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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호]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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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통신]영국 서점가 점령한 ‘페데스탈 작전’의 영웅들

런던=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 johankwon@gmail.com

▲ 추축국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오하이오함이 1942년 8월 15일 몰타 수도 발레타의 그랜드항구에 무사히 도착했다. photo usmm.org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전쟁 전문가인 영국인들마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한다(making war to keep peace)”라고 말하곤 한다. 미래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의 평화 뒤에는 수많은 참전군인의 희생이 있음을 기린다는 듯 끝난 지 76년이 되어가는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책들이 아직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최근에 2차 세계대전 관련 신간 서적을 소개하는 저자 강연회가 있었다. 저자는 전직 기자이자 작가인 맥스 헤이스팅스(Max Hastings). 1987년 ‘한국전쟁(The Korean War)’이란 500쪽짜리 대작을 쓴 영국 최고의 전쟁사 작가이다. 헤이스팅스의 ‘한국전쟁’은 아직 한국에서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수정주의적 시각이 담긴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과는 달리 전통적 남침설에 입각해 각종 자료와 개별 전투까지 상세하게 다룬 보기 드문 역작이다.
   
   지금까지 15권의 전쟁사를 펴낸 헤이스팅스는 이번에 ‘페데스탈 작전(Operation Pedestal)’이란 또 하나의 전쟁사를 출간했다. 2차대전 중 지중해의 영국 식민지 몰타(Malta) 봉쇄에 얽힌 영국 해군과 공군, 그리고 수송상선단 선원들의 감동적이고 영웅적인 희생과 헌신을 다룬 책이다.
   
   헤이스팅스는 이번 저자 강연에서 주로 페데스탈 작전에 참가했던 개개인의 사연에 대해 얘기했다. 강연장은 윔블던테니스가 열리는 윔블던 커먼공원 들판의 텐트 안이었는데 약 200명이 모여 앉아 저자의 강연을 듣고 질문도 했다. 필자 일행이 유일한 비(非)백인이었을 정도로 영국 사회의 대들보인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지식인(White Middle Class Intelligentsia)’들만의 모임이었다.
   
   페데스탈 작전은 2차대전 중 추축국(독일·이탈리아)에 의해 봉쇄된 지중해 한복판 몰타섬으로 가는 군수물자 수송 작전이었다. 몰타 주둔 영국 공군 전투기와 해군 전함에 필요한 연료와 군수품, 군인과 주민들의 생필품을 수송하기 위해 대규모 상선단이 떴는데 이를 호송하는 영국군과 추축국군 사이에 1942년 8월 11일부터 15일까지 치열한 해상 전투가 벌어졌다.
   
   
   지중해의 항공모함, 몰타
   
   영국은 2차대전 전부터 대영제국을 관리하기 위한 주요 거점으로 몰타에 대규모의 해군과 공군 기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몰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연안에서 직선으로 100㎞밖에 안 떨어져 있어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로 가는 독일군과 이탈리아군 전력물자 수송선을 막는 기지로서는 최적이었다. 지중해 중간에 뜬 천혜의 항공모함 격이었다. 당시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에르빈 롬멜의 전차군단이 영국군의 군수물자 수송 방해로 전차 연료가 부족해 전쟁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정도였다.
   
   그래서 독일과 이탈리아 공군과 해군은 몰타를 점령하려고 1940년 전쟁 초기부터 2년간 전폭기와 전함을 이용해 포탄을 퍼부었다. 하지만 몰타 주둔 영국군과 주민들의 영웅적인 방어로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몰타 주둔 영국군에 의해 추축군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몰타 주둔 영국 잠수함에 의해 격침된 추축군 전함만 39만t에 이르렀다. 또 영국 공군기에 의해 전투기 241기가 추락했고 48기가 파손되었다. 한때는 북아프리카로 가는 추축국 수송선의 90%가 영국군에 의해 침몰되기도 했으니 추축국들로서는 몰타가 목에 걸린 가시였다.
   
   견디다 못한 추축군들은 1941년과 1942년 사이에 모든 화력을 동원해 몰타 공습과 수송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몰타 관광청 자료에 따르면 1940년 6월부터 1944년 4월까지 47개월 동안 3343회의 공습이 있었으니 한 달에 평균 71번, 매일 평균 2번 이상의 공습이 있었다는 얘기다. 몰타 주민 27만명은 무려 2357시간을 공습에 떨었다. 서울의 2분의1밖에 안 되는 316㎢ 크기의 몰타섬에 떨어진 폭탄만 해도 1만5000t에 이르렀다. 1㎢에 47t의 폭탄이 떨어져서 발레타 시내 건물은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부서졌다. 엄청난 인명 피해도 났다. 시민 사상자는 1581명, 군인 사상자는 7500명에 이르렀다.
   
