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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4호] 202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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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중국공산당 100주년… 시진핑 3연임 막는 ‘네 단어’

이동훈  기자 flatron2@chosun.com 2021-06-29 오후 3:02:39

▲ 지난 6월 18일 중국 베이징에 새로 개관한 중국공산당역사전람관을 찾아 공산당 입당식을 재현하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앞줄 가운데). 그 뒷줄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왼쪽부터 한정, 왕후닝, 리잔수, 리커창, 왕양, 자오러지)과 왕치산 국가부주석(오른쪽)이 도열해 있다. photo 중국공산당
오는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중국이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실제 창당일은 7월 23일, 상자기사 참조) 1921년 7월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비(非)합법 지하정당으로 창당한 중국공산당은 남북한 전체인구보다 많은 9191만명의 당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정당이다. 1991년 소련공산당 몰락 이후에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살아남았다. 지금은 북한 조선노동당과 함께 집권 정당 지위를 지키고 있는 전 세계 몇 안 되는 공산당이기도 하다.
   
   중국공산당은 장쩌민(江澤民) 전 총서기 겸 국가주석 집권 때인 1997년 ‘두 개의 100년(兩個一百年)’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2021년 창당 100주년과 2049년 건국 100주년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 2021년 7월 1일은 장쩌민이 언급한 ‘두 개의 100년’ 중 첫 번째 100년이 도래하는 날이다. 하지만 7월 1일 창당 100주년 기념일보다 주목되는 것은 오는 2022년 가을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를 통해 권력교체와 세대교체를 단행할 수 있을지 여부다.
   
   
   2022년 신구 교체 초미 관심사
   
   우선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18대)를 통해 집권한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濤)의 선례를 따라 원활한 권력이양에 동의하고 나설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시진핑의 퇴임과 권력이양을 전제로 오는 2022년 제20차 당대회(20대)를 통해 향후 10년간 중국을 이끌 신임 총서기로 누가 선출될지도 관심거리다.
   
   관례대로라면 당 총서기는 국가주석직을 비롯 당과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도 자동으로 거머쥔다. 현재로서는 집권 직후부터 유례없이 1인 지배체제를 심화시킨 시진핑이 내년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다만 장쩌민·후진타오 등 전임 총서기들이 두 눈 뜨고 시퍼렇게 살아있는 가운데 3연임은 불가하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반면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시진핑은 2017년 집권 2기 때부터 장기집권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며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아들 문제가 걸려 있어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전임자 때 확립된 ‘칠상팔하(七上八下)’의 불문율을 깨뜨리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칠상팔하’는 당대회 당해연도 기준으로 67세 이하면 중앙정치국 상무위 진입이 가능하고, 68세 이상이면 불가하다는 암묵적인 정년 규정이다. 사실 칠상팔하 규정은 집권 초 권력기반이 허약했던 장쩌민이 정적이었던 차오스(喬石) 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위원장, 리루이환(李瑞環)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등을 축출할 때 도입해 관철시킨 규정이다.
   
   중국공산당은 이 같은 불문율을 통해서 당의 ‘연경화(年輕化)’를 이뤄냈고,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평화적인 권력이양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칠상팔하’ 룰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1953년생으로 오는 2022년 만 69세가 되는 시진핑의 차기 정치국 상무위 유임과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3연임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칠상팔하’ 기준을 적용하면 현 정치국 상무위원 7인 가운데 1950년생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리잔수(栗戰書) 전인대 위원장과 1953년생으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시진핑 총서기, 1954년생으로 만 68세가 되는 한정(韓正) 수석부총리는 자동 퇴진 대상이다.
   
   반면 1955년생 트리오인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 왕양(汪洋) 전국정협 주석, 왕후닝(王滬寧) 중앙서기처 서기(중앙정책연구실 주임)를 비롯해 1957년생인 자오러지(趙樂際)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는 그나마 정치국 상무위에 유임될 여지가 한 가닥 남아 있다.
   
   다만 2012년 18대를 통해 시진핑과 함께 정치국 상무위에 입성한 리커창 총리가 2기(10년)에 걸쳐 총리직을 수행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무위에 유임되더라도 총리직은 더 이상 맡지 않을 것이 확실시된다. 이 경우 리커창은 총리에서 전인대 위원장으로 이동한 리펑(李鵬)의 전례에 따라 서열 2위를 유지한 채 전인대 위원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한때 장쩌민을 위협할 정도로 막강했던 리펑은 이런 방식으로 정치국 상무위에 3기 동안 머물렀다.
   
   왕양 정협 주석, 왕후닝 중앙서기처 서기, 자오러지 중앙기율검사위 서기는 2017년 19차 당대회(19대)를 통해 정치국 상무위에 첫 입성한 터라 유임 가능성이 조금 더 크다는 평가다. 홍콩 명보(明報) 등도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를 전제로 현 정치국 상무위 7인 중 최대 5인 유임(시진핑·리커창·왕양·왕후닝·자오러지)을 점치고 있다.
   
