가디언은 슈퍼리그 내의 균열을 전했다. “빅6 중 이탈 클럽이 나올 수 있다”는 보도였다. 오후 4시, 첼시와 브라이튼의 경기가 열리는 스탬퍼드 브리지(첼시 홈구장) 밖에서는 첼시 팬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고 경기 시작이 15분 지연됐다. 저녁 무렵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가 팬들의 반발에 탈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리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잉글랜드의 빅6는 모두 슈퍼리그에서 탈퇴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창립 클럽 12개 중 절반이 빠지면서 이틀 남짓 만에 슈퍼리그는 와해됐다.

수익 배분 두고 갈등 빚은 UEFA와 빅클럽

유럽 축구는 40조원 규모에 육박하는 거대한 생태계다. 가장 많은 상금을 향한 피라미드형 계층 구조를 갖고 있고 모든 리그의 층위들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각국 하부 리그의 팀은 상위 리그로 올라가기 위해 애쓴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잉글랜드 축구의 경우 1부인 프리미어리그(EPL)부터 10부 리그까지 수많은 팀이 존재한다. 그들은 모두 EPL 20개 팀 멤버에 포함되는 게 목표다.

한 시즌이 끝나면 승격하는 팀과 강등당하는 팀의 희비가 엇갈리는 것도 하이라이트다. 무명의 팀이 차례차례 승격해 1부에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꾸로 1부의 명문팀이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열린 시스템이 유럽 축구 역동성의 근간이다. 우승 3회의 역사를 가진 리즈 유나이티드는 2003~2004시즌 19위를 차지해 2부로 떨어졌다. 리즈가 EPL에 재등장한 건 2020~2021시즌. 돌아오기까지 17년이나 걸렸다. 요즘 흔히 쓰는 ‘리즈 시절’(전성기를 뜻함)이라는 신조어는 이 팀에서 유래했다.

1부 리그 입성이 피라미드의 꼭짓점은 아니다. 그 위에 유럽축구협회(UEFA)가 주최하는 챔피언스리그(챔스)가 있다. 유럽 각 리그 상위팀 경기인 챔스에 진출하는 건 팀이나 선수에게 또 다른 도약이다. 챔스는 경쟁에서 이겨낸다면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열려 있다.

반대로 이번에 새롭게 시도됐던 슈퍼리그는 닫힌 카르텔이다. 유출된 계획에 따르면 20개 팀 중 창립 멤버가 될 15개 클럽은 절대 강등되지 않는다. 나머지 5개 클럽만 로테이션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번에 참가를 언급했던 12개의 클럽은 매년 챔스에서 우승컵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단골 멤버들이다. 이들이 슈퍼리그로 떠나면 챔스와 유럽 주요 국가의 1부 리그는 더 이상 주류가 될 수 없다. 유럽 축구 피라미드는 슈퍼리그의 차지가 되고 카르텔화된 꼭대기 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사다리는 사실상 사라진다.

‘슈퍼리그’라는 소재는 과거에도 빅클럽을 중심으로 종종 논의돼 왔다. 다만 이전에는 구상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실제로 추진됐다는 게 다르다. UEFA와 각 클럽은 최근까지 2021~2024년 UEFA가 주최하는 대회의 수익 배분을 두고 대립해왔다. 특히 축구 산업의 핵심인 중계권료의 행방에 그들은 주목했다. UEFA의 최신 재무보고서에 따르면, UEFA는 유럽 내 벌어지는 모든 경기의 중계권을 전 세계에 판매해 연간 약 32억5000만유로(약 4조3660억원)를 벌어들인다. 방송권은 UEFA 전체 수익에서 85% 이상을 차지했다.

미셸 플라티니 전임 UEFA 회장이 맺었던 2018~2021년의 배분 정책은 빅클럽들에 큰 몫을 떼어주도록 설계됐다. 챔스 32강에만 들어도 기본 상금이 200억원 이상이고 조별 리그에서 승리할 경우 1승당 약 36억원을 받는다. 16강에 진출하면 약 125억원, 결승에 진출하면 200억원 정도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우승팀은 52억원을 상금으로 더 가져간다. 챔스에 나가는 것만으로 구단 재정이 탄탄해지고 더 좋은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강팀은 계속 강팀으로 남을 수 있는 구조다.

