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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5호] 20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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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터뷰]뉴욕 명물 ‘네이키드 카우보이’ 내가 옷 벗고 기타 치는 이유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silkroad100@gmail.com 2021-04-25 오후 2:50:57

▲ 1998년부터 타임스스퀘어를 지키고 있는 ‘네이키드 카우보이’ 로버트 버크. photo 뉴시스
책 100권을 읽는 것보다 사람과의 직접 대면에서 얻은 1초의 영감이 한층 더 중요하다고 한다. 머리가 아니라 오감을 동원한 현장 경험이 오래가고 깊게 새겨진다는 의미다. 사람과 만나고 부딪치는 과정에서 혜안이 움트게 된다. 재택 근무로 효율성은 높일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개척할 눈과 머리는 인간, 자연, 그리고 신(神)과의 접촉을 전제로 한다. 코로나19 탓에 이미 1년 이상 타인과의 만남 자체가 어려워진 상태다. 오감이 퇴화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현실감각도 둔해지고 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미국 플로리다 해변가에서 벌어진 ‘카우보이 체포극’은 둔해진 오감을 되살려 줄 묘약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뉴욕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은, ‘네이키드 카우보이(Naked Cowboy·본명 로버트 버크·Robert Burck)’에 관한 뉴스다. 해변가 파티에서 노래하며 팁을 받다가 체포됐다고 한다. ‘팁=구걸 행위’로 본 경찰의 공권력 집행에 맞서다 감옥에 갔다는 것이다. 벌금 500달러를 내고 곧바로 풀려났다지만, 뉴스를 접하는 순간 머릿속에 궁금증 하나가 떠올랐다. 2021년 4월, 네이키드 카우보이의 주무대인 뉴욕의 공기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하루도 빠짐없이 전 세계 뉴스의 생산지였던 뉴욕은 코로나19 이후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네이키드 카우보이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자신의 일터인, 뉴욕 7번가와 브로드웨이를 가르는 타임스스퀘어(Times Square)에 매일 출근하는 그가 뉴욕의 일상과 공기를 파악할 적임자로 느껴졌다. 그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난리를 쳐도, 법이 허용하는 한 하루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뉴욕 타임스스퀘어가 일터인 그를 통한 간접 체험과 함께, 네이키드 카우보이 개인의 일상사와 변화도 궁금했다. 언제부턴가 타임스스퀘어는 미키마우스부터 배트맨, 고질라에 이르는 전 세계 캐릭터의 경연장으로 변한 상태다.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 대가로 팁을 요구한다.
   
   네이키드 카우보이는 1998년 타임스스퀘어에 등장한 제1호 캐릭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슈퍼맨, 슈퍼우먼도 사라진 텅 빈 공간이지만, 네이키드 카우보이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 인연이었지만, 15년 전 타임스스퀘어에 들렀을 때 그와 함께 사진을 찍고 5달러 팁을 준 적이 있다. 당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도 묻고 싶었다.
   
   줌을 타임스스퀘어 현장과 연결해, 뉴욕의 근황과 카우보이 개인사를 들어봤다. 전염병 시대 ‘뉴노멀’ 인사법이지만, 본인은 물론 주변의 코로나19 감염 여부에 대한 질문부터 했다.
   
▲ 네이키드 카우보이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캐릭터 중 맏형이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마스크를 쓰고 거리 공연을 해왔다.

   - 모두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가. “물론이다. 더할 수 없이 행복하고 즐겁게 잘 살고 있다. 얼마 전부터 피부암이 생겨 치료를 받고 있는 것 외에는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는 만족할 만한 인생이다. 오늘 인터뷰가 끝난 뒤 ‘네이키드 카우걸(Cowgirl)’ 캐릭터로 활동하는 집사람과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이다.”
   