   
   중앙정치국 ‘류링허우’ 3명
   
   결론적으로 오는 2022년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가 재편되면 향후 10년간 ‘칠상팔하’ 규정에서 자유로운 소위 ‘류링허우(60後)’ 최소 2명 이상이 정치국 상무위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류링허우’는 1960년대 이후 출생자를 뜻한다. 이 경우 현재 정치국원 25명 가운데 7인의 정치국 상무위에 입성해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간판으로 등장할 만한 인물은 크게 후춘화(胡春華·1963년생) 부총리, 딩쉐샹(丁薛祥·1962년생) 중앙판공청 주임, 천민얼(陳敏爾·1960년생) 충칭시 서기 3명으로 좁혀진다.
   
   이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 집단거주지) 안팎에서 ‘황태자’를 뜻하는 ‘저군(儲君)’으로 통하는 후춘화 부총리의 차기 정치국 상무위 진입과 총서기 선임 여부다. 1963년생으로 2017년 19차 당대회 때 선임된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25명 가운데 가장 ‘젊은 피’인 후춘화는 베이징대 시절부터 키워진 중국공산당의 차기 총서기 재목이다.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 허베이성 성장, 네이멍구 몽골족 자치구 당 서기, 광둥성 당 서기,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가장 완벽한 경력을 자랑한다.
   
   코로나19 발원지기도 한 후베이성의 소수민족(토가족) 자치현에서 태어난 후춘화는 베이징대를 수석졸업하며 시짱(티베트) 근무를 자원한 뒤 후진타오 전 총서기의 눈에 띄어 차기 지도자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왔다. 그 결과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네이멍구)과 가장 부유한 지역(광둥)을 두루 관리해본 경력을 갖추게 됐다.
   
   권력승계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덩샤오핑 때 도입한 ‘격대지정(隔代指定)’ 승계법에 따르면, 후춘화는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총서기 1순위다. 격대지정은 대(代)를 건너뛰어 차기 최고지도자를 낙점하는 방식이다.
   
   다만 시진핑과 다른 점은 2017년 19차 당대회(19대) 때 정치국 상무위 입성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시진핑의 경우 후진타오 집권 2기인 2007년 17대 때 정치국 상무위에 입성해 후계자 수업을 받아왔다. 그보다 앞선 후진타오의 경우 덩샤오핑에 의해 ‘격대지정’된 후 장쩌민 집권 내내 정치국 상무위에 있었다. 하지만 후춘화는 2012년 18대는 물론 2017년 19대 때도 정치국 상무위 진입에 실패했고 정치국원 겸 국무원 부총리로만 남아 있다.
   
   ‘중국공산당 100년사’를 쓴 김정계 창원대 명예교수는 “후춘화는 이미 2기에 걸쳐 정치국원으로만 머물러왔다”며 “시진핑이 총서기 3연임에 나선다면 후춘화를 정치국 상무위에 끌어올려 국무원 총리를 맡기는 식으로 내부 반대파를 위무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후춘화 위협하는 딩쉐샹·천민얼
   
   후춘화 부총리와 차기 경쟁관계에 있는 정치국 내 다른 ‘류링허우’들은 공교롭게도 시진핑의 최측근으로 짜여 있다. 25인의 정치국원 가운데 후춘화 다음으로 젊은 딩쉐샹(1962년생) 중앙판공청 주임은 중앙판공청을 이끌며 총서기 비서실 격인 국가주석판공청 주임도 겸임 중이다. 2007년 시진핑이 상하이시 당 서기로 있을 때 만나 총서기 당선 직후 중앙판공청으로 끌어올려 지금까지 중난하이의 살림살이를 꾸리는 ‘대내총관(大內总管)’ 직을 맡긴 ‘복심(腹心)’이다.
   
   다만 딩쉐샹은 상하이시에서만 줄곧 근무하다 곧장 중앙판공청으로 발탁된 탓에 지방 통치 경험이 없는 것이 약점이다. 총서기는 2개 이상 성시(省市)를 다스려본 ‘제후(諸侯)’ 경력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9년 천안문사태로 급발탁된 장쩌민 이후 후진타오와 시진핑은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켰다.
   
   이를 놓고 보면 딩쉐샹 중앙판공청 주임은 차기 상무위 입성은 유력하지만, 총서기감으로는 ‘스펙’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오히려 지방 통치 경험 없이 중앙판공청 주임-부총리-총리 코스를 밟은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
   
   후춘화 부총리에게 딩쉐샹 중앙판공청 주임보다 위협적인 차기 경쟁자는 25인의 정치국원 가운데 1960년생으로 세 번째로 젊은 천민얼 충칭시 서기다. 천민얼은 시진핑 총서기가 저장성 당 서기로 있을 때 만나 ‘벼락출세’를 거듭한 자타가 공인하는 ‘시가군(習家軍·시진핑 가신그룹)’의 선두주자다.
   
