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지난 5월 3일 유카탄반도의 킨타나로오주에서 열린 행사에서 마야인에 대한 잔혹행위와 범죄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photo newsinfo.inquirer.net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지난 5월 3일 유카탄반도의 킨타나로오주에서 열린 행사에서 마야인에 대한 잔혹행위와 범죄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photo newsinfo.inquirer.net

멕시코 정부가 최근 5세기 동안 원주민인 마야인에 가해진 학대에 대해 사과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 5월 3일 마야인에 대한 그간의 잔혹행위와 범죄에 대해 “가장 진지하게 사과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상당수 마야인 후손들은 이를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구체적 행동으로 증명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 외신들의 보도다. 멕시코 정부에 자신들을 향한 차별과 폭력을 막고 가난을 극복할 정책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멕시코 남동부에 있는 유카탄반도의 킨타나로오주(州)에서 열린 행사에서 마야인에 대한 사과는 ‘정부의 의무’이자 자신의 개인적 확신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스페인의) 정복과, 3세기 동안의 식민지배, 멕시코 독립 이후 2세기 동안 외국 정부들(foreign authorities)과 멕시코 정부가 마야인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학대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오브라도르가 언급한 ‘외국 정부들’은 스페인과 로마 교황청을 의미한다. 멕시코 대통령이 자국에 살고 있는 마야인들에게 사과하면서 스페인과 로마 교황을 끌어들인 이유는 멕시코라는 나라의 기원이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정복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마야문명은 기원전 2000~서기 250년 사이에 형성되어 250년부터 900년 사이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마야 제국은 현재의 멕시코와 벨리즈,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도 멕시코에는 약 600만명의 마야인이 살고 있다. 멕시코의 팔렝케·치첸이트사·욱스말, 과테말라의 티칼·키리과, 온두라스의 코판, 엘살바도르의 호야 데 세렌 등은 마야문명이 남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들이다.

500년간 학대 지속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는 1519년 남아메리카에 상륙하여 1521년 원주민들의 항복을 받아낼 때까지 전쟁을 벌였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코르테스의 정복 이전까지 마야인들은 매우 고도화된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마야문명은 복잡한 상형문자, 고도의 수학적·천문학적 지식, 현대인이 사용하는 그레고리력보다 훨씬 정밀한 달력 등을 개발했다. 마야인들은 ‘0’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들이며, 예술가와 석공들은 그리스를 제외한 다른 어떤 고대문명보다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또 포장도로와 현수교를 건설했으며, 거대한 사원과 궁전, 피라미드 등을 건설하였다. 행정적으로도 고도로 발전하였으며 유럽 문명 못지않은 창의성과 실용성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마야문명은 코르테스의 침략으로 무너졌다. 유럽인들은 특히 원주민들을 이교도로 간주하였고 로마 교황청도 원주민에 대한 포교를 강제하였다. 이 과정에서 마야의 언어, 문화, 종교는 말살되었다. 멕시코 독립 이전까지 스페인이 지배하던 3세기 동안 많은 원주민은 스페인의 학살과 이들이 유럽에서 가져온 천연두 등 전염병으로 사망하였다.

1821년 독립을 선언한 멕시코 정부도 마야인 등 원주민에 대한 학대를 지속했다. 백인들은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원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렸다. 특히 1876년부터 집권한 독재자 포르피리오 디아스(1830~1915)는 대통령직을 6차례나 연임하며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숲과 토지를 외국인과 백인 투자자들에게 팔아넘겼다. 원주민들은 백인 투자자들이 세운 대농장에서 일하며 노예나 다름없는 부채농으로 전락했다. 디아스 정권은 결국 1910년 멕시코 혁명을 촉발시켰으며, 10년간 내전이 지속되었다. 디아스는 1911년 프랑스로 망명한 뒤 사망했다.