   - 지금 어디에 있는가. “타임스스퀘어에 나와 있다. 1998년 처음 여기에 온 이래 지금까지 22년6개월18일간에 걸친 일상이다. 네이키드 카우보이 캐릭터는 일이 아니라 나의 운명이자 사명이기도 하다. 나의 삶의 출발점이자 오늘과 내일로 향하는 터전이 이곳이다. 최근 어려운 시대를 맞아 뉴욕의 아이콘인 내가 할 일이 더 많아진 느낌이다. 매일 타임스스퀘어에 와서 뉴욕의 분위기를 이해하고 주변 모두에게 노래와 웃음을 전하는 것이 일상사다.”
   
   카우보이는 수술 자국이 남은 자신의 왼쪽 가슴 흉터를 보여줬다. 요즘 피부암으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갑자기 옆에 세워 둔 기타를 꺼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죽기에는 너무도 젊다. 그래도 죽는다면 늙어서 죽고 싶다.” 미국 중부 특유의 콧소리와 혀가 말리는 발음으로 채워진 즉흥곡이다. 카우보이는 남의 노래가 아니라, 자신이 만든 멜로디와 가사로 즉흥곡을 자주 부른다.
   
   -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가 변하고 있다. 뉴욕과 당신은 어떤가. “뉴욕에 사람이 줄고 관광객이 없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뉴욕은 언제나 미국과 세계 역사의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뉴욕에서 벌어진 흑인 운동(‘Black Lives Matter’)이나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 청년 운동에서 보듯 아직 건재하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나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매일 타임스스퀘어를 지켰다. 마스크를 쓰고 매일 나와 텅 빈 공간에서 고독을 즐겼다고나 할까? 뉴욕을 지키는 것이 나의 운명이자 사명이다. 전염병이 돈다고 자리를 피하거나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 어떤 시련이 있다 해도 뉴욕은 미국과 세계의 뉴욕으로 계속될 것이고, 나도 내 자리를 지키는 일에 열중할 것이다.”
   
   - 당신은 20년 전 9·11 동시테러 당시에도 매일 타임스스퀘어에 왔다고 들었다. 9·11을 현재의 전염병 상황과 비교할 때 어떻게 다른가. “비교할 대상이 못 된다. 피부로 느끼는 9·11의 참상은 한층 더 참혹했다. 3000명 정도의 사망자가 한순간에 쏟아져 나왔고 미국인 모두가 슬퍼했다. 그러나 당시 뉴욕은 1주일 정도 그 같은 슬픔에 빠졌을 뿐, 이후 곧바로 9·11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과거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이 뉴욕의 본모습이다. 코로나19는 피부로 느끼기에는 더디지만, 한층 더 장기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뉴요커들의 맨해튼 회사 출근도 1년 이상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전염병이 아무리 무섭다 해도 가까운 시일 내 뉴욕은 원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타임스스퀘어에서 보면, 4월 들어 급속히 회복되는 상황이다.”
   
   이미 20년 전 일이지만, 9·11 직후 카우보이 관련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네이키드 카우보이=뉴욕에 웃음과 활기를 되찾아준 인물’이란 요지의 기사였다. 짧은 팬티와 긴 가죽장화를 신은 맨몸뚱이 백인이 총 대신 기타와 노래로 무장하고 1인 코믹 퍼포먼스를 벌이며 뉴욕을 웃긴다는 내용이었다. 반미(反美) 정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정반대 관점도 있을 듯하다. ‘네이키드 카우보이=부끄러움도 모르는 미국인’이라는 식의 관점이다. 일방통행을 외치는 안하무인 초대강국의 민낯을 네이키드 카우보이에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메리카 퍼스트’의 화신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꼬는 식의 캐릭터라고나 할까?
   
▲ 뉴욕 거리 공연 중 흑인 시위대에 밀려나는 네이키드 카우보이.