   천민얼은 시진핑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저장성 성장·당 서기로 있을 때 줄곧 저장성 선전부장으로 있었다. 시진핑 총서기 취임 직후 구이저우성 성장·당 서기(2012~2017), 충칭시 당 서기(2017~)를 맡았다. 총서기가 되는 데 필수조건인 2개 이상 성시를 통치해본 경험을 충족한 것이다.
   
   물론 후춘화에 비해 당중앙과 국무원 경험이 일천한 것은 천민얼의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후춘화는 네이멍구자치구 당 서기와 광둥성 당 서기로 외직(外職)을 마친 뒤 201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로 중앙 경험을 쌓은 바 있다. 시진핑 역시 푸젠성장과 저장성 당 서기, 상하이시 당 서기로 지방근무를 마친 뒤 중앙으로 들어와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당교 교장, 국가부주석,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의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이에 시진핑의 원만한 권력이양을 전제로 한 가장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후춘화가 오는 2022년 20대에서 정치국 상무위에 입성해 시진핑으로부터 당 총서기직을 넘겨받고, 딩쉐샹과 천민얼이 정치국 상무위로 입성해 후춘화를 견제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딩쉐샹과 천민얼은 정치국 상무위 내에서 시진핑의 퇴임 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자파 인사를 상무위에 입성시켜 퇴임 후 정치적 안전을 도모한 방법은 전임 총서기인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모두 권력이양 시 사용했던 방법이다.
   
   
   리창 상하이시 당 서기 다크호스로
   
다만 제20차 당대회 개최가 예상되는 오는 2022년 11월까지 1년 이상 시간이 남은 점은 후춘화에게 최대 걸림돌이다. 이에 앞서 사실상 신임 총서기와 국가주석 결정은 당 원로들이 총집결하는 2022년 여름 베이다이허(北戴河)회의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시진핑이 3연임을 강행한다거나, 후춘화가 중도 낙마하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당대회를 앞둔 베이다이허회의는 교황 선출을 뜻하는 ‘콘클라베’에 비견되는데, 베이다이허해변에서 무슨 일이 터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실제 시진핑 집권 전후로 숙청된 정치국원 이상 최고위급은 한두 명이 아니다. ‘태자당(太子黨)’의 일원으로 정치국 상무위 입성이 유력시됐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중앙정법위 서기), 쑨정차이(孫政才) 전 충칭시 서기 등이 대표적이다.
   
   후춘화 낙마 때 총서기 물망에 오르는 후보는 비록 ‘류링허우’는 아니지만 ‘칠상팔하’에서 자유로운 리창(李强) 상하이시 당 서기(1959년생)다. 리창 역시 시진핑이 저장성장·당 서기(2002~2007)로 있을 때 저장성 비서장으로 데리고 있던 최측근이다. 딩쉐샹 중앙판공청 주임, 천민얼 충칭시 당 서기와 함께 ‘시가군’의 일원으로 꼽힌다.
   
   시진핑 집권 후에는 저장성장과 장쑤성 당 서기, 상하이시 당 서기 등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을 맡아 다스렸다. 장쩌민, 시진핑 등 중국공산당 창당지인 상하이시 당 서기를 지낸 인물이 총서기로 발탁된 전례를 봤을 때 ‘다크호스’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중국 정치)는 “시진핑이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계속 거머쥐려고 할 텐데 당 총서기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 잘 모르겠다”며 “결국 당원들과 엘리트들의 동의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은 언제?
   기념일은 7월 1일… 실제 창당일은 7월 23일
   
▲ 1938년 중국 옌안에서 ‘지구전’에 대해 강연하는 마오쩌둥 전 주석. photo 신화

   중국공산당이 대대적인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 중인 7월 1일은 엄밀히 말해 ‘창당일’이 아니다. 중국공산당은 1921년 ‘7월 23일’ 상하이에서 1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열고 창당됐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비(非)합법 지하정당’으로 탄생한 까닭에 정확한 생일을 몰라 1938년부터 마오쩌둥이 정한 7월 1일을 창당기념일로 자축해왔다. 마오쩌둥은 1938년 홍도(紅都·붉은 수도) 옌안(延安)에서 한 ‘지구전을 논함’이란 강연에서 “올해 7월 1일은 중국공산당 건립 17주년 기념일이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학자들의 문헌 연구 끝에 정확한 창당일자가 7월 1일이 아닌 7월 23일로 밝혀진 것은 1970년대 말에 들어서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공산당은 실제 창당일인 7월 23일이 아닌 마오쩌둥이 언급한 7월 1일을 ‘창당기념일’로 자축 중이다. 지금도 7월 1일은 ‘창당기념일’, 7월 23일은 ‘창당일’로 이원화된 기념체제를 유지 중이다. 신격화된 마오쩌둥에 대한 일종의 ‘무오류주의’와 가짜 생일도 진짜처럼 만드는 이른바 ‘중국식 실용주의’를 동시에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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