지난 4월 20일 영국 런던의 스탬퍼드 브리지 경기장 밖에서 첼시 팬들이 첼시의 유럽 슈퍼리그 참가 계획에 항의하며 시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4월 20일 영국 런던의 스탬퍼드 브리지 경기장 밖에서 첼시 팬들이 첼시의 유럽 슈퍼리그 참가 계획에 항의하며 시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빅클럽 비판 뒤의 UEFA·FIFA의 탐욕

반면 2017년 당선된 알렉산데르 체페린 현 UEFA 회장은 축구 변방 슬로베니아 출신이다. 선거 때 그는 빅클럽이 아닌 유럽의 중소 리그와 중소 클럽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이게 먹혀들어 첫 동유럽 출신 회장이라는 이변을 만들었다. 그는 ‘연대’를 기치로 내걸었고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리그나 중소 클럽에 지원금을 배분하는 방안을 내세우면서 빅클럽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렇다 보니 UEFA는 이번에 시도된 슈퍼리그를 ‘빅클럽들의 탐욕’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클럽들의 입장에서는 UEFA 역시 탐욕 덩어리다. 슈퍼리그가 와해되고 난 뒤, 로날드 쿠만 바르셀로나 감독은 “UEFA는 경기의 수에 대해 축구에 종사하는 사람들, 매니저들, 혹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UEFA에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라고 꼬집었다.

빅클럽을 비판하는 UEFA는 챔스 진출 구단과 게임 수를 더 늘리려고 하고 있다. 슈퍼리그가 공식 발표되고 하루가 지난 4월 19일, UEFA는 챔스 개편안을 내놓았다. 8개 조 32개 팀이 본선을 치르는 현재 시스템을 2024~2025 시즌부터는 36개 팀이 리그 형태로 치른다는 것이 골자다. 기존에는 팀당 6경기의 조별리그를 치르면 16강 토너먼트로 진출했지만 개편안에 따르면 팀당 10게임씩 치러야 한다. 변경된 대회 방식에 따르면 조별리그 경기 수는 96경기에서 180경기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 UEFA가 노리는 건 이로 인해 생길 추가 수입이다. 유럽 내 빅클럽 간 게임 수를 극대화해 고부가가치를 만들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이미 올해 초부터 흘러나왔던 챔스 개편안은 빅클럽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늘어난 게임 수는 클럽의 재산인 선수들의 혹사를 뜻한다. 게다가 팬데믹으로 손실이 큰 상황에서 협회의 수익배분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빅클럽을 수익 증대용으로만 쓸 뿐, 돈을 나누는 데는 인색하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협회의 통제를 벗어난 슈퍼리그 논의가 힘을 받았던 이유다.

보통 국가대표급 경기에 관여하던 국제축구연맹(FIFA)도 클럽을 쥐어짜려고 한다. 24개의 전 세계 주요 클럽들이 참가하는 ‘클럽 월드컵’은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의 꿈이다. 그는 유럽의 빅클럽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클럽들이 월드컵처럼 참가하는 대회를 만들려고 한다. 과거 인판티노 회장은 클럽 월드컵을 성사시킬 경우 “스폰서로부터 약 120억달러(약 13조원)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FIFA의 계획이 구체화되자 반기를 들고 나선 건 빅클럽이 아닌 UEFA였다. 클럽 월드컵이 확대되면 챔스 흥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다. 자신들을 뺀 채 FIFA와 UEFA 간에 클럽 대항전 주도권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자 오히려 빅클럽들은 자신들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리그를 간절히 원하게 됐다.