이후 유카탄 지역에서는 마야인과 백인들 간에 유카탄 카스트전쟁(Caste War of Yucatán)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유카탄 지역에서는 최상층부에 유럽 백인, 하부에 유럽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소, 최하부에 마야인이 자리하는 계급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었는데, 유럽인 후손들과 독립을 추진하는 마야인들 간의 갈등은 19세기 중반부터 전쟁으로 확대되어 20세기까지 지속되었다. 1874년 시작된 마야인의 항쟁은 1901년 5월 5일 멕시코 군대가 항쟁의 거점도시인 산타크루즈를 재점령함으로써 종료되었다. 점령 과정에서 마야인 3만~4만명이 사망하였다. 이후 마야인들은 카리브해 연안에 위치한 툴룸으로 이주했다. 마야인들의 크고 작은 항쟁은 1935년 멕시코시티에서 평화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이어지며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마야인들이 학살당한 조상들을 추모하고 있다. ⓒphoto 유튜브
마야인들이 학살당한 조상들을 추모하고 있다. ⓒphoto 유튜브

멕시코 내부서도 사과 비난 여론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마야인에 대한 사과를 코르테스 상륙 500주년 기념해인 2019년에도 추진했었다. 그때도 스페인의 펠리페 6세 국왕과 로마 교황청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멕시코 원주민들에게 가해진 학대에 대해 함께 사과하자고 했는데 당시 스페인의 좌파정권은 이를 거부했다. 당시 조셉 보렐 스페인 외무장관은 “500년 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 지금 사과하라는 요청을 받은 것은 이상한 일”이라며 거부했다. 스페인의 우파 보수당은 한술 더 떠 멕시코 대통령의 사과 요구는 스페인 국민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오히려 “위대한 국가가 한 일과 다른 민족들을 발견하는 데 공헌한 일” 등 멕시코에서의 역사적 역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축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로마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문제에 대해 이미 분명하게 언급했다”고 밝혔다.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볼리비아를 방문해 원주민 농민들을 상대로 한 강론에서 과거사에 대한 용서를 구한 바 있다. 당시 교황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상대로 엄청난 죄악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다”며 “교회가 저지른 범죄뿐만 아니라 이른바 아메리카 정복이라 불리는 동안 원주민들을 상대로 행해진 범죄들에 대해 겸허하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당시 멕시코 내에서도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사과를 둘러싸고 비난 여론이 일었다. 마야인에 대한 사과가 날로 흉악해지는 조직범죄와 경제난으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술수라는 비판이었다. 일부 언론은 대통령에게 멕시코를 침공했던 미국과 프랑스에 사과를 요구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스페인을 향해 500년 전 일에 대한 사과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멕시코가 독립 이후 원주민을 학대한 데 대해 사과하라는 요구도 나왔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당시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여 진정한 사과를 약속했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지난 5월 3일 사과는 2년 전 했던 약속을 이행한 측면도 있다. 멕시코 독립 200년과 스페인 정복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번 행사 자체가 5월 5일 마야인항쟁기념행사에 맞추어졌다. 행사 장소도 킨타나로오주의 티호스코에 있는 유카탄 카스트전쟁 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번에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마야인들의 항쟁 기간 동안 멕시코 지배층이 “지금 사람들은 믿을 수 없겠지만 원주민들의 완전 절멸”을 원했다는 사실에 유감을 표했다. 또 일부 언론들이 “어떤 휴전도 거부하고 오직 원주민의 항쟁을 제압하는 것만을 임무로 하는 군부대를 창설”하라고 요구했다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그는 또 독재자 디아스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 “마야인들에 대해 특별히 잔혹한 정책이 집행되었다”며 “섬멸전이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불의로 고통받은 사람들의 후손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올가 산체스 코르데로 내무장관도 “멕시코 정부가 유카탄의 카스트전쟁 동안 마야인들에게 특별히 잔인하게 대했다”고 인정하며 “마야인들은 수 세기 동안 착취당했으며 자신의 토지를 빼앗겼고 그 결과 사는 곳에서 쫓겨나는 등 자신들의 땅에서 불의와 경멸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역사적 불의’뿐만 아니라 현재 지속되는 차별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했다. 이날 행사에는 인구의 절반이 마야인의 후손으로 구성된 과테말라의 알레한드로 잠마테이 대통령도 참석했다. 잠마테이 대통령은 “마야인들은 오늘날 조직범죄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야인들은 “영양실조로 고생하며, 사는 곳에서 사회적으로 추방당하거나 개발에서 소외되고 있다”면서 “그 결과 많은 마야인이 이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3월 25일 마야인의 대스페인 투쟁 기념일에 연설하고 있다. ⓒphoto EPA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3월 25일 마야인의 대스페인 투쟁 기념일에 연설하고 있다. ⓒphoto EPA