   영국군과 몰타 주민의 고통은 추축국의 공습과 포격 때문만이 아니었다. 추축군의 필사적인 방해가 성공하면서 1942년부터 영국에서 보내는 물자가 들어오지 못하기 시작했다. 해상과 공중에서 영국과 대적할 수 없었던 이탈리아는 주로 잠수함과 어뢰발사선으로만 영국 수송선을 괴롭혔다. 독일은 구축함과 전투기만으로도 영국 수송선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묶었다. 추축국의 봉쇄가 본격화하기 전까지 영국은 몰타 주민 25만명과 육군 2만5000명·해군 1600명·공군 4400명 등 도합 '군인' 3만1000명을 위한 식량과 군수물자를 17차례의 수송 작전을 통해 공급해왔다. 그러나 추축국의 방해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1942년 초부터 본격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그러자 영국은 6월 양동작전을 폈다. 하푼 작전에 따른 수송선은 지브롤터에서 동쪽으로, 비고러스 작전의 수송선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서쪽으로 거의 동시에 몰타를 향해 출발했다.
   
   이 두 작전이 성공하면 당분간 몰타는 문제없이 전쟁을 수행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 주재 미국대사관 무관이 워싱턴에 보낸 비밀 전문이 이탈리아군 정보대에 의해 해독되어 추축국은 두 작전 내역을 상세하게 알고 대비를 했다. 그 결과 하푼 수송대는 6척의 상선 중 4척이 격침되고 2척만 겨우 몰타에 도착했다. 문제는 침몰한 4척 중에는 지중해 작전 수행에 생명수 같았던 전투기 연료 4만3000t이 실려 있었다는 점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한 비고러스 수송대 역시 이탈리아 해군의 공격을 뚫을 수가 없어서 결국 항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에는 2달 동안 몰타로 가는 수송선단은 전혀 없었다.
   
   
▲ 영국 최고의 전쟁사가 맥스 헤이스팅스와 그가 최근에 펴낸 ‘페데스탈 작전’. photo maxhastings.com

   처칠의 결단
   
   보급이 끊기자 몰타 주민들은 식량배급을 받기 시작했다. 2주에 한 번 1인당 설탕 400g과 지방 200g, 빵 300g, 쇠고기 통조림 400g을 배급받았다. 봉쇄기간 동안 몰타인들의 배급은 1일 1500칼로리의 식량이었는데 당시 영국인 평균 칼로리가 2800칼로리였으니 거의 반밖에 안되었다. 8월 들어서는 사료가 수입되지 않자 가축을 도살해서 식량으로 쓰고 목초지는 식량을 위한 밭으로 바꾸었다. 심지어 일부 몰타인은 배고픔을 참지 못해 쥐를 잡아 먹기도 했다. 9월 전에 연료, 식량, 탄약이 공급되지 않으면 항복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는 전투기 연료까지 바닥이 나는 심각한 실정이었다. 당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몰타를 잃어버리면 대영제국의 재앙이라고 판단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집트를 방위하는 데 심각한 영향을 준다고도 생각했다. 영국은 또 하나의 식민지를 잃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6개월 전인 1942년 2월 영국은 일본에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싱가포르를 넘겨주었다.
   
   헤이스팅스는 “몰타를 구하는 작전은 도덕적인 십자군전쟁(moral crusade)이었다”며 이렇게 썼다. ‘전술적인 이득이나 전략적인 승리보다는 또 다른 치욕적인 항복을 막고자 하는 정책적인 결정이었다. 때로는 현실적 손익계산보다는 이상적인 손익계산이 정치인에게는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바로 몰타 구원 작전이 여기에 해당한다.’
   
   결국 영국은 처칠의 결단으로 전대미문의 사상 최대 수송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영국 역사학자들은 당시 처칠의 결단을 마거릿 대처 총리의 1982년 4월 포클랜드전쟁 결단과도 연결시킨다.
   