빅클럽의 소유권 변화도 이번 반란의 한 축이다. 슈퍼리그를 주도했던 이들은 주로 미국인 구단주들이었다. 가장 상업적이라는 EPL의 빅6 중 절반이 현재 미국인 소유다. 슈퍼리그의 회장은 레알 마드리드가 맡기로 했었지만 부회장단에는 맨유의 구단주인 조엘 글레이저, 리버풀 구단주이자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를 소유한 존 헨리, 미국 프로풋볼(NFL) 팀인 LA램스와 NBA 덴버 너게츠, 그리고 아스널을 소유한 스탠 크뢴케 등이 참여키로 했었다.

유럽 축구의 미국식 설계

미국은 무한경쟁 사회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스포츠는 정반대로 승강제 없는 카르텔로 운영된다. 더 많이 이길수록 수익이 증가하는 유럽 축구와 달리 미국의 스포츠는 이기는 것과 많이 버는 것 사이에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 스포츠 재정을 다루는 학술지인 IJSF에 따르면 NFL팀이 승리할 때마다 얻을 수 있는 추가 수익은 팀 전체 수익의 0.14%에 불과했다. 이기는 것과 수익이 사실상 무관하다. 텔레그래프는 “미국식 스포츠에서는 누가 이기고 지든 모든 구단주는 이긴다”고 강조한 바 있다.

유럽 클럽을 사들인 미국인들은 애시당초 승강제도 불만이었고 수익을 나누는 방법도 불합리하다고 봤다. 예컨대 EPL이 협회로부터 받는 수입 배분은 5가지 항목으로 나뉘는데, 이 중 ‘중계 횟수’와 ‘순위’에 따른 배분만 차등 분배다. 다른 항목들은 모두 균등 분배다. 그래서 가장 수입이 적은 팀도 가장 수입이 많은 팀의 약 3분의 2 정도를 벌어갈 수 있다. 2018~2019시즌 EPL 팀 중 가장 많은 액수를 분배받은 팀은 리버풀(2290억원), 맨체스터 시티(2270억원), 첼시(2146억원), 토트넘(2187억원), 맨유(2146억원) 순이었다. 가장 수입이 적은 팀은 20위로 강등당한 허더슨필드였는데 이 팀도 145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액수를 벌었다.

코로나19로 티켓 수입이 사라진 건 빅클럽에도 위기였다. 특히 빅클럽들의 시청률이 높은데도 중계권료를 균등하게 20개 팀에 나눈 게 가장 큰 불만이었다. 미국 구단주들의 이런 불만에 팬데믹으로 재정이 궁핍해진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명문팀들이 이해를 같이한 것이 이번 반란의 핵심이었다. 지난해 6월 기준 바르셀로나는 4억8800만유로(약 6555억원), 레알 마드리드는 3억5430만유로(약 4760억원)의 순부채를 안고 있다. 플로렌티노 페레즈 레알 마드리드 회장은 슈퍼리그 개최를 공언하는 기자회견에서 “빅클럽들은 전체 중계권료의 20%에 불과한 금액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리그는 빅클럽들의 불만을 타개할 수 있는 찬스였다. 미국인 구단주들은 유럽 축구를 미국식으로 재설계하려고 시도했다. 월가의 자본인 JP모건은 60억달러(약 6조7000억원)를 대출해주기로 하면서 전주를 맡았다. 구단들이 내건 담보는 중계권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슈퍼리그의 회장단이 아마존, 페이스북, 디즈니 등과 중계권을 두고 초기 논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인기 있는 창립멤버들이 성적이 저조해도 슈퍼리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해놓은 건 구단주에게도, 돈을 빌려주는 JP모건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JP모건은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는 NBA나 NFL 등 미국 스포츠리그와 일한 경험이 많다. 팀 브리지 딜로이트 이사는 “이런 폐쇄된 구조는 수익에 대한 확신을 어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슈퍼리그는 결국 돈을 좇는 빅클럽들의 실패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유럽에서는 “이제 UEFA와 FIFA를 공격할 차례”라는 얘기가 나온다. 팬들은 그들의 탐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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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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