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탄광 폐쇄 등 대처의 개혁에 반발해 시위를 벌이는 탄광노조원들. ⓒphoto mirror.co.uk
적자탄광 폐쇄 등 대처의 개혁에 반발해 시위를 벌이는 탄광노조원들. ⓒphoto mirror.co.uk

대처 정부는 민영화를 통해서도 공영주택 불하와 마찬가지로 세 가지 이득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었다. 우선 민영화로 영국 정부는 부실기업 생명연장을 위해 적자를 메워주는 재정 부담에서 해방되었다. 다음이 거액의 주식 판매대금으로 재정적자를 메우면서 재정에 여유가 생겨 표와 연결되는 다른 역점 사업을 해나갈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공모주 제도를 활용해 해당 공기업의 노동자들을 우리사주 형태의 주주로 만들었다. 일반국민도 국민주 형식의 주주로 만들어 보수당 지지자로 유도했다. 노동자와 서민은 주식을 갖게 되자 중산층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버렸다. 만일 노동당이 집권하면 다시 해당 기업이 국유화가 될 터이므로 자신들의 이익과 바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심정적으로는 노동당을 지지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보수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보수당의 꼼수를 노동당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노동조합과 함께 ‘부실 국영기업 민영화는 부자들의 배만 불리고 외국 금융회사에 영국 알짜 기업을 헐값에 넘기는 국부 유출의 매국 행위’라고 난리를 쳤다. 공영주택 헐값 불하도 서민에게 집을 준다는 명분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서민들을 중세의 농노(sefdom)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행위라고 매도했다. 모아둔 현금이 없는 서민 노동자들은 자신이 부담해야 할 집값의 3분의 2, 적게는 2분의 1을 결국 은행으로부터 융자받지 않을 수 없는데 융자금을 갚아나가는 동안은 집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고, 혹시 실직이라도 해서 월부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집을 뺏긴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국민 여론은 전적으로 보수당 편이었다. 결과는 1983년 총선에서 보수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보수당은 650개 의석 중 397석을 얻어 58석을 늘렸고 노동당은 209석을 얻는 데 그쳐 52석을 잃었다. 보수당은 과반수에서 무려 72석을 더 얻어 야당 눈치 안 보고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 대처 정권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대처의 개혁에서 주목할 점은 집권하자마자 섣불리 개혁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충분한 검토와 준비를 거친 뒤 확신이 서면 세상을 뒤집는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대처의 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천천히 진행된 혁명이나 다름없었다는 말도 나온다.

예컨대 대처 정부는 노동조합을 손보기 위한 시범으로 당시 가장 크고 강성인 석탄노조와의 정면 대결을 벌이기 위해 4년에 걸쳐 전국의 발전과 각종 에너지 시설을 석유, 가스, 원자력을 원료로 하는 시설로 바꾸어나가는 사전준비를 했다. 또 국산보다 25%나 싼 석탄 2년치를 수입해서 비축한 다음에야 적자 탄광 폐쇄를 단행했다. 결국 탄광노조는 1년 만에 손을 들고 말았다. 이후 영국에는 제대로 된 노조파업이 사라지게 되었다.

국영기업 민영화도 2년간의 준비를 거쳐 실행했다. 당시는 국영기업에 관한 한 불행하게도 민영화 말고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었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후 치러진 총선에서 윈스턴 처칠 총리의 보수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한 노동당은 사회주의의 금과옥조 철학인 ‘기간산업의 공동소유(common ownership of industry)’ 정책에 따라 전광석화처럼 기간산업 국유화를 단행했는데, 그렇게 시작된 국영기업들이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 모두가 적자만 내는 부실기업이 되어버렸다. 정부의 우산 아래 경쟁 없이 독점 지위를 누리면서 개혁을 게을리하고 안주하다 공룡이 되어 버린 것이다. 높은 임금, 낮은 생산력, 고비용, 노사분규, 원자재 낭비, 비효율적 경영, 열악한 서비스와 높은 제품가격 등으로 부실은 짙어만 갔고 고객 불만족은 높았다.

정치인과 노조가 망친 공기업 특히 국영기업에 대한 정부 간섭과 정치인의 개입은 거대 서비스기업의 자존능력을 상실하게 해 결국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소수의 노동귀족에 의해 지배되던 노동조합이 전지전능의 존재가 되어 경영에까지 개입해 경영진은 정부와 노조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국영기업의 제일 큰 문제는 아무리 경영성적이 나빠도 망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해고당하지 않는 철밥통이라는 걸 직원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누구도 장기 전략을 짜려고 하지 않았다. 경영진들은 경영에는 신경 안 쓰고 정치인의 눈치만 살폈다. 국영기업 인력들의 수준이 모라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국영기업이라는 근본적 구조 자체가 모든 결함의 원천이었다. 경영진은 정치인에 의해 임명되고, 경영 정책은 정치적 고려로 결정되었고, 개혁은 노조에 의해 막혔다.

예를 들면 신축 공장부지 선정도 경영의 관점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정치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곳, 즉 고용이 필요한 곳에 공장부지를 선정했다. 비효율적인 공장 폐쇄도 정치적 고려 때문에 하지 못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공장 신설이나 증축마저도 자신들의 정치적 일정에 따라 정했다. 공장 신축 개시일과 준공일이 회사의 필요가 아닌 총선일에 맞추어졌다. 특히 인력 고용과 해고는 모든 고려사항에 우선했다. 결국 한번 뽑은 직원은 절대 해고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정치는 국영기업 상품의 가격조정에까지 손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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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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