   수송 작전에는 극동과 영국 방위용 전함까지 동원됐다. 만일 일이 잘못되면 영국 본토 방위까지 위태로워지는 초극단의 위험이 따르는 작전이었다. 2차대전 최대의 수송선단이 구성되었는데 수송상선 14척, 전함 2척, 항공모함 4척, 순양함 7척, 잠수함 8척, 소해정 2척, 구축함 32척, 전투기 100기로 이루어진 호위함대가 나섰다. 수송선 중에서는 선복량 9263t, 길이 201m에 이르는 초대형 오하이오 유조선이 가장 중요했다. 여기에는 1만2000t의 전투기와 전함 연료용 기름이 실려 있었다. 다른 수송선에는 기름을 드럼통에 넣어서 실었다. 수송선 14척에 실려 보낸 물자는 몰타 그랜드항구의 하역 능력을 몇 배나 초과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수송 중 피해를 감안해 일부라도 도착하면 몰타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필요량의 4배나 되는 물자를 보낸 것이다. 결국 화물선의 4분의1만 도착했지만 몰타에 보내고자 하는 물량은 다 채운 셈이다. 처칠은 당시 미국을 방문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몰타 구원 물자 수송을 위해 대형 유조선을 요청했다. 특히 독일군 폭격에 견뎌야 하기에 쇠못이 아닌 용접으로 건조된 유조선을 요구했다. 그렇게 해서 새로 건조되어 영국에 넘겨진 배가 오하이오함이었다.
   
   
   오하이오함의 영웅들
   
   드디어 선단은 1942년 8월 3일 영국을 출발해 지브롤터해협을 지나 8월 9일 지중해에 들어섰다. 추축국군은 이미 지브롤터를 출발할 때부터 현지 정보원들을 통해 선단의 규모를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헤이스팅스는 독일과 이탈리아 자료를 이용해 이번 책에서 밝혔다. 어찌 보면 영국 수송선은 독 안에 든 쥐 격이었다. 추축군은 600대의 전투기와 전폭기, 잠수함 21척, 어뢰정 4척, 쾌속정 E보트, 기뢰, 잠수함 U보트 등을 이용해 영국 수송선을 격침하려는 작전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해군은 시칠리아해협 145㎞에 수만 개의 기뢰를 설치해 놓았다. 해협을 통과해야 하는 선단은 소해정 2척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항해하다 보니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항해 중 오하이오함은 집중공격을 받았다. 어뢰에 맞아 엔진룸에 불이 나고 갑판에 폭탄이 떨어져 구멍이 났다. 추축군 전투기는 기관총으로 쉬지 않고 공격해왔다. 이탈리아 전폭기가 수도 없는 폭탄을 떨어뜨렸으나 배 주변에 떨어질 뿐 다행히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보강을 하고 특별히 주문제작한 것이 효력을 발휘한 셈이다. 그러나 결국 폭탄으로 인한 피해로 엔진이 정지되고 조타장치도 고장나버렸다. 방향타도 떨어져나가 자력항해가 안 되었다. 이런 상황에도 영국 해군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순양함 한 대가 로프를 연결해서 오하이오함을 끌고 갔다. 오하이오함은 '시속' 9.3㎞의 속도로 천천히 끌려갔는데 전폭기가 공격하기에는 최고의 목표감이었다. 끌고 가는 순양함의 수병이나 오하이오함에 탄 선원들은 목숨을 내놓은 상태였다. 특히 오하이오함에 설치된 대공포를 쏘던 포병들은 엄청난 기름 위에 앉아 있었다. 헤이스팅스는 강연에서 이들의 영웅적인 전투를 “영웅적이라는 단어 말고 다른 용어를 찾고 싶었는데 능력이 닿지 않아 못 찾아 못내 미안하다”라고 했다.
   
   추축군 폭격기들은 오하이오함을 침몰시키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공격해왔다. 오하이오함을 끌고 가는 선박들과 연결된 밧줄이 자꾸 끊어져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20대의 폭격기가 달려들어 폭탄을 쏟아부었고 갑판도 파괴돼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8월 14일 드디어 수송선단은 몰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추축군의 공격은 더욱 심해졌다. 수병과 선원들은 3박4일 동안 거의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초인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다. 연료 부족으로 몰타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 전투기와 구축함, 항공모함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결국 마지막 남은 연료를 채워 공중전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천신만고 끝에 만신창이가 된 오하이오함이 몰타가 보이는 지역까지 도착했다. 이를 일러 헤이스팅스는 오디세우스가 양쪽에 목발을 짚고 이타카항구로 들어서는 귀환 같았다고 말했다. 몰타 내의 해안포들이 오하이오함 뒤를 따라오는 독일군 전함에 포를 쏴대자 더 이상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갔다. 8월 15일 아침 9시30분 드디어 몰타 수도 발레타의 그랜드항구 입구에 오하이오함이 자태를 드러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항구에 대기하고 있던 군악대는 영국의 제2 국가인 ‘브리타니아여! 통치하라!(Rule, Britannia)’를 연주하고 있었다.
   