마야인 후손들 “사과보다 구체적 행동을”

그러나 마야인의 후손들은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이번 사죄 표명 역시 크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행사장에서 마야인을 대표한 드집 푸트 의원은 대통령에게 “말뿐이 아니라 원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을 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원주민들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고 인권보호를 추진할 ‘기억과 인정 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대통령의 사과 이후 마야인 거주지 개발이 마야인의 생활수준을 개선할 수 있느냐는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우선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마야철도(Maya Train)’에 대해 새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총연장이 1500㎞에 달하는 마야철도는 ‘리비에라 마야’로 불리는 카리브해 연안의 관광지인 칸쿤과 밀림지대 등 멕시코의 5개 주를 지나며 마야 유적지인 팔렝케 등의 도시를 연결한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2024년 이 철도가 완공되면 이 지역에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늘어 저개발 지역인 유카탄반도 5개 주와 멕시코 남동부의 개발을 촉진하는 것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이 철도가 환경에 회복불능의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밀림이 사라지고 재규어 같은 희귀동물의 터전도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마야인들은 자신들에게는 별다른 이익을 가져다주지도 못하고 환경에 악영향만 끼칠 것이라며 반대한다. 일부 마야인들은 ‘마야철도’ 건설로 자신들이 현 주거지에서 쫓겨나게 될 처지라며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반면 적극적인 개발을 통해 마야인의 생활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마야인을 대변하는 얌 카눌 의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시안 칸 생태보존지구(Sian Kaan Biosphere Reserve)의 관광개발을 허용하라고 촉구한다. 시안 칸 보존지구의 면적은 2797㎢이며 멕시코 카리브해 연안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이 보존지구에 대해 마야인들은 “마야인들에 대한 사전 고지나 아무런 협의도 없이 최악의 방법으로 강탈되었다”고 주장한다. 현재 이 지역은 환경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단 하루만 답사할 수 있다. 건축도 금지되어 있다. 얌 카눌 의원은 이 지역에 대한 생태관광만 허용하더라도 원주민들의 생활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남아메리카의 공산혁명을 추구했던 게릴라 지도자 체 게바라와 칠레에서 축출된 살바토르 아옌데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좌파 정치인이다. 그는 2017년 한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아들의 이름은 헤수스 에르네스토(Jesús Ernesto)이다. 헤수스라는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에서, 에르네스토는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기독교 신자이다. 나는 빈자들을 위해 투쟁한 예수의 생각과 행적을 믿는다. 예수는 이 때문에 권력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리고 체 게바라는 예수의 사상을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진 훌륭한 혁명가이다.”

그러나 마야인들 사이에서는 오브라도르 대통령 역시 대기업 위주의 개발정책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다른 정치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마야인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품위 있는 삶’ 운동은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한다. 이들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마야인에 대한 오브라도르의 사과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정부가 원주민들의 살 권리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정부가 아직도 마야인들을 비합리적이며 미래를 위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로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오브라도르가 용서를 구하면서 대기업들을 불러들여 원주민들의 땅을 뺏고 가난하게 만든다. 독재자 디아스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비판을 가하고 있다.

“당신들은 항상 개발에 대해서 말한다. 하지만 개발은 지옥과 같아서 전염병을 확산시킬 뿐이다.… 밀림이 농업 관련 산업, 건설, 관광산업으로 문자 그대로 황폐화되는데 지구에 사과하는 게 중요한 일인가? 우리의 몸과 감정과 생각에 대한 식민지화가 하루도 쉬지 않고 잔혹하게 강도를 높여가며 진행되고 있는데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과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대통령 당신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냉소적이고 야비한 용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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