   - 네이키드 카우보이란 이름을 어쩌다 갖게 됐나. “원래 대학 때부터 술집과 게이바를 전전하며 스트리퍼(Stripper)로 일했다. 대학에서 리버럴 아츠를 전공하던 중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었다. 따라서 카우보이는 이미 아르바이트 당시부터 익숙한 캐릭터다. 졸업 후 계속해서 댄서나 스트리퍼로 일했는데 1997년 12월 마침 캘리포니아에 가게 됐다. 거기서 신의 도움인지 때마침 사진 촬영 현장을 지나치게 됐다. 누드 전문잡지 ‘플레이 걸(Play Girl)’이란 잡지사가 주관한 것으로 배우, 모델, 가수 등을 동원해 화보 제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촬영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팁을 바라면서 한 일이었지만, 당시 나의 캐릭터가 벌거벗은 카우보이였다. 대부분 무관심했지만,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화보집 촬영 전문 사진사였다. 그는 나를 ‘네이키드 카우보이’라 부르면서 다음 날 사진 촬영에 오라고 청했다. 100달러짜리 촬영이 이뤄진 다음 날이 네이키드 카우보이 캐릭터의 탄생일이었다.”
   
   - 원래 생각해온 것이 아니라 얼떨결에 탄생한 캐릭터란 말인가. “그렇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촬영사는 물론 파티에 참가한 모두와 함께 만든 캐릭터가 네이키드 카우보이다.”
   
   -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일방통행 아메리카라는 시니컬한 해석도 있을 듯하다. “내가 생각하는 카우보이는 그 같은 이미지와 전혀 무관하다. 나는 원래 (미국 남부) 카우보이 출신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고 역사를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지만, 카우보이의 역할과 정신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개척자(Frontier)이자 선구자(Pioneer)에 있다. 서부 개척사에서 보듯, 아무도 모르는 땅에 가장 먼저 가서 새로운 세계를 일구는 꿈과 희망으로서의 카우보이다. 21세기 비즈니스 관점으로 볼 때 창조정신에 불타는 기업가(Entrepreneur)가 바로 카우보이 캐릭터 그 자체다. 그런 존재에 네이키드란 말을 붙인 것은,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숨길 것 하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솔직하고도 투명하게 공표하자는 의미가 네이키드란 말 속에 투영돼 있다. 따라서 ‘네이키드 카우보이=투명하고도 솔직한 개척자, 선구자’라 해석할 수 있다. 과장·허세·조롱·자학과 무관한 개척자, 선구자로서의 세계관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캐릭터다.”
   
   네이키드 카우보이는 자본주의 대국 한복판에 등장한 캐릭터다. 전염병 이전 상황이지만, 카우보이는 팁으로 벌어들인 1년 수입이 최하 15만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자신의 캐릭터 브랜드를 빌려주면서 와인, 굴, 옷도 팔았다. 가끔 외국의 초청으로 해외 공연도 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1970년생 51살 카우보이의 근육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몇 번이나 팔뚝을 치켜들며 자랑했지만, 50대 몸이 아니다. 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스테로이드 같은 약이 아니라 운동을 통해 잘 단련된 ‘오개닉(Organic)’ 자연산 근육이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 몸은 어떻게 단련하는가. “하루 종일 벗고 서 있기 위해서는 특별한 신체 단련이 필요하다. 올해까지 3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스포츠 짐에 다니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즉시 곧바로 운동에 매달린다. 달리기도 하고 역기도 든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아침에는 반드시 운동을 하러 간다. 그것이 나의 하루 일과다.”
   
   - 네이키드 카우보이는 당신이 직접 만든, 뉴욕 한복판에서 매일 움직이는 캐릭터다. 미국에서 탄생한 수많은 캐릭터 가운데 어떤 의미를 갖는가. “네이키드 카우보이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미국식 자유와 평화의 상징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나는 미국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다. 남을 존중하고 법을 지키는 한, 외부의 간섭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돈이든 명예든 자기 생각에 의거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옷을 입든 말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탄생한 캐릭터가 바로 네이키드 카우보이다.”
   
   그는 오하이오주 신시네티(Cincin-nati) 출신이다. ‘창조와 친절’은 미국인 전체가 수긍하는 오하이오가 가진 이미지 중 하나다. 뭘 하나 하더라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마음을 여는 곳이 오하이오다. 주말이 되면 자동차보다 트랙터 사고가 더 많은 농업 개척지란 이미지도 강하다. 오하이오에서 보면 뉴욕은 별세계 우주도시로 느껴질 만한 곳이다.
   