   수송선단이 실어온 3만2000t의 연료는 몰타군의 10주치 연료였다. 만일 페데스탈 작전이 완전 실패로 돌아갔거나 오하이오 유조선이 침몰되었다면 2주 뒤 몰타의 연료는 완전히 바닥이 나고 몰타는 추축국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식량도 2주 뒤에는 끝이 나는 상황이었다.
   
   몰타가 함락되었다면 과연 연합국이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몰타는 중요했다. 선단이 수송해온 연료로 영국 전투기와 전함은 다시 추축국군 전함을 상대로 전투를 할 수 있게 되어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다. 결국 몰타는 1943년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작전의 기지가 되었고 곧 이탈리아 침공작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수송선단의 피해는 엄청났다. 수송선단 중 오하이오함을 포함해 5척만 도착하고 9척은 침몰되었다. 수송선단은 항공모함 1척, 순양함 2척, 구축함 1척 등 도합 13척이 격침되었고 전투기도 34기가 추락했다. 500명의 영국 해군과 상선 선원이 전사했다.
   
   
▲ 몰타로 향하는 영국 수송단을 공격하는 독일군 전투기. photo Comandosupremo.com

   “죽음의 몰타 작전이 2차대전 승패 갈랐다”
   
   이런 피해에도 불구하고 페데스탈 작전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차대전을 끝내는 변곡점(tipping point)이었다는 것이다. 헤이스팅스는 강연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페데스탈 작전 참가 군인과 선원들의 영웅적인 희생과 헌신을 잊지 말자”는 뜻이라고 했다. ‘몰타로부터 100마일 밖에서 오하이오는 이미 물속에서 죽었다’고 헤이스팅스는 표현했다. ‘찢겨지고, 두드려 맞고, 불타고 그리고 옆구리에는 구멍이 나고, 적군 전투기 두 대가 갑판에 추락해 있고, 엔진은 정지한 지 오래되었고, 조타 기능도 중단되고 방향타도 날아갔고’라고 당시 오하이오함의 상황을 책은 묘사한다. 그런 오하이오함을 영국 해군 수병과 선원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기에는 오하이오함에 실린 화물, 즉 연료가 너무나 중요했기 때문이다. 영국 호위함 수병들로서는 오하이오함을 포기하고 재빨리 몰타로 입항하면 목숨도 구할 수 있었다. 그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으리라는 걸 당시 함장이나 수병들은 알았다.
   
   수송단의 잠수함 수병들의 고통도 잘 묘사해 놓았다. 잠수함 내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물을 내릴 때 아주 조심해서 내리지 않으면 압력에 의해 자신이 빨려들어갔다. 잠수함 실내온도가 50도를 넘어가 거의 옷을 입지 못하고 살았다. 심지어 위의 독일군 구축함에 발각될까 겁을 낸 수병들은 신발을 벗고 다녔다.
   
   헤이스팅스는 페데스탈 작전을 ‘자살 해상 임무(suicidal maritime mission)’라고 책에서 말했다. 상선 선원들과 해군 수병들은 작전을 M작전(Operation M)이라고 불렀다. M은 살인(Murder), 즉 ‘죽음의 작전’이라는 뜻이다. 헤이스팅스는 ‘몰타로 가는 길은 안전한 길이 없었다. 그냥 위험한 길 중에서 하나를 골라 가는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라고 책에 적었다.
   
   이렇게 작전의 위험과 고통을 각오하고 출전한 수병과 선원들의 이야기를 헤이스팅스는 364쪽에 자세하게도 실어 놓았다. 이 책은 거대한 전쟁사가 아니다. 단 4일간의 전투에 얽힌 개개인의 기록이다. 헤이스팅스는 책 끝부분에 전쟁시인 존 푸드니의 시를 소개하면서 평범한, 그러나 영웅이었던 수병과 선원들을 기렸다.
   
   죽음의 호송
   아늑한 좁은 길과 골목길을 그리던
   물에 잠든 소소한 그들
   등불 밑의 구겨진 침대에서의 사랑
   로즈 크라운 펍에서의 맥주 한 잔

   
   ‘페데스탈 작전’은 현재 선데이타임스 주간 베스트셀러 일반 부문 4위이다. 출간된 후 한 달 만인 현재까지 누적 판매가 5400권일 정도로 인기다. 이 책을 보는 내내 우리의 한국전쟁이 생각났다. 영국인은 자신들의 오늘을 누리게 한 이들을 기리는 일이 바로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라고 느끼는 듯하다. 반면 이제 겨우 70년이 된 한국전쟁은 거의 잊히고 영웅들을 기리는 행사마저 제대로 없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천안함 희생자를 모독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페데스탈 작전’ 속의 영웅들을 기리는 영국인의 마음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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