   - 세계에서 제일 복잡하고 비싼 땅으로 통하는 타임스스퀘어를 일터로 정한 이유가 뭔가. “가장 붐비고, 미디어로부터도 가장 주목받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뉴욕에 오기 전 미국 전역 35개 대도시를 전부 돌아다녔다. 어디가 최고의 장소일지 연구하고 물색했다.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같은 곳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최종 결론은 타임스스퀘어였다. 가장 세속적인 공간인 동시에 전 세계 모두에게 알려진 꿈의 동산이기 때문이다. 미국=뉴욕=타임스스퀘어다.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으로 24시간 붐비는 곳이다. 네이키드 카우보이로 나가는 순간, 전 세계 미디어가 곧바로 나를 주목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실제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 전원 풍경에 익숙한 오하이오 출신으로 뉴욕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오하이오라는 배경을 말하기 전에 나의 아버지에 관한 얘기부터 하고 싶다. 나의 뉴욕행을 가장 응원한 인물이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현지 소방대원으로 30년간 일해 온 분이다. 은퇴한 뒤에도 시의회 일에 관여하면서 시장, 지사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 네이키드 카우보이는 플로리다에서 공연 중 경찰에 체포됐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기도 했다. photo 뉴시스

   - 네이키드 카우보이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아버지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신앙인이다. 아들이 거의 벗은 차림으로 뉴욕 한복판에서 일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도덕적으로 과연 자식이 할 일인가’라는 관점에서 걱정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결국 나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걱정을 넘어서, 지금은 거꾸로 ‘네이키드 카우보이의 아버지’라 말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지금도 매일 하루에 한 번씩 통화를 하지만, 사실 내가 아버지로부터 얻는 것이 많다. 유머와 지혜는 아버지가 갖고 있는 무한한 자산이기도 하다. 현재 수술을 받은 상태지만, 아버지는 신앙인으로 언젠가 천국에 갈 만한 자격을 가진 분이다.”
   
   - 미국의 소프트파워 중 하나가 가공의 세계를 통한 수많은 캐릭터다. 연재만화 ‘코믹북(Comic Book)’을 대표하는 슈퍼맨에서처럼, 만약 네이키드 카우보이가 만화 주인공으로 나온다면 어떤 식의 주인공이 될 듯한가. “사실 나에 관한 만화는 이미 곳곳에서 출간됐다. 나의 희망이나 생각과 무관한, 만화가들의 상상을 통해 탄생한 캐릭터다. 그런 작품들에서 나는 미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그러나 나는 슈퍼맨처럼 엄청난 힘을 가졌거나, 다른 코믹북의 캐릭터와 같은 신통한 재능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한마디로 네이키드 카우보이의 능력과 역할은 보통 미국인이 가진 ‘불굴의 용기(Fortitude)’로 압축할 수 있다. 초인간적인 슈퍼파워맨이 아니라 그 어떤 시련이 닥쳐도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끝까지 사수하는 결의와 인내심을 가진 캐릭터가 바로 네이키드 카우보이다. 평균 미국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평범하지만 그 어떤 나라의 만화 속 캐릭터도 따라잡지 못하는 파워의 소지자다. 평범 속의 비범이라고나 할까?”
   
   다양한 사람과 만나 얘기를 나눴지만, 거의 벗은 몸에 통기타를 둘러메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의 인터뷰는 처음인 듯하다. 그러나 오랜만에 진짜 미국인과 마음을 튼 ‘유쾌한 대화’가 이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지만 담백한 대화다. 남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열심히 재미있게 살아가는 너무도 ‘미국인다운 모습’이라고나 할까? 미국인 특유의 담백한 혼(Spirit)이 가슴속으로 울려퍼진다.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자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매일 타임스스퀘어에 나가 모두에게 웃음과 노래를 전하는 일이다. 나중에 걸어다니지도 못할 나이가 되더라도, 휠체어를 타고 나타날 것이다. 그때도 인터뷰를 하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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